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는 양평이란?
얼마 전 서울에 갔다가 친한 친구를 만났다.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친구는 내가 아직도 화곡동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은 양평에서 살고 있다고 하자 약간 놀랍고 부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양평? 그 좋은 곳에서 살다니. 참 부럽다. 고향이 경상도이면서 그곳으로 안 가고 어찌 양평을 택했을까?"
아내는 글쓰기를 좋아했다. 특히 시를 좋아해서 문인들과의 교제를 즐겼다. 가끔 나도 아내와 함께 초대를 받아서 그 모임에 어울리기도 했다. 아내가 아직 문단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지 않은 터라 조그만 문인 단체에 소속이 되었다. 그 단체의 장이 양평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의 초청으로 우리 부부가 양평이라는 곳을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그의 집은 망미리에 있었고 10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그러나 약간 좁아 보이는 방 벽이 흙으로 지어진 고옥이었다. 때는 겨울이었기에 좁은 거실에 그래도 화목난로가 있어서 훈훈함을 느꼈다.
그 이후로 아내는 양평에서 받은 인상이 좋았는지 가끔 내게 양평 이야기를 하곤 했다. 평소 고된 도시의 사회생활을 벗어나고자 했던 아내는 기어이 양평에 도자기 공방이 매물로 인터넷에서 뜬 것을 보고는 수소문하여 그곳으로 달려갔다. 보는 날로 계약금을 치르고 매수를 하였다. 벌써 거의 20년 전 이야기다. 그 집을 소유한 이후로 주로 주말에만 양평에 거하였다. 공방이었기에 아내가 만들고 싶었던 도자기도 만들고 초벌, 재벌을 구워 내면서 즐거워했다.
코로나가 엄습하자 아내는 서울보다는 양평이 좋다며 본격적으로 양평 생활을 시작했다. 주거도 옮겨 농민으로 등재가 되었다. 어느 봄날 양평집의 한쪽 벽 속에서 개구리 소리가 합창처럼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개구리가 보이지 않는데 저 많은 개구리소리가 어디서 들릴까가 궁금했었는데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집 바로 옆에 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지르는 개구리들의 합창 소리가 우리집 벽면에 반사되어서 내게 고스란히 합창 소리로 들렸던 것어었다. 시골로 오면서 알게 된 것들의 한 예일 뿐이다. 벗꽃피는 계절이 오면 서울의 여의도에 갈 일이 없다. 양평 자체가 벚꽃 천국이다. 특히 물소리길에 가면 감동의 감탄이 절로 나온다. 추운 겨울이 오면가끔 보는 두물머리의 물안개도 장관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양평을 둘러 흐른다. 자동차로 나가보면 환상의 드라이브코스가 아닐 수 없다. 어는 눈이 쏟아지는 날 처운면에 가 본 적이 있다. 각 산들이 저마다 자랑하는 눈꽃 축제는 강원도를 방불케 한다.
양평! 금수강산 어느 곳이나 내놓을 만한 아름다운 풍광을 가지고 있다. 양평도 그중 하나이다. 더하여 부언하자면 대도시 서울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 큰 이점인 것 같다. 우리 부부도 시골이면서도 서울, 특히 대형병원이 있는 곳을 선호하였다. 나이 듦에 따라 병원에 자주 들락거리게 될 때를 준비하고자 했다. 오 일마다 서는 양평장, 용문장, 양수장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이다. 아주 추운 겨울 어느 날 서울의 손자를 봐 주기 위해서 용문역에서 첫 차를 타기 위해 용문역을 향해 걸어가는데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새벽에 장사를 위해서 그 새벽에 텐트를 손보며 장사 채비를 하는 분들을 보며 세상 사는 것이 이렇게 치열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들을 향해 소리질렀다. "수고 많으십니다!"
용문 종점에서 내가 내려야 할 서울 환승역인 왕십리까지 한 시간 30분. 때로 더 걸리기도 하지만 급할 것 없는 내게는 편안한 관광열차나 진배없다. 돌아오는 길은 좀 복잡하지만 그조차도 감내하며 즐기는 마음으로 온다. 아직은 덜 불편해서다.
양평은 몸집을 더 불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하다. 양평읍에 가 보면 대형 마트가 수두룩하다. 연휴나 주말이면 서울이나 진배없다.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사람 사는 맛이 배어나는 양평이다. 편의 시설이 더 확충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약간의 불편은 우리로 하여금 조금 더 움직이게 하여 좋은 점도 분명 있다. 모든 연령층을 아우르는 것도 좋지만 노후를 보내기에 적당한 양평이면 어떨까 싶다. 노년이 점점 많아지고 작은 시골 마을은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다. 인구 절벽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는
농촌은 이제 거의 기대 밖에 있다.
우리야 지는 해에 비유되지만 우리 뒤를 이어 따라오는 세대에게 어떤 짐을 지우게 될지 걱정만 될 뿐 분명한 대처가 없다.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를 정확히 예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야 가면 그뿐이지만 뒷일은 찜찜하다. 수 천년을 이어온 민족이다. 훌륭한 지도자와 백성들이 대한민국을 존속시켜 줄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이 시대의 양평은 전국적으로도 각광받는 장소이다. 수도권의 밀집지역을 약간 벗어난 쾌적한 전원도시랄 수 있다. 교통 문제만 해결되어도 더 쉽게 더 자주 방문하고 싶은 곳이 될 수 있다. 그것도 이미 삽질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제는 누가 와도 인정 넘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였으면 좋겠다. 다시 옛날처럼 이웃간에 사랑과 관심과 배려가 넘쳐나는 양평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힐링도시, 문화도시가 되어 누구나 이곳 양평에 오면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양평에 살면서도 양평을 잘 모르는 십 여년 차 풋내기이지만 한 곳에만 있어도 사계가 함께 숨쉬는 양평은 따뜻한 곳이다. 노후를 양평에서 마감하고픈 정감있는 도시 양평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