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에 널린 이불
아파트 창에 널린
햇살에 적나라한 솜이불
애국도 매국도 아닌
태극기도 일장기도 성조기도 아닌
목화솜 이불인지 폴리에스터 요깔개인지
이념도 아니고 사상도 아닌
우리의 생활
이미 비난받은
우리의 내부인 것 같은
내장을 꺼내
뒤집어놓은 것처럼
입 꾹 다문 일 가구의
내면을 햇살에 내어 말리고 있는
작은 창 가난한 방의
두툼한 저 무념무상
방 안의 코끼리
방 안에 코끼리가 있다고 쓰여 있었다. 명백한 사실이나 차마 입 밖에 내뱉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 페이지를 다시 보려 하니 찾
을 수가 없었다. 코끼리가 풍선처럼 팽창해서 벽과 천장과 바닥에 흡착된 것 같다. 그래서 벽이 되고 천장이 된 그것이 보여도 보
이지 않는다. 이 방에 무지무지 큰 코끼리가 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없다는 듯 무시하고 지내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캄캄한 터널을 수직으로 급강하하고 있었다. 어떤 둔중한 통증 때문에 몹시 괴로웠다. 통증을 호소하다 오분만 더 가
면 이제 도착한다니까 조금만 참자 견디자, 그러는 중인데 눈을 뜨니 누군가 내 팔다리를 주무르며 울고 있었다. 천개의 바늘이
찌르듯 온몸이 저려오면서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응급실로 데려가려고 나를 옮기려다 미끄러져 마당에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외롭고 추웠던 이십대의 어느 성탄 전야. 내 방으로 가스가 스며들어왔고 싸락눈이 살짝 내렸고 미끄러지며 나를 떨어뜨
리는 바람에 살아 돌아온 것이다. 죽을 생각도 했던 이십대의 내 정신, 코끼리만큼이나 무거웠을 테니 그럴 만도 하다.
동물원에서 본 코끼리는 몸 집에 비해 눈이 너무 작았다. 그 작은 눈이 깜박이며 살짝 눈 내린 마당에 나동그라져, 살아 돌아온 그
날의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작은 코끼리 눈, 웃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닌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