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트릭랜드였고, 스트로브였으며 블란치이기도 했다.
아주 오랜만에 책 한권을 끝까지 다 읽었다. 하지만 나는 중간 중간 몇번을 쉬었다가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소설 속 여러 인물들에게 내 모습이 자꾸 겹쳐보여 마음이 짖눌리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등장인물을 서술할 때 마치 그들이 아닌 ' 나'를 들켜버린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저자는 스트릭랜드의 삶과 예술에 대한 욕망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는 '사랑'의 범주 안에서 이 책의 인물들에 몰입하며 읽었다.
지나간 사랑속에서 나는 스트릭랜드였고 또 스트로브였으며, 블란치이기도 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오랜 세월 함께 한 사람을 매정히 버리고 떠났던 스트릭랜드.
'그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던 그 처럼 어린 날의 나도 사랑보다 더 중요했던 것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주변에서 아무리 말리고 어쩌면 손가락질을 받아도 어쩔수가 없었다. 그냥 떠나야했다.
나는 스트릭랜드를 보며 감히 욕을 할 수가없었다. 물론 그의 그림에 대한 열망에 비할만큼
나의 이상은 '달'까지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나도 나만 생각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버려보았기에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철이 없었다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스트릭랜드가 그러했듯 후회는 하지 않는다.
또 언제는 바보처럼 사랑에 구걸하는 스트로브가 된적도 있었다.
스트릭랜드에게 마음을 뺏겨버린 블란치에게 집까지 내어주고도 다시 돌아오길 바라고,
그녀가 다니는 길목에서 말 한마디라도 나눠볼까 전전긍긍하는 스트로브를 보며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그냥 그사람이 너무 좋아서,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 되곤했다.
하루 24시간을 그 사람에게 맞춰움직이고, 그 사람의 말, 행동 하나 하나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으며
그 사람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 나에겐 행복이었고 법이었고 진리였다.
그사람이 있어야 내 삶은 완전하다고 느꼈다. 영원히 깨어지지 않을 줄 알았다.
그래서일까 나도 스트로브처럼 끝난 사랑을 한참 동안이나 놓지 못했다.
스트로브가 블란치에게 했던 행동들이 블란치에게는 사랑이 아닌 집착, 족쇄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스트로브가 진정으로 블란치를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아니 블란치도 그렇게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구걸이든 집착이든 누가 뭐라 손가락질해도 그냥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면 살아갈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치 스트릭랜드가 그리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고 한것 처럼.
스트로브에게 '달'은 블란치였다고 생각한다. 늘 닿아있다고 생각했지만 영원히 내것이 아니었던 사랑.
블란치도 어쩌면 스트로브와 같은 맥락의 사랑을 했다고 생각한다.
스트로브를 매정히 버리고 스트릭랜드를 선택했지만 그녀도 스트로브가 자신에게 그러했듯 간절히 사랑을 꿈꿨다.
대신 그녀는 사랑을 구걸하는 대신 죽음을 선택했다. 나는 궁금하다.
스트로브와 함께했던 오랜 세월보다 스트릭랜드와 함께했던 두어달의 시간이 진정으로 잠시나마 행복했을까?
나는 그녀를 감히 탕녀라고 욕할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을 뿐이다.
그녀가 죽음으로 끝맺은 사랑이 너무나 스트로브와, 그리고 나와 닮아있어서 마음이 아플 뿐이다.
아마 또 나는 사랑을 할 것이다.(맨날 "이제 다시는 연애 안 해!" 라고 하지만)
몇번의 사랑, 이별을 겪고 난 뒤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나는 또 다시 사랑앞에서 스트릭랜드가 되어 이상을 쫒아 사랑을 버릴 수도 있고,
어쩌면 구질구질하지만 진심을 다해 사랑을 원하는 스트로브가 될 수도 있고
미친듯한 사랑에 빠져 목숨까지 거는 블란치가 될 수 도 있다.
또 어쩌면 헌신하는 아타가 될수도,
사랑에 자유로운 티아레가 될수도,
떠나버린 사랑을 잊고 새 삶을 찾은 에이미가 될수도 있다.
어떤 사랑을 하던 나는 이 책을 꼭 한번 다시 읽어볼 것이다.
그때의 나는 행복한 사랑을 하기를.
첫댓글 리뷰 잘 읽었어요. 이렇게 보니 어떤 인물에게 극명히 입장이 갈리는 게 아니라, 상황과 마음에 따라 하나씩 거쳐가는 과정으로도 보이네요. 쓰는 사람의 마음이 묻어나서 더 와닿는 것 같고요.
그나저나 묵클럽 1호 리뷰네요. 이렇게 빨리 나올줄은 몰랐는데...ㅋㅋ 모쪼록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당.
글솜씨가 없지만 열심히 썻습니다!! 1등으로 쓰고 싶었어요!! ㅋㅋ 저자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서 좀 걱정이 됫는데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
모든걸 내던질정도의 사랑..하고 싶어요...흑...
나두......
글이 정말 좋네요. 저에게는 특히 "스트로브에게 달은 블란치였다고 생각한다"는 부분이 많이 와닿네요. 저도 현진님의 글을 읽으면서 순간 스트로브가 되었다가 블란치가 되었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