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화 문학지(수필 1편) 김미정

[등대지기]

[수필 : 인연의 끈]
                                       김 미 정

“여보, 거 있잖아. 긴히 물어볼 말이 있어.”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긴 전화통화를 끝낸 남편이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만 어렵게 입은 열었다.
“아니, 평소 당신답지 않게 머뭇거리시기는......?”
남편의 머뭇거림이 조금은 낯설다고 생각되어 정색을 하고서 핀잔조로 내가 되받았다.
“친구들이 찾아오겠다는데 당신의 생각이 어떤지 한번 물어 보려고.....”
마치 어려운 상급자를 대하는 말단 직원처럼 남편의 말투와 억양에 조심스러움이 묻어있다.
“친구들이라고요. 어디 사는 누군데요?”
평소답지 않은 남편의 태도에 내가 더 궁금증이 발동했고 조급함마저 보태졌다.

그리하여 남편이 들려준 이야기인즉슨 이러했다.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남편은 당시 대구시내 변두리에 위치한 보육원으로 곧잘 봉사활동을 다녔단다. 그 때 보육원에서 만난 여자 원생들이 40여 년 만에 남편의 연락처를 알아내고서 방금 통화를 했는데 조만간 한번 찾아봬도 되겠느냐며 묻더란다. 그래서 바로 확답을 못하고 시간적 말미를 주라며 일단 전화를 끊었단다. 아내인 나의 의향을 듣기 위한 배려였던 것이다.
다소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진실성이 가미된 남편의 설명 앞에 굳이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한 나는 낯선 이들의 방문이 다소 번거롭다고 생각되었지만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당신의 신체적 장애를 이유로 일반적인 사교 모임이나 대인관계에 있어서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남편이기에 사람 사이의 교제를 중요시 여기는 나로서는 오히려 권장하고 있는 터였다. 나의 긍정적인 반응에 금세 환한 표정으로 바뀐 남편은 친구와의 전화통화로 약속시간을 정하고 있는 듯 했다.

그 날은 11월의 늦은 오후였다. 친구들이 대구에서 출발하여 목포 땅에 방금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서 약속장소인 목포시외버스터미널로 나갔더니 두 명의 중년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장 40여 년 만에 상봉한 남편과 여인들은 서로 마주보면서 마치 어린 아이들처럼 깔깔대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목포의 먹을거리를 제대로 맛보여야 한다는 남편은 여인들을 북항의 횟집으로 안내했다. 잠시 후 상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다양하게 차려진 해산물을 접하면서 여인들은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탄성을 지르며 인증 샷을 남긴답시고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연신 눌러댔다. 남편과 여인들은 참으로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채 산해진미로 차려진 음식들 앞에서 추억속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대학시절 남편의 장애상태는 현재보다도 훨씬 더 경미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봉사활동도 많이 다녔었다. 그런데 남편의 봉사활동 취향은 내가 보기에는 매우 편향적이었다. 주로 특수학교를 찾아가서 장애학생들을 만났고 또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변두리 쪽의 보육원을 순회하며 그곳에서 거주하는 원생들과 어울렸다. 당신도 신체적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곧잘 찾아와서 자신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남편에게 원생들은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그렇게 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는데 원생들이 성인이 되자 각자 제 갈 길을 찾아 사회로 진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간의 연락이 끊어지고 소식마저 두절되어 빛바랜 추억속의 인연으로 굳어졌다. 대구에서 학업을 마친 남편은 당신의 가치관에 따라 복지적 인프라가 가장 열악하고 낙후된 곳에서 사회복지에 투신하겠다는 소신을 가지고 사회복지전담공무원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무엇보다도 영·호남이라는 지역적 앙금이 상존하는 경상도를 떠나 사고무친한 전라도 끄트머리의 섬마을로 혈혈단신 입성을 했던 것이다.
당신의 장애로 인하여 신체적 활동이 상당히 제약을 받는 핸디캡 속에서도 사회복지사라는 명찰을 달고서 외딴 섬마을들을 전전하며 구릿빛 얼굴의 섬 주민들 속에서 동고동락하며 부대끼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기실 복지업무라는 것이 소외된 요보호 대상자들에게 정부나 관계기관에 연결하여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지원해 주는 조력자일진대 도서벽지라는 지리적 특수성을 지닌 복지현장에서도 남편의 시선은 주로 특정 부류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독거노인들과 장애인, 그리고 소년소녀가장이나 다문화가정 등 도움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대상자들이라면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고 또 이들의 친구와 대변자를 자처하며 인연의 끈을 소중하게 이어나갔다. 행여 정기 인사이동에 따라 남편이 전보 발령을 받아 다른 근무지로 이동을 하더라도 이전 근무지에서 인연을 맺었던 주민들로부터 연락이 오고 상담을 신청하면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기꺼이 응대하는 남편이었다.

한번은 남편이 한때 근무했던 섬의 주민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연로한 독거노인이었다. 남편이 그곳에서 근무할 당시 남달리 살가운 정을 주고받았던 분이셨는데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그 섬의 갯마을 어르신들 중에 몇몇 분이 연로하고 또 거동이 불편하여 더 이상 그곳에서 살지 못하고 노인복지적 혜택이 다양한 목포시내로 집단적으로 이사를 했는데 어떻게 남편의 연락처를 알았든지 이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약속이 이루어졌고 며칠 뒤 나는 남편을 부축하며 약속장소로 나갔더니만 당시 그곳 갯마을의 어르신들이 한자리에 기다리고 계시다가 남편을 보자마자 억세게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남편과 어르신들은 경어도 생략한 채 마치 소꿉친구처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당시의 비릿한 이야기들로 주고받으며 우정(?)을 돈독히 다지는 것이었다. 갯마을 초입에 자리한 오두막집 진성 댁은 세상을 등졌고 철부지 손자는 성장하여 염전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당시 남편을 짝사랑했던 수줍음이 많던 방파제 집의 처녀는 육지로 시집가서 예쁜 딸을 낳았다는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와 같은 남편의 살가운 인연은 또 다른 근무지에서도 계속되었다. 꽃다운 열아홉 나이에 동남아에서 갓 시집온 결혼이주여성은 이질적인 한국 문화와 낯선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매우 힘들어 했다. 시댁의 가족이라고는 할아버지와 철부지 남편뿐이었는데 남편은 지적장애인이었다. 평생을 농사짓는 일로 잔뼈가 굵은 할아버지는 아직 한국생활에 채 적응도 되지 않은 새댁을 수시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들판으로 내몰았다. 그러다보니 할아버지와 새댁은 사사건건 갈등을 일으켰고 지적 장애를 가진 철부지 남편은 중간에서 중재자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못되었다. 할아버지와 새댁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사회복지사인 남편을 찾아와서 중재를 의뢰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서로가 한발씩만 양보하라고 설득한 후 다독거려서 돌려보냈다. 그런데 얼마 후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오로지 농사 일 밖에 모르는 할아버지의 옹고집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새댁이 육지로 무단가출을 해 버린 것이다. 하루아침에 손자며느리를 잃은 할아버지는 너무나도 허탈했다. 당신이 눈을 감기 전에 사리분별력이 부족한 손자에게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에서 거금을 투자하여 외국에서 손자의 색시 감을 간신히 데려왔는데 날마다 가정 분란만 일으키다가 결국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손자며느리의 사려 없는 행태가 얄밉고 못 마땅하여 더 이상 찾는 일도 포기한 채 예전처럼 손자랑 둘이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손자며느리가 가출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아버지가 마을 앞 도로에서 경운기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 가정의 특수한 가족관계로 가까운 핏줄 하나 없이 지적장애인 손자만 달랑 남게 되었다. 그 때 마침 육지로 가출하고서 한동안 소식이 두절되었던 새댁이 중재자인 남편에게로 느닷없이 연락을 하여 시댁으로 되돌아가서 지적장애인 남편(손자)이랑 다시 살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친 것이다. 주위 분들의 적극 만류에도 불구하고 제 발로 뛰쳐나갔기에 스스로 돌아오기가 서먹했던 새댁은 남편에게 구원투수 역할을 요청한 것이다. 가출한 새댁이 할아버지의 사망 사실을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던 남편은 이제 달랑 혼자만 남게 될 지적장애인 손자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중재에 나서기로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대면한 손자의 먼 친척들에게 새댁의 의사를 전달했더니만 친척들은 당사자인 손자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은 채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에는 제 마음대로 가출했다가 돌아가시자마자 곧바로 되돌아오겠다는 기회주의자적인 태도가 이해 할 수 없고 도무지 용납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수속 절차를 밟는 대로 새댁을 자기네 나라로 되돌려 보내고 손자는 보호시설에 맡긴다고 큰소리쳤다. 친척들의 강력한 주장에 지적장애인 손자는 본인의 의견은 단 한 마디도 표출 못하고 그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사실이 공교롭게도 목포지역 다문화센터와 연결이 되어 그 다문화센터의 도움으로 상황은 급반전되었고 새댁은 할아버지가 없는 섬마을에서 손자(남편)와 함께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 이후로 사회복지담당자인 남편은 자연스럽게 이 가정의 후견인이 되었다. 그런데 색안경을 낀 일부 마을 사람들은 새댁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멀지 않아서 자신의 남편을 배신하고 크게 한몫 챙겨서 자기네 나라로 야반도주 할 것이라며 남편에게 추측성 귀띔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남편은 편향된 시선이 오히려 잘못된 행동을 부추긴다고 설명하면서 새롭게 삶을 꾸려나가려는 이 부부를 다독여주고 응원해 주면서 좀 더 지켜보자고 설득했다. 그래서 남편과 이웃들의 살가운 보살핌 속에 새댁은 지적 장애인 남편을 보필하며 10년 가까이 살아가고 있다. 지금 이 부부는 그곳 섬마을을 떠나 광주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런 저런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남편에게 연락을 취해서 도움을 요청하곤 한다.

기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출생지만 임자도일 뿐 거의 서울토박이다시피한 내가 노총각이고 말단 섬마을 공무원이었던 남편과 부부의 연으로 맺어진 것을 비롯하여 40여년 만에 잊지 않고 남편을 찾아온 대구의 중년여인들도 그렇고 눈을 감기 전에 꼭 한 번 더 만나보고 싶다던 갯마을 어르신들도 마찬가지이고 주위 분들의 우려 속에서 10년 째 잘 살고 있는 다문화가정의 젊은 부부도 모두 소중한 인연의 끈으로 엮어진 결과물이 아니겠는가!

0 신안군 임자도 출생
0 2014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동시부문 최우수상
0 2016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0 2016년 장애인인식개선콘테스트 산문부문 금상

[윤인자]

미정아 잘 지내지?
현실감이 느껴지는 수필 이야기 하듯 재밋게 감상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