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시간이 흘렀다.
사범대학에 들어가고... 교사가 되고...
아내와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 데리고 저녁 외식을 했다.
갈비살이 지글지글 익어가는 것을 보며, 화랑 한 병을 혼자서 비우며 참 많은 얘기를 아내와 나누고, 많은 생각을 했다.
교직에 들어선 14년.
무엇을 바라 나는 교사가 되었고, 무엇을 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계성고등학교에 들어온 지 10년. 그 동안 나는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던가?
계성고등학교 입사 9년째에 고 3 담임을 맡았고 10년째엔 소위 특설반 3학년을 담임하고 있다.
경상북도 영양군 수비면 하늘 아래 첫동네 수비고등학교에서 선생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꿈을 꾸고 얼마나 많은 다짐을 했었던가?
아이들을 사랑하고 올곧은 삶을 위해 최소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다짐들....
도종환의 '담쟁이'를 가르치며 눈물이 쏟아져나올 뻔 했다.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 우리가 느낄 때
그 때 / 담쟁이는 말없이 / 그 벽을 오른다
물한 방울 없고 / 씨앗 한 톨 살아 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서 손을 잡고 나간다
푸르게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자유를 향한 노력과 불의에 대한 저항. 올곧은 삶을 향한 노력...
하루 하루가 부끄럽다.
이성부의 "벼"를,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어찌 시를 안다는 우리가 가르칠 수 있으랴?
이 굴종의 땅에서...
아이들이 보고 싶다. 졸업한 아이들... 명희, 상미, 후록이, 호원이, 진호, 영미, 혜정이, 철민......
철민이의 편지를 받았다. 철민이는 지난 날의 내 모습에 감사함을 느낀다고 했다. 삶의 힘을 받는다고 했다.
나는 돌아보면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운 기억이 더 많은데...
올 한 해 나는 또 얼마나 부끄러워야 하는가?
아이들 앞에 당당하게 서서,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보여 주고 싶지만 나는 가늘고 질기게 "살아남기" 위하여 불의를 보고도 꾹 참고 만다.
나 때문에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들어가서 졸업하고 이제 고3담임 3년차인 호원아!
너는 선생으로서의 삶을 어찌 꾸려가느냐?
첫댓글부끄럽습니다..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을 산 지가 꽤 됐는데 시집을 살 때 마음과 달리, 아직 첫 장도 제대로 읽지 않고 그냥 책상 위에 내버려 둔 일이 부끄럽습니다.. 교직에 첫 발을 내딛을 때, 과연 제대로 다짐을 했었던가 부끄럽습니다.. 임용 공부할 때의 간절했던 마음을 쉽게 잊는 일이 부끄럽습니다..
당당하기를, 부끄럽지 않기를 속으로 속으로 되내이는 마음마저 잃어 버릴까봐 남몰래 흘린 눈물들마저 말라 버리면 어찌할까요. 그 일을 어찌할까요. 자꾸만 되뇌이며, 매년 지나 닳고 닳은 교사가 되어도 자꾸만 되뇌이며, 속으로 되뇌이며 살고 싶습니다. 당당하기를 제발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를. 간절히..
첫댓글 부끄럽습니다..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을 산 지가 꽤 됐는데 시집을 살 때 마음과 달리, 아직 첫 장도 제대로 읽지 않고 그냥 책상 위에 내버려 둔 일이 부끄럽습니다.. 교직에 첫 발을 내딛을 때, 과연 제대로 다짐을 했었던가 부끄럽습니다.. 임용 공부할 때의 간절했던 마음을 쉽게 잊는 일이 부끄럽습니다..
교직 몇 년차..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야 자유로울 수 있겠죠. 늘 새롭게. 늘 당당하게.. 언제나 처음같은 마음을 다짐하며 힘차게 살아보자구요. 선배님 화이팅!!
음...저도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 똑같이 느끼겠죠...^^::
당당하기를, 부끄럽지 않기를 속으로 속으로 되내이는 마음마저 잃어 버릴까봐 남몰래 흘린 눈물들마저 말라 버리면 어찌할까요. 그 일을 어찌할까요. 자꾸만 되뇌이며, 매년 지나 닳고 닳은 교사가 되어도 자꾸만 되뇌이며, 속으로 되뇌이며 살고 싶습니다. 당당하기를 제발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를. 간절히..
언제나 처음 같은 수야 있나요~ 문득문득 뼈저리게 느끼는 통찰이야말로 더욱 새롭고 처음처럼 살 수 있게 하는 것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