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10 주일예배설교
말씀: 마태복음 13장 49-52절
주제: 하나님 나라의 복음. 8
제목: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하늘품초대교회 주일예배에 함께하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 아버지의 평화와 사랑이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좌우 앞뒤 바라보시며 축복의 인사를 나누길 원합니다.
“우리가 소망입니다.” 자기 자신을 축복합니다. “주님! 오늘도 저로 인하여 행복하소서”
지난 시간에 이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는 주제로, 그 여덟 번째 시간으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증언하겠습니다.
◩ 예화) 거위들의 교회
쇠렌 키에르케고르(덴마크의 철학자, 종교사상가)는 교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우화를 이야기 합니다.
집거위들로 구성된 교회가 있었습니다. 거위들은 매주 뒤뚱거리며 걸어 들어와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들었습니다. 설교자는 ‘하늘을 나는 것’의 대한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습니다.
“우리는 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날 수 있는 날개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날개짓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 장소에만 머무르지 않고 비상하여 더 멋진 곳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에 거위 신도들은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하지만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그들은 언제나처럼 뒤뚱거리면서 걸어서 갔습니다. 그들은 날개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익숙한 것이 좋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장하는 신자와 교회는 듣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꿈과 비전을 나누는 것만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열정적인 ‘아멘’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날개를 움직일 때만 가능합니다.
이 키에르케고르의 “거위들의 교회”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교회 전체의 모습이지 않나, 그리고 지금 우리의 모습이지 않나...
교회에서 목회자는 매주 설교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주 설교를 듣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선포된 설교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들으면서 아멘 했던 설교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유가 무엇일까요? 방금 이야기 한 것처럼 익숙한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익숙한 것처럼 우리에게 편하고 쉽게 다가오는 것이 없기 때문에 변할 수 없습니다.
예) 청파감리교회의 김기석목사님의 이야기 - 설교를 해도 변하지 않는 성도들, 그때 선임장로가 실천에 옮기면서 이루어짐.
비단 기독교인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세상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바라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정부와 관련 단체의 관리감독의 소홀 그리고 기업의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한다면 모두 다 정직하지 못한 것과 비양심적인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끔찍한 참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하니 지금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쩌면 누굴 책임지게 해야 하는 지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 말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 하늘품초대교회를 바라봅니다. 하늘품초대교회가 이곳에 세워지게 된 이유를 생각해봅니다. 이 곳에 세워지게 된 이유는 바른 복음을 듣고 전하고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바른 복음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우리 먼저 기쁨으로 받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다니는 것이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지금 이곳에 모인 이유이며 예배 드리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전에 익숙한 것들을 그리워한다면 하늘품초대교회에 모인 이유가 사라질 것입니다. 과거에 예배드린 장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 여러 가지 편의 시설, 예배자보다는 관망자여도 별 탈 없던 그런 것들...
익숙함을 내려놓기 위해 우리는 이곳 하늘품초대교호에 모인줄 믿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 안으로 익숙해지길 또한 소망합니다.
◧ 지난 시간까지 우리는 마태복음 13장 천국의 비유 즉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살펴봤습니다. 총 8개의 비유가 나오는데 그중에 7개의 비유를 살펴봤습니다. 반복되지만 7개의 비유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가장 먼저 살펴봤던 비유는 무엇이었습니까?
1. 첫 번째로 겨자씨의 비유였습니다.
2. 두 번째, 누룩의 비유였습니다.
◨ 결국 이 두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실은 겨자씨와 누룩이 바로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권력과 힘과 돈의 위력이 넘쳐나는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 저 시골 마을에서 겨자씨와도 같은 누룩과도 같은 아주 보잘 것도 없고 연약하게 생긴 한 젊은 청년의 이야기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같은 기독교인도 그러한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가길 원하는 것이 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세상 권력과 돈과는 별 상관없는 우리와 같이 평범한 자들이 또한 가난하고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연약한 자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겨자씨와 그리고 누룩과도 같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3. 세 번째로, 감추인 보화와 진주 비유였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4-46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감추어진 하나님 나라! 그러나 완전히 감추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사람에게는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중요한 것은 발견한 다음이 문제입니다. 머뭇 머뭇 거리면 놓쳐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발견하기도 어렵지만 발견했으면 그 다음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바로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좋은 보화와 진주를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의 소유를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자기의 재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발견해서 그 안에서 살고자 한다면 지금 자기의 재물 모두를 아낌없이 내 놓아야 합니다. 어려울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나라를 발견해도 발견하지 못한 것보다 못할지도 모릅니다.
예) 현재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회 그리고 그대로 살아내고 있는 교회
또 한 가지는 자기의 소유가 지금껏 세뇌 당했던 세상질서와 식입니다. 그 세상질서와 식을 온전히 내놓을 때에만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 식에 머물러 있으면 절대로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갈 수 없습니다.
4. 네 번째로, 밀과 가라지 비유였습니다. 마태복음 13장 24-30절
“밀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지만 현재 가라지를 제거하지 않고 추수하는 그날까지 그대로 놔둡니다. 그리고 추수하는 날 곧 세상 끝날에 가라지는 거두어 풀무불에 던져버립니다. ”
이전에 살펴본 하나님 나라 비유의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 중에서 특별히 종말의 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 그 나라는 분명히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비유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톰 라이트 목사님께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다림은 누구에게나 힘듭니다. 농부는 추수 때를 기다리면서 잡초와 곡식이 나란히 자라는 것을 그저 지켜봅니다. 농부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새들도 작은 겨자씨가 커다란 풀로 자라기를 기다립니다. 빵 굽는 여자는 누룩이 반죽 속에 스며들어 전체가 신비롭게 부풀어 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바로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가 정말로 임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나라가 단번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자라는 것처럼 혹은 빵이 부푸는 것처럼 느리고 꾸준히 임할 것이라는, 이러한 사실 사이의 긴장 가운데서 살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5. 다섯 번째로, 씨뿌리는 비유였습니다. 마태복음 13장 1-9절, 18-23절
지난 시간에도 말씀 드렸지만, 가장 먼저해야할 비유를 가장 늦게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13장에 나오는 비유중 가장 난해한 비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대부분의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선포되어지는 설교와는 다릅니다. 먼저 보편적인 설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곤 합니다.
여러분 씨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마음밭을 잘 가꾸어야만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밭이 길가처럼, 돌짝밭처럼, 단단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마음밭에 가시덤불이 무성합니까? 그렇다면 회개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마음밭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밭으로 잘 만들고 가꾸기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30배 60배 100배의 복을 차고 넘치게 부어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설교의 결론이 대부분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설교의 결론의 중심은 씨뿌리는 자가 아니라 땅이라는 사실입니다. 씨가 떨어진 땅이 주인공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설교가 완전히 틀리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렇게만 선포되어진다면 예수님이 선포하신 천국 비밀의 실체를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땅에 중심을 두고 땅에 집착하는 느낌을 받는 것인가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은 지도로 살펴보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한 중앙에 위치합니다. 그래서 맨슨이라는 학자는 이스라엘을 중간의 땅(The land between)이라고 불렀습니다. 지정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에 바로 이스라엘이 있는 것입니다.
마치 대한민국이라는 땅이 가지고 있는 위치와 흡사합니다.
대륙으로 나가고자 꿈틀거리는 일본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은 정말 좋은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전쟁을 통해서라도 이 땅을 빼앗으려 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비유의 초점은 땅이 아니라 씨뿌리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 씨입니다. 씨뿌리는 자는 예수님으로서 모든 땅에 골고루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는 씨를 뿌렸습니다.
길가와 돌작 밭과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가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옥토밭에 떨어진 씨가 나머지 세 곳에 떨어져, 열매 맺지 못한 것을 보상합니다. 몇배로? 그렇습니다. 100배 60배 30배 이상으로 보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유효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해봅니다.
씨 뿌리는 자나 뿌려진 씨에 대한 관심은 제쳐두고, 오로지 씨에 대한 토양의 반응, 다시 말해서 인간의 반응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서 나타내시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전할 수 없습니다.
◧ 3절을 보면 이 비유의 시작은 씨 뿌리는 자와 그가 뿌린 씨에 초점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씨 뿌리는 자가 나가서 씨를 뿌리지 않았다면 씨에 대한 반응도 생각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씨에 대한 토양의 반응은,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린 후 뒤따라 나오는 이차적인 것으로 보아야만 합니다.
본문에서 씨 뿌리는 자는 예수님이시며, 뿌린 씨는 예수님이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의 말씀입니다. 그러하기에 이 비유를 예수님의 전사역의 중심 주제인,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시켜야만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이 비유를 하나님 나라와 관련시켜 볼 때 씨 뿌리는 자가 나가서 이미 씨를 뿌렸다는 것, 그리고 그가 뿌린 씨가 여러 종류의 토양에 이미 떨어졌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역이 이미 시작됐으며, 그의 인격과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왔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즉 주후 1세기에 예수님의 사역, 그의 가르치심, 그의 병고치는 사역, 그의 귀신을 쫓아내신 사역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현세계에 임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임함이 그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을 포함하여, 유대인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현세상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오는 세상에 실현되어지는 미래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 더욱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고, 이방의 세력들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었으며, 이스라엘 민족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로부터 여전히 고통을 당하고 있었기에, 도저히 하나님나라가 현재 임하였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씨 뿌리는 자의 행동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가 뿌린 씨가 이미 땅에 떨어졌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앞으로 이루어질 미래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현재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현세계가 아닌 오는 세계에, 현재의 세계가 아닌 미래 세계에 올 것으로 기대하는 그 하나님 나라가 이미 현세계 안에 이미 침투하였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예수님은 씨뿌리는 자로서의, 예수 바로 그가 약속된 메시아로서 그의 사역이 바로 하나님 나라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 로마제국을 격파시키고 이스라엘을 정치적, 군사적으로 해방시켜 세계의 강대국으로 만드는 혁명투사나 절대군주의 모습과, 이방 세력을 격파시키고, 현세계의 모든 구조와 질서를 뒤바꾸는 혁명이 아니라,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라고 선언하며, 스스로 가난한 자들과 소외받는 자들과 죄인들의 친구가 되시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선포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며 죄 용서를 선언하는 그의 사역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나라 비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만 합니다. 씨 뿌리는 자는 실패자가 아니라 성공자라는 사실 말입니다. 옥토의 수확이 있기 때문에 씨 뿌리는 자는 비록 자기가 뿌린 씨들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할지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옥토의 수확이 엄청나기에, 모든 손실을 보상해 주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예수님을 통해 일어났지만, 예수님의 사역이 현세상에서 영향을 받는다 할지라도, 장차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에 의해 마치 옥토의 수확처럼 엄청난 결실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바로 예수님은 그 자신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이루어질 교회의 시대를 내다 보시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 오늘 본문의 말씀의 비유 안으로 들어가보면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본문은 “깨달았느냐?” 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깨달았느냐?
지금까지 13장을 통해 보여준 7개의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깨달았느냐 하고 예수님께서 물으신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자신있게 ‘예’하고 대답한 것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제자들은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성격과 특징이 어떠한지를 분명하게 이해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주님의 제자들은 13절에 나오는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여 깨닫지 못하는 하나님 나라의 외부에 있는 자들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은 얼마가지 못하여 또 다른 비유를 듣고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을 보여주고 맙니다.(15장 16절)
예수님은 깨달았다고 자신있게 대답한 제자들에게 마지막 비유의 말씀을 전합니다. 바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은’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표준 새번역 성경으로는 하늘 나라를 위하여 훈련을 받은 율법학자(대부분의 바리새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비유로 보여집니다. 톰 라이트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새’ 것이란, “하나님 나라가 제시하는 놀랍고도 새로운 비전입니다.” ‘옛’ 것은 과거의 지혜,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아주 오래된 이야기와 희망입니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 그리고 마태가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복음은, 이 둘을 하나로 모아서 새 것을 옛 것에 깊이 뿌리 박게 하고, 옛 것이 새것을 통해 신선하고 활기차게 표현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새 것과 옛 것을 알고 있는 사람. 그렇습니다. 서기관 즉 율법학자가 필요하겠죠. 이 서기관은 율법과 경전에 대한 해석과 교육 그리고 하늘나라에 대한 교훈을 깨닫고 그것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한 가지 더 붙는 새로운 의미에서의 서기관을 말합니다.
(즉 서기관은 질적으로 다른 천국의 비밀을 깨닫고, 깨달은 대로 생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가리킵니다. 실로 그들은 예수의 발 아래서 겸손히 배우고 소박한 마음으로 그 진리를 수용한 자들임에 분명합니다. 그래야만 본문의 비유에서처럼, 예수로 인해 시작된 새 것과 전해오던 옛 것을 동시에 취합(聚合),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본문의 곳간은 진리가 전수되고, 보관되어 오는 곳입니다. 구약과 신약을 모두 포함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사건의 역사가 쌓인 마음의 창고입니다.)
▶ 비유의 의미를 정리해보자면,
13장을 통해서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 하나님 나라 비유를 모두 깨달았다 한다면, 너희들은 가만히 있지 말고, 집주인이 자기 곳간에서 새 것과 옛 것을 내어오는 것처럼, 너희들 심령 깊숙이 간직되어 있는 옛 진리와 새 진리를 꺼내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13장에 나오는 비유들은 이해와 행동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우리를 도전하게 합니다. 행동 없는 이해는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이해 없는 행동은 지치게 하고 무익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이야기와 그것이 당시에 가졌던 의미와 지금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할 때, 우리는 항상 이 질문을 스스로 물어야 합니uk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훈련된 서기관이 된다는 것이 오늘날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신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죽어서 가는 그 천국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한다면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보다 정확하게 알려 줘야 할 의무가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보여 졌고 이루어졌습니다. 그 보여진 하나님 나라를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서 실현해 가야 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삶에 터전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와 정의와 희생과 용서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직 하나님 나라는 온전히 완성되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실 그 때에 비로소 온전히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좁은 문 좁은 길 걸으며 함께 하나님 나라를 조금씩 이루어 나아가야 합니다.
14.8.10 주일예배설교 하나님나라의 복음.8 마태복음 13장 51-58절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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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늘품초대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유성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