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의 신
ㅡ i에게
박참새
그날이 내 기일인 것을 너 알고 있었을까. 나는 죽어 있다가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과장이 아니라 요즘의 나는 죽다가 살아나기를 반복이다. 반복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소멸이니 나는 언제나 활자 속으로 침몰하고 있었지. 말을 긁어내며 살아야 하는 삶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싫었다. 내가 하는 일이 싫었단다. 무슨 의미가 있겠니. 읽지 않고 버려지는 글을 위해 나는 나를 버렸다. 돈을 준대도 싫었다. 억만금이면 했을 테지만 세상 누구도 글에 억과 금을 쓰지는 않을 테니 돈을 준대도 싫었다. 왜 써야 하는데. 왜 읽어야 하는데. 뭐가 좋아서 좋다고 하는 건데. 전염처럼 옮은 난독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조차 없었고. 그래서 싸우지 않기로 했단다. 나는 포기했어. 포기할 것이야.
내가, 국어가 얼마나 모자라냐면은, 네가 부족해서 수치스럽다 말한 너의 그 문장 이상으로 나의 현상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역겨운 의무감에 토하는 문장보다도 훨씬 나았다는 말이다.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두려움을 찍어 눌러 버린 어떤 결심. 그 결심을 표현하는 단어들. 그 단어들의 중복. 중복의 리듬감.
답가로 불러 줄 노래가 없어 내 건조함으로 대신한다. 아직도 흥얼거리는 일과 상을 보내니. 그만한 다행에는 또 무어가 있을까. 나는 이제야 좀 흥얼거릴 줄 알게 되었단다. 아이처럼.
시집 『정신머리』 (민음사, 2023)
박참새 시인
1995년 부산출생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제42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시집 『정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