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의 후손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학부모님들의 이어달리기가 아닐까, 한다. 첫 선수가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와서 바통을 건네주면 받자마자 다음 타자가 뛰는, 그 긴장감은 보는 이의 심장을 단번에 쫄깃하게 하고 환호성을 일으킬 만하다. 그런데 긴장감이 황당한 일로 인해 웃음보 터지는 사건이 발생한다면 어떨까.
학교 다닐 때는 지금과 상반되는 날렵한 몸으로 달리기와 농구를 곧 잘하는 아이였다. 지금은 날렵하고는 수평선 너머쯤, 거리감이 있지만 꾸준히 운동은 해오고 있었다. 평소에 마을 곳곳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봐온 마을 사람들은 이어달리기 선수로 일체 고민 없이 나를 선수로 뽑았다. 그리고 운동장을 돌고 나서 다음 바통을 받고 뛸 사람은 나와 동갑인 양띠 친구 미경이었다.
가랏 마을에는 내 또래 여자 양띠들이 네 명이나 된다. 양띠들은 공통적으로 실수가 잦고 특히 깜박증이 심하였다. 가랏마을 사람들은 그 특성을 수없이 경험하였기에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새댁 회 모임 날짜를 단체 문자로 받았음에도 그새를 못 참고 잊어버려 오지 않은 사람은 십중팔구 양띠였고, 심부름을 시키면 가다가 잊어버리고 딴 데로 새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양띠끼리는 절대로 약속을 잡지 말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약속을 아무도 기억 못 할 거라는 이유다.
이어달리기는 혼합이었다. 먼저 아빠들이 뛰어 첫 출발 하고 다음 바통을 엄마가 이어받는 거였다. 나는 발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고 뛰기로 하였다.
첫 번째 시작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아빠들이 뛰었다. 우리 편인 아빠가 일등으로 달려와서는 나에게 바통을 넘겨주었다. 나도 볼살을 휘날리며 죽을힘을 다해 일등으로 달렸다. 사람들의 재촉하는 환호성이 폭포 소리처럼 어지럽게 들려왔다. 저만치서 미경이가 왼손을 뒤로 하고 바통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미경이와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리고.
나는 바통 넘겨줄 생각은 하지 않고서 미경이에게 말했다.
“양말 신고 뛰니까 발이 가볍더라. 너도 신발 벗고 양말 신고 뛰어.” 그런데 미경이는 하필 맨발이었다. 나는 미경이에게 양말을 벗어주었고 미경이도 내가 건네준 양말을 받아 신었다. 양띠 둘은 지금 이어달리기 중이라는 걸 깜박 잊고 있었다. 그러고는 이어달리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서로 양말을 주고받는 훈훈함을 연출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우째스까’ 이어달리기는 두 양띠가 갑자기 달리다 말고 양말을 벗어주고 받아신고 하는 바람에 응원하던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말았다. 물론 미경이는 내가 건네준 양말을 신느라 달리지도 못하였고, 우리 팀은 당연히 꼴찌를 하였다.
사람들은 우리에게로 와서 물었다. 급박한 상황에 서로 양말 바꿔 신을 생각을 어찌했느냐고. 글쎄 그건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왜 그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날의 양말 사건은 마곡초등학교 운동회 역사상 길이길이 남을 헤프닝이 되었다. 아마 우리 둘은 양의 탈을 쓴 토끼의 후손이 분명하였다.
첫댓글 아무리 정신이 없기로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요? 내 차~암. 허허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 와중에 양말 벗어 줄 생각을 왜 했는지 모르겠어요.
벌써 25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가끔 양말 사건을 이야기 하며 양들의 깜박증을 놀리곤 한답니다.
꼴찌를 해도 그날
마곡초등학교 운동회는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네요
ㅎㅎ
가랏마을 양띠는 물러가라..ㅎㅎㅎ
양띠만이 가능한 헤프닝이지요.
에이, 말도 안되 무슨 그런 일이 경기를 하는데~~~
ㅋ..
그러게 말이예요.
그런데 사실이랍니다.
경기에는 졌지만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길이 추억에
남았으니 좋은 일 하셨네요 ^^
넵, 아직도 사람들 기억속에 물장구히고 있는 사건이지요.
아주 생뚱 맞았지요.
글이 재미 있어요 ~~~^^ 꼴찌는 했어도 ~~~ 추억으로 오래 남을 것 같아요 ~~^^
지금도 그때를 이야기 하며 웃네요.
정말 못 말리는 양띠 시스터즈이군요.
얼척없다가 배꼽잡는 사람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이야깃거리에다가
이렇게 수필도 한 작품 남기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