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의 뜨개질
강 정
지하철 플랫폼 의자에 앉아
산발한 머리칼로 뜨개질하는 여인을 본 적 있는가
다들 보이는데 본체만체 지나간다
입은 조물조물 움직이되 소리가 없고
손길은 날렵하되 매듭지어진 형체가 없으니
한 올 한 올 풀리는 머리칼이 가히 공기의 혈관 같아 보였다
무슨 수(數)를 되뇌는가
어떤 보이지 않는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입힐 시간을 꿰매는가
한참 바라보자니
누가 그 앞에 우뚝 선다
몸매는 훤칠하되 발목 아래가 없고
인물은 단아하나 동공과 콧구멍이 허옇게 꿰매져 있는 그를
오직 나만 본 걸 수도 있다
지하철이 빠르게 들어온다
손끝이 따끔하고 눈이 침침하다
잔뜩 길어진 머리칼을 등짐인 양 짊어지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
모든 숨구멍 틀어막고 헌 옷을 벗어 던진 시체가 드러누워 있다
창밖은 어둠뿐이나
여인이 여직 밝게 유리에 붙어 다 꿰맨 옷을 흔들어 보인다
짊어진 머리칼을 풀어 창가에 걸었다
양쪽 견갑골 부위 솔기가 아직 덜 여며져 있었다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이 땅 밑에 갇혀 다시 바다가 된다는 걸 새삼 알았기 때문이다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 2022년 5월호
—월간 《현대시》 2022년 9월호(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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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 1971년 부산 출생. 1992년 《현대시세계》로 등단.
시집 『처형극장』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 『키스』 『활』 『귀신』 『백치의 산수』, 산문집 『루트와 코드』 『나쁜 취향』 『콤마, 씨』 『파충류 심장』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