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잔치국수다. 남편이 즐겨 찾는 메뉴다.
멸치, 양파, 다시마를 넣어 국물을 우려 놓고, 자르르 윤이 나는 애호박을 채쳐서 파랗게 볶고, 소고기를 다지고, 표고와 지단으로 색색 고명을 준비한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데도 남편은 변할 줄 모르고 오늘도 “간단히 국수나 먹읍시다.” 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간단히’ 라는 말이 세월을 삽시간에 거슬러 오십여 년 전 국수공장 앞에 서게 한다.
큰 길 쪽으로는 ‘신흥상회’라는 간판이 걸린 가게가 있고, 안쪽으로는 공장과 살림집이, 공장 계단으로 올라가면 건조장이 있고, 살림집 마루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우리의 신혼 보금자리다. 이층 건조장과 우리 방은 벽을 사이에 두고 각각 출입계단이 다르다. 온종일 돌아가는 공장기계소리에 귀가 먹먹해진다.
날씨가 좋은 날은 안마당과 바깥마당에 건조대를 세운다. 빨랫줄에 널어놓은 광목처럼, 새하얀 국수가닥들이 바람에 너울거린다. 나는 가끔 발처럼 드리운 국수발 사이에 앉아 틈새시간을 즐긴다.
나는 국수집 둘째 며느리다. 갓 시집와 대가족 서열의 맨 끝자리다. 새색시랍시고 차려입은 한복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 밟혀 치맛주름이 후드득 터지기가 일쑤다. 손에는 물이 마를 새가 없다. 점심상을 치우자마자 공장 식구들 새참 준비를 한다. 큰 가마솥에 포대를 기울여 멸치를 주르륵 쏟아붓고 국물을 만든다. 금방 기계에서 뽑아낸 국수를 삶고 넓은 접시에 수북하게 김치를 담는다. 매일 먹는 새참이건만 그들은 물리지도 않는지 그릇 비우는 속도가 빠르다. 그러면 나는 덩달아 신이 나서 뜨거운 국수를 퍼 나르며 꾸미를 얹듯 그들에게 희망을 얹어준다.
장을 보는 일은 아버님 몫이다. 아버님은 참외나 수박을 지게 채로 흥정해 오신다. 생선 짝이며 굴 바구니를 이고 온 아낙들도 줄줄이 대문으로 들어온다. 먹을거리는 늘 풍성할 것 같지만 없어지는 것도 눈 깜박할 사이다. 친정에서는 시장 보는 것은 어머니 몫이고, 시장바구니로 사 나르는 것만 보던 나에게는 낯설기만 한 장면이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어른들은 모두 가게로 나간다. 국수와 밀가루가 도매로 달구지나 자전거에 실려서 팔려 나가고 소매는 식구들이 맡는다. 새색시인 나는 부엌에 있다. 시골에서 장 보러 나오는 친척들의 점심상을 몇 차례씩 차려 내야한다.
장날 신흥상회의 클라이맥스는 저녁이다. 안방을 정갈하게 걸레로 훔친 후에 아버님은 무거운 돈궤를 들어 방바닥에 쏟는다. 그러면 식구들은 빙 둘러 앉아 돈을 추린다. 큰돈, 작은 돈, 찢어진 돈들이 많다. 아마도 화폐를 만드는 재질의 문제였던 것 같다. 아버님은 돈을 늘 정중히 다루신다. 돈 묶는 띠에다 풀칠을 해서 돈을 손질하고, 일일이 인두로 판판하게 다림질까지 하게 했다.
얼뜬 이 새색시는 그 돈이 그날 벌어들인 수입인 줄 알고 눈이 동그래진다. 아버지 월급으로만 생활하던 친정에서는 꿈에서도 볼 수 없는 부의 더미였다. 밀가루 화차가 도착하는 날이면 지불해야 할 돈이란 것도 차츰 알게 됐다.
나는 그 시절을 고된 시집살이라고 말한다. 시댁식구들은 어른부터 이이들까지 초저녁잠을 잔다. 심지어 형님은 밥상머리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졸기 시작한다. 자연스레 나머지 일은 내 몫이 된다. 저녁 설거지와 다음날 아침 준비를 해놓고, 온 식구가 벗어 놓은 양말들을 빨아 널고 나서 겨우 우리의 둥지로 올라간다. 고단해서 잠이 잘 옴직도 하건만, 몸은 피곤한데 눈은 더 초롱초롱하다. 뒤척이며 부스럭대다가 자정을 넘긴다.
너무 늦었다싶어 소스라쳐 깨어보면 아래층에서는 벌써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아버님은 늦잠 자는 것을 제일 싫어하신다.
“늦잠 자는 거지는 밥도 못 빌어먹는 겨.”
아버님의 말이 생각나서 도저히 내려갈 수 없다. ‘늦게까지 뒷설거지는 누가 했는디유.’ 속으로 억울하다. 그러나 어쩌랴, 아파서 못 일어나는 것으로 남편과 꾀를 낸다. 그런 날이면 한나절은 편히 쉴 수는 있지만 두 끼를 굶어야 하는 고통이 뒤 따른다. 지금서 고백하건대 두세 번쯤 써 먹은 방법이다.
설상가상으로 입덧까지 괴롭힌다. 눈앞에 널려있는 먹을 것에는 눈이 가지 않고, 엉뚱한 것만 생각나는 것이 야속하다. 퇴근해서 돌아오는 남편의 주머니 속에는 귤이랑 초콜릿이 들어있다.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남편의 주머니는 나갈 때도 불룩하다.
일 년 남짓 한 시집살이, 초저녁잠과 아침잠의 시차를 겨우 극복할 무렵에 우리는 딴 살림을 났다. 살림을 배우라고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한 분도 딸려주셨다. 아버님은 기별도 없이 불쑥 오시곤 했다. 그리고 차 한 잔 마시고 금세 가셨다. 고기를 사 오실 때도 있고, 가신 뒤에 책상 위에나 방바닥에서 봉투를 발견할 때도 있다. 아버님은 늘 그런 방식으로 며느리에게 사랑을 주셨다.
북적거리던 식구들과 두 개의 두레 반을 펴고도 좁혀 앉아야 했던 밥상, 모두 지나고 보니 추억이 돼버렸다.
지금 우리 집도 명절과 제사 때는 형제들과 애들이 모여 든다. 제사 때는 늦더라도 음복 후에 각자 집으로 간다. 설과 추석에는 두 아들네가 미리 와서 하룻밤을 잔다. 방 하나씩 차지하고, 손자들은 텔레비전 때문에 거실에 자리를 잡는다. 침구가 쏟아져 나온다. 일 년에 두 번 바깥 구경하는 이부자리들이다. 하룻밤 재워 보내는 것도 때로는 번거롭고 정신이 없다. 애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면 다시 붙박이장 속으로 들어가는 이불들, 나처럼 다음 명절을 기다릴 것이다.
국숫집 며느리도 이젠 늙었다. 아버님의 쩌렁쩌렁 하던 목소리, 너덜너덜한 헌 돈을 말짱하게 손질하던 아버님의 돈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대가족 위에 우뚝하게 서 있던 아버님의 권위가 그립다. 적응 못해서 쩔쩔매며 하루도 마음을 놓지 못했던 새색시는 지금 그 옛날을 그리워한다.
물이 끓는다. 손이 바쁘다. 재빨리 국수를 넣으며 생각한다. 남편은 그 때가 생각날 때면 국수를 찾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나는 오늘도 남편의‘간단히’에 맞춰 잔치 국수를 말고 있다.
첫댓글 잘 올리셨는데 제목과 본문이 한데 있어 제가 할 수 없이 고쳐서 올렸습니다.
그 '간단한' 잔치국수 맛보고 싶네요.
고생하신 것 같아도 새콤달콤한 애띤 새각시의 땀방울이 어쩐지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글입니다.
'국수가 먹고싶다'
시인의 시가 떠오르는 군요.
한 사리 더 얹어주면 그렇게 고마웠던
옛날 시골 오일장 장터 모퉁이에서 먹던.
국수집 며느리는 얼마나 이뿔꼬. 홍샘의 새댁시절이 국수가락을 타고 넘나드네예. 충청도의 잔치국수와 경상도의 잔치국수는 좀 다릅니더. 그카고 보이꺼네 이 아침부터 고명 얹은 국수가 먹고 싶어라~아.
"간단히", 남정네들은 어느집이나 다 마찬가지네요^^
국숫집 둘 째며느리의 어설픈 새댁살림이 눈에 선~합니다. 빨랫줄에 걸린 국수가락 사이로 장날을 내다보는 삶이 끈끈했겠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을 읽으니 마음이 훈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