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좋은 날, 굴포천 100리 하천길을 달린다. 아라뱃길 방면 오른쪽으로 가는 사람들은 거의 부천사람들이고 왼쪽은 인천사람들이다. 부천 길은 풀을 다 베어서 길이 넓은데 서울 소속에 들어서면 길가에 잡초가 우거져 길이 너무 좁다. 오는 차선과 교차 할 때면 부딪칠까 봐 조심스럽다. 초등학생 1, 2학년쯤 되는 뚱뚱한 아이가 비틀비틀 자전거를 몰고 그 앞에는 젊은 남자, 아들의 속도에 맞추고 있다. 아이가 “아버지 이제 되돌아가면 안 될까요?, ”너, 1kg 뺀다고 했지? 그렇게 해서 1kg 빠지겠어, 얼른 와“ 아이는 다시 힘을 내 힘껏 페달을 밟는다. 이마엔 땀이 흐르고 아이는 지쳐간다. 그 사이 사람들 수도 없이 추월해서 가고 있다. 우리 부부보다 더 못가는 사람은 없다.
노란 달맞이꽃이 입을 오므리고 나도 쉬고 싶다며 졸고 있다. 밤새 달님과 노느라 잠을 못 잔 모양이다. 작은 쉼터에 색소폰 소리 요란하다. 곁에서 지켜보던 나팔꽃 무리, 벌렁 까진 보랏빛 입술로 쿵 자자 작작 장단을 맞춘다. 다자녀를 둔 강아지풀 일가들이 일제히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쪽빛 달개비꽃도 콩알 같은 얼굴로 분위기를 보탠다. 나직한 하천물도 살랑살랑 분위기를 탄다. 산적 같은 돼지감자, 멀대 같은 키로 관심도 없는 듯 잎을 뒤집고 부스럭대며 어깃장을 놓는다. 씀바귀 캐는 아저씨, 자전거는 누워서 쉬고 있다.
길가에 고추가 빨갛게 익었다. 옆구리 훌렁 걷어붙인 비닐하우스가 열무 가꾸느라 구슬땀을 흘린다. 은희네 농원이라 써진 철조망 안에 큰 개가 컹컹 짖고 옆에 달린 고만고만한 사과들이 깜짝 놀라 떨다가 이내 안정을 찾는다. 옥수수 할아버지 며칠 전보다 많이 늙으셨다. 무화과가 입이 벌어져 빨간 속살이 설핏 보인다. 고구마가 온 밭을 뒤덮어 땅이 보이지 않는다. 천사의 나팔이란 꽃이 고개를 숙이고 웃고 있다.
여월천 물이 들어오는 다리 위에 덜커덩덜커덩 소리가 자주 들린다. 뒤에 자전거가 오고 있음이다. 반대 차선 젊은이 고기 노는 모습을 보느라 차선을 바꾸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미안하다며 웃는다. 로터리에 무지갯빛 파라솔을 펼치고 방울토마토 호박 호박잎을 팔고 있는 아줌마 얼굴이 빨갛게 익어간다. 벌써 갔다 오는 사람들 호박잎 한 무더기 산다. 자전거가 부딪쳤나 보다. 119구급차가 두 대 오고 있다. 굴포천 지나 경인 자전거길로 접어든다. 되돌아가자던 아들은 아버지와 유턴해서 되돌아온다. 하천물도 천천히 따라가고 있다. 땟물 벗은 서울 물이 굴다리를 빠져나와 부천 때 묻은 시골 물과 섞인다. 그래도 이내 어울린다. 다리 난간에 낚시꾼, 어항에 붕어 한 마리가 외롭다.
서울 방면에서 합류한 젊은 아가씨 노란 웨이브 머리에 잘록한 허리, 방방한 엉덩이, 짝 붙은 바지, 대각선으로 맨 작은 가방, 물방울 셔츠를 입고 바람같이 추월한다. 이어 젊은 남자들 검게 탄 종아리가 용이 승천을 하고 주먹 같은 알통이 튀어나온 사람들, 팔뚝에는 해바라기가 피었다. 바람이 술술 들어가는 그물형 안전모, 등에 붙은 주머니 속 핸드폰이 카톡, 카톡, 소식을 알린다. 왼쪽으로 휘어진 길을 경주하듯 바큇살에 감아 줄지어 달린다.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 눈이 시리게 바라본다. 젊음의 노트가 사시사철 메워지는 곳, 무엇하다 늙었을까? 무심히 흘러온 세월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큰 키로 벌렁 누운 경인아라뱃길 자전거길, 언제부터인가 그 길에 매력을 느꼈다. 신호등도 없고 건널목도 없어 무한정 달릴 수 있으니 말이다. 젊은이들 보기엔 웬 노인네가 삐거덕삐거덕 뭐하러 가고 있을까? 집에서 선풍기 바람이나 쬐고 있지, 싶을 거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월아 네월아 내 실력대로 남편과 두 늙은이가 땡볕을 싣고 하염없이 간다. 테라스가 깔린 쉼터에 도착하니 총알같이 달리던 사람들 모두 거기에 몰려 있다. 어르신들 벌써 오셨어요? 잘 타시네요“ 하늘에라도 올라갈 줄 알았는데 결국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하듯 별거 아닌 것이 되고 말았다.
돌나물이 기다랗게 자라 길가를 뒤덮었다. 경인아라뱃길, 한때는 유람선도 떠다니는 호화로운 관광지로 발돋움했으나 여러 가지 악재로 폐지 된 지 오래다. 가마우지 동무들이 물을 민망할 정도로 들여다본다. 간혹 백로 친구들도 긴 다리 성큼성큼 물 위를 걸으며 물고기 사냥하는 풍경에 시선을 뺏길 때도있다. 다리 아래는 바람이 시원하고 호떡 장수, 아이스크림 장수들 눈요기가 입맛을 당긴다. 자전거를 세우고 호떡 한 개씩 사 먹고 엘리베이터 타고 건너갔다.
거기에도 다리 아래가 운동기구도 있고 평상이 있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쉬어가기 안성맞춤이다. 몸도 풀 겸 운동기구에 몸을 맡기고 리듬을 탄다. 쉬었으니 또 달린다. 우뚝 솟은 조형물이 장엄해 보인다. 길가에 물이 쏟아지는 폭포에 왔다. 물안개가 자욱한 길을 냅다 달린다. 잠깐인데 몸이 축축하다. 엉덩이가 아프고 힘이 든다. 남편은 암 진단을 받은 후로 내가 타던 전동 자전거를 남편이 타고 나는 생활 자전거로 천천히 간다. 남편이 내 속도에 맞춘다.
쉬엄쉬엄 정서진까지 왔다. 종점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부산까지 600km가 넘는 길이 이어져 있는 자전거 길, 길 하나만 보아도 정말 우리나라 대단하다. 행정자치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어갔다고 한다. 어디에도 비교할 바 없는 대한의 발전상은 역사이고 자랑이다. 바로 앞에 펼쳐진 모내기 전 무논 같은 바다 낙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길을 몇 번이나 갈까? 말을 버리고 풍경을 싣는다.
첫댓글 어쩜...
누위서. 자전거 타고
달리는 기분은 다 느끼고도
여행은 계속 되는 거 아시죠?
ㅎ
이 길가엔 참 많은 이야기가 사네요
허리 잘록한 아가씨가 그려지고
ㅎㅎ
한참 부러운 마음으로 멈춤요
그 길 앞으로도. 오래 오래
여러번 다니시길 바랍니다
건강하게 즐겁게 아시죠?
자전거 타는 모습이 참 여유로운풍경으로
그려집니다
잼나고 자연스런 흐름의 글 속에서
놀다가 자려고요
그 길을 달릴 때면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앞으로 가는 것만 생각할 뿐입니다
@예인안옥희 저도 가보고 싶습니다
ㅎ
정말 노익장을 자랑하는 멋진 울 얘인님 늘 건강하소서
누구나 가면 다 갈 수 있습니다. 안 가니까 못 가는 거지요
우와~~^^
그저 감탄이 절로절로
대단하십니다. 선생님! 부럼부럼...
건강하심에 박수 보내드립니다. 짝짝짝..
건강 하지도 않아요, 깡으로 버티는 거지요
저는 자전거를 탈 줄 몰라서
더 대단하게 보입니다.
풍경을 놓치지 않고 눈과
마음에 담아 글로 풀어 놓으
시는 여유에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짝짝짝~
감사합니다 모꼬지 날 봅시다
@예인안옥희
이번 모꼬지 때 작가님 얼굴
뵙고 싶었는데 사정이 생겨
못가게 되었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노익장이 대단하십니다. 안선생님.
저는 몸이 고장 나 자전거타기를 포기한지 한 5년은 됐나 봅니다. 부럽습니다.
수변길 풍경이 참 다양하네요. 그래서 더 아름다운지도 모르죠.
거기에 안선생님의 서정적 터치가 한껏 풍광을 고즈넉하게 하지만,
자전거를 씩씩하게 타고, 오만 사람들이 달리고 걷는 풍경이 참 건강하고 멋집니다. 그리고 풍요롭고요.
그나저나 아라뱃길은 활용할 방법이 전혀 없을까요?
윤대통령이 맘 먹으면 못할 일이 없을텐데, 참 아까운 SOC투자인것 같습니다.
저도 라이딩 잘 했습니다.
수작이십니다.
쉬엄쉬엄 하시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정신없이 읽다가
말을 버리고 풍경을 싣는다, 란 글 한 줄에
아름다운 매듭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열정적인 예인님의 삶에 박수를 보냅니다. ^^
댓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건강 하세요
아라뱃길이 없어졌군요
정서진 일몰이 무지 아름다운데...
어쩌면 하루 산책길이 이리 오밀조밀
사람살아가는 소리가 재밌고 맛깔난지
선생님 수필은 늘 생동감있게 살아
움직이는 듯 하여 용기와 에너지
자신감까지 받게 됩니다.
늘 이렇게 건강한 날들 안에서
더 행복하세요.....감사합니다^^
별리님의 댓글은 늘 용기와 칭찬으로 도배네요
그져 감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