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사람들 / 정양
겨울 아침 해장국밥집에
말없는 사람들 서넛이
해장국밥을 기다린다
그들이 누구인지 왜들 말이 없는지
해장국밥 말고 무얼 또 기다리는지
몽땅 털린 노름꾼인가 해고된 노동잔가
도둑놈인가 정치꾼인가 수배자들인가
말없는 것이 맘에 걸린다
누구인지 몰라서 맘에 걸린다
나를 쳐다보지 않는 것이 맘에 걸린다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맘에 든다
누구인지 몰라서 맘에 든다
말없는 것이 맘에 든다
노름꾼처럼 노동자처럼 수배자처럼
나도 담배를 물고 해장국밥을 기다린다
그들과 나는 일행인가 해장국밥이 함께 나오고
해장국밥이 뜨거워서 접시에 덜어 먹는다
그들도 해장국밥을 덜어 먹는다
덜어 먹고 덜어 먹어서 해장국밥이 바닥나도록
아직도 말들이 없다
우리가 말없이 기다리는 것은
덜어 먹고 덜어 먹어도
끝끝내 식지 않는 것인가
우리가 말없이 기다리는 것은
해장국밥보다 더 뜨거운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보다 죽음보다 혁명보다 더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말없이 기다리는 것은
해장국밥처럼 그렇게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 정양 시집 <살아 있는 것들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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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는 사람들/정양
폴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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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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