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따고, 예초기 짊어지고 풀베고, 친정과 시댁어른들 생신과 제사 등
칠월말과 팔월에 몰려 있는 집안 행사 다섯개 치르니 여름방학이 휘리릭.
무더운 여름 노동만 한 옆지기 개학을 앞두고 1박2일 가족 여행을 갔다.
8월19일 아침 8시, 집을 나와 남해고속도로를 달려간다.
일상 탈출의 설렘에 비 오락가락하는 날씨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산청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하고 다시 차에 올라 갈곳만 치면 지구 끝까지 친절히 안내하는
똑똑한 네비가 이끄는 곳은 전주 한옥마을이다.
군산, 익산, 전주...
이름만 알고 있던 이정표가 실시간 눈앞으로 다가오는 느낌을 좋아한다.
앗, 저게 바로 사진으로만 본 마이산!
고등학교 때 전교생 중 몸 아픈 한 아이와 나만 안간 수학여행코스에 있던 그 산...
담임이 설득하고 친한 동무들이 애 타서 졸라도 무리지어 가는 수학여행이 한사코 싫던
그때 얘길 하니 뒷자리 딸들이 "와, 전교 왕따!"하고 웃는다. 덩달아 좋아라 웃었다.
백제대로... 전주에 닿으니 거리 이름에서 아득한 시공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백제의 옛 땅 완산주다.
덕진지에 둑을 쌓아 전주땅의 덕과 기가 빠져 나가는 것을 막았다는 덕진공원.
정문은 있으나 둘러쳐진 담 없이 사방 확 트인 것이 마음을 끌었다.
시민 모두가 누리고 사랑하는 공원이 틀림없겠다.
덕진 공원의 8할은 연꽃. 꽃은 졌으나 푸른 잎사귀가 가는 비에 은구슬을 만들고 있었다.
구름다리가 가른 한쪽은 오리배를 탈 수 있는 유원지인데 덕진공원에 접해 있는 전북대생들
데이트 장소로 적격이겠다. 그러나 몰라, 자본과 물신에 세뇌당한 청년들이 오리배 타고
사랑놀음 할지...... 제발 사랑에 빠져 오리배 타러 가고 밤도 좀 새고 들어왔으면 좋으련만
우리집 딸들도 오리처럼 쪼롬히 부모 따라붙어 헤헤거리니......
빗속의 연꽃/최해(고려시대)
후추를 팔백 가마나 쌓아두다니
천녀 두고 그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어찌하여 푸른 옥으로 됫박을 만들어
하루 종일 맑은 구슬을 담고 또 담는가
전주에 왔으니 전주비빔밥을 먹어야지.
덕진공원을 나와 찾아간 고풍스러운 비빔밥집 앞에는 채송화꽃이 알록달록 했다.
동요 부르는 김현수씨가 채송화꽃씨 어디 가면 있냐고 묻던데 여기있더라고 말해야겠다.
갖은 나물에다 대추, 은행, 다시마 조각 등으로 장식한 비빔밥을 썩썩 비볐다.
모두 맛있네, 하면서 먹었는데 식당을 나와서야 우리집 비빔밥에 비하면 별로였다는 식후방담.
맛있는 건 맛있다 하고, 맛 없는 건 말없이 먹는 게 우리집 식탁훈의 하나인데
특히 겨울초 새싹비빔밥 먹어보면 다 쓰러질걸 하면서 공공연히 전주비빔밥을 깔아뭉갠다.
하긴 늦은 점심시간임에도 내 입과 뇌의 반응도 과묵하긴 하더라만 세계관광객의 입맛에
맞추려니 두루뭉실한 맛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비빔밥은 한끼식사로 완벽한 메뉴다.
예전에 마이클 잭슨도 한국의 비빔밥 맛에 반했다고 했다지.
점심을 먹고는 예약해둔 남천교 근처 한옥촌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갔다.
사진에 본것처럼 출입구는 물론이고 안마당이 온통 꽃으로 장식된 집이었다.
사근사근한 젊은 남자가 안내하는 별채마당도 배롱나무와 여러가지 꽃이 어우러져 있었다.
통유리창 앞에 배롱나무가 서 있는 방은 욕실 깨끗하고 복층구조여서 딸애들은 윗층에 짐을 풀었다.
부인이 그림을 그린다더니 군데군데 소품 그림이 걸려있었다.
차를 마시거나 간단한 요기를 하라는 부엌과 응접실도 예쁘게 꾸며놓았다.
이 게스트하우스 상호를 알리고픈 마음은 없는데,
장사 잘 되는 집 임을 알아봤고,나는 뭐든 혼자 독식하는 걸 염려하는 윤리소비자.^^
연세 든 전주 토박이가 아날로그로 운영하는 숙박업소에 비하면 어쩌면 외지인일지도 모르는
젊은 업자들은 마케팅 전략 뛰어나 내가 힘이 돼 줄 필요는 없을 것도 같았다.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전주향교쪽으로 길을 잡아 슬렁슬렁 걸어갔다.
넓은 향교 마당의 동글동글한 열매 매단 수백년 된 은행나무 인물이 좋았다.
완판본은 전라감영이 있던 전주(완산)에서 발간한 옛책과 판본을 말한다.
조선시대 목판 인쇄는 서울의 경판, 전주의 완판본, 대구 달성판, 경기도 안성판이 있었는데
종류나 규모에서 완판본이 최고였다는 것.
완판본 문화관은 전주의 왕성했던 출판문화를 중심으로 기록문화의 땅 전주의 문화를 재조명하려
설립됐는데, 문화관 안에는 출간된 완판본을 직접 만날 수 있으며 목판 인쇄체험도 할 수 있다.
한옥 마을을 벗어나 큰 길 건너 산자락에 기대인 이 벽화마을은 부산의 감천문화마을 같은 곳.
문화마을보다는 마을 규모도 적고 덜 가파르고 덜 옹색해보였다.
한때 아이디로 쓰기도 했던 내가 좋아하는 토토로 캐릭터가 있는 찻집.
벽화마을에서 내려와 접어든 길은 조선시대 여러 왕들의 초상화가 있는 경기전으로 가는 길.
길따라 수많은 가게가 들어서 있고 차고 넘치는 인파는 거의 젊은이들이다.
간간히 비가 뿌렸고 평일인데도 관광객이 어찌나 많은지...
미동도 않고 서 있는 경기전 문앞 두 문지기 모습이 시선 끌었는데, 장난기 발동한 옆지기가 앞에 가서
웃겨보려 해서 말렸다.경기전 안에서 조선시대 왕들의 인물사진 보는 즐거움이 컸다.
경기전 넓은 뜰의 벤취에 앉으니 오래된 건물과 수목, 가리는 것 없이 통째로 누리는 하늘이 좋았다
그런데 옆에 있는 이 솔송나무 안내판은 마음에 안들었다.
쉬운 말 두고 어렵게 설명한 글 보면 성이 나려고 한다.
다 자라면 키가 30미터정도 된다고 하면 될 것을 쯧쯧쯧...
작가가 다시 살러 온 집 최명희 문학관.
녹록치 않았던 작가의 삶과 그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오래된 내 다이어리 10월31일짜에 쓰여진 메모를 기억한다.
'10월31일 전주 최명희문학관 혼불 문학제'
혼불문학제에 맞춰 전주 여행 할 생각을 했더라는 것.
작가의 혼이 담긴 친필 원고와 여러 작품에서 추려낸 글이 새겨진 각종 패널과
지인들께 보낸 친필 편지와 엽서, 생전 인터뷰와 문학강연모습 등을 봤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그린다.'
아름다운 모국어로 한민족의 전통문화와 민속생활의 속성들을 치밀하고 폭 넓게 복원해
한국인의 역사와 정신을 생생하게 표현했다는 '혼불'은 200자원고지 12000장 분량.
문학관에 전시된 이 원고는 12000장 중 1/3분량.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때때로 나는 엎드려 울었다.
그리고 갚을 길도 없는 큰 빚을 지고 도망다니는 사람처럼 항상 불안하고 외로웠다.'
작가의 이 독백은 쓰는 이의 천형이 감지돼 늘 시리게 다가온다.
여고시절 홀로 경기전 앞을 많이 걸었다는 최명희작가는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간다'는
유언을 남기고1998년 영면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종일 흘렸던 땀을 씻고 저녁산책을 나갔다.
남부시장 2층엔 끼 있는 청년들이 운영하는 청년몰이 있다.
과연 가게 이름과 슬로건부터 참신하고 발랄했다.
한옆의 길고양이 급식소에서 저녁밥 먹던 녀석이 돌아본다.
우호의 표시로 눈을 깜빡여 주었다.
이끄는대로 간 곳은 남부시장 안 유명한 순대국밥집.
타인의 욕망을 소비하는 성향의 현대인들이 이름 듣고 찾아와 식당안은 와글와글.
이름 으시시한 피순대는 시골에서 자란 내겐 처음보는 메뉴도 아니었다.
명절이나 잔치 앞두고 동네 돼지 잡는 날 아버지가 썰어주시는 뜨근뜨근한 순대를
소금에 찍어먹은 그 순대였다.
순대국 한 뚝배기와 피순대 한접시 막걸리 곁들여 넷이 나눠 먹으니 배 불러 더 먹을 염도 없고
나오면서 본 같은 메뉴 파는 한산한 앞집이 마음에 걸렸다.
한옥마을에 있는 전동성당
한옥마을 관광객의 8할은 젊은이들이었는데 그들의 여행패턴은 거의 두 가지로 읽혀졌다.
젊은이 취향의 유명 음식점앞에 줄 서 있고, 매 순간 사진 찍기.
슬쩍슬쩍 곁눈질한 사진 찍는 모습은 보는 내 마음도 즐거웠는데 그 포즈의 발랄함이라니!
두 팔을 하늘로 뻗는다든가, 팔짝 뛴다든가, 한 사람도 그냥 서서 찍지는 않더라는 것.
카메라 앞에서 취하는 포즈가 나이를 재는 잣대가 된다는 것.
창턱에 놓인 한옥마을과 남부시장 어슬렁거리며 산 기념품.
남부시장에서 10000원 주고 산 짚공예 항아리와 한 알에 천원인 천으로 만든 살구가 맘에 든다.
살구를 핸드백에 넣어다니며 어디서나 놀 생각이다.
유명하다는 꽈배기와 땅콩전병도 샀는데 땅콩 갈아넣은 전병이 맛있었다.
집에서든 밖에서든 먼저 차려 입고 나가서 아내나 아이들 단장하고 나올동안 소일하며 있는건
남자, 혹은 나이든 사람이 지녀야 할 센스다.
다음 날 아침, 옆지기와 먼저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딸애들 나올동안 남천교 위 누각에 올라갔다.
영조때도 있었던 유서깊은 건물인데 지금의 것은 현대에 지은 것.
도로의 2/3를 차지한 큰 정자를 지어 시민들이 전주천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풍류를 즐기게 한 남천교가 있어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총연장, 교목, 설계하중, 공사기간, 발주자, 설계자, 시공자는 물론이고
전기 김대중, 토목 박창진,건축 이창현 등 새겨놓은 이름에 눈길이 간다.
한옥마을 캣맘의 족적에 빙긋
전주시를 빠져나오니 산이라곤 없는 드넓은 들이 과연 곡창지대다.
일제 시대 이 곡창지대의 쌀을 수탈해 일본으로 나가는 교두보였던 군산으로 가고 있다.
군산으로 출발하기전 옆지기 가라사대, 네비에 채만식문학관이 안 나오더란다.
그럴리가 하는데 딸애가 묻는다."혹시 최만식이라고 친거 아니에요?"
"최만식 아냐?"
모두 하하하 웃었다. "학생들 중에 그렇게 알고 있는 녀석들이 있거든요."
채만식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탁류'다. 그외 교과서에 나온 '태평천하' '치숙' '레디메이드인생'과
동화 '왕거미와 산누에'가 내가 아는 정도다.
외곽도로에 인접한 문학관엔 우리 뿐 한적했고, 개관한지 좀 된 듯 건물의 연륜이 느껴졌다.
1층은 전시실과 자료보관실이고 이층은 영상 세미나실로 돼 있었다.
신사모자 쓰고 이를 드러낸 채만식 선생의 젊은 사진이 인상적이엇다.
장, 단편 소설 200여편에 동화나 수필 등 다양한 장르까지 생전 1천여편이 넘는 작품을 남긴 다작가.
탁류는 오페라로도 제작됐는데 군산을 배경으로 1930년대 조선의 사회상과 생활상을 잘 묘사했고
주인공 초봉의 가련한 현실이 관람객들의 심금을 울려 성황리에 공연됐다고 한다.
입구에 걸린 작가의 생애에 대해 적어 놓은 이 글이 재미있었다.
'어머니는 샘 많고 손재주 있고, 채만식은 내성적이고 외곬이며 한 번 잘못 본 사람은 끝까지 미워했다는'
는 등 어찌나 소상하고 적나라하게 밝혀놓았는지.
군산에 있는 동국사는 우리나라 유일의 일본식 건물 사찰이다.
절 앞 담장 벽에는 군산 출신 시인 고은의 작품들이 걸려있고 절마당에는 세월호 유족들을 생각하는
수많은 노란리본이 펄럭이고 있었다.
동국사 지척에는 식민지시대 일본인들 밀집지였던 곳으로 군산 근대 역사체험의 거리.
일본식 목조건물이 즐비한 거리 저 끝에 바다가 보였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초원사진관도 이 거리에 있었다.
주차단속원 심은하와 시한부 삶을 사는 변두리 사진관 사진사 한석규가 나오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아련한 몇 장면이 떠올랐다.
죽기 전 아버지에게 비디오 작동요령 가르치는데 잘 못 알아들어 역정내는 장면과
특별한 감정 싹튼 심은하가 한석규가 이미 죽은 줄도 모르고 날마다 문잠긴 사진관 기웃거리다가
울면서 유리창에 돌 던지던 장면......
딸애들은 군산을 먹여살린다는 45년된 빵집에 빵 사러가고 우리는 빙과 물고 골목을 휘저휘적 걸었다.
길게 늘어선 줄이 건물을 꺾어서도 이어져 있던 빵집에서 산 빵은 익산 미륵사지에 가서 먹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는 순간 압도당한 미륵사 절터.
미륵사탑은 휘장 둘러쳐진 채 복원공사 중이고, 당간지주 뒤로 보이는 건 모형.
주춧돌에 어린 어마어마한 시간성과 광활한 공간 등......
정말이지 다른 풍경, 다른 시간, 다른 사유가 작동하는 곳이었다.
식구들이 나만 남겨두고 가버려도 좋을 것 같았다.
첫댓글 가족들과 아름다운 남도여행기 살포시 엿봅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더위에 고생 많이 하셨는데 잘 하셨어요.
유서깊은 전동성당과 전주의 먹거리들...
한 번 가보고 싶었으나 아직 못갔네요. 큰아이가 해인,미소에게 사다준 묵주가
저기 저 전동성당에서 샀다나요. 빵도 사다줘서 먹어봤는데 맛있던데요.
2014년 혼불 문학상에 같이 대학에서 공부했던 박혜영 친구의 "열려라 연못"이 당선됐어요.
상금이 무려 5천만원. 상금뿐 아니라 가문의 영광이라 감탄했어요.
최만식 하하 웃고 갑니다.
뚜루루 훑어보는 주마간산이라 여행이라 이름 붙이기도 그렇죠 뭐.^^
아이들 초등학교때 유서깊은 곳으로 많이 다닌 편인데 어째서인지 그쪽은 남겨두었더라는......
전주 한옥마을은 특이한 소비구역이 됐던데, 하늘을 조각낸 폭력적 건물들이 없는 마을 풍경만으로도
좋았습니다. 넓고 높은 하늘을 맘껏 누릴 권한을 헌법으로 보호받자고 강력히 외칩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