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초도 여행
오미숙
여수 섬을 돌다보면 바다를 에워싸고 있는 섬이 등대 같다는 생각을 한다. 활발한 왕래에 에너지 넘치다가 사람들이 빠져나간 후 쓸쓸한 섬. 낮에는 필요치 않지만 밤이면 지나가는 배들에 불 밝히는 등대처럼. 좋은 사람이 늘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처럼 섬도 등대도 그렇다. 그래서 섬이 좋다.
섬 중에 안도, 개도, 하화도, 상화도, 금오도, 연도, 여자도, 사도, 거문도, 백도등 섬들과 자주 가는 낭도,백야도와 화태도,경남의 외도와 거제도,그리고 청산도와 보길도,선도,선유도,임자도 등 전남의 섬들을 둘러 보았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섬은 이십여 년 전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과 간 거문도, 옥색 바다에서 수영하던 아이들과 불빛에 모여드는 하루살이와 등대아래 밤바다가 늘 그립다. 오늘 섬을 보기 위해 초도로 간다.
오후 5시, 손죽도 지나 초도에 도착했다. 거문도를 향해 떠나는 배를 뒤로 하고 부둣가를 서성거렸다. 벌써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는 중이었다. 조금 가다 익숙한 얼굴이 있어 자세히 보니 김 모 시인이었다. 인사를 하니 차가 있냐, 민박집은 구했냐, 밥 먹을 곳은 있느냐 물어 오니 이제야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온 여행이라는 생각에 난감했다. 심지어 옷과 칫솔 등 세면도구 하나 들고 오지 않았다. 예고없이 떠난 여행은 한두 번도 아니고 이미 배 떠난 후라 민박 할 수 밖에 없다.
김 시인은 예약하지 않으면 초도에서는 굶게 될 거라면서 농을 던지고는 우리를 민박집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주인 아저씨는 고기를 잡다 다리 하나를 잃어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도 운전도 하고 청소도 하는 부지런한 분이었다. 아주머니의 깔끔함 덕분일까? 널판지처럼 반듯하게 다려진 바지 한 쪽은 허리춤에 끼워져 있었다. 인상 좋은 아주머니는 식사 시간을 알려 주며 바다로 나갔다. 시인이 아니었다면 대책없이 온 여행이라 굶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맞은편에 있는 민박까지 구해주고 시인은 차로 섬을 구경시켜주었다. 민박집에서 잠깐 들어갔다 산책이라도 갈 요량으로 다시 나왔다.
오월의 섬은 따뜻한 햇살과 적당한 바람이 불어 안성맞춤이었다. 여섯시 저녁 예약을 해 놓아 금방 식당으로 돌아왔다. 생선 한 토막과 각종 해산물은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세상 어디서 맛 볼 수없는 바다의 맛이라니!
식사가 끝난 후 밤산책을 나왔다. 밤바다 별빛이 참 좋다. 가로등 불빛이 전부인 섬에 바다 위로 등대의 빛이 내리 비춘다. 모두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저녁을 먹고 일찍 잠이 들었겠다. 어둠이 내린 바다는 우주에 떠돌고 있는 운석 같아 나도 어느 새 같이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반짝이는 별마저 외롭다. 아무도 곁에 없었다면 얼마나 외로웠을지.
우리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섬에서는 딱히 밖에 나갈 일도 없어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다. 밖은 창백해 TV 속 드라마처럼 공포스런 장면이 나올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밤바다의 두려움마저 좋은 섬이었다. 아무런 할 것이 없어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가고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겠지만 나의 시계바늘은 멈추어있다. 구석구석 섬들 둘러 볼 수 있게 어서 내일이 왔으면.
아침 태양은 마치 처음 마주하는 것처럼 눈부시고 새로웠다. 염소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들꽃들은 이슬을 먹고 해를 받느라 신나 보였다. 산책과 더불어 들어간 민박 식당의 메뉴는 어제와 다른 반찬들이 우리를 맞았다. 반찬은 섬에서 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생선과 시금치, 톳나물,고동무침 섬에서 바다의 해산물을 모두 먹는다. 밖에는 행복버스라 쓰여진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아무도 타는 사람이 없어 기사 아저씨만 혼자 태운 버스는 마냥 기다리다 늦게 출발했다. 학교마저 폐교가 되어 아이들도 없는 섬은 마을과 마을로 빈 차 달린다.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마을이 나타나면 마을 안으로 들어가 돌아보았다. 집 앞의 꽃은 마당으로 훅 들어오는 듯 했다. 아담한 마을들은 우체국 같은 관공서는 하나, 대동리 마을에 경찰서 하나밖에는 없다. 도시의 흔한 가게도 큰 마을에 하나 뿐, 아무리 돌아봐도 다른 가게는 없다. 목은 마르고 가져간 물은 떨어지고 다리도 아프고 지칠 쯤 의성리 마을로 왔다. 오백 년 팽나무 한 그루가 바다쪽을 바라보고 있다. 은혜 갚은 나무라고 한다. 사라호 태풍 때 소금물을 뒤집어 쓰고 시들어 가고 있었다. 선장이 선원들에게 막걸리를 마실 때마다 부어 주라고 했다. 2년 뒤 나무는 되살아났고 그후 선장이 중병을 앓았을 때 꿈에 나무신이 나타나 알려준 대로 했더니 병이 나았다고 한다. 보호수로 관리하고 있는 팽나무에게 잘 버텄내다고 쓰다듬어주었다.
우리는 다시 돌아서 대동마을로 왔다. 유일하게 있는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점심 때가 되어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휴식을 취하고 나오니 해는 머리꼭대기에서 뜨거운 맛을 보여주고 있다. 섬에서의 시간은 늘 같은 자리를 맴도는 먼 시간 위에 놓였다. 버스도 돌아와 있고 모래는 뜨거운 찜질이 한참이다.
대성마을에서 이어지는 오르막을 올라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양식장이 논같이 반듯하다. KT기지국이 서 있는 작은 마을까지 와서 배를 타고 나가자는 아주머니의 유혹을 뿌리치고 왔던 길로 되돌아왔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으로 숨이 목까지 차올랐다. 배 타고 가고 싶다고 불쑥 올라오지만 대동마을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과 포기란 없다는 생각으로 힘을 내었다. 오후도 아직 멀리 있다. 방에 들어와 잠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왔다. 어제와 같이 배가 다시 들어오는 시간 두 명이 민박 집에 왔다. 야생화를 보러 서울에서 온 한 여자는 고향이 나와 같은 대구라고 해 반가웠다. 우선 상산봉으로 간다기에 해 떨어질려면 남았기에 우리도 따라 올라갔다. 339m라기에 금방 올라가겠다 했는데 아래는 평평한 길이라 걷기 좋았는데 오를수록 경사가 심했다. 맨 먼저 도착한 나는 사면이 둘러선 바다와 산 아래로 내려 가는 중인 붉그스레 지는 노을을 보니 눈부시다. 올라오지 않았다면 보지 못할 아름다운 광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곧 어두워질 것 같아 얼른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내려오다 약초 한 뿌리씩 캐서 주니 두 여자는 너무 좋아라 했다. 나와 한 여성이 앞서가고 뒤에서 남편과 대구가 고향인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왔다. 나중에 다른 여자랑 이야기 한다며 눈 흘기는 척하니 고향 이야기 했노라고 변명만 늘어놓는 모습에 그만 웃음이 났다.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쫄깃한 맛이 일품인 거북손을 까며 아주머니는 섬에서 나는 해산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으니 행복하다고 한다. 초도에서 분주하게 사는 아주머니가 섬 생활을 귀히 여기는게 대단해 보인다. 오후 늦게 아주머니는 미역을 캐러 무인도로 갔다. 보물을 건지듯 함박 웃음을 지으며 들어 설 것이다. 저녁무렵부터 비릿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들은 앞방에서 우리는 작은 방에서 잤다. 여행자끼리 나눌 이야기가 있겠지만 그녀들만의 여행의 피로를 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내일이면 돌아갈 그녀에게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란 이유로 굳이 헤어짐을 말할 필요 있을까?
아침에 그녀들은 손죽도에 내리고 우리는 여수로 가는 같은 배를 탔다. 서로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방인처럼 제 갈길로 갈 것이며 다음의 만남에서도 쿨하게 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여행 동안의 일은 생생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기록할 것이다. 여행기는 추억 한 페이지를 남긴다고 생각한다. 먼훗날 들여다 보면 함께 한 날의 아름다운 삶이 보일 것이다.
언제나 섬이 좋다. 스트레스와 피로를 날릴 수 있는 처방전을 주고 걷는 것 만으로도 위로가 되니까
삶이 힘들 때마다 여행은
나에게 격려를 보내고
나에게 설레임의 바람을 보내고
나에게 꽃같은 미소를 보내고
나를 웃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