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2003년도의 동방 앞모습
좀 무섭죠? ㅎㅎㅎ
응답하라 2003 <1>
예전부터 항상 마음만 먹었던건데,
제가 거쳐온 지난 10년의 강클연 생활을 이제서야 정리해보려 합니다..
시간이 많이 없겠지만 찬찬히 기억을 되살려 적어보려합니다..
나는 지금도 내가 이렇게 독일에 있다는게 참으로 신기하다고 가끔씩 생각한다.
"내가 그 때 저 문을 통과하여 동방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ㅎㅎ
그만큼 내인생의 모든것이 이곳에서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아직 잘모르겠다구요?
지금은 다들 앞날을 모를겁니다...앞으로 여러분앞에 어떤일들이 벌여질지..ㅎ
먼저 내 대학교 입학전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고자 한다.
나는 완전 강원도 토박이다.
아버지께서 군생활을 강원도에서 시작하셨고
국민학교(ㅎㅎ) 4학년때까지는 화천군 (춘천에서 1시간정도 떨어진 시골) 상서면 신대리 라는곳에서 살았다
7사단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별이 일곱개 그려진 마크)
7사단 내부에 5층짜리 코딱지만한 군인아파트에서 살았던게 기억난다.
어린시절을 완전 군대 내에서 살았다....여러분은 상상하지 못하겠지만...
PX 가 슈퍼고 군대 연병장이 내 놀이터였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만큼 내가 군대내에 오래있었으니 더 이상 군대 가지말라는 신의 계시였던것 같기도 하다...(전 군대 면제됨...미안해요..군인 후배님들)
신대리의 7사단 안에 살다가 5학년때쯤 화천군 시내로 이사왔다.
시내에서도 군인아파트에 살았었다. 그래도 군대 내부는 아니라서 꽤 좋았던걸로 기억한다.
그때 당시 한창 미니카 광풍이 불고있어서 나도 그걸 사보려고 노력했던것 같다.
하지만 군인 이신 아버지의 벌이가 많지 않았기에...
(옛날에는 정말 가난했었다..온가족이 부업으로 인형 눈알 붙이는 일같은거랑 구슬꿰서 목걸이 만드는 일하고 봉투 붙였던 기억이 난다...)
구경만 맨날 하러 다니던 기억이 난다.
그후로 중학생쯤 되던해 큰누나가 춘천의 사대부고로 유학(?)을 가는바람에...
(정말 촌구석에서는 유학이었다...ㅎㅎㅎ)
온가족이 지금의 춘천으로 이사를 오게되었다..
처음 이사온 곳은 지금의 후평동 한신아파트...
후평동의 동부초등학교에 처음 전학을 갔었고...
학교가 생긴지 얼마 안된터라 2회 졸업생이었나 그랬던거 같다..(한자리였던건 확실한데..기억이..ㅎ)
예전엔 중학교를 뺑뺑이 돌려서 한다고 하는데...
(정말로 교육부에서 뺑뺑이 기계로 돌려서 했는지는 모르지만..)
춘천중학교에 입학했다..
기억나는건 매일아침 졸린눈으로 만원버스를 회수권(세상에!!!) 내고 아침에 낑겨서 등교했던걸로 기억한다..9번버스..ㅎㅎ
어릴적엔 그냥 평범했다...뭐 지금도 평범하지만.. 반에서도 눈에 잘 안띄고..공부도 그냥 중간이하?
대부분 시간을 컴퓨터를 좋아해서 만지고 살았던게 기억난다..
중학교때는 피시통신에 미쳐서 날밤새며 컴퓨터 했던게...기억난다 지금은 없어진...하이텔 내아이디 OHJCJ (오희주천재...)
그때 당시에는 인터넷은 고사하고 전화기 모뎀 시대라..
(여러분 다운로드 속도 5kbps 경험해 보셨나요? 1메가 받으려면 10분 넘게 기다려야 합니다..ㅎㅎㅎ)
피시통신을 하구 있으면 전화기를 못쓴다..ㅎㅎㅎ 수화기를 들면 이상한 컴퓨터 음이 나와서...엄마한테 많이 혼났는데..
멋모르고 초반엔 많이하다 전화요금 폭탄 (20만원....)을 맞고 아버지한테 두들겨 맞은 기억이...
그 후로는 머리를 써서 한국통신..(지금의 KT 인가?) 에 내가 전화해서 피시통신 정액제를 신청했던게 기억난다
밤 10시부터 새벽까진가 그사이에 쓰면 정액제로 2만 얼마인가만 내면 됐었던 걸로...
그래서 새벽마다 피시통신의 세계에서 살았다...ㅎㅎ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못할게 없지만...당시 피시통신으로는 뭐 별 대단한건 한적이 없었던걸로 기억한다...
암울한 춘천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갈때가 되었다..
당시 춘천에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를 가려면 시험을 꼭 봐야했다...고교 평준화가 없었기에..
나는 당시 성적이 정말 어중간한 중간이라...
실업계와 강원고(인문계)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수준이었다..
한 끝발차이로 공돌이가 될것인가...아니면 인문계를 갈것인가가 좌우된것이다..
그때 당시 이걸로 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걸로 기억한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구원의 한마디를 해주셨는데..
봉의고등학교를 가면 시험을 안보고 그냥 들어가도 된다는것이었다..
(춘천에서 봉의고만 시험 안보고 가는 인문계/실업계 하이브리드 고등학교..ㅎㅎ)
실업계고등학교를 들어가려 마음을 굳히려 하는순간 나에게 단비와같은 소식이었다.
물론 부모님은 큰누나처럼 사대부고 나 춘천고를 가길 원하셨지만...ㅎㅎㅎ
봉의고등학교에 입학하는건 쉬웠다..
집도 학교와 가까웠다... 지금의 학교 근처인 현대 5차 아파트 (언덕위에)에 이사했을때였고..
춘천중학교 다닐때처럼 학교갈때마다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었으나...
망할 학교가 언덕위에 있어 매일 아침 등산하는 기분으로 다녔던 기억이 난다..
겨울에는 빙벽타기 수준...ㅎㅎ
고등학교 생활도 별다른건 없었다.. 그냥저냥 수준으로 살다가
고3이 될무렵 더이상 대충살다가는 인생 종치겠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수업시간에 항상 선생님들이 하는 말씀은
"너희는 강대가면 서울대 가는거나 마찬가지야!!" 이랬기에
대부분 공부를 잘 안하고 노는 애들뿐이라..
선생님들이 항상 시험전이면 문제를 일부러(?) 가르쳐줬다...
웃긴건 대놓고 가르쳐줘도 애들이 공부를 안하기에...ㅎㅎㅎㅎ
나는 그걸 잘 정리해서 내신성적을 거져먹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정도였냐면 국어 중간고사인가 였는데 여태까지 선생님이 알려준 문제들을 내가 핵심만 뽑아
A4 용지에 정리해서 시험 전날인가 우리반 애들 전체에 뿌렸었는데..
거기에서 시험에 고대로 나온게 너무 많아 반애들이 다 80,90점 맞아서 국어선생님이 난처했던 상황이 기억난다...ㅎㅎㅎ (원래대로라면 40,50점 맞던 애들이...ㅎㅎ)
당시에 나는 한창 음악듣는게 취미였는데
어린나이에도 오디오 바꿈질 하는게 재밌었던걸로 기억한다
돈모아서 시디도 사고... 특히 비틀즈를 좋아했다
진공관 앰프라는 세계에 빠져 서울에 물어물어 올라가...
그때 당시 혼자 서울간다는게 대단했던걸로 기억한다..옛날 경춘천 열차타고..ㅎㅎ
(물론 부모님 몰래..ㅎㅎ)
무거운 부품을 싸들고 한국진공관 앰프 동호회 사무실에 찾아가 거기 회장님을 만나 주말 밤까지 앰프를 만들어 짜장면 시켜서 얻어먹고 새벽 기차를 타고 집에 몰래 내려왔던게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도 진심으로 미쳤던거 같다..ㅎㅎ
이후로도 그 회장님을 몇번 찾아뵙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는데 몇년전에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운명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슬펐던 기억이 난다..
각설하고..그러한 이유에서 나는 전기전자과를 지원했다..ㅎㅎ
수능은 개뿔도 없게 못봤지만...아마 400점 만점에 230점인가 맞았던걸로 기억한다..
당시 획기적으로 나를 위해 (?) 생긴 수시모집이라는 엄청난 제도 덕택에
나는 강원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게 된다...(내신성적 우수자 장학금이었던걸로 기억함...입학할때 20만원 줬나?)
부모님은 내가 강원대에 들어가자 매우 좋아하셨고...(나중에는 강클연 때문에 아주 싫어하게 되시지만.....ㅎㅎㅎ)
나는 드디어 강원대학교 전기전자정보통신공학부(지금은 학부가 아니지만) 03학번으로 입학하게 된다.
다음편에 계속...
첫댓글 10년 전 동방 문 앞 사진은 으스스하네요 ㅎ
잘 봤어요 형~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이제 대학교얘기 시작이네요 ㅋ
오 저도 강클연 가입한게 대학생활중 가장 잘한일이예여!!!
ㅋㅋ 오희주천재의 스토리.. 즐감~ ^^
역시 어릴적부터 범상치않으셧군요 ㅋ
다음편이 기대되네요 ㅎㅎ 재밋게 읽엇어용 ~~ㅎㅎ
저 그림이 정겹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게 비정상인가?
가끔 308호 문 따고 드가서 창문타고 307호로 넘어오던 게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