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생존자(17)
유진나의 전화가 온 것은 오후 7시경이다. 그때는 백인 간호사 소냐와 함께 룸서비스로 시킨 호화판 식사를 마친 후에 과일 디저트를 먹던 중이었다. 과일과 신선한 빵과 우유 등은 간호사들이 쇼핑을 해오는 것이다.
“나야.”
하고 대뜸 한국어로 말한 여자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영준은 숨을 멈췄다. 유진나다. 다음 순간 자신이 서 있는 방이, 맡는 공기가, 그리고 옆쪽에 서 있는 소냐까지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현실이 믿겨지지 않은 것이다. 그때 유진나가 다시 묻는다.
“듣고 있어?” “그래.” “거기 스위트 룸이라며?” “그래.” “미인 간호사 둘이 상주하고.”
입을 다문 이영준은 유진나의 낮은 웃음 소리를 듣는다.
“영웅이 되었다면서? 그 대가를 받아야 되겠지.” “…” “정말이야. 난 자기 존경해.” “…” “내가 두 시간쯤 후에 찾아가도 작업에 지장은 없겠지?” “응?”
놀란 이영준이 말뜻을 다 새기기도 전에 되물었다.
“여기 온다고?” “그래. 나 파리에 있어.” “그럼, 여기 못 올데냐? 네가 테러범도 아니고.” “거기 남은 백인 여자, 오늘 밤 작업할 예정 아니었어? 혼혈 간호사는 외박나가는 것 같던데. 가방까지 싸들고.” “천, 천만의 말씀. 날 어떻게 보고. 환자가 무슨…” “그럼 거기도 다쳤단 말이야?” “아, 글쎄.” “거기 다쳤다면 그냥 전화로만 말 할게. 그럼 만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야, 난 만날 서.” “그럼 갈게.”
그리고는 유진나가 낮게 웃었다.
“9시 정각에 갈 테니까 단정하게 옷 입고 기다려.” “그 안에 간호원 내 보낼 테니까.” “미쳤나봐.”
하더니 수화기에서 긴 숨소리까지 들리고 나서 유진나의 말이 이어졌다.
“간호원 다 내보내면 어떻게 해? 그대로 둬. 정신나간 짓 말고.” “널 보면 정신이 나가서 그래.” “내보내지 마.”
유진나의 목소리가 굳어져 있다.
“내가 혼자 가는게 아니란 말이야.”
그리고는 전화가 끊겼으므로 이영준은 길게 숨을 뱉었다. 유진나에게는 농담처럼 들리는 진담을 뱉는 버릇이 들었다. 그래야 상처를 덜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도가 빨리 나가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실없는 인간이 되는 단점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리고나서 오후 9시가 되었을 때 문에서 벨 소리가 났다. 소냐가 문을 열자 유진나와 사내 두 명이 들어섰다. 사내 둘은 중년이었는데 세련된 양복 차림이다. 거실에서 기다리던 이영준에게 사내들은 웃어 보였다.
“인사하세요. 선전부 강부장 동지세요.”
하고 유진나가 앞에 선 사내를 소개했다. 이영준은 선전부가 회사 광고부쯤 되는 것으로 아는 지적 수준이어서 별로 기가 죽지 않았다. 이쪽은 대광상사 사장 빽으로 인터컨티넨탈 스위트에 묵고 있는 신분인 것이다. 그때 광고부장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동무. 동무는 조국 통일의 반석이 될 영웅이요.” (다음 회에 계속)
글_이원호|그림_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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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북한의 앞잡이로 부려먹으려는지 통일에 반석이될 영웅 칭호까지 붙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