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고향/ 권혁웅
송림원에서 구미호와 오향장육을 먹는다
빙글빙글 도는 회전식탁 앞에서
오래돼서 삐걱대는 윤회전생 앞에서
회향, 계피, 산초, 정향, 진피
인생의 아니 호생(狐生)의 독한 맛을 안다는 표정으로
우리는 고량주를 홀짝이고
내가 이렇게 된 건 행운의 편지 때문이야
아흔아홉 명에게 편지를 보내야 했는데
편지지가 한 장 부족했어
창밖에는 죽은 자의 골분이 흩날리고 있었다
구미호는 춥다고
아홉개의 꼬리를 방석 대신 깔고 앉아서
나나 너나 뭐가 달라,
너도 생간 좋아하잖아?
구미호의 눈은
접시 바닥에 깔린 오이처럼 금세 축축해지고
이 집에선 해삼주스도 파네?
무서워서 못 먹겠다
나는 플레이팅한 오향장육이 이계의 문 같다고 생각하며
그의 혀가 꼬부라져 원산지를 닮아가는 동안
이 접시에서 튀어나올 신물들을 생각한다
계단식 논이 흉내 내는 주름을
마파두부처럼 닳아버린 연골을
세숫대야보다 반질대는 정수리를
난자완스처럼 튀겨진 조그만 삶을
변심도 변심도 너무 늦었다는 걸 깨닫고
그는 힉스 입자처럼 놀라서 점점 무거워진다
구미호는 지금 아홉수에 걸린 것이다
재작년에 세례를 받아서
이미 거듭날 찬스는 써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