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성공회 내동교회에서 성찬례를 드리고 아트플랫폼, 대불호텔 전시관, 차이나타운으로 가는 길 및 청일조계지역 경계비, 계단을 보았습니다. 아트플랫폼에서 제일 눈여겨본 예술작품은 전통어선입니다. 나무로 만든 배인데, 서해안에서 어업노동을 하는 어민들이 바닥을 얕게 만든 배입니다. 조선업을 공부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료입니다.
1845년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타고 간 배이기도 합니다. 천주교가 탄압을 받으니 페레올 주교가 배를 타고 상해에 와달라고 부탁을 했기 때문에, 김대건 부제와 11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타고 간 라파엘 배가 아트플랫폼에서 본 전통어선입니다. 그 때 배를 타고 떠난 지역이 인천역에서 내려 조금만 가면 볼 수 있는 제물진두 성당입니다. 엄마 말씀으로는 김대건과 11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배를 타고 출발한 곳에 만든 성당인데, 실제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의 올림피아 호텔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이 배를 타고 상해까지 모험을 하여, 1845년 진자샹 성당에서 한국 기독교사 처음으로 조선인 천주교 사제로서 서품을 받았으며, 올 때에도 라파엘 배를 타고 제주도를 거쳐 왔다고 합니다. 인천이 세계와 통하는 길목임을 말하고 있는 배입니다.
실제 감리교회 아펜젤러 목사와 우리 성공회의 고요한 주교가 1882년, 1890년에 제물포항(지금의 인천항. 인하대학교병원 뒤편입니다.)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으며,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쓴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이이화 옮김, 살림.1997년)에 따르면 고요한 주교와 랜디스 선생은 제물포에 선교소와 의료선교기관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필자가 판단하기로는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성공회 인천 내동교회 및 낙선시 병원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펜젤러 목사가 조직한 감리교회는 성공회 내동교회와 마주하는 내리교회-실제 첫 개신교 교회라고 표지판을 붙였습니다. 단순한 교회 건축이 아름답습니다.-이고, 인천역과 가까운 기독교 100주년 기념교회 및 탑으로써 아펜젤러의 선교활동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개항으로써 개신교, 성공회라는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는 역사가 깃든 도시가 인천광역시입니다.
경제사에서도 외국의 자본이 들어온 역사이기도 합니다. 1875년 강화도 조약을 일본과 조선의 외교관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대등하게 교섭을 하여(경향신문 오피니언), 부산, 인천, 원산을 개항을 하였는데, 이사벨라 버드 비숍에 의하면 무역이 활발하다고 했습니다. 실제 인천 중구청 앞 일본인 조계지역, 한국근대문학관(상설/기획전시실), 신포시장은 일본과 중국의 금융 자본가들과 상인들이 금융(인천은행 조선지점. 지금은 개항박물관으로 씀), 상업 활동을 한 곳입니다. 신포역 앞의 세무서, 그 앞인 인천중동우체국(1927년. 지금은 인하대학교 병원에 사옥을 옮김), 중구청 앞 즉 인천의 일본인 조계지 지역의 일본은행 조선지점 앞에 있는 체전부 곧 집배노동자 동상(1912년 기준)도 당시 활발한 상업, 금융 자본가들의 상업, 금융 활동을 말하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1898년 인천과 서울 사이의 철도를 건설하기 이전에는 대불호텔이라는 서양호텔에서 묵기도 함을 생각해보면 당시 인천을 통해 조선이 조선 밖과 소통을 하였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조선인 노동자들의 저임금노동에 의존했고, 조선인 노동자가 일본인 관리직 노동자에게 폭행치사를 당하는 등 인권이 상당히 심각하게 침해되었다는 것이고, 실제 한국의 노동운동은 개항기와 시기를 같이 하여, 광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미국인 자본가에 저임금노동에 항의하는 파업투쟁으로써 저항합니다. 인천 한국근대문학관 상설전시장에 있는 인천이 배경인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전시전에서도 인천의 휴양시설로서의 화려함은 조선인 노동자들의 피땀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023년 10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