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에 필요한 실천
: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리고 나눔의 전통
예종석(2006), 살림지식총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살림출판사
예종석(2006), 살림지식총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살림출판사를 어제오늘 다 읽다. 문고판이라서 읽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경영학자인 예종석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고귀한 사람은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배계급을 사회지도층이라고 씀이 불편해서 일일이 지배계급으로 고쳐서 읽을 정도로, 민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김이 불편하였지만, 저자는 역사로써 국가와 사회공동체에 필요한 윤리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담긴 공동체 윤리
그 이유는 첫째 사회통합이다.
고대 로마 공화정과 로마 제국, 신라 왕국은 지배계급인 귀족, 황제, 부유한 계층들이 사회공동체에서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곧 공동선을 위한 나눔을 하고, 국방의 의무를 다함을 명예롭게 여겼다고 한다. 실제 로마의 귀족들은 노비와 귀족의 다름을 사회공동체에서의 의무를 다함이라고 여겼다. 이러한 실천은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물론, 계급간의 갈등을 줄임으로써 사회공동체가 갈라지지 않도록 하였다. 신라에서도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로 역사가 바뀌는 시기인 통일전쟁과 나당전쟁 시기에 김유신 등의 진골계급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였다.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진골계급들의 모범은 평민들로 하여금 국방의 의무라는 사회공동체에서의 의무를 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친일파들이 독립 운동가를 지우는 역사로 인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거나, 홍범도 장군 등과 함께 지금도 지워지고 있지만, 우당 이회영 선생의 신흥무관학교 설립으로 이어진다. 양반 지배계급의 한계가 있었지만, 경상북도(경상북도청) 구미시의 명문가인 허위 선생- 서대문형무소(서대문형무소역사관) 첫 순국열사임.―에서도 볼 수 있으니 고대 로마와 조선이나 고려와 같은 한국사의 건강한 국가공동체들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것 같다.
둘째 유일한과 경주 최 부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로써 윤리경영의 본을 보였다.
유한양행 설립자인 유일한은 평양에서 재봉틀 가게를 운영하는 유기연과 김기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기연은 미국 북 장로교 선교사인 모펫(한국이름은 마포삼열)에게 세례를 받은 장로교인이며, 일본의 제국주의가 상업과 주권 상실로써 들어오는 현실을 엄려하여 아들을 미국 네브래스카로 유학을 보낸다. 이 시기에 소년병학교에서 무장독립투쟁론을 주장하는 박용만의 영향을 받아 민족의식을 가졌으며, 실제 김구 주석의 《백범일지》(범우사)에도 중일전쟁 기간 동안 중국 충칭에 피난을 갔을 적에 미국 육군의 군사훈련을 청년들이 훌륭하게 해냈다는 일화로서 나오는 미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군과의 연대를 할 때 삶을 함께 한다. 아쉬운 점은 일본제국이 항복을 하여 실제 이루어지지 못한 역사라는 점이다. 만일 이루어진 작전이라면 한국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는 라초이 식품회사를 운영함으로써 경영능력을 입증하였다. 친구와 같이 창업을 하였다. 책에는 나오지 않는데, 계몽사에서 펴낸 위인전인 계몽사 어린이그림위인전기 《유일한》에서는 중국계 미국인들의 전통에 맞는 상품인 숙주나물을 통조림으로 만들어 팔았고, 일부러 트럭이 건물 벽에 부딪히는 교통사고를 일으켜서 언론노동자들의 관심을 모았다고 한다. 아주 재치가 있는 상인이어서,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살았다.
하지만 중국계 미국인이자, 소아과 의사인 호미리 여사와 같이 1926년에 조선으로 돌아왔는데, 지금의 연세세브란스병원인 연희전문학교 의과 교수인 에비슨(드라마 제중원에 나오는 애비손 선교사)이 조선의 보건 의료 환경이 열악함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유한양행을 설립하였으며, 동아일보에서 의약품 광고를 선전하였다.
조현 한겨레신문 전 종교전문기자가 한겨레신문에서 인용한 조권순 상무에 의하면, 유한양행에서는 아편을 팔 수 있었지만 인민들의 건강권을 해치는 범죄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단호하게 거부했다고 한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그의 윤리경영은 그치지 않아, 일체 정경유착을 하지 않았다. 세무조사를 수없이 당하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정경유착이나 탈세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들인 유일선이 변호사인데도 경영을 물려주지 않아서, 앞에서 말한 조권순 상무를 전문경영인으로 고용하여 혈연이 아닌 능력만 보고 기업경영을 맡겼다. 당연히 유산도 물려주지 않고 1971년 별세할 때 사회에 돌려주었고, 1952년에 지금의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젊은 사람들이 공업을 배워 번듯한 직업을 갖도록 하였다. 실제 다큐멘터리인 《그것이 알고 싶다》(SBS)에서 유한공고를 다닌 분들이 유한공고 동문회에서 하신 말씀의 고갱이는 유한공고에서 직업교육을 받음으로써, 번듯한 일자리를 구했다는 것, 학비가 없어서 공부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풀었다는 것이다. 이야기꾼인 김상중 배우와 언론노동자들이 유일한의 삶을 가리켜 깨끗한 부자라고 평론을 할만하다.
필자가 제일 눈여겨 본 내용은 종업원 지주제이다. 전체 주식의 15퍼센트인 주식을 노동자들이 가짐으로써 경영에 참여하도록 하는 노동자 주주제를 실천하였다. 마치 한겨레신문을 1987년에 창간할 때부터, 한겨레신문의 독자들이 주주로서 진보적인 언론사의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것처럼, 유한양행에서는 노동자들이 주주로서 경영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경영학자가 아니니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필자가 판단하기로는 이는 자본가가 노동자와의 관계를 경영의 동지로서 맺음을 하여, 평등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경주 최 부자 댁도 소작농민들과 이윤을 5:5로 나누는 병작제, 화려한 옷을 입지 않고, 무명옷을 입는 검소한 삶, 일체 정경유착을 하지 않음, 이웃의 어려움을 이용하지 않기, 배고픈 사람이 마을 공동체에서는 없도록 식량을 나누기로써 농업경영능력을 나를 위해 씀이 아닌, 공동체에서 쓰는 모범을 보인다. 심지어 화신백화점 사업주인 박흥식이 반민특위 기소 제1호일 정도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서 악명을 떨침과 달리, 독립운동을 위해 백양 상회를 운영하였다가 거액의 채무와 함께 폐업을 하기도 하고, 최준이라는 분은 일제의 모진 고문을 당해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니, 장기용 요한 신부님이 성공회내동교회에서 마태오복음서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를 주제로 한 교회력 설교에서 하신 말씀처럼, 공동체에서 달란트를 어떻게 쓸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명문가이다. 경주 최 부자 댁에 대해서는 한겨레21에서 취재하였고, 한국방송에서도 한국사 전(傳)으로 소개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위안부’라는 고된 삶을 사셔야 했던 김군자 할머님의 역사는 우리 시대의 공동체에서 나눔으로써 함께 살기가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예종석 교수님이 하신 말씀처럼 이분은 뺏기기만 하면서 살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옛 일본경찰의 순사인 양부모가 조선인 인신매매업자에게 팔아서 위안부로서 성을 착취당했으며, 한국에 돌아와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시다가 나눔의 집에 자리를 잡으셨다. 이분은 정부에서 보상한 3,100만원을 밑천으로 하여 장학금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셨다. 자신이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으니, 학생들이 공부를 많이 하기를 바라신 것인데, 다행히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아 공부하여 디자이너와 같은 하고 싶은 일을 상상하였다. 이분을 가리켜 예종석 교수님은 부자여야 나눔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한다. 김규항 고래가그랬어 발행인도 《나눔의 두 얼굴》에서 일부 부모들이 “부자가 되어야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단다.”라면서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욕심을 자녀에게 투영함을 비판하셨는데, 부자가 아니라도 나눔은 형편껏 할 수 있다.
나눔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변혁
이러한 나눌 수 있는 전통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행동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종석 교수는 기부에 대한 정부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실제 필자가 일하는 공공기관에서도 매년 연말마다 복무담당 주무관이 부탁하는 일이 있다. 13월의 마지막 소득이라는 연말정산에 필요한, 국세청 홈텍스에서 내려 받는 피디에프 연말정산 자료와 및 연말정산 신고서이다. 이 때 그동안 내가 사회공동체에서 정확하게 말하면 성공회 공동체에서 나눈 정도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는, 내가 소유함을 공동체가 소유함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저자는 주장한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생각은 사회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스위스의 언어학자인 페르디낭 소쉬르가 별세한 후에, 1916년에 펴낸 《일반언어학》은 언어를 파롤(발화)과 랑그(문법 안에서의 언어)라고 구분함으로써 구조로써 읽는 생각을 주장했는데, 그의 논리는 언어학을 비롯한 학문들을 구조로써 읽는 생각을 학자들에게 심어주었다. 그래서 사회구조, 구조악 등의 말들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구조조의로써 읽는다면 개인의 공동선에 의지하는 일도 국가의 사회보장제도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의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점에서는 중요하지만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대표가 주장한 논리처럼 불평등이라는 사회구조를 바꾸는 일도 중요하다. 저자가 양극화라고 말하는 불평등을 만드는 사회구조를, 예를 들어 노동자 사이에서도 불평등이 존재하는 노동시장의 이중화와 같은 사회구조를 바꿈으로써 누구나 제 달란트에 맞게 산다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드는 일이 더욱 필요하다. 2023년 1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