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바쁜 길이어도
빨간 신호등이 앞에 켜졌으면
멈춰야 한다.
이것은 수많은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질서를 위한
약속이다.
그러나 타인과,
세상과 그 어느 하나 연관성 없는
내 화단 앞에서
마치 신호등에 걸린 것처럼
나는 멈추고 말았다.
이제는 양귀비도 수레국화도
모두 다 사라진 그곳.
다알리아는
혼자 자줏빛 등 하나를 들고 섰으니,
꽃 하나 피었다고
그게 멈출 일이냐 하겠지만
꽃은 비밀스런 우주의 문을
열고 나온 길이다.
말라 비틀어지고 썩어버린 구근에서
유일하게 하나 솟은 다알리아를
나는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이렇게 마주한 것도
너와 나의 인연이려니..
약속된 바 없어 의무도 아닌
이 반가운 멈춤을
나는 기꺼이 즐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