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인의 구별.
1. 8장에서는 레위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거룩히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먼저 성막의 등잔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1~4). 이것은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하나님의 ‘살아있는 등불’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2. 여기서 등대는 하나님께서 빛의 근원이심을 가르쳐주는 ‘영적인 빛의 상징’이며, 일곱 개의 가지들은 ‘성령의 기름을 공급받아 사는 주님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3절에 ‘등불을 등대 앞으로 비취도록 켰다’고 했는데 이 빛은 건너편에 있는 진설병을 정면으로 비춥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살아가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의 비추임 속에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한 시편 기자의 고백이나(시 119:105), 사도 베드로의 고백도 이것을 보여줍니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 1:19).”
3.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을 성별하는 의식을 명령하셨습니다(5~13). 레위인 정결 의식의 목적은 레위인을 성별하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한 곳에 서야 하는 자들은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해야’(시 24:4) 했는데 바로 이것을 요구하는 것이 정결 의식입니다. “그들을 정결케 하되 곧 속죄의 물로 그들에게 뿌리고 그들로 그 전신을 삭도로 밀게 하고 그 의복을 빨게 하여 몸을 정결케 하고”(7).
4. 이것은 신약에 ‘중생의 씻음’이나 거듭남, 그리고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는 것’과 유사한 표현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딛 3:5; 히 10:22). 죄의 더러움과 오염에서 새로워진 신자들의 마음의 영적 정결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5. 의식은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먼저 레위인들에게 안수했고(10)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요제로 드려졌습니다(11).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진 것과 같습니다. 첫째로는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열두 지파의 모든 장자를 대신하였고, 둘째로는 하나님께 대한 온 민족의 헌신을 대표했으며, 셋째로 백성들의 죄에 대한 상징적인 희생 제물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안수 행위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레위인은 동일시되었습니다. 이것은 속죄가 봉사의 기초임을 다시 가르쳐줍니다. 먼저 속죄제물로 드려지고 이어 번제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6. 이렇게 레위인을 특별히 구별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레위인은 하나님께 바쳐진 초태생의 대신입니다(16,17). 애굽에서 나오던 날 초태생이 다 죽었는데,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들도 하나님께 바친 바 된 것입니다. 여기서 바쳐졌다는 것은 죽은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이 장자들의 생명을 대신하는 것이 레위인의 존재 이유였습니다. 이 점에서 하나님께 장자들을 대신하여 바쳐진 레위인들의 삶은 자신에 대하여는 죽은 삶이어야 했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20~22). 그리고 레위인 자신들이 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정결케 하였고, 죄에서 떠났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 앞에서 봉사하였습니다.
7. 본문은 몇 가지 분명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빛은 오늘날도 말씀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향하여 비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빛을 따라서 걷고 있는가, 아니면 자기 지혜와 세상의 빛 안에서 걷고 있는가 살펴야 합니다. 둘째, 레위인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바로 자신들의 본 모습임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 바쳐졌다는 것은 레위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더 이상 자기를 위해 살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 사도가 롬 14:7에서 한 말의 의미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레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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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의 등불(1-4절)
민수기 1-10장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준비 과정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7장은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한 직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막을 짓고 거룩히 구별한 날에 하나님께 드렸던 예물에 대해 증거합니다. 그 예물은 이스라엘 12지파가 동일하게 바쳤습니다. 인구가 많다고 예물을 더 많이 드렸던 것도 아니었고, 인구가 적다고 예물을 덜 드렸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12지파가 동일한 예물을 드렸다는 것은 성소에 대한 책임이 동등함을 말합니다.
8장은 성막의 등잔대에 관한 내용과 레위인의 취임 기념 제사와 규례 그리고 봉사 연한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민수기에만 해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가 50번 정도나 나옵니다. 특히 ‘또’라는 단어는 지금까지의 말씀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지금 일러주는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2)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라 등불을 켤 때에는 일곱 등잔을 등잔대 앞으로 비추게 할지니라 하시매
‘등불을 켜다’에서 ‘켜다’의 문자적인 의미는 ‘올라가다’입니다. 그래서 ‘등불을 켜다’는 ‘점등하다’의 의미가 아니라, 마치 번제를 드릴 때 그 향기가 하나님께 올라가도록 드리는 것처럼, 그 빛이 하나님을 향하여 비추어 올라가게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등잔대에는 불을 켜는 곳이 7개가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숫자 7은 완전을 상징하기에, 이 등대는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성막 안 성소 북쪽에는 조각목(아카시아)으로 만든 진설병을 두는 상이 있었고, 남쪽에는 순금으로 만든 등잔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등잔대의 빛은 일차적으로는 성소 안을 환하게 밝히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빛이 등잔대 앞을 비추라고 하는 것은 맞은 편에 있는 진설병 상을 비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설병 상을 비추는 등잔대의 빛은 어두움 속에서 진리의 빛을 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합니다. 또한 등잔대 맞은편에 놓여 있는 진설병(빵)은 ‘생명의 떡(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3) 아론이 그리하여 등불을 등잔대 앞으로 비추도록 켰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더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모세는 하나님께 들은 말을 아론에게 전해주고, 아론은 모세에게 들은 그대로 등잔이 등잔대 앞 맞은편을 비추도록 차려놓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 되고, 아론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순종인데, 그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주어진 상황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은 순종인데, 순종해야 할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4) 이 등잔대의 제작법은 이러하니 곧 금을 쳐서 만든 것인데 밑판에서 그 꽃까지 쳐서 만든 것이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보이신 양식을 따라 이 등잔대를 만들었더라
등잔대는 순금으로 만들었는데, 그 무게는 1달란트였습니다. 달란트의 무게는 나라마다, 시대마다 약간씩 달랐는데, 약 34kg입니다. 오늘의 시세, 금 1돈(3.75g)이 약 30만 원이라 하면, 34kg은 약 27억 원이나 됩니다. 등잔대의 높이는 3규빗(136cm)이고 가지는 2규빗(91.2cm)입니다.
이 등잔대는 바르게 고정하기 위해서 제일 하단에 넓은 밑판이 있었고, 중앙 촛대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3가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등잔대에 불을 켜는 곳은 7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등잔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과 꽃받침이 있었습니다. 살구꽃은 겨울잠에서 가장 빨리 깨어나는 꽃으로 ‘각성’, ‘희망’을 상징합니다. 제사장들은 항상 깨어있는 존재이어야 함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영적인 제사장인 우리 그리스도인도 늘 깨어있어야 하는 존재이어야 합니다.
이 등잔대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의 재질이나 크기, 모양이 아니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보이신 양식을 따라’ 등잔대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성막의 성소에는 창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등잔대의 빛으로만 밝힐 수 있습니다. 등잔대와 그 빛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어둠을 걷어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빛이신 주님의 드러내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위인의 취임 기념 제사와 규례(5-13절)
5절부터는 레위인의 취임 기념 제사와 규례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5-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데려다가 정결하게 하라 너는 이같이 하여 그들을 정결하게 하되 곧 속죄의 물을 그들에게 뿌리고 그들에게 그들의 전신을 삭도로 밀게 하고 그 의복을 빨게 하여 몸을 정결하게 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가 또 나왔습니다. 이것도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인은 내 것이라(민 3: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위인은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나온 사람들(장자)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할 때, 애굽의 장자는 모두 죽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장자는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레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결함’입니다. 그래서 6절과 7절에 반복해서 레위인들을 정결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5절과 21절에도 또 나옵니다.
레위인을 정결하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그들에게 ‘속죄의 물_죄를 씻어 내는 물’을 뿌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딤후 2:20)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사람들은 자신이 금그릇과 같은 존재, 은그릇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금수저의 사람, 은수저의 사람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이 쓰기에 합당한 것은 금그릇이나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등 어떤 재질로 만든 그릇이냐가 아니라 ‘깨끗한 그릇’이라고 하십니다. 자신을 정결하게 하면, 금 그릇은 금 그릇이 필요한 곳에, 나무 그릇은 나무 그릇이 필요한 곳에, 질그릇은 질그릇이 필요한 곳에 사용되지만, 깨끗하지 못한 그릇은 그 어느 곳에도 사용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릇(통로)인 레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재질이나 능력이 아니라 정결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신을 삭도(면도칼)로 밀라고 한 것은 이전의 부정한 것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이 행위는 한센병에서 치유된 사람이 정결예식 때 행했던 것이었습니다. 몸에 있는 모든 털을 다 밀고, 옷을 빨고, 몸을 씻음으로 이전의 부정했던 것과의 단절을 기억했습니다. 레위인에게도 이와 같은 성결을 요구하셨습니다.
(8) 또 그들에게 수송아지 한 마리를 번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그 소제물로 가져오게 하고 그 외에 너는 또 수송아지 한 마리를 속죄제물로 가져오고
자신의 몸을 정결하게 한 레위인은 번제와 소제, 속죄제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번제’는 제물을 모두 불살라 드리는 제사로,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충성과 헌신을 뜻합니다. ‘소제’는 유일하게 동물 제사가 아닌 곡식 제사인데, 순수한 희생적 봉사를 뜻합니다. 그리고 ‘속죄제’는 삶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지었던 죄를 씻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로, 죄악된 삶과는 단절을 선언하고, 성결한 삶을 살기를 결단하는 것입니다.
레위인이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번제와 같은 삶을 결단하고, 온전한 충성과 헌신을 드리는 소제의 삶을 결단해도, 속죄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없으면, 번제와 소제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9-11) 레위인을 회막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모으고 레위인을 여호와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안수하게 한 후에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레위인을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이는 그들에게 여호와께 봉사하게 하기 위함이라
9절에서는 레위인을 ‘회막 앞에 나오게 하라’라고 하시고, 10절에서는 레위인을 ‘여호와 앞에 나오게 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회막 앞’과 ‘여호와 앞’은 동의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동일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예배당으로 직접 나아오든, 컴퓨터 화면과 같은 온라인 앞으로 오든 어떤 나아옴이든지, 그 나아옴은 ‘여호와 하나님 앞’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은 이내 형식적인 것이 될 것이고, 우리는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또한 레위인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회막 앞, 여호와 앞에 나오게 하라고 하셨는데, 당시 전체 레위인의 숫자만 해도 8,580명(4:48)이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앞으로 다 나아올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레위인의 대표와 이스라엘 회중의 대표가 나아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은 레위인에게 안수를 했습니다. ‘안수’의 의미는 ‘전가(轉嫁)’입니다. 전가는 남에게 넘긴다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이 되는 짐승에게 안수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죄를 제물이 되는 짐승에게 넘긴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목사로 임직을 받을 때, 장로교회에서 장로로 임직을 받을 때, 안수를 합니다. 그것은 책임과 의무, 섬김을 넘긴다는 의미입니다. 백성을 대표해서 온전한 봉사를 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론이 레위인을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여호와께 드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제(搖祭)_흔들릴 요, 제사 제’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wave offering’이라고 합니다.
(12-13) 레위인으로 수송아지들의 머리에 안수하게 하고 네가 그 하나는 속죄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려 레위인을 속죄하고 레위인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 앞에 세워 여호와께 요제로 드릴지니라
이 말씀으로 보아 레위인을 요제로 드렸다고 해서, 이스라엘 자손이 레위인을 들고 헹가래를 치듯이 흔든 것으로 보이지 않고, 레위인이 안수한 제물을 흔든 것으로 보입니다. 즉 레위인이 안수한 제물을 흔들어서 요제로 드렸다면, 그 제물에 안수한 레위인을 요제로 드린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7장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매일 한 지파씩 지휘관(대표자)이 나아와 은쟁반, 은바리 금그릇과 함께 번제물, 속죄제물, 화목제물로 모두 21마리의 짐승을 드렸습니다. 그 모습이 사뭇 경건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등잔대를 켰고, 레위인을 요제로 드렸습니다. 이 모든 것은 출애굽과 가나안까지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총이고,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수기의 이어지는 내용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바르게 기억하지 못했음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고 왕 같은 제사장이며, 세상을 대신한 영적인 레위인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은 하나님께 흔들어 드린 요제의 예물과 같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길이 광야처럼 보일지라도 그 속에 셀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은총과 역사하심이 가득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봄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역사를 세는 영적 민수기의 삶이 되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민수기 8장은 성막의 등잔대에 관한 내용과 레위인의 취임 기념 제사와 규례 그리고 레위인의 봉사 연한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어제 말씀에서 하나님은 회막의 등불을 켜라고 하셨고, 이스라엘 자손을 대표하여 레위인을 정결하게 하고, 그들을 요제로 드리게 하셨습니다.
본문은 레위인이 구별되어 하나님 앞에서 봉사하게 된 동기와 레위인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하는 역할, 그리고 레위인의 봉사 연한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14) 너는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구별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내게 속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구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구별된 레위인은 하나님께 속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레위인이 하나님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레위인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구별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에 하나님 앞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도 마땅히 죄악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세상을 대신한 영적인 레위인과 같은 존재인 우리도 주님의 일을 감당하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을 죄악 된 세상으로부터 구별하고,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약 1:27, 새번역)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우리는 죄악 된 세상에 물들지 않고,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르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정도(正道)를 걸어야 합니다.
(15) 네가 그들을 정결하게 하여 요제로 드린 후에 그들이 회막에 들어가서 봉사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을 정결하게 하여 요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정결’과 ‘요제’의 의미는 어제 새벽기도회 시간에 정한조 목사님이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자신을 정결하게 하면, 금 그릇은 금 그릇이 필요한 곳에, 나무 그릇은 나무 그릇이 필요한 곳에, 질그릇은 질그릇이 필요한 곳에 사용되지만, 깨끗하지 못한 그릇은 그 어느 곳에도 사용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릇(통로)인 레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재질이나 능력이 아니라 정결함이었습니다.
또 레위인을 요제로 드렸다고 해서, 이스라엘 자손이 레위인을 들고 헹가래를 치듯이 흔든 것으로 보이지 않고, 레위인이 안수한 제물을 흔든 것으로 보입니다. 즉 레위인이 안수한 제물을 흔들어서 요제로 드렸다면, 그 제물에 안수한 레위인을 요제로 드린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이 회막에 들어가는 목적이 봉사하기 위함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즉 레위인들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나 요제로 드리는 것은 모두 그들로 하여금 회막 봉사를 바르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으로 인해 죄에서 벗어나 영적 정결함을 입은 자이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모든 은총은 결국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여러 봉사팀에서 봉사자로 섬기는 것은 주님의 은총으로 구원받은 자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16-17)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게 온전히 드린 바 된 자라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초태생 곧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 내가 그들을 취하였나니 이스라엘 자손 중에 처음 태어난 것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내게 속하였음은 내가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태어난 자를 치던 날에 그들을 내게 구별하였음이라
레위인들이 구별되어 하나님 앞에서 사역하게 된 동기는 출애굽 사건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내린 마지막 재앙을 통해 애굽의 모든 장자를 죽이셨는데,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구원하신 다음에 이스라엘 자손의 초태생, 즉 태에서 처음 난 것은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하나님의 소유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을 선택하여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게 하셨습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죽지 않게 된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속하게 된 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레위인들에게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하는 일을 맡기셨을까요?
야곱의 아들이었던 레위는 시므온과 함께 세겜 족속을 속여서 진멸하였기에,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보다 흠이 많은 지파였습니다. 창세기 49장 5절 말씀입니다.
(창 49: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레위의 칼은 폭력의 도구였습니다. 그의 칼이 사람을 속여 죽이는 일에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레위 자손은 그 칼을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2장 26-29절 말씀입니다.
(출 32:26-29)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이르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가는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하니라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께 반역하였을 때, 레위 자손은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위하여 칼을 사용합니다. 모세는 레위인의 이러한 행동을 ‘헌신’이라고 극찬하며,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레위인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 복은 하나님께서 레위인을 특별히 구별하여 자신을 섬기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사용될 때는, 그 칼이 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됩니다. 반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될 때는, 그 칼이 사람을 살리는 메스(수술칼)가 됩니다. 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으로 하나님 앞에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넘치는 복을 받게 됩니다.
(18-19) 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 레위인을 취하였느니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당시 장자 재앙에서 살아남은 모든 자를 대신하여, 레위인들이 하나님께 바쳐져 하나님의 소유물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일단 바친 희생 제물을 제사장이 다시 받는 요제의 형식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다시 제사장들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이 성막 봉사를 원활히 하도록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총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데 차질이 없게 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봉사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나의 연약함을 이유로 물러설 것이 아니라, 넘치도록 돕는 손길을 붙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편 레위인은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속하여 주어, 이스라엘 자손이 성막에 접근할 때라도 재앙을 받지 않게 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마치 피뢰침이 낙뢰를 흡수하여 주변의 피해를 막는 것처럼, 죄지은 이스라엘 자손을 내리치는 하나님의 진노를 레위인들이 흡수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막을 출입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자신의 존재와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속한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타인의 죄와 허물을 가려주고 덮어 주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0-22)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께서 레위인에 대하여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다 따라 레위인에게 행하였으되 곧 이스라엘 자손이 그와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더라 레위인이 이에 죄에서 스스로 깨끗하게 하고 그들의 옷을 빨매 아론이 그들을 여호와 앞에 요제로 드리고 그가 또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여 정결하게 한 후에 레위인이 회막에 들어가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 앞에서 봉사하니라 여호와께서 레위인의 일에 대하여 모세에게 명령하게 하신 것을 따라 그와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더라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은 하나님께서 레위인에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대로 행했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온 공동체가 한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사실을 두 차례나 강조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가 되어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레위인의 취임 기념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인들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스스로 깨끗하게 하고, 옷을 빨아 입었습니다. 이것은 레위인들이 일상생활 가운데서도 죄를 멀리함으로 스스로 깨끗하게 하는 개인적 차원의 준비를 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주님의 전적인 은총으로 구원받은 자이지만,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위해서 날마다 경건함에 이르도록 몸을 훈련하고(딤전 4:7), 마음을 성결하게 하며(약 4:8), 눈을 들어 주님을 목적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23-26)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위인은 이같이 할지니 곧 이십오 세 이상으로는 회막에 들어가서 복무하고 봉사할 것이요 오십 세부터는 그 일을 쉬어 봉사하지 아니할 것이나 그의 형제와 함께 회막에서 돕는 직무를 지킬 것이요 일하지 아니할 것이라 너는 레위인의 직무에 대하여 이같이 할지니라
레위인의 취임 기념 제사가 끝나자 하나님은 레위인의 정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레위인은 25세가 되면 회막에 들어가서 봉사를 시작하며, 50세가 되면 그 일을 쉬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민수기 4장에서 7번이나 레위인의 사역이 30세에 시작한다고 증거했습니다(4:3, 23, 30, 35, 39, 43, 47). 이 둘의 차이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25세부터 견습생으로 회막에 출입하다가, 30세부터 정식으로 임무를 맡아 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쿰란 사본들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성막 도구들을 운반하는 임무를 맡은 레위인들의 50세 정년이 지켜져야 했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50세에 퇴임한 레위인들도 도움이 필요한 현직 레위인들을 도울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레위인의 사역에는 정년퇴직이란 없는 것입니다. 성막의 거룩한 물건들을 운송하는 일에는 나이 제한을 두었지만, 그 외의 일은 50세가 넘은 사람들도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일에는 정년퇴직이란 없습니다. 남녀노소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 끝까지 쓰임 받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레위의 출발은 좋지 못했습니다. 그는 형제 시므온과 함께 세겜 족속을 속이고, 그의 칼로 그들을 진멸하였습니다. 자신을 위해 휘두른 그 칼은 폭력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레위 자손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칼을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편에서 사용된 그 칼은 헌신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헌신한 레위인을 택하시고 구별하셔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처음 태어난 자를 대신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일평생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레위라고도 불렸던 마태의 출발도 좋지 못했습니다. 그는 과도하게 세금을 걷어서 사람들을 짓누르는 세리였고, 그의 펜으로 욕망을 채우는 장부를 정리했습니다. 자신을 위해 사용한 그 펜은 사람들의 고혈(膏血)을 잉크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주님께서 자신을 부르실 때,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편에서 사용된 그 펜은 예수님의 말씀과 그 행하신 일을 기록하는 거룩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마태가 예수님에 관해 쓴 내용이 신약성경의 첫 번째 책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난 2천 년 동안 마태복음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이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출발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모든 것은 폭력과 욕망의 도구로 전락하기 쉽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는 모든 것은 진리의 통로가 됩니다.
오늘 하루도 눈을 들어 주님을 목적 삼으므로,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온전히 쓰임 받는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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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부터 4절까지는 등을 차려 놓는 법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등대는(출37:17)의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알려 준 그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등잔에 불을 붙입니다.
아론은 백성의 대표자로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종의 직무를 다했고, 또 백성들과의 관계에서볼때는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자요, 하나님의 좋은 뜻을 백성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제사장은 제단의 불에서 불을 받아 가운데 등잔에 불을 붙이고, 그 후에 차례로 나머지 등잔에 불을 붙입니다. 이같은 행위가 의미하는 것은 ‘모든 빛과 지식의 근원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등불은 ‘등대 앞으로’ 비치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했던 것은 곧 교회의 빛은 등불처럼 빛나야 함을 의미합니다.
5절부터 26절까지는 레위인의 성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구 조사 때에 레위인과 일반 이스라엘백성들의 자녀는 구별했으며 이스라엘백성들은 따로 계수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회막의 일을 돕도록 하기위한 배려였습니다. 이렇게 구별한거은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을 바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레위인들은 정결해야 했습니다. 레위인들을 깨끗게 하는 예식은 그들 스스로 해야 했습니다. 목욕을 하고 옷을 빨고, 뿐만 아니라 ‘모든 털’ 을 깍아야 했는데 이것은 한센병자의 정결 예식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전신을 식도로 밀어" 물로 씻지 못하는 더러움을 없이해야 했습니다. 레위인들이 스스로 깨끗케 하기 위하여 해야 했던 것은 즉, 모든 그리스도인들, 특히 이시대의 믿는 이들은 회개와 돌이킴을 통하여 육체와 영혼의 모든 더러운 죄악에서 깨끗게 하여 성결을 이루어 가야 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세도 정결하게 하는 물을 백성들에게 뿌려 제사장의 일을 도왔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깨끗케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과 의무이며 또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게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12절은 레위인을 위해서 제사가 드려졌는데, 처음에는 속죄제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 말씀의 교훈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고 돌이키기 전까지는 결코 하나님을 위한 봉사와 쓰임에 합당치 않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에 교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으신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되고 합당한 자가 된다는 것은 제사 곧 그리스도라는 대제사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믿음의 자녀들이 주의 일에 참여할 수 있고, 믿는 자들이 주의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14절 말씀에 “레위인을 구별하라" 하시고 "내게 속할 것이라" 하시면서 그들을 당신의 것으로 취하시고 인정하셨습니다.
레위인들은 제사장들 밑에서 제사장들의 일을 돕고 보좌하며 성소의 돌봄사역에 힘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아론은 레위인들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19절에서, 그들을 아론에게 주었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어떠한 것이든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부모의 심정으로 우리에게 되돌려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4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레위인은 이같이 할지니 곧 이십오세 이상으로는 회막에 들어가서 복무하고 봉사할 것이요”
레위인들은 이십오세부터 회막에 들어가서 일할 수 있었는데
당시 그들의 일은 모든 면에 있어서 체력과 성숙한 판단력과 최선의 행동과 견실함이 요구되었습니다.
오십세가 되면 모든 일을 쉬고 안식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25절의 말씀과 같이 그 때가 되면 전쟁터에서도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명예스런 일이 아니라, 그들의 일에서 오는 명예를 얻고 나이듦에서 오는 쉼을 보장한 것으로서, 지금까지 그들은 자기들의 직무를 담당해 왔기 때문에 주어지는 보상이었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자들은 회막에서 형제들을 돕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그것은 곧 나이 어린 레위인들을 가르치게 하고 그들에게 성전돌보는 일을 익숙토록 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회막에 이르는 길을 지키는 파수병으로서의 임무를 맡아 외부인이 침입하지 못하게 하고, 외부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들에게 힘들거나 어려운 일은 일체 맡겨지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 따라 일할 능력을 주신다면 직임을 맡은 사람은 지혜를 다하여 자기들의 능력에 맞도록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젊은이들도 나이에 맞게 적합한 봉사를 담당해야 했습니다.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구별되고 성결케하는 일에 힘써야 하며 나이에 맞게 그 봉사직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한 때 쓰임받고 주님 앞에 갑니다. 그 기회는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 때 열심히 봉사하고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물러나야할 때가 되어서 물러나야한다면
복된 자리, 영광받는 자리는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그 자리에서 잘 하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야 말로 복 있는 사람이요, 이 시대와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 일 만에 살아나셔서
모든 이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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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7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직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막을 짓고 거룩히 구별한 날에 하나님께 드렸던 예물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예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렸으나 그 예물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렸다고 우쭐댈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낌없이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할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본문에서는 레위인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인은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 많은 민족들 중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라면, 레위인은 수 많은 민족들 가운데서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레위인을 이처럼 특별히 선택하여 부르신 것이겠습니까?
레위인은 성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성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입니다. 그곳에서 레위인이 해야 하는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본문 1절에서 4절에 의하면 그것은 바로 성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겠지만 특별히 성소의 등불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은 이 일이 다른 일에 비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7장 21절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등불이 항상 켜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등불은 어두움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등불은 마치 흑암속에 버려져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진리의 빛을 비추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리의 빛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신 이유는 주님께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신 큰 빛이라면, 우리들은 내 삶의 자리에서 내 자리를 밝히 비추는 작은 빛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인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인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밝히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함을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깨닫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일을 맡은 레위인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본문 6절에서 7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데려다가 정결하게 하라 너는 이같이 하여 그들을 정결하게 하되 곧 속죄의 물을 그들에게 뿌리고 그들에게 그들의 전신을 삭도로 밀게 하고 그 의복을 빨게 하여 몸을 정결하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가 세상의 등불임을 깨닫게 하는 일을 맡은 레위인은 먼저 자신의 몸을 정결하게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첫째 속죄의 물로 씻고, 둘째 전신을 삭도로 밀고, 셋째 의복을 빨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의식이 상징하는 의미는 외적 정결을 통해 내적 성결을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몸을 정결케 한 뒤, 레위인은 번제로, 소제로, 속죄제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레위인은 스스로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본문 13절입니다. “레위인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 앞에 세워 여호와께 요제로 드릴지니라” 이제 레위인이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요제로 드려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레위인을 요제로 드리라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의 장자를 열 번째 재앙으로부터 구원하신 다음 이스라엘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라 무론하고 당신의 것으로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레위인을 지목하여 선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특별히 우월하거나 혹은 남다른 업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보다 결함이 많은 지파였습니다. 야곱은 죽기 전 유언을 남기면서 레위를 저주했습니다. 그 이유는 레위가 자신의 분을 참지 못하고 살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위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선택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선택된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또한 레위처럼 자신의 분을 참지 못하고 내 소견에 옳은대로 행동함으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기를 밥 먹듯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레위인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외적 정결을 통해 내적 성결을 이루길 원하십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항상 등불을 밝힘으로 어두운 세상이 밝아지길 바라고 계십니다. 아무리 칠흑같은 어둠이 우리를 에워쌀지라도 그곳에 반딧불 하나 있으면 그 작은 반딧불로 인해 그곳을 암흑이라 말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반딧불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