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장지린(隔墻之隣)
격하게 싸울일도 아니지 않은가
장독대 하나 건느면 이웃아니던가
지지고 볶고 싸우기전에
린(가수)의 구수한 트롯이나 한곡 들음세
"린 - 빈잔|현역가왕 5회 MBN 231226 방송"
격장지린(隔墻之隣)
담을 사이에 둔 이웃이라는 뜻으로, 아주 가까운 이웃의 의미 곧 이웃사촌과 같은 뜻이다.
혹여 담이 증오나 미움의 담이 아니길 바란다.
사랑의 담이어서 그 담으로 별식도 넘나들고 도움도 나누는 담이었으면 좋겠다.
격장지린(隔墻之隣)
담을 사이에 둔 이웃이라는 뜻으로, 서로 담을 사이에 두고 있는 아주 가까운 이웃으로 곧 이웃사촌의 의미이다.
隔 : 사이 뜰 격
墻 : 담 장
之 : 갈 지
隣 : 이웃 린(인)
세상이 각박해지니 이웃 간에 정(情) 나누는 일이 드물다. 가옥 구조의 변천으로 도심지는 대개 아파트형 주거이고 설령 단독 주택일지라도 이웃에 누가 사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기야 이웃이 있어도 명절에 일가친척의 집에도 안 오가고 촌수도 잘 모르는 처지에 이웃은 남이다. 이웃 모르는 세태가 돼 버린 것이다.
한 지붕 밑에 살면서도 단절된 이웃을 모르는 것을 누가 굳이 탓할 수 있겠냐마는 이웃을 모르고서야 어찌 사람 사는 세상이라 하겠는가?
송나라때 여승진(呂僧軫)이라는 이가 새 집을 샀다. 누군가가 집값을 물으니 1001만 금이라 했다. 무슨 놈의 집이 그렇게 비싸냐고 했더니 답은 이랬다. 1만금으로 집을 사고 1천만금으로 이웃을 샀다고 말했다. 이웃과의 화목공존을 얼마나 중요시 했던가.
중종 때의 학자 김정국은 '천금으로 밭을 사고, 만금으로 이웃을 산다'는 시 구절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은 향약문에 보면 이웃은 사촌이 아니라 삼촌 반(三寸半)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웃에 초상 같은 애사가 나면 그 이웃들을 심상(心喪)이라 하여 일정 기간 동안 상주와 똑같은 근신을 했습니다.
이웃 간의 담장에는 암키와와 수키와로 구멍을 뚫어 놓게 마련인데 이를 '비린 구멍'이라고 불렀습니다.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아닌 별식을 만들었을 때 그것을 주고받기 위한 구멍입니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비롯해, 멸치까지를 포함한 각종 어육음식을 별식으로 쳤지만 어육류를 비린 음식이라 했기에 비린 구멍이란 이름이 생겼을 것입니다. 실로 따뜻하고 진한 정이 오갔던 구멍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이웃 삼촌반이 근대화 과정에서 이웃 백촌, 아니 이웃 무촌으로 촌간이 멀어져 있다. 이웃이란 한 지역에서 서로 돕고 협동하며 함께 사는 인간관계를 의미한다. 오늘날 세계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점차로 온 인류가 하나의 지구촌을 형성하며 가까운 이웃이 되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운명의 건축가이다. 그러나 이웃 사람은 그 건축을 감독한다'는 G. 에이디의 말처럼 이웃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
세계 모든 사람이 이웃사촌이 되어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개인과 가정뿐만 아니라 나아가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좋은 이웃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사람이 한 평생 살아가면서 서로가 좋은 이웃이 된다면 얼마나 도움 되는 일이 많은지 모른다.
J. 하우얼은 '각자의 이웃은 그의 거울'이라고 이웃과의 일체감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이 인간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하기 때문에 서로가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한다. 좋은 이웃은 서로 믿고 돕기 때문에 그 어떠한 분쟁과 분열이 있을 수 없고 서로가 사랑과 봉사로써 기여하기 때문에 단 하나의 지역에서도 인간이 소망하는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웃 사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까이에 살면서 늘 만나는 이웃이 멀리 떨어져 살면서 뜸하게 만나는 사촌보다 훨씬 더 다정하고 낫다는 말입니다. 환난을 당했을 때 친구와 이웃은 누구보다도 나의 사정을 잘 알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며 힘과 용기를 주어 환난을 이겨내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친구 관계, 이웃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발 뒤꿈치도 한번 들지 않았었구나
몸 낮추어도 하늘은 온통 네게로 왔구나
울타리 하나 세우지 않고도
꽃밭을 일구었구나
올망졸망 어깨동무하고 사는구나
이는 <채송화>란 제목의 지하철 시로서 서울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에 있던 것입니다. '몸을 낮추고', '올망졸망 어깨동무하고' 이웃들과 함께 사는 삶의 소중한 이치를 시인은 작은 꽃 채송화에서 발견합니다.
속담에 멀리 사는 형제보다 이웃사촌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려운 일, 즐거운 일에 항상 부닥치며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즐거운 일은 함께 나누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하는 것이 사람 사는 맛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다정한 형제자매 지간이라 하더라도 서로 멀리 떨어져 살다 보면 마음뿐이지 실제로 이런 정과 어려움을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담장 하나 사이에 두고 있는 이웃 간 사이 좋게 지내다 보면 이런 일은 흔히 이루어지기 마련인 것입니다.
한여름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면, 생면부지의 사람에게도 다가가 우산을 같이 쓰자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면 그도 지체 없이 곁을 내어줬다. 나 역시 갑작스러운 비 소식에 남의 우산을 같이 쓰기도 하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우산을 씌어주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같으면 꿈만 같은 일이다. 만약 지금 그런 말을 한다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거나 경계의 눈총을 받을 것이다.
그뿐인가. 새집으로 이사를 왔을 때는 또 어떠했는가. 이사한 집에서는 떡을 해서 이웃집에 나누느라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이 일이었다. 일종의 신고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떡을 받은 사람들은 그 접시를 되돌려줄 때 과일이라도 담아서 주고는 했다. 그 당시 사람들 인심이 그랬다.
최근에 지방에서 서울 아파트로 이사한 한 가족이 인사차 떡을 이웃에 돌렸다가 외계인 보듯 이상한 시선을 느껴 얼굴이 화끈거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참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다. 그 단어에는 인심이 담겨있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요즘에는 이웃사촌이란 말조차 생소하다. 쓸쓸하게 혼자 지내다 고독사한 노인이 몇 주 만에 방문한 사회복지사에게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인생에서 느끼는 고통 중에 소외감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만약 어느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방안에 혼자 며칠을 누워 있어야 한다면, 상상하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이다.
하지만 모두가 고독한 것만은 아니다. 한번은 몸이 성치 않으신 데도 불구하고 주변 노인들을 보살피는 아주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아주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할머니는 내게 아주머니 칭찬만 하셨다. “내 아들, 딸보다 낫답니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동이 트면 나를 찾아와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내가 필요한 것을 챙겨 놓고, 청소도 빨래도 해 줘요. 그리고 가끔은 오후에도 찾아와서 이 늙은이의 말벗이 되어 준답니다. 자식들은 몇 달이 지나도 얼굴 한번 보기 힘든데, 이웃사촌이 가족보다 훨씬 더 낫지요…”
성경에도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잠언 27;10)는 말이 있다. 피를 나눈 이들만이 형제는 아니다. 오히려 사랑을 나눌 때 진정한 형제, 이웃사촌이 되는 것이다. 평소 진실한 우정을 나눈 이웃사촌이 형제나 친지보다 더 큰 힘이 될 때가 많다. 문득 이웃사촌이란 단어가 그리운 날이다.
이웃사촌 문화의 부활
우리는 지금 인터넷 및 스마트폰 등 통신기기의 발달로 SNS를 통해 쉽게 사람들과 소통하고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는 스마트한 소통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소통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에서 쉽게 소통의 단절을 경험하고 살아간다.
소통의 단절을 경험하는 곳은 다름 아닌 우리 이웃이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옆집은 물론이고 위아래 층에 누가 사는지도 알지 못할뿐더러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도 인사는 커녕 모르는 척 지나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러한 이웃 간 무관심, 소통의 부재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심각한 사회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층간소음이나 주차 문제로 인해 이웃 간 칼부림하는 사건까지 일어나기도 하고, 최근에는 아파트 외벽 작업자의 휴대폰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밧줄을 잘라 한 가정의 가장이 죽게 되는 가슴 아픈 사건도 있었다. 이웃 간 소통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이웃에는 누가 살까? 우리는 이웃에게 내가 먼저 인사하고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작은 정성이지만 함께 나누고 예의를 지키며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웃과 소통하며 잘 지내는 것은 건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 미주리대 연구팀에서는 이웃과 잘 지낸다거나 이웃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전체적으로 건강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는 이웃과 잘 지내는 것이 우리의 삶을 더욱 윤택하고 행복하게 해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인간관계를 맺어 주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소통(疏通)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이웃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성숙한 공동체 의식인 이웃사촌 문화이다. 이것은 법으로 규제할 수도 없고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형성될 수 있는 문화이다.
이제 우리가 먼저 나서서 이웃사촌 문화를 부활시켜 보자.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웃을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만 있다면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더 낫다는 옛 속담처럼 이웃을 의지하고 도우며 가족처럼 살아가는 건전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서적으로 허기진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이웃이 있어 풍요로운 사회,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보자.
나비 한 마리의 작은 날갯짓이 나중에는 큰 폭우가 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작은 변화가 큰 변화의 시작이 된다는 얘기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이웃을 위한 작은 실천이 이웃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서로 돕는 이웃사촌
가족제도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고 출산율 저하로 사촌이 없어져 가고 있다. 우리의 전통 혈족은 그 촌수를 보면 부부(夫婦)는 무촌(無寸)이고 부자(父子)는 일촌(一村)이고 형제는 이촌(二寸)이며 아버지의 형제는 삼촌(三寸)이고 아버지 형제의 아들딸과는 사촌(四寸)이며, 사촌의 아들딸과는 육촌(六村)이고 육촌의 아들딸과는 팔촌(八寸)이다.
대한민국에서 전통적인 친족은 나의 직계친과 내계친을 가리키지만, 배우자의 친족, 곧 배우자의 직계친과 내계친은 친족으로 보지 않았다. 또한, 혼인으로 이어지는 인척은 척족이라고도 하며, 배우자의 친족과 외척이 이에 해당한다.
나의 친족과 척족을 합해 친척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는 민법에서 친족의 범위를 팔촌 이내의 혈족, 사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로 정한다(민법 제777조). 이때 친족은 앞서 말한 친척으로 풀이한다. 또한, 아들의 아랫대는 물론이고 딸의 자녀인 외손도 법률상의 친족이며, 그 아랫대의 자손도 촌수로 팔촌 이내이면 친족으로 본다.
아울러 법률상 친족끼리는 혼인이 금지되어 있다. 이처럼 친족의 촌수에서 아버지나 어머니의 형제가 없는 자녀는 사촌이 없다. 따라서 출산율이 낮은 하나의 자녀만 둔 가정은 사촌이 없다.
친족이란 혈족이라고도 하며 가까운 사이를 말하고 있는데 사촌이 없다 보니 혈족이 아닌 가까이 사는 이웃이 사촌 역할을 하고 있어 이웃사촌이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
시골에 가보면 혈족이 아닌 이웃사촌들이 서로 도우며 친족처럼 정답게 살고 있다. 그러나 아파트 주거환경에서 사는 도시인들을 보면 같은 아파트에 살고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리며 사는 사람들은 이웃사촌이란 정감이 없이 살고 있어 석연한 느낌이 든다.
이러한 사회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웃사랑의 이웃사촌 운동이 자생적으로 이루어져서 아름다운 상부상조의 미덕이 아파트 주거문화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웃끼리 만남의 계나 반상회 같은 조직과 운영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웃사촌끼리의 정을 통하는 행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혈족의 사촌보다도 더 정다운 이웃사촌을 만들어 전통적인 우리의 상부상조하는 마을 문화가 이어지게 해야 한다. 친구가 없다는 사람은 내가 먼저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고 남이 나의 친구가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먼저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면 수많은 친구가 생기게 된다. 사촌이 없는 현실 사회구조에서 내가 먼저 이웃사촌이 되어 도움을 주고 사촌끼리 오고 가는 정을 통하며 보람 있는 삶이 되었으면 한다.
혈족의 이촌 형제도 오고 가는 것이 없고 멀리 떨어져 살면 남처럼 되어버리며 더구나 사촌은 만남이 없으면 남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명절 때면 일가친척들이 조상을 찾아 모여 서로 만나고 서로 알게 한다.
그것마저도 하지 못하는 혈족들은 말만 혈족이지 남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가까이 있어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도와줄 수 있는 이웃사촌이 필요한 것이다. 같은 아파트에서 살면서 이웃사촌의 결연을 하고 서로 상부상조하며 애경사에 한마음이 되어 돕는 것은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 이웃사랑문화다.
가끔 TV에 출연하여 자기가 사는 아파트 자랑을 하는 사람이 있으며 아파트 주변에 놀이시설과 쾌적한 공원환경이 조성되었다는 물리적 시설만을 말하고 있는데 살기 좋은 아파트는 이웃이 모두 정다운 이웃사촌이 되어 떠나고 싶지 않은 눈에 안 보이는 정신적 주거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물리적 주거환경이 좋아도 정신적으로 서로 의지하고 돕는 이웃사촌이 없는 아파트문화는 독불장군으로 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주거 환경에 살더라도 서로 상부상조하는 이웃사촌이 있는 곳에서 살아야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시골에서 살던 아버지가 서울 아들 집 아파트에서 적응을 못 하고 일찍 죽거나 다시 낙향하는 것은 정겨운 이웃사촌 문화가 없는 삭막한 아파트 문화 때문이다. 시골고향에 가면 모두가 이웃사촌이다.
시골의 교회신도들은 애경사가 있으면 일손을 멈추고 형제처럼 상부상조하는 미덕을 보여주고 있다. 정이 통하고 이웃사랑의 맥이 통하는 정겨운 우리 시골의 이웃사랑 이웃사촌문화가 우리가 사는 아파트문화에서 받아들여 서로 돕는 이웃사촌문화가 아파트에서도 꽃이 피게 해야 한다.
▶ 隔(격)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좌부변(阝=阜; 언덕)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가로막는 장벽의 뜻(壁; 벽) 또는 구획하다의 뜻(劃; 획)을 나타내는 글자 鬲(격)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隔(격)은 사이를 가로막는 간격(間隔)의 뜻으로 언덕으로 가로막히다, 가로막히다, 막다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사이 간(間)이다 용례로는 세대를 거름이나 시대를 달리함을 격세(隔世), 한 달을 거르거나 한 달씩 거름을 격월(隔月), 하루를 거르거나 하루씩 거름을 격일(隔日), 서로 터놓지 않는 속마음을 격의(隔意), 멀리 떨어진 지방을 격지(隔地), 비교 대상이나 사물 간의 수준의 차이를 격차(隔差), 멀리 떨어지게 함을 격리(隔離), 가까이 떨어져 이웃함 또는 그 이웃을 격린(隔隣), 멀리 떨어져 있게 됨을 격월(隔月),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통하지 못함을 격조(隔阻), 해가 바뀌도록 오래 만나지 못한 얼굴이라는 격세안면(隔歲顔面), 사람이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날 때에는 전세의 일을 모두 잊는다는 격세즉망(隔世卽忘),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격세지감(隔世之感), 담을 사이에 한 가까운 이웃이라는 격장지린(隔墻之隣), 신 신고 발바닥 긁기라는 격화소양(隔靴搔癢) 등에 쓰인다.
▶ 墻(장)은 형성문자로 墙(장)은 (통자(通字), 墙(장)은 (간자(簡字), 廧(장), 牆(장)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흙 토(土; 흙)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嗇(색, 장)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담 원(垣), 담 도(堵), 담 용(埇)이다. 용례로는 담과 벽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장벽(障壁), 담 밑 담 가까이를 장하(墻下), 담을 뚫음을 천장(穿墻), 난간처럼 둘러 막은 담장을 난장(欄墻), 집의 정면에 쌓은 담을 조장(照墻), 담이 이웃하여 서로 맞닿음을 연장(連墻), 담을 쌓아 막음을 방장(防墻), 낮은 담 또는 나지막한 담을 단장(短墻), 담을 쌓음을 축장(築墻), 항상 잊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견요어장(見堯於墻), 형제가 담장 안에서 싸운다는 형제혁장(兄弟鬩墻), 길 가의 버들과 담 밑의 꽃은 누구든지 쉽게 만지고 꺾을 수 있다는 노류장화(路柳墻花), 담에 구멍을 뚫는다는 유장천혈(窬墻穿穴), 담을 사이에 한 가까운 이웃이라는 격장지린(隔墻之隣) 등에 쓰인다.
▶ 之(지)는 상형문자로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이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나 어조사로 차용한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主見)이 없이 갈팡질팡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이라는 새옹지마(塞翁之馬), 옛날 중국의 관중과 포숙처럼 친구 사이가 다정함을 이르는 관포지교(管鮑之交),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라는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결자해지(結者解之) 등에 쓰인다.
▶ 隣(린/인)은 형성문자로 鄰(린/인)은 본자(本字), 邻(린/인)은 간자(簡字), 厸(린/인)은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좌부변(阝=阜; 언덕)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나란히 잇닿는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 粦(린)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隣(린/인)은 마을에서 나란히 잇닿은 것끼리란 말로 이웃, 이웃한 사람, 이웃하다, 이웃한, 인접한 등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거리 상으로 가까운 이웃을 인근(隣近), 이웃 집을 인가(隣家), 이웃 나라를 인국(隣國)이웃과의 교제를 인교(隣交), 이웃하여 있는 군 또는 이웃 고을을 인군(隣郡), 이웃 동네를 인동(隣洞), 가까운 이웃 집 또는 가까운 이웃 사람들을 인보(隣保), 옆 자리 또는 옆 좌석을 인석(隣席), 이웃집 아이를 인아(隣兒), 이웃의 벗을 인우(隣友), 이웃 사람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정분을 인호(隣好), 이웃 사람을 인인(隣人), 이웃하고 있는 적국을 인적(隣敵), 이웃하여 닿은 땅을 인지(隣地), 이웃 마을을 인촌(隣村), 인접(隣接)한 땅의 경계를 인경(隣境), 이웃 사람 사이의 정의를 인의(隣誼), 덕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음을 이르는 덕필유린(德必有隣), 먼 데 있는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 못하다는 원족근린(遠族近隣), 단어장 추가 덕으로써 이웃한다는 여덕위린(與德爲隣), 담을 사이에 한 가까운 이웃이라는 격장지린(隔墻之隣), 이웃 나라 또는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며 잘 사귄다는 선린우호(善隣友好) 등에 쓰인다.
출처: 장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