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 김길웅
#1. 딱딱한 의자
교실에 푹신하거나 바퀴 달린 의자는 없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우리나라에는 없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마찬가지다. 배우는 학생들은 미완의 꿈을 꾼다. 미래를 설계하며 꽃을 피우려는 그들에겐 엉덩이를 좀 딱딱하게 대접해 주는 의자가 걸맞다. 처음부터 부드러운 것에 닿으면 스킨십에 빠져 잔꾀 부릴 우려가 있다. 불편한 것, 거친 것에 약해진다. 조악한 환경에서 피는 들꽃이 곱절 더 아름답다. 개천에서 용 나고, 거친 파도가 억센 사공을 만드는 법이다.
푹신하거나 빙글빙글 돌아가는 의자는 정신을 잠들게 하고, 딱딱한 의자가 잠을 물린다. 학생들에게 수업 시간은 졸음과의 싸움이다. 졸음에 정신을 내 줘선 죽도 밥도 안 된다. 학교는 마쳐도 텅 빈 껍데기 같은 허상이 교문을 나선다면 불행한 졸업이다.
학생들은 딱딱한 의자를 받고 앉아 공부해야 한다. 책상과 의자에 낙서하는 것까지도 탐구다. 그게 자신의 의식을 미적으로 가공하는 건 아니라 하더라도 어른들이 그냥 수긍해 주면 좋다. 철학이 꿈틀거리고 있다고 생각을 해야 한다. 꿈을 설계하는 데 때와 곳을 가릴 것인가. 반반한 책상이 꿈의 요람 구실을 하는 것이다. 낙서를 나무라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대학은 낙서의 천국이어도 무방하다. 거기 꿈이 무르익는다면 어쩔 것인가. 낙서가 꿈으로 가는 길목인 걸 몰라주는 어른들은 늦게라도 깨어나야 한다. 소주 한잔 걸쳐서라도 그들의 고뇌를 짚을 줄 알아야 한다.
#2. 회전의자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야,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인데, 볼 때마다 앉을 자린 비어 있더라.”
한때 유행하던 노래다. 욕구 불만을 토정하는 돌파구 구실을 했다. “과장이 따로 있나, 앉으면” 이라는 대목에서 열창은 정점에 이른다. 한발 더 나아가 개사해 부르는 쾌감은 또 맛깔 중의 별미였다. ‘교감이 따로 있나, 앉으면’ 으로 가는 것이고, 여기에 한 수 더 뜨면 ‘교장이 따로 있나’ 가 되는 것이다.
한잔한 뒤의 여흥과 노래가 찰떡궁합으로 만났으니, 이 아니 좋을쏘냐. 일이야 말할 수 없이 좋은 것이지만 직위도 못지않은 것이다. 조직 속의 직위에 대한 야망이 없을 수 없다. 몇 년 하면 대리, 과장, 차장, 부장, 이사, 신분의 수직 상승에 대한 욕구는 시간이 갈수록 집요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잠재의식이 거침없이 노래로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다.
교직에 몸담았던 내게도 관리자를 향한 꿈은 접을 수 없는 욕망이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 꿈을 실현했다. 끝내 회전의자에 앉았다. 등받이가 높고 푹신했다. 감회 또한 유별한 것이었다. 몇 년 뒤 더 큰 회전의자에 앉았다. 독방이라 기분부터 달랐다. 이 의자에 앉기 위해 얼마나 부대꼈는지. 가슴이 뭉클했다.
회전의자도 막상 앉고 나면 흥도 이내 식는 것이었다. 요구를 채우고 난 뒤의 허전함일까. 회전의자는 귄위라 하나 그런 실감이 거의 와 닿지 않았다. 더욱이 의자에서 떠나온 지금엔 기억 속에서도 맨송맨송할 뿐이다.
#3. 천막 속의 의자
산책하다가 길가에서 옷가게를 만난 적이 있다. 천막치고 옷가지 몇 진열해 놓은 간이 매장이었다. 길을 가며 그 천막 안을 기웃거리다가 아름다운 장면을 보았다. 40대 여인이 조그만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지 않은가. 작은 게 되레 돋보이는 캠프용 의자였다. 엉덩이가 닿는 부분이 짙은 국방색인 그 의자. 간신히 깔고 앉은 단순함. 그래서 눈길이 오래 머물렀을 것이다.
한산한 산책로에 손님은 거의 없었다. 여인은 무료함을 책으로 달래는 성 싶었다. 인기척에도 아랑곳 않는다. 삼매에 들어 있었다. 힐끔 훔쳐보았다. 책 읽는 그 여인, 화장기 없는 민얼굴이 어여뻤다.
산책을 끝내고 부러 그 길에 섰다. 옷가게 안으로 눈이 갔다. 그대로다. 여인은 책에 풍덩 빠져 있었다. 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곧게 뻗은 길을 걸어가다 돌아보았다. 무얼 두고 온 것 같아서. 그 여인은 미동도 않고 책에 눈을 주고 있었다.
그로부터 그녀의 옷가게가 어떤 존재로 내게 오기 시작했다. 몇 번인가 나는 그녀의 옷가게를 지나쳤고, 그때마다 책 읽는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말없이 스쳐 지났지만 왠지 입가에 미소가 번지곤 했다.
한데 얼마가 지났을까. 가게는 서는 날, 안 서는 날 하더니 그 길가에 그녀는 영영 오지 않는다. 장사가 잘 안 돼서일 것이다 그녀를 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지금쯤 어느 목 좋은 곳에 판을 벌여 놓고 앉아 책을 읽고 있으리라.
장사가 안 돼 허기를 느꼈을 여인, 그녀는 하루를 지탱하기 위해 책을 택했을 것이다. 이따금 떠올리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4. 안락의자
안락의자에 파묻혀 지내고 싶다. 이제 출세를 꿈꿀 텐가, 경쟁을 할 것인가, 암투와 음모의 세월이라도 끌어들일 것인가. 불안한 시간 속의 삐거덕거리는 의자에 앉아 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자기 존재를 지우며 살고 싶다.
장작불을 피우고 그 불 가에 앉아 지난날을 회고하면 좋겠다. 추억의 세계로 침몰하면 고독해도 좋은 것. 현실과 일상을 벗어던지고 은거에 들고 싶다. 인생을 관조하는 나른한 막간의, 영원한 휴지에 심신을 놓고 싶다.
장작불이라도 피워 놓고 불 가에 앉아 잉걸불이 이글거릴 때, 내 젊은 날의 정열을 반추하고 싶다. 내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나는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면 눈앞에 산이 있고, 만개한 꽃이 들어오고, 귀엔 바다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새의 날갯짓이 내 시야에 자주 출몰하면 좋겠다. 꿈이 시들었지만 꿈을 버리진 않겠다. 안락의자에 앉았으니 꿈의 절반은 이룬 것인데, 무얼 더 가지랴.
“싸우지 말고 살아라 /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 그늘 좋은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라는 한 시구가 생각나는 건 웬일일까.
언제 몸을 묻어도 쾌락의 느낌이 온다. 내가 이 쾌락을 몸에 두르고 살아도 되는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이왕지사 내게 온 의자일진대 밀어낼 것은 아니다. 하긴 편하면 글쓰기가 게을러질 게 우려된다면 문제의 의자다.
#5. 빈 의자
아무리 찾아도 내겐 의자가 없다. 엉덩이를 들이대고 앉을 마땅한 의자가 없다. dll 불편함, 존재의 부재다. 의자가 없다는 것은 불편을 넘어 심각한 일이다.
평생 몸담던 교단에서 물러 나오니 갑자기 내 의자가 사라지고 없다.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회전의자를 찾고 있는 게 아니다. 그냥 보통의 의자, 딱딱한 의자 그것마저 내게 없다. 아침에 문간을 나서서 바깥으로 나간다. 마실 가듯 가볍게 나서지만 돌아올 땐 걸음이 천근만근이다. 고개 숙이고 현관에 발을 놓는 내가 안쓰럽다. 앉을 의자가 없으니 주눅 들 수밖에.
하지만 나는 의자를 찾아 나서기로 하고 있다. 오늘도 의자를 찾는 행로다. 실존이란 고단한 게 아니라 고독한 것이다. 정신을 의탁할 데가 없어 더욱 고독한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의자에 앉아 있다. 삶의 자리, 살아가는 기쁨- 글을 쓰고 가족과 함게 웃을 수 있는 자리-에 나는 있다. 내 의자는 거기 있다.
내가 글을 쓰는 한 나는 부재가 아니다. 이전 회전의자의 기억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았다면 그 구속을 패대기치고 싶다. 존재의 정체성은 이미 실험된 것이다. 과거의 흔적들을 끄집어내어 울긋불긋한 무늬에 연연해 할 필요는 없다.
의자가 없다면 허공에 나앉으리라. 하늘을 바라보고 산을 바라보며 내 눈길이 이르는 어느 텅 빈 자락에 의자 하나 놓을 것이다. 한낮의 빛 속에 조금 오만 방자해도 좋은, 한밤중에는 쏟아지는 별들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그런 의자. 좀 딱딱해도 상관없다. 몸만 건사해 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