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고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사람은 일반 물건과 달리 일원화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건은 처음부터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는데, 수제품이야 그 특성상은 다원화될 수 있지만 목적이 있고, 기성품에는 '규격'이 있어서 그것에 문제가 생겨도 결국은 설계가 벗어나진 결함이 발생하지는 않으며, 여러 종류의 기성품들을 놓고 보면 제각각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제각기 설계와 목적이 있다.
콘텐츠는 개발되는 내내 또는 업데이트되는 내내 경험과 학습이 쌓이고 변화해 설계가 벗어나지거나 목적이 바뀔 수는 있지만 특정 환경 속에서 변화하니 기존 버전이 보존되지 않는 이상은 거의 다원화되지 않는다. 한글로 예를 들면, 양력 1444년 1월 15일에 태어나(창제)[5] 양력 1446년 10월 9일 사회에 진출한(반포)[6]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맞춤아기처럼 설계되어 태어나는 존재가 아니며, 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살아가는 내내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도 경험과 학습이 쌓이고 변화한다. 즉, 똑같은 성격적 결함을 가지고 있어도 인간 자체가 다른 경우도 있고, 반대로 인간은 같지만 경험의 차이로 다른 인간이 되기도 한다. 한날한시에 같은 유전자로 동시에 태어난 쌍둥이도 유전적 문제나 훈육 차이 문제로 다른 존재가 되고, 서로 태어난 곳도 태어난 시기도 부모의 출신도 가르침을 받은 선생도 다르지만 환경의 영향으로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하는 게 사람이다. 똑같은 물건을 써도 똑같은 방법으로 쓰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쓰는 목적이 다르기도 하다.
이렇게 모든 개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겪고 있는 문제 또한 서로 다르고, 따라서 사람을 고칠 때는 개개인에 따른 특성 파악과 그에 기반한 효율적 프로그램을 설계하여 고쳐나가야 하는데, 문제는 그러기에는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 자원이 상당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며, 개인주의화가 상당히 진행된 선진국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이는 별반 다를 바 없다. 규모의 경제와도 유관한 문제이다. 물건으로 따지면 주문제작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속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와 비슷한 구석도 있으며, '조별 과제' 문서에도 관련 내용이 있다.
그렇다고 '양극화' 문서의 '위화감과 적대감 심화' 문단 내용처럼 서로 다른 것 또는 어려워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해주고 용납하는 것도 아니다. 아나바다, 이웃간 교류 등으로 물건을 장수만세시키도록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정을 나누어 스트레스 등을 풀면서 이런 갈등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지만, 무관심/외로움, 물가 상승, 지구온난화(관련 영상), 세대 갈등/세대 차, 음식물 쓰레기 등은 걱정하면서도 정작 그런 걸 실천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 열악한 환경에서 안 되니 다른 환경에서는 더 안 된다는 식으로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경제성이나 가정 형편 등을 이유로[7][8] 해당 개체의 갱생 가능성을 잠정적으로 부정하는 일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주 발생하며, 이를 반영한 것이 해당 속담이다. 심지어 갱생하게 도와주려는 것을 견제하기도 한다. 이는 논리적 오류 가운데 발생적 오류나 인신공격의 오류(연좌·정황 오류)와도 맥이 닿아 있으며, 비정규직, 빨리빨리가 판을 치는 이유와도 유관하다. 그러나 이는 맞춤아기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사람이 도구보다 못하다거든 할 말이 없다.3.2. 편견 및 고정관념[편집]
사람은 일반적으로 어떤 인물이나 사물, 상황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내려 자신의 관점을 확립한 뒤에는 이를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존재해도 이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길거리에서 나도는 수많은 사이비 종교와 유사과학들이 이를 증명한다. 한번 이러한 잘못된 믿음에 매료된 사람들은 그 믿음의 근거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근거가 옳지 않은 것이라고 예단한다. 유명한 유사과학인 지구 평평설 주장론자들의 논지를 예로 들 수 있다.
첫인상이 주는 느낌은 강렬하다. 해당 문서에서 설명되어 있듯이 약 62%의 확률로 직장 생활에서 첫인상이 계속 유지된다. 즉 3명 중 약 2명가량은 자신이 처음 그 사람에 대한 관점을 확립하고는, 그것을 잘 바꾸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후에 첫인상을 반박할 수 있는 여러 모습이 존재함에도 이러한 확률이 나온는 것은, 초두효과가 그만큼 강력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초면인 사람의 한 가지 행동을 보면 그 인상이 그 사람을 향한 첫인상으로 강렬하게 남아, '그 사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식의 논리가 탄생한다. 그 사람이 이후에 상반되는 행보를 걷는다 하더라도 그의 전 행동을 본 사람들의 약 2/3가량은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라는 식의 인식을 지배적으로 갖고 있어, 그의 새로운 행보에 그 저의를 의심하거나, 아예 믿지 않아버리는 방향으로 판단을 내린다.
이에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편리한 판단을 내리고 그 시각으로 사람을 바라보기 전에 자신의 관점도 올바르게 고쳐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그 사람을 중립적이자 종합적으로 판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9]
4. 비판[편집]
모든 사람이 잘못된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라 미쓰요처럼 개심해서 새 출발 하는 사람도 있는 만큼, 위 말은 이분법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지적이 있다.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서 다루는 이론 가운데 ‘역사의 종말 환상(End-of-history illusion)’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나는 이미 충분히 변화했고, 충분히 많은 경험을 했어. 지금이 내 역사의 거의 마지막이야. 그래서 앞으로 나는 별로 달라지지 않아.’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도 비슷하다. 물론 이 '역사의 종말 환상'은 '자신'에 대한 예측에 관한 이론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사람은 의외로 쉽게 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의 실험을 따라가 보자. 길버트 교수가 40세 사람들에게 “앞으로 10년 동안 가치관과 성격이 얼마나 변할 것 같은가요?”라고 질문했을 때 이들이 답한 변화의 정도는 고작 10%였다. 변해봐야 10% 정도만 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50세가 된 사람들에게 “당신은 지난 10년 동안 가치관이나 성격이 얼마나 변했나요?”라고 물어보면 완전히 다른 답이 나온다. 이들 대부분은 “많이 바뀌었지. 세월이 참 무섭더라고. 마흔 살 때에는 내가 진짜 공격적이었는데, 쉰이 되니 많이 차분해졌어.”라는 식으로 과거를 회고한다. 50세 응답자가 지난 10년 동안 자신의 변화를 측정한 수치는 평균 40%였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조금 전 그런 답을 한 50세 응답자에게 “그러면 앞으로 10년 동안은 얼마나 변할까요?”라고 물으면 그들의 답이 또 보수적으로 바뀐다. 그들은 “에이, 앞으로는 변할 일 없죠. 내 나이가 벌써 쉰이에요.”라며 변화의 가능성을 축소한다. 응답자들이 답한 자신의 미래 변화의 정도는 고작 5%에 머물렀다. 하지만 60세 응답자에게 “지난 10년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변했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이 사람들은 “50대가 예상외로 참 다이내믹하더라고요. 인생관도 많이 바뀌었어요.”라고 답한다. 이들이 답한 10년 동안 자신의 변화를 측정한 수치는 30%나 됐다. 어느 나이에서도 사람은 미래의 변화를 현실보다 매우 보수적으로 예측하는 셈이다.
실제로 출소하고 재범을 저지르는 이들도 많지만 각종 통계를 보면 재범률이 결코 100%인 건 아니다. 높은 재범율은 그 결과만 보지 말고 왜 재범을 저지르는지 그 원인을 봐야 알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교도소나 소년원 시설이 너무나도 열악하여 재사회화 교육이 거의 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이런 '문제 있는' 사람을 고치는 방법은 교도소나 보호소 같은 시설에 모아두고 그저 보편적 효과만 낼 수 있는 교정법을 일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고작이다. 단순히 자유를 박탈하고 오래 가둬놓기만 하므로 사람이 변할 계기부터가 주어지지 않는다. 소년원을 예로 들면, 소년원에서는 성격 교정이 이뤄지지 않고 직업 교육이 주로 이뤄지며, 교정 시설은 딱 한 곳만이 존재한다. 가끔 주어지는 인성 교육 시간에서도 전문적 심리학자도 아닌 일반인이 따분하게 앞에서 도덕적 이야기와 훈곗거리만 늘어놓는다.[10] 관심병에 걸린 사람에겐 병먹금이 답이라지만 아무에게나 무작정 병먹금으로 일관하면 황금만능주의에 빠지는 등으로 가정이나 사회가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게임 중독 관련 글. 쉽게 말하면 설렁탕, 매운탕, 그라탕을 한 곳에 모아두고 음식들의 맛을 개선하겠다면서 닥치고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과 같은 행위이다. 이러니 누구는 교정의 효과를 보기도 하지만, 누구는 전혀 보지 못하고, 누구는 오히려 악화되는 것이다. 우화 '팔려가는 당나귀'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이다. 또, 막상 이 문제를 개선하려고 하면 피해자의 보상심리 등 때문인지 솜방망이 논란이 생기기도 한다. 이는 패자부활이 거부되는 것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은 '느릿느릿' 문서 예시처럼 본인, 왕족, 귀족, 평민 모두를 만족시키고자 매우 많은 노력을 했다. 공동체, 생활 환경 개선 또한 필요하다(#1-1, #1-2, #1-3, #2, #3, #4, #5).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
제목을 이 말에서 그대로 따온 에세이가 있는데, 가스라이팅, 꼰대, 우월의식 등 사회 문제를 비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