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호수
- 진은영
죽은 식물과 동물의 냄새가
내 얼굴에 배어 있다
조금만 햇빛을 쬐어도
슬픔이 녹색 플랑크톤처럼
나를 덮는다
- <시인세계> 2004년 봄호 /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문학과지성사, 2008)
* 진은영 :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철학박사. 200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외에,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향하여』(공저) 등이 있다. 2016년 현재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상담 교수로 재직 중.
일우일아(一雨一芽), 한 비에 한 싹이 열리는 사월이다. 햇빛들 한량처럼 화사해 볕바라기에 좋은 날들이다. 물속 녹색 플랑크톤도 녹색 광합성에 바쁘겠다. 녹색 플랑크톤이 햇빛을 좋아하는 건 당연지사. 그리고 또 하나, 죽은 것들이 내뿜는 인(燐)을 먹고 산다. 햇빛과 인과 플랑크톤, 녹조 현상의 세 요소다. 물길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차단한 인공호수나 인공보에 봄이 되면 녹조라떼가 발생하는 이유다.
생명과 멀리 있거나 인공적인 것들은 봄에 상하기 쉽다. 봄에 문상 가야 할 일이 더 많고, 봄에 자살자가 더 많고, 봄에 우울하고 슬픈 사람이 더 많은 까닭이다. 죽은 식물과 동물의 냄새가 밴 얼굴에 '조금만 햇빛을 쬐어도' 금세 슬픔이 번식하는 까닭이다. 슬픔과 죽음을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 햇빛은 독이 된다. '조금만 햇빛을 쬐어도' 녹색 플랑크톤처럼 얼굴을 덮어버리는 시간의 주름들, 사월이 잔인한 까닭이다. '내 얼굴은 인공호수'라는 새로운 비유가 탄생했다.
정끝별 시인・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