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의 확대의 새로운 전기 마련 동화작가 신지은은 작년에〈국제신문〉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된 신예 동화작가이다. 그런데 그리 거창한 상금도 없고 화려하지도 않은 계몽아동문학회 주최의 2005년〈제2회 황금 펜 문학상〉동화 부문에 작품을 응모하여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이는 자신의 동화 창작 능력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열정과 이를 확인하기 위한 시도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번의 당선은 작품의 문학적 완성도의 성패를 떠나, 우리 동화문학에서 좀체 시도되지 않고 있는 역사적 소재를 취재하여, 그것도 현실의 리얼리티를 다룬 아동소설이 아니라 현실과 판타지의 접변을 통한 동화로 완성하였다는 데에 큰 의의를 둘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 속에는 조선시대 유랑 예능인 패거리였던 남사당패의 유랑 생활에 대한 민중의 페이소스와 민속놀이에 대한 풍경이 곳곳에 배치되어, 이 작품을 읽는 이에게 우리 민속에 대한 관심을 통한 인문학적 교양의 수용과 민중의 애환에 대한 관심과 연민을 촉구하고 있다.
이번에는 연지곤지를 찍은 각시인형들이 틀어 올린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습니다. 인형극이 펼쳐지면 관중들은 ‘어휴, 저, 저, 못된 덜머리집! 박첨지 영감과 바람난 덜머리집!’ 하면서 미워합니다.(인형극 ‘박첨지 놀이’)
단장 꼭두쇠가 고사상에다 대고 큰절을 합니다. 다른 광대들도 두 손을 모으고 절을 올립니다. 그 뒤를 이어 화장을 한 어린 삐리들이 가뿐가뿐 절을 합니다. 비나리를 마찬 광대들이 마을 사람들과 술을 나누어 먹습니다. 상위의 커다란 삼치는 어느새 뼈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비나리)
한바탕 장구소리와 꽹과리 소리가 흥을 돋웁니다. 그 흥을 몰아 광대들이 접시를 돌립니다. 가는 막대기 위에서 돌아가는 접시를 따라 마을 사람들의 눈이 이리저리 굴러다닙니다. 접시가 땅에 떨어질까봐 관중들이 더 조마조마해 합니다. 아이들도 손에 땀이 나는지 삼베 적삼에 손을 쓱쓱 문지릅니다. (버나)
살판이 끝나자 줄이 쳐졌습니다. 어느새 초승달은 잠자러 가버리고 산 그림자가 밤을 더욱 깊게 합니다. 벌겋게 타는 관솔불이 이글거리며 한 가닥 줄을 밝힙니다. 송진가루를 손에 바른 어름쇠가 성큼 줄 위로 올라갑니다. 오늘따라 줄이 심하게 흔들립니다. 어름쇠의 얼굴도 땀으로 번들거립니다. 어름쇠가 겨우 중심을 잡고 한 발을 내딛습니다. (어름)
대잡이들은 검은 포장을 친 무대 밑으로 들어갑니다. 높다란 무대 위에 박첨지 인형이 세워졌습니다. “어이 어이 떼루 떼루 다떼떼로야 떼로야 떼루 떼루 떼루......” 대잡이가 무대 밑에 숨어서 노래를 부르며 박첨지 인형의 팔을 조종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정말 박첨지 인형이 말을 하는 줄 알고 박첨지 인형만 쳐다봅니다. 덜머리집 인형도, 홍동지 인형도, 평양감사 인형도, 이시미 인형도, 모두모두 무대에 세워졌습니다. (꼭두각시놀음, 일명 ‘박첨지놀이’)
위의 인용문과 같이 이 작품은 작품의 모두(冒頭) 부분인 길놀이를 시작으로 해서 남사당패의 민속놀이인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꼭두각시놀음) 등 6과장의 내용을 꼭두각시놀음 속에 등장하는 인형들의 시각을 통해 유랑 연예인들의 애환을 주 모티브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서 사건을 전개시키는 주체적 역할을 담당하는 인형들을 내세운 꼭두각시놀음에 중점을 두어 서사 구조를 편성해야 함에도, 작가는 남사당패의 민속놀이를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욕심에서 위 인용문처럼 각 과장을 소개하여 작품의 초점 심도를 흐리게 하고 있다. 단편이라는 짧은 분량에는 좀 벅찬 내용이긴 하지만, 동화작가들이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던 근대사에서 소재를 취재하여 이를 형상화하고자 한 작가의 소재 개척에 대한 열정과 모험의 정신은 본받을 만한 쾌거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아동소설이 아닌 현실과 판타지의 접변을 다룬 동화로 시도하여 아동문학의 본질적 기능인 민중의 애환이라는 ‘교시적 기능’과 재미로서의 ‘쾌락적 기능’의 재미를 어우러지게 시도함으로써 작품의 문학적 완성도를 꾀하고 있다. 조금 더 분량이 많은 중편이나 장편으로 시도했더라면, 작가의 현실인식과 주제의식이 더욱 더 선명하게 표현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하튼 이 작품은 역사적 소재를 통해 동화의 미개척 분야를 답사했다는 긍정적 측면과, 짧은 분량으로 소재를 심도 있게 다루지 못하고 ‘주마간산’ 격으로 훑고 지나가고 있다는 부정적 측면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인물의 행동에 대한 심리적 리얼리티의 추이 작가 신지은의 서사 구조에 대한 탁월한 능력은 이 작품 속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30매 정도라는 짧은 길이에도 불구하고 남사당패 민속놀이의 6과장을 서사 구조의 적재적소에 삽입하고, 작품의 후반 부분에 꼭두각시놀음인 ‘박첨지 놀이’를 중심으로 하여 인형들이 ‘어름삐리’를 탈출시키는 장면의 서스펜스의 긴박감이 이를 잘 예증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매는 마을사람들의 머리 위를 한바퀴 돌더니 잽싸게 삼치 뼈를 낚아채 왔습니다. 사람들은 이것도 연극인 줄 알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박첨지 인형은 삼치 뼈의 꼬리를 이시미 등에 꽂아 세웠습니다. 정말 훌륭한 돛이 되었습니다. “자, 모두 올라타라. 우리 마음대로 움직이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찾아가자!” 박첨지 일행은 돛을 잡고 말했습니다. 인형들은 모두 이시미의 등에 올라탔습니다. “이시미야. 가자! 어름삐리도 태우고 가자!” 이시미는 무대 위에서 공중으로 솟아 오르더니 어름삐리가 있는 어두운 구석으로 날아갔습니다.
위의 인용 부분은 이 작품의 후반부로, 박첨지의 지시 아래 꼭두각시놀음의 인형들이 어름삐리를 함께 태우고 놀이마당을 탈출하는 장면이다. 그들의 탈출 목적은 ‘마음대로 움직이고 말할 수 있는 세상’으로서의 이상향을 찾는 것이다. 이 장면으로 유추해 본다면 이 작품 속의 꼭두각시놀음의 인형들은 당시 양반 계급의 권력적 횡포와 인간적 멸시에 수모를 당하고 있는 힘없는 민중을 상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한 근거는 줄타기를 하던 어름쇠가 떨어져 죽은 사건과, 남사당패 단장인 꼭두쇠가 줄타기를 하지 않으려는 어름삐리를 걷어차는 폭력적인 행동으로 전반부에 하나의 복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이 작품은 두 개의 의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하나는 당시의 양반들의 권력적 횡포를 야유하는 의미로 공연되었던 꼭두각시놀음으로 상징되는 표층적 구조이고, 다른 하나는 단장인 꼭두쇠의 폭력적 횡포와 인간적 멸시에 대한 인형들의 탈출로 상징되고 있는 심층적 구조이다. 그러나 심층적 의미의 구조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꼭두쇠의 권력적 횡포와 단원들에 대한 인간적 모멸의 행태가 더 치열해질 필요가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것이 약화되어 탈출의 심리적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동화나 소설에서는 플롯으로서의 서사 구조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사건을 펼쳐 나가는 주체적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심리적 리얼리티의 확보가 더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어름삐리가 첫 줄타기에 왜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심리적 모티브가 몇몇 에피소드에 의해 보다 강화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하여 심리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해 탈출 사건이 ‘작위적인 서사’로 비치고 있는 것이다.
판타지의 리얼리티 확보에 대한 문제 동화에 있어서는 판타지가 가능하지만, 판타지의 내면 구조에 있어서는 나름대로의 리얼리티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판타지 텍스트에서는 이 작품처럼 꼭두각시놀음에 나오는 박첨지 인형을 비롯한 모든 인형들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지만, 그런 행동의 모티브에는 나름대로의 리얼리티가 근거가 되어야 한다. 이 작품 속에서 이시미 등 위에다 삼치 뼈를 돛대 삼아 꽂고 인형들이 탈출하는 장면에서, 제법 무거운 인형들일 터인데도 각종 인형들과 제법 몸무게가 나갈 어름삐리까지 태운다는 것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리얼리티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러한 탈출 행위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작가는 세심한 논리적 장치를 준비해 두어야 할 것이다. 즉, 모두 잠자고 있는 동안에 탈출하게 한다거나, 아니면 이시미의 몸체가 그러한 무게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과학적 리얼리티의 서술이나 묘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의 서사 구조가 처음부터 끝까지 판타지로 일관되는 서사 구조를 취하고 있다면 이러한 모든 리얼리티가 정당성을 가질 수 있지만, 이 작품은 판타지와 현실의 접변을 다루고 있다는 데에 한계를 지니고 있다. 관중들이 지켜보고 있는 현실의 장면에서 이시미의 등에 모든 인형들과 더구나 사람인 어름삐리까지 탄다는 것은 리얼리티의 허점을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지만, 남사당 세계의 인간적 비정성과 현실에 대한 충분한 서사 구조가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인형들이 탈출한다는 것은 행위에 대핸 충분한 리얼리티를 확보하지 못해 ‘작위적 결말’ 처리라는 지적을 받게 되는 것이다.
보다 더 완성도를 갖추기 위한 몇 가지 제언 작가 신지은은 이 작품의 당선에 연연하거나 그 결과에 만족하지 말고 더 한층 분발하여 보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드는데 노력해야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에 당선된《어름삐리》에 대한 개작에 들어가야 하리라고 분다. 좀더 세심한 자료를 수집하여 작가의 현실인식과 주제의식, 그리고 서사적 재미를 확보하기 위해선 장편으로 늘여야 하리라고 본다. 아무래도 남사당패의 유랑적인 삶에 대한 한과 애환이 보다 더 세밀하게 형상화되고, 우리 민속에 대한 전통과 계승으로서의 민속놀이의 6과장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인물들의 행위에 대한 심리적 추이 과정으로서의 리얼리티 확보, 어름삐리가 어떤 과정에서 남사당패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출생적 비밀에 대한 호기심, 남사당패와 당시 양반 권력층 간의 긴장 구조를 통한 민중들의 애환과 저항 의지, 남사당패 내에서의 단원들 간의 갈등과 대결 등이 한데 어우러지게 작품을 형상화한다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 작품은 한국동화문학사에서 역사적 전통의 소재화라는 훌륭한 전통을 수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또한, 소재의 확대와 심화라는 측면에서도 많은 작가들에게 자성적 분발과 함께 자신의 창작 세계에 대한 성찰의 기회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신지은의 이번 당선은 작품의 완성도라는 측면을 떠나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편협한 소재에만 안주하고 있는 우리 동화문학 작단에 혁신적인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는 측면에서, 또한 짧은 분량에도 주제와 현실인식을 선명하게 형상화한 점, 무엇보다도 서스펜스를 적절하게 활용한 서사 구조에 대한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었다는 측면에서 큰 의의를 두어야 할 것 같다. 동화작가 신지은의 앞으로의 작품 세계가 이번의 당선을 계기로 삼아 보다 더 넓어지고 깊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