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 Star
Choi, Minsoo
처음이라는 단어는 설렘과 불안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첫 커버스토리의 대상이 배우 최민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설레었고, 그것이 불면증으로 이어질 정도로 불안하기도 했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수없이 고민했던 밤, 꼼꼼하게 준비했던 인터뷰지를 구겨버렸다. 그에겐 '날 것' 그대로 다가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역시나였다.
그를 처음 본 건 10월 말, 홍대 트라이브 바(Tribe Bar)에서였다. 그가 이끄는 록밴드 36.5℃가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공연장으로 향했다. 리허설 중에도 온 신경을 집중한다는 바 사장님의 말을 듣고, 공연장 구석에 앉아 조용히 그의 음악을 감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멋있었다. 자욱했던 안개처럼, 음악이 사라지고 그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내게 물었다. “너 무슨 최씨냐?”
그리고 한 달이 지나, 합정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아지트)을 찾았다. 서부 영화에나 나올법한 가죽 가구들부터 라이터, 볼펜
하나까지 취향을 담은 작은 소품들, 국적을 알 수 없는 은색 코끼리 벽화, 머리끝을 자극하는 잿더미의 쓰디쓴 향초 냄새(실제로 집에 와서 두통을
앓았다) 그리고 서서히 스며드는 쌀쌀한 냉기.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매스컴에서 접한 배우 최민수의 모습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그를 만나기 전에도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그곳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
낯섦은 인사 대신 마주했던 음악도 한 몫했다. 공연장에서 만났을 때도, 인터뷰를 하고자 작업실에 방문했을 때도 그와 나는 음악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안녕”이라는 말보다 더 가슴을 울리는 진한 몸의 언어로 서로 간의 안부를 물었다. 그 음악 장르가 블루스 록이라는 것도 의아했지만,
생각보다 잘하고 멋있다는 것도 놀라운 것 중 하나였다. 그의 리허설 아닌 리허설 속에 나는 리듬을 타기도 하고, 간간이 얘기도 하고, 물도
마셨다. 포토 에디터가 카메라를 새끼손가락 마디보다 짧게 얼굴에 가져갔을 때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천상배우구나’ 하는 생각에 짧게
감탄을 하기도 했지만, 나를 더 강하게 이끌었던 건 묘하게 느껴지는 그와 나의 거리였다. 한 공간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고 그의
음악을 들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포토 에디터의 새끼손가락 마디. 정확히 그와 나의 거리는 딱
이만큼이었다.
잠시 후, 음악 소리가 멈추고 그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밥 먹었니?” 그리고 그는 밴드 멤버가 들어올 때마다 똑같은 인사를
되풀이했다. 앉으라는 말도, 인터뷰를 시작하자는 말도, 내가 누구라는 소개도 필요 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그에게 나는 자신과 다른 최씨 성을
가진 아이로 기억되어 있었다.
# 사람의 체온 36.5℃
밴드는 언제 결성하셨어요?
결성이라는 말은 굉장히 긴장된 단어 같아. 나는 그 단어만큼의 장악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음악으로서요?
응. ‘결성’하면 큰 의지가 있는 것 같잖아. 음악은 참 힘들지. 나는 산수를 잘 모르는 놈이지만, 음악은 딱 떨어지는 답이 없는 미지의 숫자들이기 때문에 음악을 하면서 어떤 사람과 하나가 된다는 건 정말 힘든 작업이더라고. 가끔은 힘들어서 억울하기도 한데 그래서 지켜야 할 부분도 있겠다 싶어. 그 지켜야 하는 부분들이 우리가 ‘결성’이 아니라 ‘결속’될 수 있는 이유인 것 같기도 하고. 우리 멤버들은 서로에 대해서 잘 몰라. 형제가 몇인지, 어떤 여자를 만나는지 안 물어봐.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런 말들이 필요 없게 됐어. 며칠 전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는 서로를 참 모르는구나. 근데 ‘모르는 게 부족한 건가?’란 생각을 해봤지. 근데 아니지. 안다는 기준 안에서의 알고 모르는 거는 내 기준에서 바라보는 거니까. 1차원적으로 알고 모르는 것은 의미가 없어. 달을 안 가봤지만, 느낄 수 듯이 나도 너를 느낄 수 있고, 우리만이 유일하게 음악 안에서 공감할 수 있는 거지. 음악은 사람이 감정을 전달하는 것 중에 가장 우아한 소통 방법이니까.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잘 맞는 멤버 구하기 정말 힘든데.
너하고 나하고 이렇게 만나듯이. 느낌으로 만나고 길에서 만났지. 보통은 명함 먼저 내밀지만, 누구나 다 프로필이 있는 상태에서 만나는 건 아니니까. 근데 나는 그런 거 받으면 아이스크림 떠먹을 때밖에 안 써. 손톱에 때 뺄 때 하고. 사람을 먼저 봐야지. 명함을 왜 봐. 쌓인 명함을 보고 있으면 내가 사람을 만난 건지 명함을 만난 건지 모르겠어. 근데 어차피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으니까 맞는 사람들끼리 소통하면 되는 거겠지.
36.5℃의 음악을 ‘샤먼록’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셨어요. 이전에 “나는 샤머니즘이 강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으신데, 연결되는 지점이 있나요?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연결 지을 필요는 없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었어. 사람은 힘들 때 비로소 하늘을 보거든. 그게 샤먼록이라고 이름을 지었던 이유야. 우리가 추구하는 음악의 감성은 시선 끝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이기도 하니까. 나 역시도 다이아몬드로 짓밟힌 들국화나 야생화를 보면 살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가장 대중적인 대답이라면, ‘록’은 다 외국 거잖아. 그렇게 불리기도 싫고, 남의 노래를 흉내 내고 싶지 않았어. 그렇다고 우리나라 대중가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진정성이 안 느껴지잖아. 나이를 먹어서가 아니고 솔직히 결국 몇몇 음반 제작자들의 애들 쌈짓돈 뜯어먹는 수작으로밖에 안 느껴지더라고. 감동이 없어, 감흥만 있고. 그래서 샤먼록이라고 이름을 정하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음악을 만들기로 한 거야. 그렇다고 한쪽으로만 쏠려서 음악을 하지 말고 우리 색깔을 가지되 막 나가는 것 같지만 섬세하고, 매니악한 것 같지만 굉장히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자고 했지. 아티스트들은 다들 사제나 제사장의 운명을 가지고 있거든. 여기 있는 네 사람은 돈이나 인기 때문에 음악을 하진 않을 것 같아. 적어도 나는 그래. 동생들도 나름대로 인생의 힘든 걸 겪어왔겠지만, 최소한의 리스크는 경험하지 않게끔 하고 싶어. 왜냐면 음악적인 부분에서 굉장한 천재들이니까, 내 눈에는. 비릿한 세상에서 발을 헛디디게 하고 싶지 않지. 그것만 내가 동생들하고 잘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TV 쇼프로그램에 나가시는 거예요?
나 원래 나가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이것 때문에 많이 버렸지. 근데 그 정도 버려져도 내가 워낙 순결한 사람이라서 괜찮아. (웃음)
주로 구설수로 이슈가 되고 있는데, 밴드 이미지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요?
아니. 신경 써 본 적 없어. 다만 구설수라는 말보다는 그들이 나를 경계하는 것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지. 나에 대해 얘기하는 게 아니야. 그들이 갖지 못한 내 자유를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이야기하는 것뿐이라고. 누구나 다 마음속에 록스타가 있고, 일탈을 꿈꾸지만, 뭐에 의해서 그걸 잃어버렸는지 핑계를 둬서는 안 되겠지. 그건 성숙한 게 아니지. 대중은 그런 것뿐이야. 하고 싶은 얘기만 하고, 보고 싶은 것만 봐. 거기에 내 사상이나 의식이 판단 되어서도 안 되고, 같이 섞일 필요도 없어. “너 대중문화 예술인 아니야?”라고 물어본다면 “그건 솔직히 너희가 정해 놓은 거야. 난 그런 생각해본 적 없어” 라고 얘기해. 나는 연기할 때 대중을 위해서 하지 않아. 내가 꽂혀서 하는 거지.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사회 공헌자도 아니잖아. 공인이란 말을 막 하는데, 내가 공인이 되려고 배우가 된 건 아니라고. 너도 대단한 저널리스트가 되려고 기자 한 거 아니잖아. 누구나 다 그래. 잔풀 흔들리는 거 가지고 얘기 안 하거든? 나무 뽑히는 걸로 얘기하지. 인터뷰할 때 본심 얘기한 적 한 번도 없는데, 요만큼만 얘기해줄게. 솔직히 귀여워. 원하는 식으로 웃어주고, 원하는 방향대로 다가가는 게 처세술인데, 난 그게 싫어. 내 방법이 따로 있어. 아까 사제들 같다고 한 이유가 뭐였냐면 돈이나 이런 게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는 거거든. 사육된 표범들은 아니라는 거지. 먼지 묻은 들개지만, 적어도 개목걸이는 차지 않았다는 거. 자신의 이야기를 예술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욕망. 가슴 찢어지면서 살았던 것들, 느꼈던 것들을 다 들려주고 싶은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 나 역시도 그러니까. 굳이 치장해서 얘기하자면 그래.
좋은 식으로 얘기하면 사람들이 듣지 않기 때문에 자극적인 단어를 설정해서 얘기한다는 인터뷰를 봤는데요, 같은 이유인가요?
그건 내가 산에 가기 전에 한 말일 걸? 산에 갔다 오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지.
어떻게요?
귀찮아. 재미없어. 그래서 음악을 하는 거야. 방법을 바꾼 거지.
영화 <테러리스트>
# 너는 자유로운 이곳에 갇혀있고, 나는 이곳에 없다
곡 작업은 어떻게 하세요?
떠오르면 혼자 기타치고, 노래 부르고, 핸드폰에 녹음하고. 나는 악보를 볼 줄도 쓸 줄도 모르거든. 노래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잖아. 적어도 36.5℃ 밴드 안에서 주인공은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야. 각자 머릿속에 있는 음표들이 모여서 하모니가 되고 음악이 되지. 그래서 우리는 매번 할 때마다 달라. 근데 그게 음악이야. 만든 노래를 똑같이 해봤자 우리도 재미없고 듣는 사람들도 재미없을 걸? 어쨌든 돈 받고 하는 거잖아. 나는 라이브 할 때 혼이 쏙 빠질 정도로 하는데, 돈을 받고 하면 아무리 해도 지치지가 않더라고. (웃음) 전에 한 번 행사간 적도 있었어. 라이브 하는 데라고 해서 갔는데 무대 옆에 봉이 있었지.
특별한 경험이셨겠네요. (웃음)
재밌었어. 내심 한두 번 하기엔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도 했고. 사실 진짜 음악은 저잣거리에서 나오는 거거든. 매춘굴에서 가슴 찢어지는 것들이 많이 나왔었다고. 이런 음악을 듣고 같이 아픔을 느끼는 게 옛날이었다면, 지금은 “팁 줄게 불러봐” 같은 거지. 취해도 멋있게 취하면 나도 환영이야.
같이 즐길 수 있는 분위기면 금상첨화겠네요.
그럼. 극장같이 나만 보고 있는 것도 싫어. 술 먹는데 진짜 진하다 싶어서 같이 즐기면 좋지. 어느 날 국룡이(36.5℃ 드러머)가 “형, 우리는 대중적으로 알려질 필요도 없고, 많은 공연도 하지 말고 간간이 나가는 게 멋있을 것 같아요”라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듣는데 깊이가 느껴졌어. 내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어. “너는 자유로운 이곳에 갇혀있고, 나는 절대 이곳에 없다” 콘서트나 공연 현장에서 아티스트와 관객을 사이에 두고 쓴 노랫말이야.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이 있지 않고, 자유로운 이곳에 갇혀있는 너희와 나는 분명히 다르다는 거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경제적인 부분도 배제할 순 없을 텐데요.
현실이 뭔지 모르잖아. 잘 그러고 살아.
알려진다는 건 인기를 떠나서 그 밴드의 음악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듣는다는 걸 뜻하기도 해요. 그렇게 되면 밴드 생활을 이어나가기가 훨씬 편하지 않을까요?
몰라, 그런 질문은 안 해봤어. 우리는 돈 벌면 엔 분의 일로 가져가. 그것 때문에 한 건 아니지만.
처음에 인정받고 싶지 않다고 하셨던 것도 같은 의미인가요?
음악은 음악일 뿐이잖아. 인정받는 것도 원치 않고, 듣고 싶으면 듣는 거야. 우리식의 언어가 있고, 우리식의 표현이 있으니까. 들을지 말지는 그들의 선택이지. 그것까지 신경 쓰면서 음악을 할 필요는 없잖아.
음악을 한 후, 삶의 어떤 부분이 바뀐 것 같으세요?
돈이 안 되니까 집사람한테 혼나고, 말도 안 되는 프로그램 나가고 그런 거지. (웃음) 근데 그것도 재밌어. 왜냐하면 다른 때 같으면 ‘말도 안 된다’는 것이 고정관념으로 박혀 있었을 텐데 우리가 하는 일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니잖아. 근데 서로 간의 소통이 단단하니까 말도 안 되는 곳에서 해도 재밌더라고. 우리는 서로 다른 인생을 살다가 모인 거기 때문에 단시간에 변화를 느낄 수 없어. 그렇게 돼서도 안 되고. 적어도 10~20년은 있어야 진짜 진하게 나오지. 저기서 퉁 치면 사람들이 가슴을 부여잡을 수 있는 그런 ‘진짜’ 말이야. 그런 기대가 있지. 그 한 번을 위해서라도 살아가볼만 하잖아. 예술은 항상 휙 돌아섰다가도 어느새 가슴에 툭 내려앉아. 그때는 들리지 않았던 게 나중에 들릴 수도 있어. 우리는 그걸 기다리는 거야. 그걸 찾기 위해 음악을 하는 거고.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신인 개그맨이 TV 드라마 <모래시계>의 최민수를 모사한 걸 본적이 있다. “이렇게 하면 너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과장된 모사에 관객들은 까르르 웃었고, 누군가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더 과장되게 그를 따라했다. 내가 놀랐던 건 개그맨이 성대모사를 잘해서가 아니라,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캐릭터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모래시계>의 태수, <아찌 아빠>의 영수, <홀리데이>의 김안석, <태왕사신기>의 대장로, 얼마 전에 종영한 <칼과꽃>의 연개소문까지. 거론하기도 벅찬 많은 캐릭터들이 그를 거쳐 갔다. 그 개그맨과 마찬가지로 80년대 생인 나에게, 배우 최민수는 태수였다. 쉰둘의 배우의 이름에 여전히 ‘터프가이, 카리스마’란 수식어가 붙어있는 걸 봐선 사람들에게도 ‘태수’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자리 잡은 것 같았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그의 여러 모습을 보았다. 연기 이야기를 할 때는 카리스마 태수였다가, 음악 이야기를 할 때는 금세 천진난만한 대발이로 변했다. 그를 변화하게 한 것은 36.5℃ 밴드의 음악이자, ‘우리’라는 단어였다.
‘최민수’하면 사람들은 아직도 <모래시계>를 가장 많이 떠올려요. 강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는 건 장점이지만, 독이 되기도 할 것 같아요.
아무 생각 안 해. 난 배우 아니야. 집에 트로피도 없고, 연기할 때 사진도 없어.
음악에 비해 연기에 대한 애정이 덜 하신 건 아니죠? 작품 하실 때는 인터뷰를 안 하신다고 들었는데, 앨범 나오고 나서는 쇼프로그램도 나가시고 인터뷰도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보였어? (웃음) 음악은 내 것이 아니라, 우리 거잖아. 연기는 나 혼자 맘대로 해도 상관없어. 솔직히 음악도 난 그러고 싶어. 음악도, 연기도 말로 하는 거 싫거든. 그건 애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굳이 작품이나 연기 이외에 따로 알려야 할 것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이지. 진짜 감동 되면 와서 보면 되잖아. 뭐 말이 필요해.
근데 어느 정도 필요하긴 한 것 같아요.
필요한 애들은 하겠지. 이 바닥에서 살아왔지만, 단 1g도 내 음악을 알리기 위해서 뭔가를 써먹지는 않았어. 장훈이(김장훈)도 본인 마음이 동해서 도와준 거야. 우리 음악을 홍보하기 위해서 그 어떤 것도 해본 적이 없어. 방송국 가서 CD를 나눠준 적도 없고.
‘카리스마’라는 수식어가 작품을 선택할 때 제약이 되진 않나요?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내 마음 안의 불편한 감정을 감수해본 적이 없어. 두 가지 이유인데 첫째는 초월한 거고, 둘째는 애초부터 무관심한 거야. ‘카리스마’라는 이미지를 생각해본 적도 없고, 가져가려고 한 적도 없지만, 그 근본은 무관심이야. 내가 무슨 카리스마가 있어?
뭔가를 사로잡는 힘 때문인 것 같아요. 자유로움 속의 강인함일 수도 있구요. 근데 그렇게 자유로우신 분이 어떻게 가장 자유롭지 못한 연예계에 계속 있으신 거예요?
돈 못 벌어서 죽을 순 없잖아. (웃음) 난 어떤 사람도, 사물도 부러워해 본 적이 없거든? 최상위 부르주아들도 나를 알고, 세상 끝에 있는 사람들도 나를 알아. 물론 세상 끝에 있는 사람들을 항상 가슴으로 안지만. 근데 어느 한 곳에도 편협되어 있지 않다고. 만약 무의식의 작은 세포 중 하나라도 돈을 원했다면 나는 그들에게 엎드렸을 거야. 근데 갓난 아기가 히틀러가 앞에 있다고 해서 머리를 조아리진 않잖아. 아기는 그게 누구든 관심 없어. 이게 쉬운 것 같지만, 굉장히 어려운 거거든. 초월하지 않으면 그럴 수 없지. 길거리에서 삼각 김밥을 사먹을지언정 손은 더럽히지 말자는 생각을 해. 뭐 가끔은 심심해서 “카리스마 배우 왜 안 불러~”하면서 장난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액션은 있을 수 있지만, 리액션은 기대하지 말라고. 더 이상 세상에 놀라고 당황할 일이 없을 정도로 초월해버렸어. 누가 나한테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됐다 그럴 거야. 관심 있는 몇 가지 중 하나를 꼽으라면 그중 하나가 음악이야. 내가 살아온 모든 인생을 집대성해서 내가 지켜야 할 하나의 공간이지.
인터뷰는 예상대로였다. 어렵고, 돌발적이었다. 강렬한 직구를 날리는가 싶다가도, 관념적인 비유들로 변화구를 던져왔다. 나는 갯벌에 파묻힌 조개들 속에서 진주를 찾아내기 위해 더 직설적인 질문을 건네야 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하지 못했을 날이 선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거나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있으면 반드시 되물었다. 전부 이해할 순 없었지만, 몇 가지 좋은 말들이 가슴에 콕 박혔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36.5℃ 멤버들과 몇몇 구경꾼들은 아지트를 떠났다. 부산스러운 환경 속에서 그는 내 눈을 마주치며 성실히 대답을 이어갔다. 그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부산스러워도 네 소리를 들을 수가 있어. 너도 그러길 바래.” 처음 작업실에 들어와서 느낀 이질감의 거리가 조금은 좁혀진 듯했다.
자유로움이 부럽지만, 때로는 위태로워 보이기도 해요.
나는 살면서 나를 내세운 적이 없어.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떠드는 것뿐이지. 다만 그런 사람들이 약한 사람을 괴롭혀서 싸운 적은 있어. 옛날 영화판이란 사회가 그랬거든. 기득권자에 의해 움직여지는 경우가 많았어. 여배우들 몸 바치고, 돈 줘야 하고 그런 게 굉장했지. 음악도 똑같았고. 그런 자리에서 나는 한 번도 무릎을 꿇은 적이 없어. 그렇게 저항하는 모습을 보고 ‘카리스마’라고 이야길 한다면 그러라 그래. 난 그 의미를 알고 있다는 거지. 위태로워 보인다… 그건 정말 정답일 수 있어. 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단어인데 자유로우면 위태로울 수밖에 없잖아. 그만큼 소중하니까. 자유는 정리되지 않아. 그건 또 다른 구속일 뿐이야.
아무리 초월했다고 해도 비난받는 건 굉장히 소모적인 일이잖아요. 얼마 전에 출연하셨던 <라디오스타>가 방송되고 난 후에도 난리 났었는데, 보셨어요?
누가 말해줘서 알았지. (웃음) 근데 비난만 하고 다음 액션이 없더라. 난 정말 궁금한데, 다른 연예인들이 나 정도 하면 사장(死藏)돼야 하거든? 근데 또 그렇진 않아. 좋게 생각하면 그들은 욕하면서도 내가 이해해줄 거라는 걸 아는 것 같아. 요즘은 자기 속에 있는 울분을 토해낼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잖아. 관심이 없다고 해도 들리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이미 마음에 침전물이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요동이 없어. 걱정 마. 화병으로 안 죽을게. (웃음)
너무 많은 사건을 겪으셔서 무관심해지신 거예요?
그것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관심 밖이기 때문에 그래. 주변에서 떠드는 거 별로 안 좋아해. 인터넷도 안 봐. <라디오스타>도
누가 말해줘서 알았어. 그 방송에서도 욕했는지 몰랐는데 PD가 그 장면을 썼더라고. 간담회 때 기자들이 김구라에 대해 물어보는데 화가 나는
거야. 나는 내 사람 내가 욕하는 건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이 욕하는 건 못 봐준다고 했어. 그건 편집에서 빠졌지만. 왜 불량식품 먹어 놓고 안
먹은 척해. 다들 먹을 땐 좋아했잖아.
TV 드라마 <신의>
표현은 과격하지만, 긍정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누가 방송에 나와서 그 이야길 할 수 있겠어요.
네가 이해했으면 세상도 다 이해할 거야. 나이가 든다는 건 상대방의 아픔이나 슬픔을 돌아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거거든. 내가 방송에서 강하게 이야기하는 것들의 공통적인 부분은 사람들이 ‘격’을 버렸을 때 굉장히 분노한다는 거야. 세상은 다양하잖아. 한 사람의 말에 의해서 정리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될 수도 없고. 근데 공중파든 케이블이든 간에 내가 얘기할 때에는 궤변학파가 얘기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네가 말했듯이 사람에 대한 얘기고, 그리움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지. 나는 사람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는 걸 무진장 싫어해. 내 행동은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 누굴 불편하게 하는 것도 정말 싫어. 그래서 전과기록이 많은 거야. 길 가다가 어떤 남자가 여자를 패서 내가 그 남자를 막거나, 때리잖아? 그럼 결국 수갑 차는 건 나야. 세상은 그걸 잘못했다고 하지만, 나는 단 하나도 부끄럽지가 않지. 그래서 세상이 재밌지. 근데 이제는 그것도 안 해. 산에 있다가 내려올 때 한마디 했어. “이전에는 세상에 애정이 있었으니까 그랬던 거다. 이젠 관여 안 한다”고. “한 사람의 집중과 20분 묵상으로 인해서 세상이 변한다는 걸 믿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난 그렇다고 믿거든? 사람이 초 집중해서 묵상을 하면 세상이 그쪽으로 변해. 다만 사심이 조금이라도 들어가선 안 돼. 보통 사람들은 하기 힘들 거야 아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행위인가요?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행위지. 24시간에서 내 그림자를 1초라도 보겠다는 거잖아. 일상적인 나에서 원초적인 나로, 시간과 공간에 밀려 미처 편집하지 못했던 내 마음의 서고를 정리해 보겠다는 거잖아. 그것만큼 의미 있고 아름다운 시간이 있을까 싶어. 우리 인생을 딱 40초 안에 정리해볼까? 남자의 경우, 태어나서 학교 가고 졸업해서 군대 갔다 온 다음에 취업하고 결혼해서 월세에서 전세로 옮겨 다닐 즈음 아기 낳고, 자식 등록금 내느라 재산 반 날리고 시집·장가 보내느라 나머지 반 날리고 한숨 쉬려는데 정년 시기가 딱 되서 할 게 없어진 거. 그게 인생이야. 아까도 얘기했지만, 초월 단계라는 건 그 근원까지 파헤치겠다는 거거든. 근원도 모르면서 초월해 버리면 철딱서니 없는 거지. 지금 나오는 생각이나 이야기들이 그냥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거지. 너무 쓸데없는 것만 갖고 살다 보면 아무것도 못 봐. 필요한 것만 가져가야 해. 자기 자신이 알아. 뭐가 필요하고, 뭐가 불필요한지. 옷장 정리하는 거랑 똑같아. 정리하면서 안 입는데 버릴 수 없는 옷들이 있다고. 근데 그런 옷들은 결국은 안 입어.
# 숨 쉬는 것조차 예술적으로
정 많으시죠?
너무 많아. 정돌이.
순수해 보이기도 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해요.
두 가지 다 일 수도 있어. 내 기준이 아니라 원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정이 많아야 되는 거잖아. 정이 없다는 건 그만큼
여유가 없고, 힘들다는 거니까. 근데 여유라는 것이 뭐가 있어야만 되는 건 아니거든. 로또 맞는 것만이 기적은 아니라고 생각해. 근데 사람들은
그걸 기적으로 보지. 기적이라는 건… 감동 아닐까?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다는 건 기적과도 같은 행위잖아. 얼마나 아름다워.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처럼 살기 위해선 마음속 뿌리가 단단해야 할 것 같아요.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이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거든. 내 대답은 하나야. 나는 정말 처절할 정도로 사색가라는 거. 모든 현상이나 일어나는 것들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봐. 그냥 보이는 데로 세상을 보진 않아.
같은 공간에 있지만, 여기 없는 거네요. 아까 말씀하셨던 노래 가사처럼요.
그렇지. 세상이 나에게 묻는 것들은 내가 전혀 관심 없어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장난스럽게 대답을 하지. 못 알아듣게. 나는 또 그렇게 얘기하는 걸 좋아해. (웃음) 당연하잖아. 어떻게 깨달은 건데. 사람이 말을 배우는 데 3년이 걸리거든? 근데 남의 말 듣는 데는 50년이 걸려. 그거였어. 시선을 바꿔보는 것. 시선을 바꾸면 매일이 새로워. 근데 자기가 안 보는 것도 있고, 못 보는 것도 있어. 못 본다면 자기가 발견하지 못하는 거겠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이상적인 삶 같아요.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하고 싶은 거 해야지. 보이는 대로 사는 거 지겹잖아. 느껴지는 대로 살아야지. 해주고 싶은 말은 하고 싶은 걸 하려면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절제가 더 많다는 거야. 그게 지켜야 할 것들이기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포기하지 못하니까 정작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는 거네요. 예술도 마찬가지구요.
그들이 포기하는 데는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 가령 아무나 다 연기를 할 순 없잖아. 근데 아무나 다 해 요즘은. 사실은 아무데나 다 있는 게 예술이거든. 조명 밑에 있는 작품만이 예술은 아니라고. 남자가 미니스커트 입는 여자보고 “오~ 예술이네” 하는 것도 예술이야. 자기를 건드리는 거잖아. 지금은 예술을 포장하고 값을 매기니까 변질됐지만. 어떤 커피가 맛있어서 분점을 낸다고 쳐봐. 그 맛이 똑같진 않잖아.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 사람이 아무리 창을 배워도 한을 흉내 낼 수 없는 것처럼. 기술을 가르쳐주는 학원은 많지만, 노하우나 인생의 쌓여있는 건 전수 못 해. 그게 예술이야.
지향점이 완전히 다르네요.
근본부터 다르지. 인간은 성찰의 동물이잖아. 이뤄낼 줄 안다고. 네가 ‘모나리자’를 보고 싶어서 프랑스 간다고 하면 미쳤다고 그래. 핸드폰에 정보도 많고 화질 좋게 사진도 있는데 뭐하러 가냐고. 우린 그런 시대에 살고 있어. 근데 네가 거기에 굴하지 않고 몇 년간 돈을 아끼고 아껴서 비로소 ‘모나리자’ 앞에 섰다고 생각해봐. 가까이 가지도 못해,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거기 앞에서 네가 흘리는 눈물은 훌륭한 ‘모나리자’를 봐서가 아니라, 이거 하나를 보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모든 과정이 한꺼번에 복받치는 감정으로 표현이 될 수 있다는 거야. 쉽게 얻은 자는 못 느낄 감정이지. 예술이라는 건 그 작품과 그걸 받아드리는 사람들이 소통하면서 ‘공감’을 공유할 수 있는 조건이 돼야 하나의 의미가 되는 거야. 책을 읽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야. 책을 보는 순간은 내가 살아온 삶 속에 있는 자그마한 조각들이 글과 연결 돼서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내. 결국은 자기를 보게 되는 거고, 자신과 소통하는 거야. 내가 느끼지 못하면 결국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 그게 예술이고, 삶이야.
# 겨울밤, 아지트를 나서며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36.5℃의 ‘스모키마운틴’을 들었다.
중년의 록커는 자유를 노래하고 있지만, 갈구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자유는 늘 곁에 있는 산소처럼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지트에는 어느
것 하나 정형화된 물건이 없다. 국적도, 향도, 모양도 다르다. 하지만 그들끼리 뭉쳐있을 때 묘하게 조화를 이뤄내고 마침내는 공간 안에서 하나가
된다. 그가 음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모습과 닮아있다.
아지트 안은 얕은 먼지로 가득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목이 칼칼하고 코가 막혔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깟 먼지
정도야’라며 툭툭 털어낸다. 이는 세상을 대하는 최민수의 태도와도 같아 보였다. 그는 대중의 불편하고, 싫은 내색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모든 것에 초월한 그의 모습을 보며 전형적인 모습을 강요했던 우리의 시선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우리는 아지트에 같은 모양의 물건들만 있길
바라는 사람들처럼 그를 바라보진 않았을까. 매스컴에서 그의 모습을 보고 불편함을 느꼈다면 분명 이 인터뷰가 유쾌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치대로라면, 볼 사람은 보고 안 볼 사람은 안 보면 된다. 세상은 새로움으로 가득하다. 다만 눈여겨보지 않는 자들에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중년의 록커 최민수의 새로움이 당신의 눈에 보이는가. 보는 것보단 들어보길 권한다.
(출처 :F.OUND MAGAZINE / 에디터 > 최인희 포토 > 김희언·천윤기 )
첫댓글 형~~~(그냥 불러보고 싶네요)
언제 봐도 참 멋지시네여 ㅋ
좋아요 ~
근데 지하 먼지는 정말 건강에 좋지않아요
신년 대청소 한번 하시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