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도 퇴근한다
강서일
동물원의 맹수들도 퇴근을 한다 구경꾼들이 떠나자 그들도 하나 둘 철문으로 사라진다
그곳은 나무들의 뿌리가 하늘로 솟구친 초원이다 먹다 남은 붉은 고기도 걸려 있는 태초의 땅이다
해 뜨면 우리로 출근하고 해 지면 철문 달린 시멘트 집으로 돌아간다 그곳에 밀림의 노을이 진다 자신의 상처를 핥아주던 어미의 부드러운 혀도 있다
문 열리기를 기다리는 저 뒷모습, 생각은 살아 있고 감정은 죽어 있는 너희를 보는 우리들,
어느 동굴에서 달려오는 막차를 기다리며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돌아서는 어둑한 시간, 날벌레가 달라붙는 밤이다
침묵의 뾰족한 조각들이 두 다리를 웅크리게 하는 밤, 피곤한 초침들이 모래밭으로 발을 옮기는 순간이다.
시집『고양이 액체설』(문학아카데미, 2020)
강서일 시인
1991년 《자유문학》 시, 《문학과 의식》 평론 등단
한올문학상, 자유문학상 수상
시집 『쓸쓸한 칼국수』『사막을 추억함』『카뮈의 헌사』『고양이 액체설』
시선집『일주일의 연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