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와 결단
1995년 1월 1일의 일기 한 도막을 소개함으로써 나의 삶이 얼마나 맹목적이었던가를 밝히고자 한다.
乙亥 새해아침이 밝아오고 있다. 새벽 4시 45분.
이제 내 나이 쉰셋이 된다. 글쎄, 최근 별 진전 없이 세월을 보내고 만 기분이다. 학문에 분발했다거나, 대인관계를 원만히 유지했다거나, 재산을 불렸다거나, 교직 성장에 큰 획을 그었다거나, 나름대로의 삶의 철학을 가지고 살고 있다거나…어느 하나 제대로 갖추지도 못하면서 부산하기만 했던 최근 10년.
그러나 3년 전 존경하는 아버님을 여의었고, 불혹의 나이 50이 넘어섰으며, 큰아이를 시집보내어 할아비가 되었고, 대학에 발을 들여놓은 지도 만 12년이 되었는가 하면, 아이들도 많이 성장했다.
돌이켜 보면, 나의 인생 여정은 제4기를 거치고 있다.
10대까지는 순진무구기, 20대는 교단 지상주의기, 30대는 학문 재도전기, 40-50대는 생산적 과업 지향기라고나 할까.
사범학교를 졸업하기까지의 십대는, 학교 가는 길과 오는 길밖에는 모르는, 교과서적인 삶이었다. 그 길만이 나의 전용도로였다. 즉 정체감을 형성하기 위한 특별활동이 없는 것이다. 고작 붓글씨 쓰는 일에 매달려 보기는 했지만, 인생관과 세계관을 넓히는 일에는 소홀하였으니, 그 시절 상담지도가 정말로 필요한 때였다. 사범학교 교육과정은 師表를 기르는 내용으로 꽉 짜여있고, 한결같이 교사의 자질을 강요하고 있어서, 순진무구한 나로서는 일거수일투족을 오직 교사가 되기 위한 노력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 때 익혀진 기본적인 교직 생활 습관이 지금도 남아있다.
20대는 초등교육 현장에 만족하면서 모든 정열을 다 바쳐 한국의 교육 성자가 될 양으로 나의 학급에 충실하기에 바빴다. 고향 학교를 자원하여, 방학도 없이 아이들과 씨름하면서 교직을 천직으로 삼으면서 향토발전에 조그만 기여를 했다고나 할까. 동료 교사를 의식하지 않고 오직 나의 길, 가르치고 연구하는 길 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다. 주변의 찬사를 받으면 보람 같은 것을 느끼면서 오직 매진할 따름이었다. 인생을 살찌우기보다는 현실에 집착하였고, 넓은 세계를 지켜보기보다는 우물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생활이었다. 선배님들은 도약하기를 권유했으나, 자신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의지만을 고수하면서 모든 정열을 학생의 단기적인 성장에 집중하고 있었다.
30대. 광주에서 교직생활을 하면서, 보는 눈이 달라져 갔다. 더 배워야 한다는 자극이 들어오고 거기에 편승하고 있었다. 주변의 도움으로 이제 다시 놓았던 책을 들추어보고 자기를 재조명해 보면서 방학 중에는 쉬지 않고 대학과 연수회를 찾았다. 교육대학, 법정대학, 대학원을 두루, 학기 또는 방학 중에 이수하느라고 눈코 뜰 새 없는 기간이었다. 승진도 영전도 바라지 않고 오직 공부하는 재미를 느껴 본,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삶의 의미가 충만했던 시기가 아니었던가 싶다.
40대는 학문을 중단하고 탐욕과 허세가 가득한 삶이었다. 20년간 몸담아 온 초등 교단을 과감히 버리는 만용을 부리면서, 대학을 겨냥하여 사립 중․고등학교로 옮기고, 대학 외래 강사생활을 자원하면서, 급기야는 전문대학 전임 한 자리를 얻는데 성공한다.
30대에 학문하던 즐거움 속에서 내 인생이 영글었다고 자부했던 자신이, 탐욕적 현실주의자가 되어버린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어 스스로 책망하면서도, 그러한 일들이 생산적인 과업을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합리화한다.
이제 악몽은 지났다. 대학 유아교육과에서 교육학을 강의하면서 예비 교사들에게 교직의 아름다움을 심어주고, 사회에서 보람 있는 교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일에 어느 정도 성숙된 지도를 행할 수 있는 자리 매김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 이 후의 10년 동안은 나의 모든 역량을 오직 학생지도와 사회 계도에 바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새해 아침을 맞으면서, 그 동안 벼르던 나의 '단상 기록'을 재개하려 한다. 교직에서 황금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기록하면서 되돌아보는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가끔씩 기록해두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면서도, 어떤 계기를 찾느라고 이제까지 미루어 왔지만 이젠 1995년 1월 1일 새해를 맞으면서 그 조그만 약속을 이행하고자 한다. 이 기록은 나의 교직생활 제자리 지키기에 귀중한 채찍이 될 것이다.
유년기 과보호 상태에서 자란 나는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데 많은 난관을 겪으며 성장했다.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공부하는 데 묻혀 사회성이 옅어도 그 허물을 가렸으나, 중학교 다닐 때에는 적잖은 적대감도 느끼게 되었다. 그저 공부하나로 자신을 유지하는 모양이 좋지 않게 보였으리라. 그런가하면, 늘 가까이서 도와주고 위해주며 고락을 함께 나눈 친구들이 많았다. 나이 든 동급생 친구는 항상 격려와 애정을 주었다.
사범학교는 정으로 모인 집단이며, 지금도 그 때의 정을 되새기며 만나고 있다. 사범학교 졸업 후 바로 교사가 되었으니, 교사가 되어서도 사회적 적응 능력이 아주 미숙했다. 고향에서 근무할 때, 객지에서 온 동료들을 집으로 모시거나 사소한 일이라도 봉사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주어졌더라면 좋았을 것인데….
인생을 살아오면서 고뇌와 번민에 빠진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포기하라고 종용하신 부모님과의 작은 갈등, 고등학교 선택을 두고 공업고등학교냐, 사범학교냐를 두고 진로지도를 해 주던 한 족숙과의 의견 대립, 초임 발령지를 두고 광주 인근이냐, 고향이냐를 선택하던 일, 고향에서 진학지도에 재미를 붙이는 도중 선배들의 광주 진출 권유를 받아들일 때의 괴로운 선택, 교원교육원 강의와 1급 정교사 강습 중 택일하여야 하는 어려움, 대학교 편입을 두고 과다한 편입금 마련이 어려워 진학을 망설일 때, 승진이냐 면학이냐를 두고 눈앞의 승진의 길을 버리고 진학에 진력하게 되었을 때의 어려운 결단, 초등학교 교사 시절 대학 강의를 오가며 수업 결손을 가져오게 되었을 때의 진로 문제로 고심했던 일, 21년간의 초등학교를 청산하고 중․고등학교로의 전출을 결심했던 때의 허탈감과 정체감에 대한 회의, 더욱이 전문대학 전임이 되려는 과욕으로 평소 가꿔 온 인생관(가치관)을 손상시키던 일 등등.
고뇌를 뚫고 나서야만 삶은 여물고 한층 무르익는다고 한다. 고뇌는 인간으로 하여금 삶다운 모습, 즉 진실한 삶을 가져오게 한다는 말이다. 고뇌한다는 것은 어느 경우보다도 삶을 진실하게 하며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진실한 삶을 위하여 고뇌하며, 고뇌를 통하여 비로소 삶이 충실하게 되는 것이니, 고뇌 그 자체가 삶의 본연의 모습이다.
들판에 갈래 길이 있다. 이 길로 갈 것이냐, 저 길로 갈 것이냐가 문제다.
어떤 어린아이가 졸랑졸랑 걸어온다. 그 아이의 눈은 티 없이 맑다. 갈래 길에 와서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망설인다. 어디선지 「오른 쪽으로 가라」는 소리가 들린다. 어린아이는 방긋 웃으면, 아무 망설임 없이 오른쪽을 다시 졸랑졸랑 걸어간다.
어떤 청년이 성큼성큼 걸어온다. 그의 눈은 뚫어보듯 빛이 있으면서 미간에는 어떤 고민이 서려 있다. 갈래 길에 이르자 멈추어 들판을 내다본다. 어디선지 「왼쪽으로 가라」는 소리가 들린다. 청년은 움직이지 않은 채, 다시 그 쪽을 노려본다. 다시 어디선지 「왼쪽으로 가라」는 소리가 울려온다. 청년은 다시 그 쪽을 뚫어본다. 빛나는 눈이 한참 들판의 여기저기 멀리 가까이를 덮더니, 마침내 청년은 입가에 결심을 담고 어느 길을 간다.
어떤 중년 노인이 뚜벅뚜벅 걸어온다. 그의 눈은 세파에 시달렸는지 길들여졌는지 그저 둔탁하지만,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입이 삼각으로 닫힌 꼴이 꽤 도가적인 고집이 센 것 같다. 그는 갈래 길에 닿아도 멈추지 않는다. 고개를 젖힌 채 그대로 오른쪽으로 걸어간다. 그러나 그의 둔탁한 눈에는 넓고 먼 들판의 여기저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상은 교육학자 정범모 박사의 말씀이다.(가치관과 교육, 1972)
인생관, 가치관 형성은 청년시절의 중대과업이다. 어린아이들의 가치관이나 중년 늙은이의 가치관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여러 갈래의 길 앞에 서서 슬기롭고 능력 있고 용감하게 독자적으로 방향을 결정하는 문제이다.
나의 교직 여정을 돌이켜 보면 중대한 인생관, 가치관이 아주 서서히 정착되었다는 후회를 하곤 한다. 배움이 적었을 때 단견이 지배하였고 점차 틔어가면서도 확고한 철학이 정립되지 못했었다.
늙은 학생이었던 대학원 시절에 만난 노 철학자(동국대학교 정종 교수님)의 말씀이 어찌 그리 마음에 와 닿았는지 지금도 가끔 그 교수님을 상상하면서 자신을 조명해 보곤 한다. 가끔 되뇌어지는 교수님 말씀들이 나의 생활에 밝은 지표가 되고 있다.
인간이 되어서 무엇 하느냐는 질문에 굳이 답을 구할 이유가 없다. 인간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충실한 생을 통하여 인간을 완성시키는 게 생의 목표다. 현대 전환기의 무서운 사조로서 네 가지가 보인다. 하나는 허무주의이다. 일체를 부정한다. 일체를 의심하나 자신의 말은 긍정하는 모순에 빠진다. 둘은 염세주의이다. 그들은 현실을 비판만 하고 부정하기만 한다. 세상이 싫다. 셋은 상대주의이다. 그들은 과격한 경쟁을 통하여 상대를 파멸시킴으로써 성공감을 갖는다. 넷은 회의주의이다. 의심하고 강박적이며 불신이 만연되어 옳은 일이 없다.
Humanism의 적은 위와 같은 무서운 사조들이다. 인간을 부정하면 자살이 따른다. 진실로 인간이 목적이라면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이 급하다. 이 세상에는 교장이 되기 위해 인간을 폐업한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가!
인간의 사다리 맨 밑바닥 인간의 노고를 모르는 사회나 팀은 성공할 수 없다. 맨 밑바닥 어머니의 산고(빛나지 않는 힘)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는 게 아닌가!
Mallory는 ‘We expect no mercy from Everest.(우리는 Everest로부터 아무런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라 하였다. 살아가는 데 결코 요행을 바라지 않아야 하며, 지나치게 우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인생은 고뇌와 결단의 연속.
고뇌와 결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기(안정기)가 있다면 좀 좋을까? 고뇌, 결단을 모두 가지지 않고도 살수 있다거나 원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필시 그들은 무사안일주의자이거나 낙천주의자이거나 점액질적 기질의 소유자이리라.
그러나 현대는 전환기에 놓여 있기에 고뇌가 필수이며 결단이 따라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 역사도 근원적으로는 고뇌와 결단의 구조적 표현이라고 본다.
철학자 Jaspers 역시 ‘철학 한다는 것은 하나의 결의의 문제’라고 보고 있듯이 고뇌만 있을 뿐 결단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고뇌 없는 결단은 맹목이요,(경거망동)
결단 없는 고뇌는 공허하다.(우유부단)
고뇌를 풀이하면 결단으로 옮아가기 직전의 전인적 의식내부에 맴돌고 있는 잠재적 미정의 상태라 할 수 있고, 결단을 풀이하면 전인적인 내적 조화가 의식 외부로 나타나는 정신의 집약적 상태라 할 수 있으니, 결단이 이어지는 고뇌라야 생산적이고도 창조적인 것이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을 발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하는 것은 모든 학에 대한 철학의 우월성이다. 철학을 통하여 인간과 그 현실을 지도할 수 있는 세계관(인생관)을 수립함으로써 인생을 보다 진실하게 영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60을 耳順이라 했다. 낼모레 60이니 바른 귀를 가져야 한다. 순리를 터득하여야 한다. 그 동안 경거망동이 무릇 기하이며, 우유부단이 무릇 기하였나! 깊은 고뇌가 있었다면 무거운 결단이 따라야 한다. 고뇌에 차 인생을 부정하고, 쓸데없는 결단을 자주 내려 어른스럽지 못한 모양을 보여서야 되겠나!
인생이 다하는 날까지 예의와 도덕, 정의와 진실, 사랑과 믿음, 양보와 절제, 나눔과 봉사를 곁에 두어, 고뇌하며 채찍하며 반기며 즐거워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리라.
(2020.10.15. 25년 전의 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