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세계화 추진 방안
시조시인 손증호
바야흐로 육체(HW)의 시대는 가고 영혼(SW)의 시대로 접어든 21세기, 지구상에는 한류의 열풍으로 뜨겁습니다. 이 한류 열풍의 뿌리엔 우리 전통문화의 원형 DNA가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문학이고 문학 중에도 가장 한국적 장르인 시조라고 생각합니다. 700년 이상 이 땅에서 우리의 삶과 정서를 담아온 시조는 한류의 가장 튼실한 뿌리 중의 하나가 분명합니다.
지금 한류가 일회성으로 끝나느냐 아니면 오랫동안 지속되느냐 하는 것은 결국 이 전통문화의 원형 DNA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700년 이상 이 땅에서 우리의 삶과 정서를 담아온 시조는 바로 우리 전통문화의 뿌리면서 앞으로 한류를 이끌어가야 할 아름다운 우리의 미래이기에 시조의 세계화는 우리의 당면과제임이 분명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그 방안을 단계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그 첫 단계로 고시조와 차별화되는 현대시조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네 가지입니다.
그 하나가 ‘시조의 날’을 꼭 챙기고 기억해야 합니다. 시조시단에선 1906년 7월 21일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혈죽가」를 최초의 현대시조로 판단합니다. 그 근거는 시가(詩歌), 곧 노래가 아니라 문학으로서의 첫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즉, 이전까지의 시조는 가락을 붙여 부르는 게 목적이었지만 「혈죽가」는 처음부터 활자로 발표됐고 읽히는 게 목적이었다는 것이죠. 이후의 시조는 모두, 노래가 아니라 문학으로서의 시조였습니다.
「혈죽가」는 일제에 항거하여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1861-1905)의 충정을 그린 것으로 지은이는 '대구여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민충정공이 자결한 방에서 피 묻은 대나무가 솟아나 뭇 사람의 귀감이 되었으며 충정공의 절개는 정몽주보다 높았다는 게 「혈죽가」의 내용입니다.
협실에 솟은 대는 충정공 혈적이라
우로를 불식하고 방 중에 푸른 뜻은
지금의 위국충심을 진각셰계 하고자
충정의 굳은 절개 피를 맺어 대가 되어
누상의 홀로 솟아 만민을 경동키는
인생의 비여 잡쵸키로 독야청청 하리라
충정공 곧은 절개 포은 선생 우희로다
석교에 솟은 대도 선죽이라 유전커든
하물며 방 중에 난 대야 일러 무삼 하리오
-「혈죽가」대구여사, 대한매일신보 제276호 1906.7.21
최초의 현대시조인「혈죽가」가 발표된 지 100주년을 맞은 2006년 7월 21일, 시조시단은 ‘시조의 날’ 선포식을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서 12시에 거행하고 이날을 시조의 날로 제정하였습니다.
둘째가 시조가 시에서 독립된 날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2021년 국회 문화체육위원회 도종환 의원이 수정 발의한 문학진흥법 일부 개정안 제2조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2021. 5. 18)하여, 이제 시조도 문학의 독립 장르가 되었습니다(시행일 2021. 11. 19). 곧 시조가 시의 일부가 아니라 어엿한 문학의 한 장르가 된 겁니다. 따라서 시의 예속물일 때의 사고방식을 일신하고 시조의 미래를 위해 독립 장르로서의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하겠습니다. 오류에 묶인 불합리한 장르 규정으로 50년을 시의 장르에서 더부살이해온 시조는 우리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 하나는 시조가 바로 우리 전통문화의 뿌리면서 앞으로 한류를 이끌어가야 할 아름다운 우리의 미래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시조의 가치를 높여주는 국가무형문화재 등록과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구심력 역할을 하는 시조의 형식을 통일하고 시조와 관련된 용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조가 형식을 갖춘 정형시인데도 불구하고 요즘 발표되는 시조를 보면 형식에서 지나치게 벗어나려는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시조를 쓰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인 시조 형식을 지켜서 시조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시조의 대중화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먼저 시조를 자연스레 접하고 익힐 수 있는 문화풍토를 조성하고 시조의 매력에 빠져야 다른 나라 사람들도 시조에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시조의 대중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이 초중등 국어 교과서에 시조를 많이 실어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시조를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현재 초중등 국어 교과서의 시조 수록 비중을 보면 정말 우리나라의 국어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학년별로 불과 1~2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나마 시조의 형식을 알게 하는 기본적인 내용조차 담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부터는 시의 예속물일 때의 사고방식을 일신하고 시조의 미래를 위해 교육과정을 개편할 때는 독립 장르로서 시와 같은 분량을 확실히 챙겨야 하겠습니다. 이와 함께 학교 급별 수준에 맞는 시조창작 교재를 공동으로 개발할 것도 필요합니다. 초등학교용, 중학교용, 고등학교용 교재를 공동으로 개발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지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급 학교에 시조를 지도하는 교사를 상대로 제대로 된 시조창작 교육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 세대인 학생들이 시조를 공부해야 우리의 시조가 번듯한 모습을 하고 한류를 이끌어가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TV 등 주요 언론매체에서도 삼행시 짓기 등 시조를 활성화시키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시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신문이 네이버 및 다음(카카오) 양대 포털의 콘텐츠 제휴(CP)사가 된 것을 발판삼아 부산시조시인협회와 공동기획하여 매주 목요일 자 신문에 ‘이 한 편의 시조’를 게재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은 시조를 활성화하는 좋은 본보기로 시조의 향기를 온 세상에 퍼뜨리고 있는데 다른 매체에서도 관심을 갖고 시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대중화의 효율적이고 자연스러운 작업의 또 다른 하나는 시조를 노래로 보급하는 일입니다. 시조의 가장 주요한 특성은 ‘정형성’과 ‘음악성’인데 이 두 가지 특성 중 청년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은 정형성보다는 음악성일 것입니다. 고시조가 노래의 가사로 출발했듯이, 현대시조도 노래로 만들기에 적절한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가곡으로 작곡되어 불린 시조작품으로 가람 이병기 선생의 ‘별’ 노산 이은상 선생의 ‘가고파’ 등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만 대중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로 불려야 파급효과가 더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도 경남 사천에서 활동하는 박제광 가수가 시조시인들의 작품을 시노래로 제작하여 지역별로 공연을 하는데 공연할 때마다 청중들이 시조의 현대성에 놀랐고 시조에 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계기가 되었다고 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조 관련 행사를 할 때 시노래 공연을 하고 시조시인들도 시노래 보급에 동참하면 시조의 대중화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시조의 정형성을 잘 지킨 단시조 창작에 주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추상적이거나 보편적인 시어와 주제보다는 시사성 있고 개성이 강한 시조, 요즘 세대들이 좋아할 재미있고 쉬운 단시조를 창작하여 보급하는 것이 청년들에게 호응도나 영향력이 커서 시조의 대중화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첫 단계인 시조의 정체성 확립과 두 번째 단계인 시조의 대중화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시조의 세계화 작업도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세 번째 단계인 세계화 방안을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한국은 韓流의 바람을 타고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전파하고 있는데 시조가 이 韓流의 최고 브랜드이며 한국인의 정신적 본류임을 인지하고 외국인에게 시조 교육을 추진한다면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외국인에게 시조 교육을 추진할 1순위는 국내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이 되어야 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국가로 귀국하여 최소한 교사나 교수로 진출할 인재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들에게 시조를 교육하는 것은 시조를 세계화할 수 있는 첩경임이 분명합니다. 이들이 자국에서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전령사의 역할을 할 경우 한국인이 가진 고유의 시가를 전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들은 분명 시조의 형식에 매력을 느낄 것이고, 단순히 시조를 알리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자국에 우리의 시조작품을 번역 소개하고 더 나아가 자신이 직접 창작도 할 수 있게 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외국 유학생이나 외국인을 위한 시조창작 교재를 만들어 보급하되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친절하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방안은 다문화 가정과 연계한 시조 보급입니다. 다문화 가정(多文化家庭)은 서로 다른 국적 또는 문화의 사람이 만나 구성된 가정을 의미합니다. 결혼이민자가 늘어 우리나라는 이제 ‘단일민족’ 국가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2023년 9월 말 기준 국내에 거주하는 ‘장·단기체류 외국인’은 총 251만4000명으로 전체 인구 5137만 명의 4.89%나 돼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국내 외국인 비중이 2024년에 처음으로 인구의 5%를 넘어서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다인종·다문화’ 국가에 진입한다고 합니다. 유·아동기의 언어 발달은 주로 주양육자인 어머니가 사용하는 어휘들을 습득하며 이뤄지는데, 문제는 결혼이민자가 대부분 여성인 관계로 자녀에게 언어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많은 경우 자녀가 언어지체, 언어발달장애를 겪게 됩니다. 급기야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한글을 다 깨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다문화 가정의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쉽고 재미있는 시조를 놀이처럼 가르치면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와 함께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익힐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조를 익혔을 때 이들을 대상으로 시조백일장이나 암송대회를 개최하여 시조에 대한 관심을 높이도록 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조시인과 교류하면서 그분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지인들과 교류가 많은 미국, 일본, 중국에서 활동하는 시조시인을 파악하고 그들과 교류하며 적극적으로 창작 활동을 지원해야 합니다.
현대인, 특히 청년들이 소통 수단으로 많이 이용하는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세계화를 위한 한 방법입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등에 재미있거나 시사성이 있는 시조를 주기적으로 올리면 시조에 대한 고정관념도 없앨 수 있고, 시조에 좀 더 친근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세계시조시인포럼>(대표 최연근)에서는 2019년 5월 23일부터 “국민과 함께, 세계인과 함께” 라는 슬로건으로 <시조 쿡cook>이란 유튜브를 제작하여 매주 2회(월, 목요일. 1회 1편) 2편을 소개해 왔습니다. 이은상 선생의 「가고파」를 시작으로 총 85편 소개했는데 최연근 대표가 유명을 달리한 뒤에는 이 활동도 멈춰진 상태라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최근 김일연 시조시인이 <시조튜브>에서 다양한 시조 콘텐츠를 제작하여 보급하고 있어서 앞으로 기대가 큽니다.
마지막으로 시조가 한류韓流의 최고 브랜드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바 시조를 세계에 소개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번역 사업인데 정부에서도 번역 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책사업으로 진행시켜야 합니다. 일본의 하이쿠가 세계적인 장르가 된 그 배경에는 정부의 강력한 실천과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으로 시조의 세계화 추진 방안을 단계적으로 살펴봤습니다. 첫 단계가 현대시조의 정체성 확립이고, 두 번째 단계는 시조의 대중화이며 세 번째 단계가 앞에서 제시한 두 가지 방안을 바탕으로 한 시조의 세계화 방안입니다. 능력 부족으로 문제 제기만 하고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본고가 시조의 세계화를 논의하는 과정에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쓰인 시조가 한류의 물결을 타고 세계인이 흥얼흥얼 읊조리며 어깨춤을 들썩이는 그 날을 꿈꿔봅니다.
약력
․ 2002년《시조문학》신인상
․ 부산시조작품상, 전영택 문학상, 나래시조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 등
․ 시조집『침 발라 쓰는 시』 『불쑥』 『달빛의자』등
- 《문학도시》 2024.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