▢0909(금) 연중 제23주간 금요일▢
◯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
+ 독서 : 코린토 1서 9, 16-19. 22ㄴ-27
<나는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해설) 성실한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에 충실합니다. 주인이 시키는 일을 충실히 했다고 하여 종이 주인에게 보수를 청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종도 주님의 복음을 선포했다고 해서 보수나 대가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참된 종은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일에 충실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16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17 내가 내 자유의사로 이 일을 한다면, 나는 삯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한다면, 나에게 직무가 맡겨진 것입니다. 18 그렇다면 내가 받는 삯은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것에 따른 나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하는 것입니다. 19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2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24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는 이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25 모든 경기자는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화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는 화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습니다. 허공을 치는 것처럼 권투를 하지 않습니다. 27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묵상)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내 자유가 아니라 주님의 은총과 선물로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전적으로 헌신할 것입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여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받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 화답송 시편 84(83), 3. 4. 5-6. 12(◎ 2)
◎ 만군의 주님, 당신 계신 곳 사랑하나이다!
○ 주님의 뜨락을 그리워하며, 이 영혼 여위어 가나이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향하여, 이 몸과 이 마음 환성을 올리나이다. ◎
○ 당신 제단 곁에 참새도 집을 짓고, 제비도 둥지를 틀어 거기에 새끼를 치나이다. 만군의 주님,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
○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행복하옵니다, 마음속으로 순례의 길 떠날 때, 당신께 힘을 얻는 사람들! ◎
○ 주 하느님은 태양이요 방패이시니, 주님은 은총과 영광을 주시나이다. 흠 없이 살아가는 이들에게, 복을 아끼지 않으시나이다. ◎
* 복음 환호송 요한 17, 17 참조
◎ 알렐루야. ○ 주님, 당신 말씀은 진리이시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소서. ◎ 알렐루야.
+ 복음 : 루카 6, 39-42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해설) 바리사이들은 열심히 율법을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 율법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통하여 모든 유다인들을 구원으로 이끌려고 합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율법의 작은 규칙은 지키면서도 율법의 참뜻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눈먼 소경들입니다. 소경은 다른 소경의 길잡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때에 39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야 없지 않으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40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41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묵상) 남을 바로 잡아 주려는 사람에게는 자기 잘못은 잘 파악하지 못하면서 남의 잘못만 보려는 위험이 있습니다. 남의 잘못은 크게 보이지만 자기 잘못은 큰 것이라도 작게 보입니다. 스스로 의로운 체하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자기를 바로 볼 수 있으며, 자기를 바로 볼 때 다른 사람을 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 영성체 후 묵상
사람의 눈은 앞을 향해 있기에 자신을 바르게 보기 어렵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 타인에 대한 잣대를 엄하게 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정하기 싫은 자신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서 마음의 눈으로 부족한 자신을 직시하고 자신과 화해할 때 타인의 허물과 흠도 내 잣대로 재단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2022년 09월 09일 금요일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010-8889-5425
첫댓글 예수님 앞에서 마음의 눈으로 부족한 자신을 직시하고 자신과 화해할 때 타인의 허물과 흠도 내 잣대로 재단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어찌하어 네 눈 속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속의 들보!
the wooden beam in your own!
★★예수님 앞에서 마음의 눈으로 부족한 자신을 직시하고 자신과 화해할 때 타인의 허물과 흠도 내 잣대로 재단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