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과 날씨 외 4편
창문을 열었어
너의 한쪽 가슴이 보인다
어젯밤으로 되돌아 가
소설을 읽었다
열심히 해도 아무것도 되지 않는 세상을 열심히 살아내는 주인공의 이야기 계속 숨이 차올랐다 이름을 불렀지만 읽는 자와 읽히는 자의 거리는 멀었다 점점 더 멀어졌다
모조리 빼앗기고 하나씩 되찾는 것에 불과한
소년이 출구를 던졌다
깨진 출구는 다시 입구가 되었고 소년을 삼켰다 입구와 출구 사이에서 소년은 소년을 벗어나고 있었다
틀림없이 소년이었지만 더 이상 소년이 아닌
어둠보다 빛이 무서웠어
풍경들이 일제히 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아 어떤 책은 눈이 아니라 손으로 읽어야 하는 거잖아 읽어본 적 있니?
젖은 손에 가만히 내 손을 빠뜨린다
창문을 열었어
너의 한쪽 가슴이 보인다
기울어질 테야
하나의 몸속에 또 하나의 심장이 겹쳐 있다
입구는 어떻게 출구가 되는 걸까
오늘은 날씨를 극복해야 한다
해피엔딩
주맹증을 알아
층계를 내려오면서
뒤돌아보면
새하얗게 닦고 있는 손
눈이 내려
아름답지 않지 라고 말하면
아름다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
이상한 엘리스야
쉽게 녹는 건 쉽게 더러워져
그늘을 덮어 주겠니
결심했어
공을 툭 찼을 때 저절로 멈출 때까지
공을 갖지 않을 거야
층계의 홀수들은 아름답지 않아
짝수를 떠올렸니?
아름다움은 딛는 거야
홀수에 가지런히 발을 벗어 놓고
주맹증을 앓아
지금까지 시각적으로 말해서 미안해
눈송이 하나의 밝기로
층계를 오르지
뒤돌아보면
반쯤 녹은 내가 얼굴을 줍고 있어
팬터마임
흐릿한 손금사이에 입김을 불면
자,
지금부터 당신에게로 뻗어가는
서사가 뚜렷해진다
왼손에서 더 먼 왼손으로 옮겨가는 말들
모든 서사를 진동모드로 전환한다면,
껍질을 뚫고 나오는 감정을 번역해
점점 말랑해지는 촉각으로 자랄 때까지
눈동자에서 꺼낼 수 있는 것들
젖은 날개와 접은 날개
표정을 주목해
얼굴은 흩어졌다가 모이는 광장
비둘기로 무엇을 묶을까
무대를 장악해
클라이맥스의 순간
폭설로 고립된 너를 찾아갈게
떼 지어 날아가는 까마귀의 자막쯤 놓쳐도 괜찮아
모퉁이를 돌면
그 다음 모퉁이가 궁금해진다
엇갈린 매듭을 풀기 위해
절벽이 필요하다
거기에 매달아 놓은 심장이 두근거린 적 있어
손바닥을 비벼
왼손과 오른손을 섞으면
마술처럼 사라지는 왼손과 헤어지는 왼손
손뼉이 날아오르는 비둘기처럼
바뀌는 순간
표정만 떼어낸다면 더 많은 거짓말을 만들 수 있지 눈밭에 두고 온 너의 표정을 찾으러 간 적 있어 녹아버린 후에 천천히 오는 것들
눈송이를 핥아먹으면 한 층씩 계단이 사라지지 이층에서 옥상까지 닿는 기분이 들지 네가 접어 보낸 봄비와 너의 이마는 결국 읽지 못했다 나는 너의 푸른 발등에서 고드름이 자라는 소리를 들었지 너의 기호와 나의 기질은 계절이 달랐을 뿐
네 몸에 손을 댔을 때 손가락들이 내려가던 이유
반드시 지는 게임이다 무기를 내려놓거나 총 대신 연필로 과녁을 만들거나
너의 말들은 손가락 끝에 달려 있다 손가락은 첼로의 감정 같은 것 자신을 보관하는 방식 새끼손가락에 나는 자꾸 밑줄을 긋는다 미리 떼어낸 달력 같아서
첫사랑의 장르는 환타지보다 르느와르
비밀은 아주 매력적인 캔버스지 작은 속삭임에도 별이 돋아난다 너를 엿듣는 기분은 반짝반짝 압축파일을 열면 반복적인 세계가 열리지 아무것도 안 보이면 전부 본 거야
창문을 달면 볼 수 있는 풍경은 오로지 나,
였다.
스위치
탯줄을 잘랐을 때 반짝 세상을 옮겨가는 이야기 새의 부리가 꽃잎을 쪼았을 때 꽃은 위장에 불과하죠 새끼들의 주둥이와 어미새의 부리 사이에서 스위치가 꺼졌다 켜졌다 새는 반복되죠 빌딩은 하나이면서 여러 개의 눈을 깜박이죠 할 말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누른 숫자들은 연속으로 절뚝거려요 버튼으로 요약된 높이는 깊이를 간과하죠 달콤한 거짓말들이 몸의 당도를 높이고 있어요 순간 귀가 솔깃해요 진화와 퇴화가 동시에 진화하죠 썩은 이빨 사이로 자꾸만 죽은 감정들이 되살아나요 통증이야말로 생생한 동영상이죠 흑백사진 속의 트렁크가 입을 벌려요 추월할 수 없는 과거들이 쏟아지죠 웅덩이에서 수많은 발자국들이 시곗바늘을 옮겨요 감시카메라는 여전히 작동중이군요 동작들은 경건하고 눈빛들은 사나워지죠 눈빛에 베인 사건들이 기침을 토해내요 기침을 받아 적은 신문지는 전염병처럼 병실을 옮기고 있어요 병실을 구분하는 일이 최선이죠 난 새벽에 출발한 전류 나의 클라이맥스는 깜깜한 밤이에요
스위치를 켜면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세계의 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