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아리랑
김 학 래
전남 진도군 진도읍에는 일찌기 향토문화예술관이 건립되었다. 이 향토문화예술관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 토요마당공연이 열리는데, 출연 인사는 모두가 진도 주민들이다. 오전까지 논 밭에서 일을 하던 농부들이 점심때쯤 되면 몸을 씻고 의상을 준비하여 읍으로 모여들고 오후 2시부터 공연을 시작하는데, 연습도 리허설도 없이 공연하는 민속 예술은 진솔하고 진지하고 멋과 흥이 넘친다.
문자 그대로 진도는 예향이며 민속 예술의 보고이다. 민속 예술이 살아있는 고장이기에 즉흥적인 연출이지만 내용이 훌륭하다. 국악 창과 고전 무용과 흥부전 심청전 같은 판소리 창극도 척척 해낸다.
관중들은 진도 관광에 나선 관광객들인데, 무료 공연때문인지 아니면 진도의 민속 예술을 보고 싶어서인지 토요일마다 만원 사례를 이룬다.
그런데 진도의 토요마당 피날레를 장식하는 프로는 언제나 진도 아리랑 타령이다. 사회자와 무대 배우들이 구성진 진도 아리랑을 열창하면서 관객의 동참을 유도하면 출연진과 관객이 한데 어울려서 신바람나는 진도 아리랑을 부른다.
이것이 타령조 진도 아리랑의 특성이다. 후렴이 간단하니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고 누구든지 자유 자재로 가사를 매길 수 있다. 가사가 수 백 수 되기에 아리랑 합창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구성지고 흥을 돋우기에 모두가 춤을 추면서 같이 부른다. 진도 아리랑 합창이 끝나면 모두가 땀을 흘린다. 그리고 재미있다면서 쉽고 흥을 돋우고 신바람 나게 하는 진도 아리랑을 찬양하게 된다.
아리랑은 우리 한 민족의 대표적인 민요이다.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표방하는 랜드마크같은 노래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해외에 나가면 우리 동포들과 어울려서 눈물을 흘리며 부르는 곡이 아리랑인줄 알고 있다.
대체 아리랑이 무엇일까? 아리랑의 뜻은 무엇이며 그 기원과 유래는 어떻게 된 것일까? ‘아리랑’은 특별한 뜻은 없고 민요의 한 소리이며 가락일 뿐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 아리랑의 어원과 기원에는 몇가지 설이 있다.
그 첫째로 신라시대의 알영설(閼英設)이다. 알영은 박혁거세의 비(妃)였는데, 알영은 용녀로 태어났으며 왕이 국내를 순시할 때 수행하였다. 당시 신라 국민들이 알영을 칭송하는 노래를 불렀는데 ‘알영’이 ‘아리랑’으로 변형되었다는 설이다.
그 둘째는 아랑설(阿嫏設)인데, 밀양 사또 딸 아랑이 괴한에게 당하여 비명에 갔고 숲속에 시체가 버려졌는데, 그후 아랑의 원혼이 신관 사또에게 나타났기에 유령 때문에 사또들이 부임을 기피하였다. 그러던 차에 한 강심장 사또가 자진해서 부임하였다. 사또는 유령의 사연을 듣고 주검을 거두어 주고 원한을 풀어주었더니 그후로는 조용한 고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후로 밀양 백성들이 아랑의 죽음을 슬퍼하며 ‘아랑’ ‘아랑’ 부른 것이 민요 아리랑으로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그 셋째는 아이롱설(我耳聾設)이다. 조선 왕조말 경복궁 중건시 원납전과 부역으로 백성의 원성이 높을때 ‘내 귀가 먹어서 아무 소리도 듣기 싫다’는 유행어가 생겼는데, 이 말의 한자 성어 아이롱이 아리랑으로 변조되었다는 것이다.
아리랑은 몇 개의 곡조가 따로 있고 지역에 따라 그 발전 모습이 달라졌다. 대표적인 아리랑은 가요 풍의 품위있고 점잖은 곡인데, 이 곡이 말하자면 대표적인 아리랑이며 한민족이 어디서나 애창하는 랜드마크형 곡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그리고 밀양 아리랑과 정선 아리랑과 진도 아리랑이 있는데, 밀양 아리랑과 정선 아리랑의 곡조가 유장하면서도 처량하고 슬픈 느낌을 주는데 반하여 진도 아리랑은 빠른 곡조 활기찬 정조 그러면서도 힘이 넘치고 흥을 돋우는 곡이다.
진도 아리랑을 듣고 있으면 어깨 춤이 절로 나온다. 진도 아리랑을 들으면서 박자를 안치고 춤을 안 춘다면 그야 목석같은 인간일 것이다.
가사가 다양한 것도 진도 아리랑의 특징이다. 400여종의 가사가 전래되었는데, 재치있는 진도 사람들은 진도 민요의 가사를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창작하여 매긴다.
이제 진도 아리랑 가사에 담긴 내용을 살펴보자. 한마디로 말하면 토속적이고 민속적이고 서민들의 정서와 한과 민초들의 애환, 그리고 염정을 담은 것들이다.
가사 내용으로 볼때 점잖고 유식한 양반들이 부른 노래는 결코 아니고 순박하고 진솔한 농부들이 들에서 일을 하면서 부른 노래이거나 꾸밈없는 정서와 님을 향한 사랑이나 원망을 노래한 것들이다.
진도의 여성들은 개방적이고 활동적이었다. 들에서 일을 하다가 남정네가 지나갈 경우 일단의 여성들은 으레 건드려 보았다는 것이다. 노래를 한 곡 해야지 그냥은 못간다는 것이었다. 타지방에서는 보기 어려운 도전이고 여성답지 않은 적극적인 남성 희롱이었다. 이때 여인들의 제안을 무시하고 그냥 통과한다면 멋대가리 없는 남정네라며 야유했다는 것이다.
행인을 골려주려는 여인들의 가사를 먼저 살펴보자. ‘널보고 나를 보아라. 내가 널 따라 살까 눈으로 못보니 정으로나 살세’ 이와같은 노래를 들은 분위기 아는 남정네도 한마디 했다. ‘저 건너 저 크네기 엎으러나 져라. 일으켜나 주는데끼(듯이) 보듬어나(안아) 보자.’
무정하게 떠나는 님에 대한 원망조의 가사도 많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서 지느냐. 날 버리고 가는 님은 가고 싶어서 가느냐’ 진도 아리랑 가사 내용을 보면 주로 여인네들의 고달픈 시집 살이를 하면서 남자들을 원망하는 이야기와 미운 시어미에 대한 독설, 그리고 고생스럽고 한 많은 팔자 타령을 하는 이야기들이다.
님을 향한 노래 염정적인 가사를 들어본다. ‘오시라는 정든 임은 왜 아니오고 오지 말라는 궂은 비는 줄줄이 오네.’ ‘일본간 낭군은 믿지를 말고 밤중에 오는 님 괄세를 마라.’
고생 많고 고달프로 한이 맺힌다는 가사도 많다. ‘청천 하늘에 잔별도 많고 요네 가슴에는 수심도 많다.’ ‘아리랑인가 지랄인가 용천인가 사내야 육천매디가 아리 살살 녹네.’
이외에도 진도 아리랑의 가사는 다양하고 풍부하다. 서민들의 일상 용어와 푸념, 그리고 신세 타령을 여과없이 표출한 것이 바로 진도 아리랑 타령의 가사인 것이다.
진도 아리랑 타령을 흥겹게 부르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가사를 감상하노라면 그옛날 이 민족 서민들의 서름이 보이고 고난과 슬픔을 이기고 딛고 일어선 의지가 보이고 여인네들의 님을 향한 정념이 느껴진다. 삶에 지쳤을때나 심신이 피로할 때 스트레스가 쌓일때라면 벗님들과 어울려서 막걸리 한 두잔을 쭉 들어 마시고 진도 아리랑을 소리 높여 불러 볼지어다. 그리하여 삶의 찌꺼기를 단번에 날려 버리고 즐거움과 웃음을 창출하면서 즐겁게 살고 인생을 찬양하고 미화할지어다.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