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여행 마지막 날 오후로 들어서니 간간이 비가 날린다.
우에노 국립근대미술관 앞 공원에 자리한 로뎅의 조각들과의 눈맞춤으로 도쿄여행의 마지막을 정리한다.
소슬하게 내리는 어쩌면 겨울비, 어쩌면 봄비에 젖은
조각들은 깊이감으로 나를 이끌고 간다.
'지옥의 문' 에 비가 내리니 슬픔이 축축하게 묻어나보였다.
드러난 현실이 슬픈지옥 같아 보이는 것처럼 센치해진다.
단테의 신곡에서 빌려왔다는 지옥의 문,
신곡을 읽지는 않았지만 조각을 앞에 두고 살아온 이력으로 읽어간다.
생각하는 사람의 자리로 마음을 옮겨
아비규환과 같은 지옥의 모습을 보며 지금 이땅을 사는 모습은 아닌가
잠시 생각을 해본다.
욕망과 욕망으로 이어지는 욕망의 덩어리로
일상이 클리프행어처럼 매달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그 나마 여기는 다행이다.
아래로 시선이 내러가니 아비규환 그 자체다.
굶주림에 자식을 먹고 있는 사람의 모습도 보이는 듯.
차마 눈이 머물다 가질 못하겠다.
우리네 삶도 눈이 머물지 못한 것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가난, 기아, 전쟁 ...
로뎅의 지옥의 문 양 옆으로 아담과 이브를 자리잡고 있다.
로뎅의 지옥의 문과 한 세트일까 ?
아니면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측의 의도일까?
육체의 욕망을
드러낸 이브는 슬픔을 안고 에덴을 떠난다.
에덴을 떠날 때
밀려왔던 부끄러움과 슬픔에 욕망을 감췄지만 차마 다가리지 못한다.
이브가 품어 안은 욕망의 시작으로 잉태가 되고 인류가 이어오고 있다.
욕망하지 않는 자 잉태도 없다.
아담은 에덴의 편안함을 떠나는 슬픔 속에서도 땅을 딛는 고통과 힘든 역정을 안고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낸다.
그의 표정은 슬프지만 모든 근육들에서는 새로운 땅을 향한 굳건한 의지가 피어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힘을 모아 움켜진 발가락을 봐라.
그런데
우리의 아담과 이브 사이에 지옥의 문이 놓여 있다.
둘이 크로스합체하여 지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해석해본다.
세상이 그러하듯 ...
칼레의 시민은
무거움과 슬픔, 낙담, 인간의 실존적인 모든 것이 다 들어앉아 있다.
시민을 대표해서 희생양으로 나선 칼레의 시민 대표들.
의연한 죽음을 향해 나섰지만
각자들 고통과 무거움,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을 안고 가고 있고
로뎅은 인간적 표정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그러기에 더욱 슬프고 무겁다.
그래도 희망의 활시위를 당겨야 한다.
빈 허공일지라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빈허공에 활쏘기.
神들은 모를꺼야~
비에 젖은 이브의 등이 슬프면서도 예뻐보였다.
도쿄여행의 마지막 장면으로
이브의 등을 시선의 저쪽에 세겨두려 한다.
이브가 버리지 못했던, 지키려했던 욕망이
세상을 잉태했다.
내세계를 잉태시켜나갈 것들이
흔적처럼 남아 있더라도
먼지처럼 구석진 곳에 있더라도
움켜쥐고 가자고 나에게 말하려 한다.
2024년 3월5일 도쿄를 떠나는 날 간간이 비가 내렸다.
2024 도쿄여행기 끝.
첫댓글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는 말이 맞군요. 여지없이 비온뒤 봄이 오고야 마는구만요. 날씨가 좋아지니 구경도 해 봄직하죠.
봄 바람이 불면 ~ 일렁이는 가슴 안고 ~
나서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