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을 찾아오다.
1.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부와 영광은 온 세계에 알려졌고, 이것을 보기 위해서 천하의 왕들이 이스라엘을 찾아왔고 솔로몬을 방문했습니다(23~25). 그 중 한 대표적인 사례가 스바 여왕의 방문입니다.
2. 그러나 솔로몬이 영광의 주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이러한 영광과 부와 명예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어떻게 영광스럽게 하셨는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3. 스바 여왕의 말이 그것을 보여주는데,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와 부와 영광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9). 솔로몬의 지혜와 부와 영광은 솔로몬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이 모든 것을 제공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솔로몬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과 그 나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서 하고자 하신 거룩한 계획이었습니다.
4. 솔로몬의 명예도 높아지고 나라가 부강해지면서, 주변 나라들로부터 받는 세입금도 늘어갔고 솔로몬의 삶도 점점 더 부요해졌다는 사실을 성경은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무역을 통해서 나라가 부요해지면서 군사력도 증강되었습니다.
5. 하지만 10장 마지막에 쓰인. 군사력 증강과 애굽의 말들을 사들였다는 언급은 솔로몬의 마음이 하나님의 율법에서 해이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28~29). 하나님께서는 군사력을 상징하는 말들을 왕들은 많이 두지 말라고 율법에서 이미 명령하셨습니다. “그(왕된 자)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신17:16).” 왜 이런 명령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6. 솔로몬에게 주신 것이 많았던 만큼, 솔로몬이 경험했던 유혹도 컸을 것은 분명합니다. 가난하게도 말고, 부하게도 말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먹여달라고 구한 잠언 기자의 기도(잠언 30:8)는, 이런 것을 깊이 경험한 사람의 기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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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을 보기위해 예루살렘에 왔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주시겠다고 한 것 중 영광 즉 명성을 주셨음에 대한 것입니다. 솔로몬의 명성이 주변 나라를 넘어서 먼 타국에까지 전해졌으며, 이방사람에 의해 증언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에 의해서 여호와의 이름이 먼 나라 사람들에게 까지 전해졌고, 그 소문을 들은 스바 여왕에 의해 하나님의 영광이 증언되고 있습니다.
(1) 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스바’가 어디인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주로 아라비아 반도 남단 끝의 현재의 예멘 지역의 한 나라로 여겨집니다. 거리로는 예루살렘에서 약 2,400km 정도되는 먼 거리에 있습니다. 이렇게 멀다는 것은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의 명성이 어느 정도 였는지를 말해주기 위한 것입니다.
스바의 여왕은 들은 소문을 확인 할 뿐만아니라, 직접 시험하여 보고자 했습니다.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스바의 여왕입니다. 왜 스바의 여왕은 그 먼 곳에서 부터 와서 솔로몬의 명성이 사실인지를 시험하려 했던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을 시험하러 왔다는 이 이야기는 뜬금 없습니다. 그러나 이 밑도 끝도 없이 등장한 스바의 여왕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스바의 여왕이라는 이스라엘과 멀리 떨어진 외부의 제3자가 등장 함으로써 ‘이스라엘 이라는 나라가 가진 의미’의 확장성을 암시합니다. 즉 거리와 인종을 초월한 진리의 전파와 확장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시편 113:3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와 같은, 선지서와 시가서에 나타나는 예언들은 역사서에서 이렇게 나타납니다. 이처럼 스바 여왕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이라는 한 나라를 통해 모든 세상에 전파될 것이라는 예언적인 암시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종말론적으로 사도행전에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는 말씀으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이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스바의 여왕과 같은 그 진리에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2-3) 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솔로몬이 그가 묻는 말에 다 대답하였으니 왕이 알지 못하여 대답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더라
스바 여왕이 자기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솔로몬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는 그가 준비했던 모든 문제들을 질문했다는 것입니다. 스바 여왕이 어떤 질문을 했고, 솔로몬의 대답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다만 스바 여왕은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말했고, 솔로몬은 묻는 모든 말에 다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스바 여왕은 귀로만 들었던 것들은 눈으로 모두 확인을 했습니다.
(4-5)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모든 지혜와 그 건축한 왕궁과 그 상의 식물과 그의 신하들의 좌석과 그의 시종들이 시립한 것과 그들의 관복과 술 관원들과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크게 감동되어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와 그의 건축물들 뿐만아니라, 궁정의 신하들과 관원들의 모습을 보고 감탄을 했습니다. 아마도 신하들과 관원들의 외모와 의복상태 그리고 질서와 그들의 자태 등이 감탄을 일으킬만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6-7) 왕께 말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사실이로다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친히 본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내가 들은 소문보다 더하도다
스바의 여왕은 결론을 내립니다. 솔로몬에 대해 들은 것이 사실과 다름이 없고, 들은 것은 실제 사실의 절반도 못된다고 합니다. 소문과 평판은 과장되기 쉽기 때문에, 그대로 믿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스바 여왕이 솔로몬에 대해 귀로만 듣던 소문은 진실이었을 뿐만아니라, 실제는 소문보다 더 했다는 것입니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 不如一見)이라는 말과 같이, 스바 여왕은 귀로만 듣던 솔로몬의 명성을 찾아와 직접 확인 했습니다. 그래서 스바 여왕의 이 증언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대의 많은 사람이 솔로몬의 명성을 들었어도, 스바 여왕이 그 대표적인 증언자로 기록된 것은 그가 여호와로 인한 솔로몬의 명성을 귀로만 듣지 않고 수 천리 길을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전파되지 않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듣고 진리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세상은 진리에 무감각해 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세상에 대해 마태복음 11:16-17에서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새벽을 여는 우리는 정말 복된 사람들입니다.
(8-9)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복되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본문에서 복된 사람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그것에 반응하여서 직접 찾아와 직접 확인하기 까지한 스바 여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까이에 있어 너무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지는 것이 더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진리에 대해서, 말씀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솔로몬 시대의 하나님으로 인해 퍼진 솔로몬의 명성은 그림자와 같았지만, 우리가 들은 2000년 전 부터 예수 그리스도로 드러난 복음은 완전합니다. 복음은 솔로몬의 지혜와 명성과 견줄 수 없는, 창조전 부터 감추어졌던 비밀이자 진리 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 많이 들어서 익숙해지고 감흥이 없을 수 있지만, 이 복음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한(눅10:24)’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감추어졌다, 그 토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원했던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고 흔한 것이 되어 있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바의 여왕에 대한 기록을 그렇게 해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42에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스바 여왕과 같은 열정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소망합니다.
스바 여왕은 여호와를 섬기지는 않았지만, 솔로몬에게 확인한 그 명성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9)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왕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하고
말씀과 진리의 결과는 하나님께 찬양하고 영광을 돌릴 뿐만아니라,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그 거룩하심은, 한 왕을 통해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행하므로 사랑이 실현되게 하십니다. 말씀과 진리를 듣고 소유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므로 사랑을 실현하는데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10-13) 이에 그가 금 일백이십 달란트와 심히 많은 향품과 보석을 왕에게 드렸으니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드린 것처럼 많은 향품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더라 11 오빌에서부터 금을 실어온 히람의 배들이 오빌에서 많은 백단목과 보석을 운반하여 오매 12 왕이 백단목으로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의 난간을 만들고 또 노래하는 자를 위하여 수금과 비파를 만들었으니 이같은 백단목은 전에도 온 일이 없었고 오늘까지도 보지 못하였더라
13 솔로몬 왕이 왕의 규례대로 스바의 여왕에게 물건을 준 것 외에 또 그의 소원대로 구하는 것을 주니 이에 그가 그의 신하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갔더라
스바 여왕은 솔로몬에게 금 일백이십 달란트와 심히 많은 향품과 보석을 드렸습니다. 금 일백이십 달란트는 약 4톤으로 상당한 양입니다. 그러나 스바 여왕이 솔로몬에게 준 금은 솔로몬이 가진 금에 비하면 많지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스바 여왕에게 받은 것 보다 더 많은 물건을 주고 그가 구하는 것을 소원대로 주어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스바 여왕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영광을 보고 먼 이국에서 왔습니다. 그가 본 것은 눈에 보이는 영광들이었습니다. 그 영광들은 이미 사라졌고, 예수님은 그 솔로몬의 영광은 이 꽃 하나만큼도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알려주신 복음은, 솔로몬 때에 이루어진 그 영광과 비교할바 되지 못합니다. 창세전 부터 택하신 은혜와 죄사함과 구속과 자녀 삼으심과 부활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는 들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들은 이 소문들은, 솔로몬 시대의 왕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스바 여왕 처럼 모든 것을 싸들고 그 진리를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해야 할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뒤를 이어 솔로몬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드리는 등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그가 구한 지혜로운 마음(듣는 마음)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왕상 3:12-13)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약속해주신 부귀와 영광이 실제 그의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선명히 보여줍니다.
솔로몬의 부귀(16-22)
(14-15) 솔로몬의 세입금의 무게가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요 그 외에 또 상인들과 무역하는 객상과 아라비아의 모든 왕들과 나라의 고관들에게서도 가져온지라
매년 솔로몬이 거두어들인 세금이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였음을 가장 먼저 소개합니다. 한 달란트의 무게는 34.3kg입니다. 육백육십육 달란트의 무게는 22,843.8kg(22,843,800g)입니다.
제 수중에는 금이라고는 아이들 돌잔치 때 받아둔 한 돈 또는 반 돈짜리 금반지가 전부입니다. 금 한 돈의 무게는 3.75g이며, 2023년 11월 9일(목) 기준 시세는 약 307,332원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를 요즘 시세에 따라 계산을 해보니, 계산이 쉽지 않았습니다. 1,872,168,197,760원(1조 8천7백2십1억 6천8백1십9만 7천7백6십원)입니다.
※ 계산식 (666 × 34,300g) ÷ 3.75g × 307,332원 = 약 1,872,168,197,760원
당시 노동력을 기준으로 육백육십육 달란트의 가치를 계산을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금 한 달란트는 당시 은 43,000세겔에 해당했고, 건장한 노예 한 사람의 가치는 은 30세겔이었다고 합니다. 금 한 달란트로 노예 약 1,433명을 소유할 수 있었고,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로는 약 954,599명(구십오만 사천오백구십구명)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 계산식 (금 1달란트 = 43,000세겔) ÷ 30세겔 × 666달란트 = 약 954,599명
개역개정 성경으로 이 부분을 살펴보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새번역 성경은 놓치기 쉬운 부분을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새번역 14) 해마다 솔로몬에게 들어오는 금은, 그 무게가 육백육십육 달란트였다.
‘해마다’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는 단회적으로 징수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년 징수되었습니다. 천문학적 가치를 지닌 양의 금이 해마다 솔로몬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솔로몬은 상인들과 무역업자와의 교역으로 부터, 아라비아의 모든 왕들과 지방 장관들이 (세)금을 받았습니다.
성전도 왕궁도 이미 잘 지어진 상황에서 솔로몬은 많은 양의 금을 이렇게 사용했습니다.
(16-17) 솔로몬 왕이 쳐서 늘인 금으로 큰 방패 이백 개를 만들었으니 매 방패에 든 금이 육백 세겔이며 또 쳐서 늘인 금으로 작은 방패 삼백 개를 만들었으니 매 방패에 든 금이 삼 마네라 왕이 이것들을 레바논 나무 궁에 두었더라
소리내어 읽고 싶지도 귀로 듣고 싶지도 않은 부분입니다. 진심으로 백성들을 아끼며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었던 지혜의 왕 솔로몬의 모습만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가장 빛났던 솔로몬 시대에 그늘이 드리운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솔로몬은 금을 두드려 펴서 입힌 큰 방패를 이백 개, 작은 방패를 삼백 개를 만들었습니다. 큰 방패에는 600세겔(1세갤 = 11.4g), 약 6.8kg의 금이 사용되었고, 작은 방패에는 3마네(1마네 = 571.2g), 약 1.7kg의 금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제작된 방패들은 하나같이 호신용이나 전쟁용으로 사용되기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목적이 변질된 장식용으로 밖에 사용될 수 없었습니다.
당시 그들은 몰랐겠지만, 이후 르호보암 시대에 모든 방패들은 애굽 왕 시삭에게 빼앗겼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왕상 14:25-26)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의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여호와의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고 또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다 빼앗은지라
계속된 솔로몬의 모습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18-20) 왕이 또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정금으로 입혔으니 그 보좌에는 여섯 층계가 있고 보좌 뒤에 둥근 머리가 있고 앉는 자리 양쪽에는 팔걸이가 있고 팔걸이 곁에는 사자가 하나씩 서 있으며 또 열두 사자가 있어 그 여섯 층계 좌우편에 서 있으니 어느 나라에도 이같이 만든 것이 없었더라
고가의 수입품인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그 위에 정련된 금을 입혔습니다. 여섯 층계를 만들어 그 좌우에 열두 마리의 사자 장식을 두었고, 그 꼭대기 층에 그 큰 보좌를 올려두었습니다. 층계에 좌우의 열두 마리의 사자 장식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어느 나라에서도 이렇게 만들지 못했다는 기자의 진술은 그 보좌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했을지를 확인해 줍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21-22) 솔로몬 왕이 마시는 그릇은 다 금이요 레바논 나무 궁의 그릇들도 다 정금이라 은 기물이 없으니 솔로몬의 시대에 은을 귀히 여기지 아니함은 왕이 바다에 다시스 배들을 두어 히람의 배와 함께 있게 하고 그 다시스 배로 삼 년에 한 번씩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 왔음이더라
그가 사용하는 모든 그릇을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는 금이 충분해 은을 귀히 여기지 않았고 잘 사용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히람의 배들과 함께 다시스를 오가며 무역을 하기 위한 상선을 띄웠고, 이들로 3년에 한번씩 금와 은, 상아, 원숭이, 공작 등의 진귀한 물건들을 싣고 오게 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에 전례없는 부귀를 이처럼 누렸습니다.
그의 곁에는 진귀한 것들 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도 몰려들었습니다.
솔로몬의 영광(23-29)
(23-25)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큰지라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보기 원하여 그들이 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으니 곧 은 그릇과 금 그릇과 의복과 갑옷과 향품과 말과 노새라 해마다 그리하였더라
세상의 어느 왕과도 비교될 수 없는 솔로몬 왕의 재산와 지혜는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듣기 위해 해마다 진귀한 선물들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본문의 마지막 부분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어쩔 수 없는 한 사람의 인간적인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26-29) 솔로몬이 병거와 마병을 모으매 병거가 천사백 대요 마병이 만 이천 명이라 병거성에도 두고 예루살렘 왕에게도 두었으며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더라 솔로몬의 말들은 애굽에서 들여왔으니 왕의 상인들이 값주고 산 것이며 애굽에서 들여온 병거는 한 대에 은 육백 세겔이요 말은 한 필에 백오십 세겔이라 이와 같이 헷 사람의 모든 왕과 아람 왕들에게 그것들을 되팔기도 하였더라
솔로몬은 자그만치 1,400대의 전차와 12,000명의 마병을 모아, 예루살렘과 병거성에 나누어 배치했습니다. 왕으로서 탁월했던 그는 애굽에서 말과 병거를 수입해 헷 사람의 모든 왕들과 아람 왕들에게 되팔기도 했습니다. 이로인해 예루살렘에는 은이 돌처럼 흔했고, 백향목이 뽕나무처럼 흔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약속해 주신 부귀와 영광이 그의 삶의 자리에서 분명하여 주어졌음을 잘 보여줍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허락해 주신 부귀와 영광이 후에 어떻게 오용되었는지를 있는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 모세를 통해서 왕이 주의해야할 바를 미리 전하셨습니다.
(신 17:16-17)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
마치 솔로몬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미리 일러주신 것처럼 여겨집니다.
오늘 저희 역시 천문학적 가치를 지닌 금을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것과 형태는 좀 다르지만, 이 역시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바로, ‘지금’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다시 살 수 없는 지금을 우리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지금처럼 오롯이 말씀에 이목을 집중하고, 복음의 은혜를 밝히 드러내는 통로로 사용하고 계십니까?
혹 목적이 변질되어 뽐내고 과시하는 목적으로 사용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금방패와 같이 허락된 지금을 잃어 버린 채 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분명 솔로몬과 하신 약속에 신실하셨습니다. 반면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떻했는지는 오늘 본문이 너무도 잘 보여줍니다. 온전했을 것만 같았지만 지극히 연약한 인간적인 모습을 살피며 좌절이 아닌 다시금 주님 앞에 나아갈 용기를 얻습니다.
더이상은 솔로몬의 금처럼 우리의 지금이 오용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은혜로 허락된 오늘을 늘 지금처럼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려 보시길 바랍니다. 그때 틀림없이 우리에게 허락된 금은, 지금은 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아름다운 선율로서 부족함 없이 울려 퍼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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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스바 여왕의 솔로몬 왕 방문과 솔로몬 왕이 누린 부귀영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본문 1절 전반절입니다.
“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홍해에 접하고 있던 에시온게벨을 거점으로 배를 축조했던 솔로몬은 두로왕 히람과의 연합속에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왕상 9: 26-28). 그와 동시에 그의 명성이 이방 먼 나라에까지 알려지게 되었고, 급기야는 스바의 여왕까지 솔로몬을 찾아 오게 됩니다.
‘스바’의 위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아라비아 반도의 서남쪽 끝에 위치한 지금의 예멘으로 간주됩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을 정기적으로 왕래하던 아라비아의 무역상인들에 의해 솔로몬의 명성이 스바의 여왕에게 까지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서 중요한 점은 솔로몬의 명성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았다’ 라고 기록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다’라는 뜻은 ‘여호와의 이름 때문에,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란 의미로 솔로몬의 명성이 원근각처에 자자하게 된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곧 솔로몬이 누리고 있는 명성은 그의 능력이나 잘남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허락해 주신 은혜의 결과물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또한 명성과 명예를 얻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바로 그 명성과 그 명예의 동기가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편 23편 3절의 말씀이 이렇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고 바른 길로 인도해 가시는 이유 또한 근본적으로는 하나님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자기 중심적 틀에 갇혀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찾아온 명성과 명예를 자신의 능력에 의한 결과물로만 생각하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데 그칩니다. 하지만 ‘하나님 중심적 사고를 하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얻게 된 명성과 명예의 동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잊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위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임을 기억합니다. 그러기에 자신을 높이는 교만함을 경계하며 오히려 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겸비함을 추구합니다.
1절 하반절입니다.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스바 여왕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목적은 어려운 문제로 솔로몬을 시험하기 위함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솔로몬의 지혜를 자신이 직접 시험하며 확인하려 했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명성에 대한 그녀의 의구심은 질문에 막힘없이 답하는 솔로몬의 모습 (3절) 과 궁전의 위용, 가지 각색의 음식, 숱한 수종자들과 엄청난 규모의 제물들의 모습앞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와 관련된 스바 여왕의 고백입니다. 먼저 6절부터 8절입니다.
“왕께 말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사실이로다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친히 본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내가 들은 소문보다 더하도다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스바의 여왕은 먼저 솔로몬에 대한 소문이 사실임을 인정합니다. 아니 더 나아가 그녀가 들었던 소문은 실제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며 솔로몬이 지닌 지혜와 부를 격찬합니다. 9절입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왕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하고”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솔로몬의 지혜와 부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울러 의미심장한 말을 이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그런 지혜와 부를 베푸시며 왕으로 삼으신 이유가 바로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곧 그가 지닌 지혜와 부, 왕의 자리는, 솔로몬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들로 바르고 선하게 세워나가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써 허락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자기 중심적 사고를 지닌 사람'은 자신이 지닌 여건들을 자신만을 위한 전유물로 인식합니다. 그러기에 자기 중심성의 소리만을 듣고 자신의 만족과 기쁨만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에 반해 ‘하나님 중심적 사고를 하는 그리스도인’은 허락된 여건들이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주신, 하나님의 것임을 잊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역사를 펼쳐나가기 위해 허락하신 하나님의 도구임을 기억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람들을 더욱 바르고 선하게 세워나가기 위해 선용해야하는 도구임을 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여 부르시며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에 대한 이유가 창세기 18장 19절 전반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이 그로 하여금 자식들과 자손들을 잘 가르쳐 하나님께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인으로 택하신 이유도 이와 유사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에만 반응하며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잘 세워나가기 위함입니다. 그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과 시간, 건강과 기타 여건들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허락하신, 아니 맡겨주신 모든 것들을 우리의 만족, 우리의 기쁨만을 위해 사용한다면 우리의 영혼은 점차 순결성을 잃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지닌 것들을 선용한다면 우리 영혼은 순수해지고 부요해 질 뿐 만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가 하나님께 큰 기쁨이요 하나님 역사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 누구보다도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 지혜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그런 지혜를 얻게 된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기 원하는, 하나님 중심적 사고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요 선물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지혜 뿐 만 아니라 부귀와 영광까지 얻게 되는 은총을 입게 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솔로몬의 생각과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의 존재가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지닌 지혜와 부, 왕위의 자리에 대해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라’는 스바 여왕의 찬양 고백에 대해 그는 전혀 반응하지 않습니다. 침묵할 뿐 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우신 까닭이 하나님의 백성을 바르고 선하게 다스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 나가는 것임을 하나님께서 스바의 여왕의 입을 통해 다시금 재인식케 하심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이후 자신만을 위해 그 모든 것들을 허비하고야 맙니다.
솔로몬은 그의 이름의 뜻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을 받은 자’ 였습니다. 하지만 어느덧 성경에서 나오는 ‘가장 지혜로운 바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자기 욕망, 자기 중심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결과였습니다.하나님께서는 저희를 그리스도인으로 불러주셨습니다. 내 중심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내 욕망에 붙들리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음성에만 반응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바르게 세워나가는 하나님의 통로로 사용하시기 위함이십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는 저희 모두에게 다양한 여건들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일을 위한 도구로 선용하길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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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 속에 수없이 나타났다 사라져간 많은 나라들은 저마다 태평성대라는 전성기를 거쳐 갔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전성기에 해당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후,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이후, 드디어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왕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임을 잊지 않으며 그 언약을 사랑하며 지킵니다. 하나님은 그런 백성에게 눈길을 거두지 않고 마음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지혜의 왕을 주시고, 그를 통해 수없이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솔로몬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다시 오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태평성대 기간에 일어난 이 에피소드를 통해서 지혜와 복을 누리고 유통하는 삶에 대해 귀중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1.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명성인가.
1절. “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아라비아 남서쪽에 위치한 스바의 여왕이 수행원들을 대동하여 선물을 들고 예루살렘에 전격 방문하였습니다. 아마도 신흥 강대국인 유다와의 협력적 외교 때문이겠지만, 또한 솔로몬의 명성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명성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명성이었습니다. 즉, 그 자신의 힘과 지혜로 쌓아올린 명성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참되고도 높으신 왕으로 모시고 잘 섬겨 그가 복 주심으로 누리게 하신 명성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이름과 우리의 업적이 다른 사람보다 빛나고 귀해서 칭찬받는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임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수한 머리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면 그 머리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비록 땀 흘려 얻은 귀중한 승리나 메달이라 할지라도 역시 박수갈채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업이 잘 되고, 자녀가 존귀하게 된다면 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복 주신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사 주어진 일을 다 한 후에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7장 10절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말씀처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2. 나로 말미암아 이웃이 복을 누리는가.
스바 여왕은 솔로몬 왕과의 접견 후 솔로몬 왕의 지혜에 감동되고 솔로몬 왕이 이룩한 모든 것에 깊이 압도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솔로몬 왕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냅니다.
8-9절.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왕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스바 여왕은 단지 솔로몬의 지혜와 복만을 부러워 한 것은 아닙니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나라가 위로는 그가 섬기는 하나님과 바르게 관계 맺고, 그로 인해 백성들에게 공평과 정의가 시행되어 온 땅에 복이 흐르게 됨을 예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반드시 나와 내 가정의 형통을 거쳐 더 풍성하게 곁에 있는 이에게 흐르기 마련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 내 아내, 내 자녀, 내 부모, 내 구역원에게 그 은혜가 흘러가야 합니다. 내 사업장에 복이 넘치면 함께 일하는 이들도 함께 복을 누려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복을 홀로 독차지하는 것은 복에 대한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솔로몬이 받고 누리고 또한 그의 신하와 백성들이 더불어 누린 이 복은 스바 여왕 눈에도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웃들도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 복을 유업으로 함께 누리고 있음을 그 누구든 보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복을 세어 보십시다. 그리고 이 복을 얼마나 우리 이웃과 나누고 있는지도 돌아봅시다.
3.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큰 복인가.
13절. “솔로몬 왕이 왕의 규례대로 스바의 여왕에게 물건을 준 것 외에 또 그의 소원대로 구하는 것을 주니, 이에 그가 그의 신하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갔더라.”
스바 여왕은 모든 외교 일정을 마치고 본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올 때 가지고 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되돌아갔습니다. 솔로몬 왕은 왕의 규례대로 답례품을 주고, 그 외에 스바 여왕이 소원하는 것까지 더 주었습니다.
넉넉하다고 해서, 부자라고 해서, 달라는 대로 다 주지는 않습니다. 죄인인 인간은 두 개가 있다고 해서 아무 것도 없는 사람에게 자신의 것을 하나 더 주지는 않습니다. 두 개 가지고 있으면 세 개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죄인의 실상입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더 큰 것을 갈망하고, 낡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새것을 갖고 싶어 합니다. 진심으로 줄 수 있는 것은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또한 그 복이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축복임을 알 때에야 비로소 이웃에게 사심 없이, 조건 없이 나눠 줄 수 있게 됩니다.
스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찾아와 확인하고 감동하여 솔로몬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합니다. 오늘 본문 또한 솔로몬 왕국의 부와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증거하고 있습니다. 14절의 증언과 같이 솔로몬이 세입금으로 받은 금이 육백육십육 달란트였는데 이는 약23톤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뿐만 아니라 금은 왕궁 행사 때 사용되는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만들 때도 쓰였고, 왕의 보좌는 물론이고, 레바논 나무 궁의 그릇들도 모두 정금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이러한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찾아왔던 사람은 스바의 여왕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23절~25절 말씀입니다.“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큰지라.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의 얼굴을 보기 원하여, 그들이 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으니 곧 은 그릇과 금 그릇과 의복과 갑옷과 향품과 말과 노새라 해마다 그리하였더라.”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솔로몬을 보고자 그 왕국을 찾았고 예물을 바쳤습니다. 스바의 여왕과 같이 많은 사람들은 솔로몬을 찾았고, 세상의 그 어느 왕 보다 큰 재산과 지혜를 보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사람들이 보았듯이, 솔로몬의 재산과 지혜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습니다. 당사자인 솔로몬은 누구보다도 이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아버지 다윗 때부터 들어온 하나님, 성전을 봉헌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마음을 온전히 하여, 법도와 율례를 따르라’(9:4)고 말씀하셨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따른 솔로몬이었기에,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따라 그 나라와 왕위를 견고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10장 후반부에서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당혹스러운 일이 일어납니다. 솔로몬은 병거와 마병을 모으고, 애굽에서 말을 사들이고, 헷 사람들에게 그것을 팔기도합니다. 솔로몬 정도의 부와 명성을 가진 왕국의 왕이 그에 어울리는 군대를 세워가는 것은 어찌 보면 참으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솔로몬 마병부대의 규모는 그 왕국의 명성과 잘 어울려 보입니다. 26절입니다. “솔로몬이 병거와 마병을 모으매 병거가 천사백 대요 마병이 만이천 명이라 병거성에도 두고 예루살렘 왕에게도 두었으며”. 만이천명의 마병부대, 천사백 대의 병거와 이를 끌 수 있는 말이 있는 부대는 실로 솔로몬 왕국에 잘 어울려 보입니다. 선진국이라 말하는 나라들이 그에 걸맞는 국방비와 부대를 갖추어가는 것은 세상 속 자연스러운 질서입니다.
하지만, 신명기 17장에서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비추어 보자면 참으로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들에게 주신 율법인 신명기 17장 16절~1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솔로몬과 그 왕국의 절정이 담긴 열왕기상 10장의 말미에 이르러, 갑자기 당혹스러워지는 것은 바로 이 신명기 율법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자신의 명성에 걸맞게 마병부대를 세워가고, 애굽에 사람을 보내 말을 사오는 일은,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자연스러울 수 있었으나, 율법에는 분명히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병마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의 명성과 솔로몬 왕국의 견고함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었고, 그러므로 그 견고함은 병마를 많이 두는 군사력 증강이 아니라, 한결같이 율법을 지키는 솔로몬의 삶을 통해서만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솔로몬은 하나님의 질서가 아닌 ‘다른 질서’를 따르며, 왕국의 견고함을 위해 군사력을 증강시킵니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 큰일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0장에 이르도록 나타난 솔로몬의 위대한 업적들에 비하자면, 새발에 피와 같은 것일 수 있으나 하나님은 솔로몬와 그 나라의 절정에,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군대를 늘리는 솔로몬의 모습을 기억하고 적어놓습니다. 작은 구멍에서 시작하여 댐이 무너지듯이, 열왕기상 10장 말미의 작은 구멍은 11장의 무너짐으로 이어집니다. 인생과 나라의 견고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솔로몬 왕이 부르심 받은 왕의 자리에서, 사람들의 상식과 일반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그 인생과 삶의 터전위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며,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의 견고함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병거도 아니고 사람들의 칭찬도 아닙니다. 부름 받은 그 삶의 현장에서, 세상의 상식과 사람들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따를 때, 하나님은 그 인생과 삶의 현장에 약속을 이루시며, 일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시작되게 하시며, 그 찬양은 그를 보는 모든 이들에게까지 이를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부르시어, 살게 하신 교우님들의 삶의 자리에서, 세상의 상식과 사람들의 말이 아닌 하나님을 따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