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월(徐芝月) 시 모음
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
말하고 싶지 않음으로 하여 우리가 걸어갈 때 느끼는 미동처럼 세상은 가라앉아 버릴 것 같지 않다 호오이 호오이 풀잎이 누군가를 부르며 뒤돌아 볼 때, 순간 우리의 모습이 푸른 하늘을 향해 마냥 걸어가는 짐승같고 사과나무의 落果처럼 쓸쓸히 굴러 떨어질 것 같지 않음으로 하여 매달려 있는 저 붉은 태양이나 시간을 셈하는 추처럼 즐겁게 하루를 배불리 생각하는 것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우리가 세상을
우리가 世上을 살아가면서 그립다 그립다 하는 것은 진실로 눈물이 아닐 바엔 빈 그릇을 비워둘 뿐이다 살기가 좀 팍팍하고 캄캄하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괜찮다 괜찮다 하는 것은 불어오는 바람을 바람으로 맞으며 거리를 서성이던 어린날의 바람개비 그 튼튼한 날개깃으로 시계바늘을 돌리며 이 時代의 불면을 맛본 탓이러니
꽃이여, 불러도 대답없는 꽃이여 시방 네 이름을 잊어버릴까 나는 숨가쁘게 달려왔다
바람 앞에서
어제의 바람이 오늘 여기 풀잎에 와 불고 있다 내일의 바람을 또 어디선가 불어대기 위하여 어제의 바람은 쉴새 없이 콧구멍도 열고 콧구멍도 열고 푸른 느티의 그늘에 와서는 日月의 벽을 허물고 있다
어제의 바람이었던 내가 오늘의 풀잎으로 느끼는 것은 내일의 피리구멍으로 다시 살아남기 위함인가
전생엔 안스러웠던 마음이 지금은 파랗게 물들여져 왼몸으로 우는 뜻은 사뭇 비통한 하늘 금간 하늘의 일인가
꽃들아, 꽃들아, 네들도 어제의 바람을 나처럼 받고 피고 있느냐?
오늘의 바람 앞에서 나는 쓴 웃음 지우며 맹세하나니 새 무명옷 갈아 입고 구름으로 맹세하나니 여기, 碑를 하나 세워두고 가리라 돌 쪼아 碑 하나 세워두고 가리라
동행
내가 우두컨히 서 있었을 때 당신은 하늘의 날아가는 새를 보았지
내가 걸어서 몇 발자죽 내디뎠을 때 당신은 따라오며 우는 새소리 그게 조금 전 그 새의 소리가 아닌가 하고 물었지
길은 어둡고 몇 개의 별들만 나와서 그들의 자리 확인 시켜 줄 뿐, 지나온 나무들도 아무 말 없는 것 보면
당신은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어디로 통하는 길인지도 모르고 따라 걷고 있지만 풀섶의 꽃들도 자러간 시간, 우리는 걷다가 쉬다가 쉬고 나면 또 걷기를 계속하는 수밖에 없음을 알아, 남들 도 모르는 이 길을 만들며 가고 있는 것이다
산경 (山經)
꽃빛 무르익는 봄이라도 좋고 녹음 우거져 부풀어 오른 여름이라도 좋고 울긋불긋 단풍 우거져 말이 필요없는 가을이면 어때 이 모든 色을 이별한 空의 겨울이라도 좋아!
말하고 싶은 건 눈에는 안 보이는 땅속 나무 그 뿌리들 서로 따뜻한 체온으로 감싸며 천년을 이어왔듯
하나의 개울이 흐르다가 또 다른 개울 하나 만나 서로 목숨 끝간 데까지 가듯
우리들의 속눈썹 바람에 쓸려 솔바람소리 들리는 절간 하나 찾아가는 거야
거기 전생의 우리가 손잡고 대웅전 앞뜰 만발한 꽃밭 보며 거닐고 있을 테니까!
꽃지 가는 길
꽃지가 어디인가 이 땅의 어디메쯤 아무도 겁탈하지 않은 패각(貝殼)의 길을 나는 허리띠도 없이 간다.
무수히 많은 할 말이 버려진 모래알의 눈, 열려있는 바다는 어둡고 흰 살결의 배꼽언저리 어둠을 쓸어내린 거기 꽃지는 숨쉬고 있으리
나와 피를 섞어본 일 없는 붉은 맨드라미의 門은 닫혀진 나의 天國인가 사방 어디에도 발자국 소리 들리지 않는다
어둠과 바다가 하나로 될 때까지 정지된 숨소리는 들리지 않을 뿐 드러누운 채 말없을 뿐 길들지 않은 新婦의 옷고름처럼….
꽃의 時間
내가 쉬고 있는 시간의 하염없는 꽃의 떨어져 내리는 행위에 대하여 누가 말해보고 싶다면 이는 바람이 부는 것과는 달리 宇 宙가 힘을 다한 탓 아닐까. 그 꽃들과 나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침묵으로 답할 수밖에 없는 고통을 누가 알고 곁에 와 말 걸어 줄 것인가. 九泉의 물소리가 저대로 흐르고 우리가 언젠가 이뤄야 할 믿음 에 대한 확신보다도 더 아스라히 멀어져감에 부지런히 꽃은 떨어 져내리고 시간은 영 멈춰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될지 몰라 잉잉거리는 피의 순환처럼 아름답고 탐스런 꽃이여 너를 불러 앉혀 인제 나는 무작정 쉬기로 한다.
꽃은 왜 피나?
꽃은 왜 피나? 밝은 세상 향하여 꽃 피고 어두운 세상 바라보며 지는 것을
꽃들은 알고 피나? 꽃이 피어 흐트러졌을 때 아니, 자신의 목 디밀어 세상에 내어놓았을 때 저들끼리 주고받는 말 아무도 들은 바 없는데
왜 꽃은 지면서 끝내 저들끼리 말하고 저들끼리 상여 매고 훌훌 떠나는가?
쥐똥나무숲의 노래
쥐똥나무는 그들이 모여 사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터전을 이룬 듯 주렁주렁 쥐똥같은 열매를 매달고 소리나지 않는 숲을 흔드네
쥐똥나무가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건 냄새 풍기지 않으면서 까만 열매를 매달아서 더러는 쉬어가게 하는 벗이 되고 되돌아 오는 메아리의 和答이 되네
쥐똥나무는 그들이 보람으로 삼으면서도 그게 쥐똥인지 아니면 누가 붙인 이름인지 전혀 모르면서 산다는 것이 어찌보면 우리보다 휠씬 앞서 가서 숲을 이룬 때문이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이 밤에도 들기도 하네
숲속의 나무
숲속의 나무는 바람이 불어와도 그냥 흘려 보냅니다. 숲속의 나무는 비가 와도 그대로 흘려 보냅니다 숲속의 나무는 내가 누구인가를 모릅니다 숲속의 나무는 잎을 달아 노래하고 꽃을 달아 호젓이 명상하다가 열매를 피워 스스로의 무게를 가늠해 볼 뿐 지나가는 산토끼나 다람쥐 그들을 그대로 있게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모르는 숲속의 나무는 그대로 선 채로 낮에는 햇빛 먹고 밤에는 달빛 먹고 살아갑니다 아득히 먼 별빛 우러러 숲속의 나무는 하늘의 뜻 알아차리고 흐르는 물소리로 땅의 기운 알아차립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모르는 숲속의 나무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신발과 함께
내가 살아온 길들은 희미해지고 내가 살아갈 날들이 환하게 다가보이는 이 중년의 나이, 희한하게도 아직 모든 꽃들을 보면 그 꽃들 슬퍼 보이지 않고 흘러가는 강물 보면 따라 나서고 싶지 않은 마음 다시 말하면, 길가는 저 여인이 아름다워 보이고 새들 지저귀는 저 숲의 나무들이 평화롭게 보여 지금 서 있는 이 자리 발밑에서는 풀싹이나 땅가아지들 꿈틀거리는 듯 하고 내가 걸어가면서 만난 먼 산이 다가서 보이는 나이 수시로 바람이 지나가며 '그대를 누군가가 나쁘게 말하더라' 혹은 '그대를 누군가가 좋게 말하더라' 해도 똑같은 음률로 전해져 들리고, 내 귀가? 하고 의심할 겨를없이 해가 서산을 넘어가도 '열심히 살아왔노라'고 오늘 하루도 무사했던 나의 친구인 신발과 함께 낯익은 골목길 들어서는 것이다 불빛 희미한!
저 나무가 혼자만의 생각으로
저 나무가 혼자만의 생각으로 푸르른 것은 왠지 몰라도 저 나무 아래 쉬어간 사람들의 그림자가 그만큼 짙게 깔려있기 때문 아닐까
저 나무가 혼자만의 생각으로 잎을 떨구고 사람들의 발자국 멀어지게 하는 것은 저 나무 주위를 돌고 있는 해와 달이 그들의 어깨 위에서 늘 일러주는 탓 아닐까
사람들이 모였다가 뿔뿔이 흩어져도 저 나무는 그들만의 세계 안에서 푸르름을 더하며 온갖 벌레와 새들을 키우는 것은 다가올 落果의 가르침처럼 하나 둘 잎을 떨굴 때 바람 앞에 수긍하기 때문 아닐까
삶
노래하는 것은 기쁘고 노래하는 것은 슬프고 그 모든 기쁨과 슬픔 구름으로 떠서 흐르네
청솔가지 사이로 빤히 올려다 보이는 하늘 보고 있으면 우리가 벌판 지나 언덕 넘어 온 길 환하게 비치고
구름 떠 간 그 뒤론 새소리에 귀를 여는 나뭇잎들의 출렁거림
가고 오지 않는 날들과 와서 머무르는 시간과 다가올 것들의 막연한 기대로 노래하는 모든 것들은 기쁘고 슬퍼도
우리가 서 있는 땅위에서 하늘은 높아뵈는 것이다 언덕 너머 바다는 안 보이는 것이다
꽃이 핍니다
우리가 아롱다롱 살아가면서 죄짓고는 못 산다고 꽃이 핍니다
검은 마음 검은 꽃은 없어도 전생에 노랑저고리였던 개나리 다홍치마였던 진달래꽃에 이어 보랏빛 머리칼이었던 라일락에 이르기까지 산에서 들에서 골목에서 집안에서 피어나는 꽃, 꽃들
저대로는 참한 얼굴들 하고 가릴 것 없이 숨길 것 없이 부귀도 공명도 자존도 엄포도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너 나 할 것없이 복되게 살자고 햇빛하고 친구 되고 바람하고 친구 되어 맑은 향기로 술 담그며 푹 젖어옵니다
흐르는 구름 내버려두고 굽이치는 江물 내버려두고 죄짓고는 못 산다고 죄짓고는 못 산다고 과욕일랑 바다 멀리 밀어내어버리고 오직 한 마디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세요, 사랑해 주세요…….
열번을 속삭여도 침마르지 않는 꽃이 핍니다
시를 써서 무엇하나, 사람들아
시를 써서 무엇하나, 사람들아, 내가 좁은 시장길 빠져 나오며 생각한 것이었네 시장바닥에는 생어물 건어물 포함해서 아직도 살아있는 닭들까지 그들이 탄생시킨 달걀무더기, 팔 없고 다리 없는 것들까지 참 많기도 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쯤 해서 똑같은 틀 속에서 뜨겁게 익어 나온 붕어빵들 무슨 좋은 세상 맞은 듯 줄지어 얹혀 있지만 너들은 말을 못해 말을 못해! 움직일 수도 없어! 하며 귀뜸해 주려다 말았지만 그처럼 부질없는 일도 없듯이 사람들에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시를 써서 무엇하나? 차라리 산골짜기 시냇가 언덕 위에 피어나는 착한 꽃이 되지 꽃이나 되지 이렇게 중얼거리고 싶었네
쑥부쟁이의 노래
우리가 먼 길 가는 바람 앞에서 늘 배웅하는 자세로 흔들린다면 흐르는 시냇물도 제 갈 길 따라 가겠지만 가서는 오지 않는 이름들이 가슴에 남아 밤이면 무수한 별들의 재잘거림으로 높이 떠서 이마 위에서 빛날 일 아니겠는가
심지어 때아닌 먹구름장 겹겹이 몰려와 천둥과 번개를 일으켜 위협할 때도 땅에 뿌리박고 사는 죄 하나로 흠뻑 비 맞고 놀라 번뇌의 세상 굳굳하게 견뎌낸다지만 표석처럼 지키고 선 이 땅의 이름은 얼마나 거룩한 것인가
생각해 보면 먼 길 재촉하는 구름이나 수레바퀴 굴러가는 소리 귓전에 사무쳐 오지만 스스로의 무덤을 만들며 스스로의 잠언을 풀어내는 몸짓 하나로 남아서 모두가 떠나도 떠나지 않고 푸른 손 휘저으며 여기 섰노라
쓸쓸한 느낌
산그늘이 깔리듯 때로는 쓸쓸할 때가 있다 길을 가다가 마주친 풀꽃 한 송이에 눈을 주고 돌아선 발걸음처럼 하나의 단추가 풀어질 때가 있다 너와 내가 붉은 보도블록 위를 걸어가거나 라일락꽃 핀 장독대가 있는 집 골목을 돌아나오거나 두 갈림길의 거적 위에 서서 굳바이 하며 비껴가는 새가 될지라도 거기 누워있는 누워있는 잔돌처럼 세상이 접혀진 종이학 같을 때가 있다
세월
저 나무들이 아프고 저 풀잎들이 아프고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아프다
자작나무 가지를 옮겨다니는 새소리가 아프고 바위틈 기어오르는 다람쥐 발바닥이 아프다
빠져나가는 개울물소리가 아프고 건너다 보이는 비탈의 꽃나무 앉은걸음이 아프고 아프다
포옹무한(抱擁無限)
살다보면 하늘이 맑게 보여 사랑하는 법 익히고 비오는 날은 배깔고 누워 뒤척이다가 천정보면서 한숨도 쉬지만 우리가 정작 사랑하려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하려면 마음에 쓴 모자를 벗고 편하게 안길 일이다 서로 안아줄 일이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닳은 손톱 밑에 밤이 내리면 산그늘도 문안 들어 밤이 내리면
피곤한 당신의 어깨 위에 이슬 젖은 달아,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 모밀꽃 하얀 숲 속에서 뒤돌아 보며 뜨는 달아
강을 건너면 부서지는 물살 얼굴 씻고 뜨는 달아
오늘 밤도 피곤한 당신의 어깨 위에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창가에 기대서서 바라보는 달아, 달아
저쪽나라 별나라
이승에서 발 묶이면 저승이 그리운 法, 살아서 못다한 말 새들에게 전해주고 죽어서 흙에 묻히면 黃天江 물 되나?
뚝뚝뚝 소리치며 풀물 듣는 저 하늘 세상이 좋건만 비끼는 구름 좋건만 이승에서 눈 감으면 저승사자 날 불러 귀신 되라나?
전생에 꽃이었다가 다시 태어난 목숨 밤하늘 높이 솟아 혼불 밝히는 별이 되라나? 별이 되라나?
낙타풀의 노래
나는 너를 낙타풀이라 부른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 비 한 방울 입맞춤 하지 않는 수천년 세월동안 거기 뼈를 묻은 사람들 걸어서 五天竺國까지 간 스님들 헤진 발바닥 소리까지 귀 없는 귀로 듣고 가시 돋힌 네 몸뚱아리 사막의 낙타는 피 흘리면서까지 너를 뜯어먹으며 비단을 실어 날랐지 나는 네가 남아서 지키고 있는 그 길을 실크로드라 부른다 오늘의 내가 그 길따라 비단금침의 꿈 버리지 못하고 벋어가는 것은 낙타풀 네가 있기 때문이다
저 흰 꽃잎
ㅡ未堂 가시던 날
저 흰 꽃잎 좀 봐! 무겁게 내려앉는 붉은 꽃잎이 아니라 스민 것은 모두 버리고 가볍게 흩날리는 저 무명적삼같이 바람에 날리는……
나는 보았지 봄날의 연두빛 잎과 노랑나비를 그리고 철쭉꽃같은 분홍의 꽃잎을……
아니면 숨가쁘게 울어대는 여름날의 매미소리와 짙은 녹음의 무장을……
그러나 살아 있다는 것이 때론 즐겁고 쓸쓸키만 하듯 손내미는 단풍들의 잡히지 않는 하늘속에 기러기처럼 가고 있는 것이 무엇이었더란 말인가
아, 저 흰 꽃잎! 세상걱정 모두 잊은 듯 멀어져 가는 발걸음 앞에 두 손 모으듯 쌓여서 조금도 아플 것 없는 저 몸뚱아리들!
좀 봐!……
내 사랑 봇나무
사랑 사랑 봇나무 내 사랑 봇나무 희디흰 나무 줄기에 잎새들 노랗게 물들면 바람도 불어들어 간지럼 주며 심술궂게 사랑한다 말할 꺼냐 아니 할꺼냐고 보챌 것이고 보면,
사랑 사랑 봇나무 내 사랑 봇나무야 다른 남자 굳센 팔에 뺏기지 않으려고 봇나무 너는 알아 안간힘 쓰면서 내 품으로 사르르 안겨들며 사랑한다 말하겠지
사랑아, 길을 묻는다
산길에서 쉬고 있을 때 풀대궁에 의지해 두 마리의 곤충이 두 몸 맞대며 사랑을 나누고 있는 광경 한참을 바라보고 있을 때
사랑 한번 제대로 못해 본 내가 아무도 찾지 않는 산길에서 더 이상 거슬러 오르지 못하고 내려오고 싶은 마음일 때
풀숲 뒤적이는 바람과 바삐 흘러가는 개울물소리 그들이 하나 되지 못할 때 이렇게 세상이 나를 등질 때
여름비
잠 오지 않는 밤 내게 비가 또닥또닥 내리고 있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네
그 女人을 남들도 이쁘다고 하는데 멍든 풀잎세월 함께 해 온건 아니지만
호젓한 산길 가다가 이름없는 풀대궁에 산나비 한 마리 찾아와 앉듯 그렇게 만나는게 인생이듯
아아,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사막같은 내 마음에 이제, 비가 또닥또닥 내리고 있어요
은사시나무의 추억
은사시나무 숲속에 가보았네. 일상의 그대가 내게 비워준 한 공간을 보기 위하여 밥 거르고 눈물 거르고 커피타임 거르고 오랜 은사시나무 숲 속에 가 보았네.
그대는 보이지 않고 은사시나무 즐비해 있었네. 나는 서성거렸네. 어딘가에 숨어 있을 그대의 하얀 입김 찾으려고ㅡ
그대가 대신 보내준 혼령의 새들만 울고 있었네. 그것도 괜찮았네. 은사시나무 가녀린 등살 너머로 은사시나무 긴 그림자 널리고 은사시나무 그저 서 있을 뿐 아무 인기척도 없었네. 그렇게 우리도 아무 말 없었네.
사모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몸부림 쳐도 그대 없는 밤 별은 돋아나고 그립다 그립다 그립다 말해도 꽃은 피어납니다.
그대가 내 손 잡을 때 우주는 하나인 듯 든든하지만 멀리 있는 그대, 하늘의 별인가요 꽃인가요?
사랑하면서도 연신 부는 바람 속 그대의 얼굴 지울 길 없어라.
사랑 別曲
사랑은 물 마시고 천천히 걸어서 오는 것 걸어서 오다가 다리가 아프면 버스 타고 오는 것 버스 타고 오다가 빵구나면 택시 타고 오는 것 택시 타고 오다가 박치기 하면 비행기 타고 오는 것 비행기 타고 오다가 미사일 맞으면 영원히 못 오는 것
장미꽃 한 다발
그대가 건네준 장미꽃 한 다발 가만히 세어보니 열 송이 송이마다 향기 품었네
지금은 어둠을 배경으로 하여 홀로 주무시고 계시겠지만 뿜어대는 장미의 향기 나는 잠이 안 와ㅡ
어디에 있는가 그대의 얼굴, 눈동자, 눈썹, 귀, 코, 입..... 가늘은 손목 죄어주던 그대 손목시계의 초침소리
인생이란 그런 거야 꽃다발을 선사 하고 선사 받고 훌쩍 떠나버려 공허하고 더욱 외로운 그런 거라고 누가 일러주겠지
그대가 내게 건네준 빨간 장미꽃 한 다발 세어 보니 열 송이 다 똑같이 그대 닮았네.
목마른 밤
이밤이 만약 그대와 千里 안에 든 시간이라면 나는 해바라기 씨를 까먹고 이밤이 만약 그대와 千里 밖에 놓여있는 놋요강이라면 호박씨를 심겠어요.
밤마다 문지르는 마른 풀들의 몸살과 고장난 시간의 침묵이 빛나보이는 숲에서 빈 컵이 희망하는 물과 장미꽃이 목마른 밤,
만약 그대와 나 사이가 바람부는 절간이라면 구름 쓸린 그 자리 땀나는 碑를 세우고 진정 그대와 나 사이가 비 뿌리는 처마밑이라면 몇날을 서서 기다려도 좋으리.
나뭇잎은 떨어져 어디로 가는가
나뭇잎은 떨어져 어디로 가는가, 내 배고픈 사랑이여 무시로 푸르던 잎들이 죄다 쓸리어가는 이 마른 길 위에 당신은 어디 있고 정작 흰눈 쓰고 가야 할 당신은 어디에 있고 시린 입술 위에 찬바람 몰아칠 때 정작 사랑은 빈 콩깍지 소리를 내고 다시 만나자는 기약없이 두 손 부여잡아도 한숨만 쌓이는 이 형편없는 인간의 마을 나뭇잎은 떨어져 어디로 가는가 내 골병든 사랑과 함께.
왜 수레바퀴는 굴러가서는 돌아오지 않는가
왜 수레바퀴는 굴러가서는 돌아오지 않는가 한참을 생각다 보니 날이 저물었다. 두 송이의 꽃과 두 개의 찻잔을 마주하고 내다보는 창밖 눈은 내리고 기별없이 눈 내리는 소리 지금 어디메쯤 언 땅을 딛고 내 마음 천년 수레바퀴는 포로의 강을 지나 어느 잡목숲을 굴러가고 있는가 비운 찻잔을 놓고 마주앉은 사람의 눈을 들여다 본다 바람이 분다 사람의 따뜻한 체온이라지만 난로가 없고 저 유리문이 없다면 들짐승과 다름없다는 생각에 왜 굴러간 수레바퀴는 시간의 기름을 치고 돌아오지 않는지 옷깃을 세우고 우리가 일어날 즈음 눈은 멎고 깜깜한 하늘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두 힘의 수레바퀴는 지금 한짐 가득 눈뭉치를 싣고 더욱 미끄럽게 미끄럽게 이 세상 끝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도 그처럼 가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듯 미끄러운 유리문을 밀고 나왔다.
당신에게로 가는 길
별들이 차거운 밤이면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보입니다 눈덮인 언덕을 지나서 희디흰 달빛을 구부려서 당신에게로 가는 길은 멀고도 아스라하지만 오늘밤 내 마음속에 뻗쳐오르는 한 송이 불꽃, 불꽃을 찾아서 당신에게로 가는 길은 먼먼 고구려적 사내가 꽁꽁 언 겨울강을 건너서 말을 달리고 천변(川邊)의 잔돌들이 이마 맞대고 살 부비는 밤 어디서 호(胡)개가 나타나 정강이뼈 물어뜯을 것 같지만 자작나무 숲속엔 어린 눈꽃송이들이 칭얼칭얼 깨어서 우는 아이와 같이 툭툭 매맞는 소리 들리지만 당신에게로 가는 따뜻한 시간의 역사는 천년 하늘에 수놓인 밤별처럼 아름답습니다.
꽃피는 나의 愛人을 위하여
능금꽃이 만발한 과수원을 돌아서 오는 시간까지 그대 손톱에 밀리는 파도소리에 뻐꾸기가 섬을 만드는 시간까지 모두 합해서 조그만 오두막집을 지으리.
바람이 길을 여는 골목 그 어디쯤 천년 묵은 돌거북 한 마리 댓돌처럼 앉혀놓고 능금꽃이 만발한 과수원을 돌아서 조약돌 세며 오는 그대를 맞아 올해에도 꽃이 많이 피게 나는 빌고 또 빌었다.
비 오는 날
푸른 하늘을 이고 과일향기 날리며 오던 사람도 뚝 멈추고 연일 비가 옵니다.
새 무명옷 갈아입고 돌담에 기대어 서면, 동백기름 냄새로 머리 빗어 넘기시고 한 걸음 한 걸음 깨끔발로 오던 그 사람.
지금 어디쯤 비듣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출렁이는 머릿단 쉬어놓고 빈 바구니의 하늘 가장자리를 젖어드는 헝겊의 풀밭처럼 바라보고 있을까?
우리가 정작으로 사랑하려면
산다는 것은 어찌보면 아침이슬과 같다 발가벗은 채 영롱히 빛나더니만 어디론가 흔적없이 사라져 옷가지 하나 남김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물머금은 조약돌처럼이야 매양 지낼 순 없다 해도 찬란히 틔어보이는 햇빛이나
꽃처럼 살 수 없을까 날 흐리고 비 퍼부면 자취없이 숨어버리는 새들이나 그리운 이의 옷자락처럼 살아 무엇한단 말인가
우리가 정작으로 사랑하려면 개울바닥에서도 옷 다 벗고 누워 밤하늘의 별을 오래 바라볼 일이다
포옹무한(抱擁無限)
살다보면 하늘이 맑게 보여 사랑하는 법 익히고 비오는 날은 배깔고 누워 뒤척이다가 천정 보면서 한숨도 쉬지만 우리가 정작 사랑 하려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하려면 마음에 쓴 모자를 벗고 편하게 안길 일이다 서로 안아줄 일이다
그대와 함께 걷는 밤
그대와 함께 걷는 밤은 참으로 밝고 아름다워라 모든 눈물은 잠들고 모든 죽은 자는 슬프고 그대와 함께 걷는 밤은 나뭇잎 정답게 떨어져 내려 발걸음 앞에 머문 사랑 별들은 빛나고 어디에서 밤은 우리들 커텐을 드리우는가
그대와 함께 무작정 걷는 밤은 참으로 밝고 아름다워라 한때는 멀리 떨어져 이름도 모르고 지내다가 한 마리 꽃사슴 ?사슴같이 내 곁에 와 걷는 밤
능금꽃 사랑
님이 웃으면 능금꽃 나무에 능금꽃 벙글어 하, 좋다는 하루가 그냥 지나가고 님이 화내면 뾰죽이 내민 입술모양의 능금꽃 땅에 떨어져 그날은 흰구름만 잘도 떠 가요
님은 나를 따르고 나는 님을 끌어 울타리 넘어 능금꽃 그늘에 오면 님은 말없이 얼굴 내밀고 내 입술 포개어 꼼짝 않고 있으면 바람에 떨리는 능금꽃 모양으로 님의 입술 파르르 떨려요
내 사랑
길을 가다가도 문득 하늘을 보다가도 문득
지금은 안 보이지만 생각나는 사람
이 하늘 아래 꽃잎 접고 우두커니 서 있는 꽃나무처럼
내 생각의 나뭇가지는 서(西)으로 뻗어 해지는 산 능선쯤에 와 있지만
밥을 먹다가도 문득 다른 길로 가다가도 문득
안 보면 그뿐이지만 생각나는 사람
고귀한 사랑
내 아직 그대를 생각하고 있는
등뒤에는 우리들 못다한 사랑
눈물의 손수건이 널려있는
그 하늘에 그대와 짙은 쑥향 맡으며
지나온 길이 보이기 때문, 그대가 와서
이런저런 사유로 돌아설라치면
그 쓸쓸한 남은 사랑의 후회가
얼마나 막심하리요 한평생 살다 간다 해도 짧은 생애
그대가 먼 숲을 보지 않고
발 아래 깔려있는 안개만 보고서
걷는다면 이 또한 슬픈 일이라,
나 그대를 아직 생각하고 있음은
그대가 진실로 사랑을 알고
정신적 풍요 누리며
어두운 한 세기의 등불 켜 두고
가는 게 아닐까. 늘 말하듯이, 혼탁한 세상이더라도
깨어있는 꽃이 아름답듯 그
렇게 마주하고 산다면
생활의 주위에 널려있는 모든 것들은
참으로 아름답게 보일 일인 것이다.
헤매이는 시간
오늘도 당신을 찾아 헤맸습니다.
길고 긴 하룻날 밤이 올 때까지,
그만큼 당신은 먼 발치에서 나를 불렀습니다.
저녁숲이 일제히 무너져 내릴 때 난 알았습니다.
당신이 아직 걸어서 올 때가 이르다는 것을
알면서 왜 이리 마음이 뒤척일까요. 당신을 찾아 헤매던 길에 새옷 한 벌 사서 입었습니다.
물론 당신은 모르실거고 나만의 시간이었습니다.
내 옷의 색상처럼 세상은 수많은 빛깔과 유형으로
새롭게 다가서는 것이지만
당신을 찾아 헤매는 시간은 그대로였습니다. 눈 돌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그립고 아름다운 시간은 당신의 시간인 것입니다.
어디에 있든 당신이 만드는 나의 시간이니까요 시를 써서 유리창에 붙이고
흘러가는 물살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잔잔한 수면 위로 우리가 함께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밤이 오면 다시 무너지는 당신과 나의 육신
보잘 것 없는 육신임엔 틀림없나 봅니다.
슬픈 밤이 오거든
슬픈 밤이 오거든 그대여 창을 열고 별을 보라 나는 거기 지상의 괴로운 꽃으로 피었다가 하늘의 별 되어 울고 있으리니, 그대가 만약 창을 닫고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는 명상에 잠기신다면 나는 나는 별 사닥다리 타고 내려와 그대 창가 부서지는 이슬 되리니, 밤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가슴과 같은 것 실로 우리가 우리의 가슴을 어루만지지 못할 때 그대는 지상에서 나는 하늘에서 하염없는 눈물 흘리리.
연인
내 연인은 잠들고 한 시간쯤 전에, 나는 앉아서 소쩍새 울음소리를 듣는다 내 연인은 멀리 있는데 나는 저 새가 내 연인이 잠들고 나서 찾아온 밤손님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사연을 넣어 보낼 때 우체부가 배달하듯 잠든 내 연인이 대신 보내온 사연의 소리가 저토록 내 밤의 골짜기를 샅샅이 뒤지는 것이다 내 연인은 세상 등지고 잠들고 나는 아직 세상과 마주하고 앉아 있는데 잠든 내 연인의 창은 어둠으로 가득한데 내 방의 불빛은 환하게 창밖을 내다본다
쓸쓸한 느낌
산그늘이 깔리듯 때로는 쓸쓸할 때가 있다 길을 가다가 마주친 풀꽃 한 송이에 눈을 주고 돌아선 발걸음처럼 하나의 단추가 풀어질 때가 있다 너와 내가 붉은 보도블록 위를 걸어가거나 라일락꽃 핀 장독대가 있는 집 골목을 돌아나오거나 두 갈림길의 허적 위에 서서 굳바이 하며 비껴가는 새가 될지라도 거기 누워 있는 누워 있는 잔돌처럼 세상이 접혀진 종이학 같을 때가 있다
지금 그 사람은
나뭇잎은 떨어져 쌓이고 내 사랑은 오지를 않네 오늘 못 오면 내일이면 오시련가 나뭇잎은 떨어져 쌓이고 바람도 못 견디겠다는 듯 불어 눈물나네
지금은 가야 할 때
그대 더디 오시거나 안 오시거나 간에 꽃 필 때 바람 꽃 질 때 바람 향기 다르고 나뭇잎 흔들릴 때 바람 땅에 떨어져 굴러갈 때 바람 그 기분 영 틀리듯 유리창 밖 하늘이 부옇게 칠해진 낮은 시선일 때 그대 더디 오시거나 영 안 오시거나 간에
물
그대 눈물 그 빛깔의 반짝임
햇빛의 프리즘을 통하여 나올 때,
온갖 꽃들도 찬란한 눈물을 하고 내 가슴에 안기어 드는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
나비와 엉겅퀴
땅속 흐르는 물 움켜쥐고 한 세상 펼쳐 보이며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아왔지만 이내 그는 떠나버린 뒤였지
어느 꽃들보다 고운 자태 뽐내며 제일로 여기는 사랑이었지만 달려가서 붙잡을 수 없는 신세, 그는 다른 꽃의 情夫가 되어버린 그 뒤였지
몇 날이 지나가고 다시 새날이 와도 어쩌면 한 목숨 다 바쳐 사랑하려 했지만 홀로 갈 머나먼 길 씨방 하나 간직하며 묵묵부답일 뿐이었지
어떤 사랑노래
뻐꾸기가 드디어 울기 시작하여서 내 애인의 속눈썹 바람 불기 시작하여서 무화과나무 꽃피기 시작하여서 천오백년쯤의 바다가 길을 열기 시작하여서 바퀴달린 마차 다시 굴러가기 시작하여서 비로소 나는, 안 보아도 괴롭지 않은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네
길 밖의 사랑
당신이 나를 길 밖에 세워두고 말없이 숨어버리면 꽃은 피어나겠지요. 그 꽃은 당신이 숨어버린 그때 그 시간에 피어나 고개 갸우뚱하다가 해지면 해지는 쪽의 바람에 머리칼 헹구고 아무도 그 길을 찾아오지 않는 밤 몰래 밤이슬 따먹고서 다른 이름의 집을 짓기 시작할 즈음 전화를 걸어와 벨을 울리겠지요 당신이 하염없이 벨을 울릴 때는 꽃은 지고 없고 간간이 빠져나갔던 썰물들이 내 무릎까지 차올라 흥건하겠지만 그 길 밖에는 소나기가 또 밤새도록 내려서 잠든 집들의 문간에서 서성이겠지요
연인
내 연인은 잠들고 한 시간쯤 전에, 나는 앉아서 소쩍새 울음소리를 듣는다 내 연인은 멀리 있는데 나는 저 새가 내 연인이 잠들고 나서 찾아온 밤손님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사연을 넣어 보낼 때 우체부가 배달하듯 잠든 내 연인이 대신 보내온 사연의 소리가 저토록 내 밤의 골짜기를 샅샅이 뒤지는 것이다 내 연인은 세상 등지고 잠들고 나는 아직 세상과 마주하고 앉아 있는데 잠든 내 연인의 창은 어둠으로 가득한데 내 방의 불빛은 환하게 창밖을 내다본다
길
저녁이면 붉게타는 숲속에 그대의 호수만 비칩니다 멀리 있어, 나랑 함께 걸어보지 못하는 길 위에 풀들은 일어서고 풀들은 깨어나 길을 갑니다
밤이 오면 숯덩이같은 어둠 속에 그대의 눈빛은 살아 빛납니다 내 아직 가보지 않아 맑은 호수 그대가 부려놓은 시간이 넘쳐나고 그 길 안 보일 때까지 길은 굽어 있습니다.
남남
그대가 만약 등 돌리신다면 나는나는 찢어진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모란그늘에 시드는 적적한 시간 커피를 마시겠어요
마음이 배고프면 머언 山도 포개어져 보이는 법, 욕심없이 일정한 거리에서 그대와 나를 사수하는 저 나무의 새소리 그대로 있게 하는 하늘이여
그대가 만약 등돌리신다면 밤은 일찍 찾아들어 서로 다른 집의 목소리 방향이 각각 다른 바람 맞으며 사막에서 혹은 숲 속에서 서로 다른 별을 올려다 보겠지요
눈 내리는 밤
눈이 내리고 있어 그대는 돌아누워 보이지 않지만 옛날의 그 눈이 지금은 새로 찾아온 하늘 위에 눈이 내리는 것 보면 눈이 내리는 것 보면 마음이 아픈 거야 마음이 슬픈 거야, 내 마음의 골짜기 찾아온 꽃사슴 돌돌 이불 말아 가버린 것처럼 그러나 눈이 내리고 있어 싸늘한 등 떠밀어제끼는 설악의 눈, 알프스의 눈, 눈, 눈, 눈,…… 눈이 내리고 있어 정말이지 어제의 너와 나 오늘이 있기까지 그러나 돌아누운 그대 편히 잠들리
雨中에 서서
사랑하던 사람이여 비가 내리네 어제는 날이 흐리더니만 오늘 비가 오네
가슴을 적시던 비가 이제는, 내 마음 동맥의 강물을 적시고 있네
사랑하던 사람이여 내가 그대의 눈물이라면 그대가 나의 눈물이라면
이 비 맞으면 나는 우두커니 서 있어도 좋아라.
오가는 사람들은 비를 피하고 어깨 나란히 우산 속을 걸어가지만 나는 호을로 스스러운 길목에서 이 비를 맞고 섰네
달밤
내 사랑 달밤에 치자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치자꽃 꽃그늘에 밤새도 따라 울었습니다 온다던 그대 발자국 소리 십리 안에 들립니다
먼 강물소리 손금따라 흐르는 밤 운명의 나뭇가지도 동창으로 벋친 밤 뜨락엔 어제 내린 찬 빗물 고여 환환 밤
달아 달아 불러봐도 더 높이만 치솟아, 잠든 바람은 어느 풀밭에 가 멎었는지 온다던 그대 발자국 소리 들리지 않습니다
낙엽
그런대로 한 세상 살으시라는 당신의 말씀 잊고 뒷문 밖에 나갔더니 우박처럼 쏟아지는 추억 한 장 두 장…… 당신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보이지 않으니, 추억 열 장, 스무 장,…………
셀 수가 없네
비릿한 꿈 하나
이대로 내가 돌이 된다면 너는 알까? 싸늘한 돌담에 기대어 서서 민들레꽃 피기를 기둘리는 마음
봄은 가고 또 오건만 산딸기 향기로 눈이 내리면 너를 부르며 손짓하던 뜨거운 海溢처럼 여기, 비릿한 꿈 하나 심어두고 가리라
새벽 물소리
새벽녘이면 당신이 두고 간 흰 손수건의 물살 부서지는 소리 들립니다 간밤 내리던 소낙비에 흠뻑 젖은 함박꽃같이 부풀어 올라서 당신이 깔아놓은 풀밭 쓸어내리며 이제는 아무도 어루만질 수 없는 새벽 물소리만 차고 쓸쓸하게 들릴 뿐입니다
<徐芝月 詩人 약력>
1955년, 음 5월 단오날 대구 달성 출생. 본명 서석행. 대륜고등학교를 거쳐 대구대학교 졸업. 1985년,『심상』신인상에 시<겨울 信號燈>외 3편 당선. 1986년, 6월,『아동문예』신인문학상 동시<바람에 귀대이면> 외 4편 당선. 1993년, 제3회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1986년, 8월,『한국문학』신인작품상에 시<朝鮮의 눈발> 당선. 1999년, 전업작가 정부특별문예창작지원금 일천만원 수혜. 2002년, 중국「長白山文學賞」수상.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2000년대 시인회의」상임고문. <낭만 시> 동인. 시집『꽃이 되었나 별이 되었나』(1988, 나남출판사) 『江물과 빨랫줄』(1989, 문학사상사) 『가난한 꽃』(1993, 도서출판 전망) 『소월의 산새는 지금도 우는가』(1994, 시와 시학사) 『백도라지꽃의 노래』(2002, 중국「장백산」문예잡지사) 『지금은 눈물의 시간이 아니다』(2003, 천년의 시작) 현재,『대구시인학교』, MBC문화센터, 롯데백화점, 경주대학 교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 지도시인.
# 주소:우 <711-860>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78,「娥眉山房」 전화:(053)767-7421 이메일: poemmoon@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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