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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해변길 2구간 소원길
태안 해변길은 2구간은 신두리에서 시작된다. 2구간은 소원길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데 이는 2007년 발생한 원유 유출 사고로 파괴된 해안 생태계가 어서 회복되기를 바라는 소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은 자원 봉사자들의 노력으로 검은 갯벌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10년 전쯤 발생한 IMF 극복도 그렇고 바위에 붚은 검은 기름을 일일이 손으로 걷어낸 132만 자원 봉사자들의 노력과 정성이 위대하다. 이러한 정신은 100년전에 대구에서 일어난 국채 보상 운동 정신의 흐름으로 보인다.
소원길은 신두리부터 만리포해변까지 22km의 거리를 8시간 정도 걸어야 하는 길이다.
신두리에서 소근진성까지는 3.5km 거리이다.
‘소근진’은 소근포진영의 ‘포’자와 ‘영’자가 생략된 지명이다. ‘진’은 지역방어군대를 지칭하는 것으로 조선조 태종4년(1404년)에 만호를 다스리게 하였다. 충청남도지정기념물 제93호인 소근진성은 조선 중종 9년(1514년)에 소근포에 축조된 평지 진성이다.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진 성의 둘레가 650m 정도 되는데 대부분 무너지고 동문의 터 부근만 남아 있다. 이 성은 좌도수군첨 절제사영으로 이용되었으며 서해안의 방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온다. 높은 직위인 종3품인 첨사가 살았다는 관사 터에는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있다. 성곽이 길게 뻗어 있고 성문에 소나무 한 그루가 수문장처럼 서 있다. 성안에는 당시 진보에서 사용하던 우물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옛날에 만 호가 살았다는 큰 마을이 나중에 소근면이 되었다가 1914년 소원면에 편입되어 지금은 조용한 농어촌의 한 마을로 변모되고 말았다. 당시에 첨사가 성에서 원북으로 다니던 길이 따로 있었다 한다. 그가 지났던 곳을 지금도 신방고개라 부른다.
소근진성에서 유류피해역사전시관까지는 7.9km이다.
소근진성과 유류피해역사전시관 사이에는 회화나무 보호수와 메소포타미아 역사유물관을 볼 수 있다. 400년 넘게 한 자리에서 태안을 지켜온 보호수로 지정된 회화나무를 볼 수 있다. 또한 ‘안 소근진’바닷가에는 오래된 성과 비교되는 현대식 작은 건물 「성경&메소포타미아 유물관-연구소:BARA」이 있다. 김남철 목사가 20여년 동안 세계 여러 박물관에 흩어져 있는 성경과 관련된 역사유물 및 고고학 자료들을 직접 찍은 사진과 복제품, 그리고 실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또한 유류피해 역사 전시관은 지난 2007년 12월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 때 기름제거작업에 나섰던 123만 자원봉사자의 고마움을 기리고 자라나는 미래세대의 환경교육을 위해 태안군과 지역주민이 협력해 조성됐다.
유류피해역사전시관에서 의항해변까지는 3.0km이다.
의항에서 원북 신두리로 왕래하던 나루터가 ‘의항항’이다. 향해하던 배들이 풍랑을 피해 안전하게 머물던 항이었다고 한다. “의항에 70~80호가 살았는데 어선은 30~40척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맛이 좋은 조기가 많이 잡혔고, 신너루 풀아대에서는 민어가 많이 잡혔다. 의항초등학교 앞에 염벗에서 만든 소금으로 고기들을 염장해서 상인들이 사러오면 팔았다고 한다.
의항해변은 소원면 소재지를 지나 만리포해수욕장 방면으로 조금 가다보면 오른쪽에 의항해변이 있다. 온통 조약돌로 구성된 백사장은 햇볕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일품이며 포근한 곡선모양의 해안은 여성스런 맛을 물씬 느끼게 해준다. 주로 가족이나 교육 목적의 캠프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 개발되지 않은 관광지이며, 별 준비없이 방문한 관광객들은 마을의 민박집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의항해변에서 백리포전망대까지는 2.9km이다.
의항해변과 백리포전망대 주변에는 만수바위, 신너루해변, 태배, 애기업은 바위 등이 위치하고 있다. 옛날 만수라는 사람이 죽을죄를 지어 극형에 처하게 되었다. 마침 종3품 첨사가 보이는 곳에서 극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받들어 성에서 마주 보이는 의항 망산 해변에서 만수는 극형에 처해졌는데, 만수가 사형을 받기 위해 밟은 바위를 만수바위라 불렀다. 이 바위 위로 참회와 후회의 눈물이 고였으리라. 눈물도 짜고 바닷물도 짜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갯벌 속으로 묻히고 굴과 따개비들로 인해 작은 돌무덤 형태로 남아 있다.
신너루해변은 민어가 많이 잡혔다는 풀아대가 있던 곳이다. 두멍재 너머에 작은 독살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름유출로 폐허가 됐던 풀아대에 넓은 굴밭이 자리를 차지했다. 조용히 밀려오는 파도에게 굴들이 잘 자라게 명곡이라도 불러 줄 것을 당부하고 해변을 돌아 의항항으로 향한다. 사리에 역광으로 보여지는 의항항의 깊은 갯벌 그림자가 암흑의 묘미를 깔아주고 있다. 의항2리의 서북쪽 돌출부분에 작은 해안이 있다. 이 해안에 육중한 암석이 있는데 이태백이 놀던 곳이라 하여 주변 일대를 ‘태배’라고 부른다. 봄이면 산기슭에 흐드러지게 피는 진달래와 해안의 은모래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고 한다. 중국의 시성이 의항에 놀러 왔다가 절경에 반해 바위에 먹으로 한 수 적었다기에 그 귀중한 시문을 찾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스승은 어느철에 다녀갔는지/문생들이 경승지를 찾아오니/
3월의 진달래꽃 활짝 웃고/봄바람은 운산을 메우더라
암벽에 3편의 시가 남겨져 있는데 영·정조 때 지은 것으로 작자는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의 관계라고 한다. 시를 남긴 시기는 각각 다르다. 위의 시는 마지막에 다녀간 선비가 꽃피는 봄철에 남긴 것이다.
애기업은바위는 해초의 귀족이라 하는 세모를 사리 때 많이 채취했다고 한다. 그리고 온돌방 구들로 쓰이던 돌을 이 섬에서 채취하여 파는 바람에 섬 모양이 작아지고 형태도 변해버렸다고 한다. 태배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애기업은바위는 세상 풍상을 다 겪은 듯 애처롭게 보인다.
백리포전망대에서 천리포수목원까지는 1.0km이다.
천리포수목원은 충청남도 태안반도의 서북쪽 천리포 해안에 있다. 우리나라 중부지역이면서도 남부식물이 월동할 수 있는 천혜의 자연조건을 간직하고 있어서 700 여 종류가 넘는 목련속 식물을 비롯한 16,000여 종류의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
천리포수목원에서 국사봉전망대까지는 1.4km이다.
국사봉전망대는 태안해변길 중에서 산에 올라 시원한 서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시야가 좋은 날 전망대에 올라서면 만리포(왼쪽)와 천리포(오른쪽) 해변을 볼 수 있다. 전망대로 올라오는 길은 천리포와 만리포 쪽에서 오를 수가 있다. 전망대 뒤로는 커다란 정자가 있는데 이 곳에서는 신두리 해변도 보이고 동쪽으로는 낮게 펼쳐지는 산들의 아름다운 선을 볼 수 있다.
국사봉전망대에서 이번 구간의 날머리인 만리포까지는 2.3km이다.
대천, 변산해수욕장과 함께 서해안 3대 해수욕장으로 꼽히는 만리포해수욕장은 백사장의 길이가 약 3km, 폭 약 250m이상, 면적 20만㎡이다.
고운 모래로 백사장이 좋고, 경사가 완만하고 수심이 얕아 가족 단위의 해수욕장으로 사랑받고 있다. 조석간만의 차와 조류 변화가 심한 편이어서 썰물 때의 수영은 삼가는 것이 좋다. 충분한 숙박시설과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인근 방파제에서는 낚시도 즐길 수 있다.
도로의 끝 해변이 시작되는 지점에 반야월의 만리포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만리포의 명물로 노래와 함께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도로원표가 있는 광화문에서 정동쪽 방향은 정동진이며, 정서쪽 방향은 만리포해수욕장이다. 만리포해수욕장은 "정서진"으로 지정되어 대한민국 서쪽땅끝으로 아름다운 낙조와 푸른바다를 자랑하고 있다.
소근진성
충청남도 기념물 제93호. 면적 6,347㎡. 둘레 650m. ≪신증동국여지승람≫ 태안군 관방조(關防條)에 ‘所斤浦鎭 一名朽斤伊浦 左郡西三十三里 有左道水軍僉節制使營 所營唐津浦波知島僉節制使一人 正德甲戌始築 石城周二千一百六十五尺 高十一尺 內有一井(소근포진 일명 휴근이포 좌군서33리 유좌도수군첨절제사영 소영당진포파지도첨절제사1인 정덕갑술시축 석성주2,165척 고11척 내유1정)’ 이라 하여 소근진성은 좌도수군첨절제사영으로 1514년(중중 9)에 축조되었는데, 성의 둘레는 2,165척이고 높이가 11척이라 기록하고 있다.
또 ≪여지도서≫ 충청도 태안 진보조(鎭堡條)에서 영조시대의 군비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데, 종3품인 첨사(僉使)를 비롯하여 방졸(防卒) 41명, 전선(戰船) 1척, 방선(防船) 1척, 사후선(伺候船 : 水營에 딸린 戰船의 하나) 3척이 있으며, 서문 밖에는 선창(船倉)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소근진성은 태안읍에서 서북쪽으로 13.6㎞ 떨어진 곳에 있는 평산성(平山城)으로, 서쪽으로는 성 내부가 서해에 면하면서 비교적 평탄한 면을 이루고 있고, 동·남·북벽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석축하였다.
성벽은 동문지 부근을 제외하고 대부분 붕괴된 상태이나 현재 가장 잘 남아 있는 동문지 북벽은 성의 바닥 너비 8m, 외벽 높이 4.4m, 내벽 높이 2m, 상부 너비 1.7m이다. 성벽 안은 군사들의 통로로 이용하기 위하여 보토(補土)하였기 때문에 외벽 높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되었다.
문지(門址)는 동·서·북문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북문지는 10여m 정도가 평지에 접근되어 있으나 파괴가 심하여 규모를 파악하기 힘들다. 동문지는 문의 너비가 4.2m로서, 북벽은 5단(段) 2m 정도가 남아 있는데, 140㎝×38㎝, 42㎝×47㎝, 63㎝×38㎝의 자연석을 기초석으로 하고 있다.
서벽은 대부분 바다에 면해 있으나 북벽에 접근하여 서문지가 확인된다. 서문지의 문너비는 3.3m이며 이를 통과하면 7.6m 너비의 도로가 나타나는데, 이 도로가 성내로 연결되고 있다. 이 서문지의 남벽은 암반(岩盤)에 붙여서 성석(城石)을 축조하고 있으며 높이는 3.3m이다.
학암포자동차야영장은 각종 부대시설을 갖춰 조성한 현대식 자동차야영장으로 총 100개 자동차영지(98동 예약 가능)로 샤워장, 취사장, 화장실 등 각종 편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며 인터넷 사전 예약제로서 연중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근에 학암포해변 및 자연관찰로가 있어 아이들 자연학습 공간으로도 좋으며 아름다운 태안해안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한 태안 해변길 제1코스인 바라길 시점으로서 가족단위 탐방객으로 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유류피해역사전시관
유류피해 역사 전시관은 지난 2007년 12월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 때 기름제거작업에 나섰던 123만 자원봉사자의 고마움을 기리고 자라나는 미래세대의 환경교육을 위해 태안군과 지역주민이 협력해 조성됐다.
태배전망대 내부 100여㎡에 설치된 역사 전시관에는 유류피해 당시 사용했던 방제도구와 오염된 자연물 및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사진을 전시했다.
이곳 전시관 옥상 위에서는 회복된 태안해안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해변을 조망할 수 있다.
자연환경해설사와 자원활동가들이 상주하면서 유류피해 당시 상황 설명은 물론 다양한 자연해설 프로그램 운영한다.
붉은 언덕
“나무가 하나도 없어 돌로 이루어진 절벽에 노을이 질 때에는 참 멋있었어요. 그래서 붉은 언덕이라 불렀나 봐요. 지금은 소나무들이 자라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기름유출사고가 있었을 때, 기름제거를 하러 온 자원봉사자들이 오르내리도록 설치한 철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오면 오래전 절벽에서 떨어져 내려앉은 붉은 바윗돌이 사이좋게 누워 있다.
가르미
해변 바위에 자연 돌김이 풍성하게 잘 자라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채취해서 큰 소득을 올렸다는 가르미. 지금은 돌김이 없고, 바위 전체가 자연산 깜장굴들의 터전이 되었다.
박쥐들의 집, 박쥐굴
기선바위 위에는 썰물들이 남기고 간 작은 물웅덩이들이 있다. 그 웅덩이 속에 구름과 고둥, 게, 해초들이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다. 태안의 명품 수산물이 깜장군이다. 해수욕장 끝자락 야트막한 절벽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쥐들이 서식했다는 굴을 찾아보았다. 해변에서 약 2m쯤 바위를 올라가니 박쥐는 없고 양치식물만이 굴을 지키고 있다.
기선바위
묵묵히 누워있는 돌 하나하나를 꾹꾹 밟으며 해변을 걸었다. 애틋한 사랑이 깃든 바위에 대하여, 한 주민이 옛날에 친구들과 바위에서 놀던 기억을 떠올리며 들려주었다. “이 마을에 슴슬이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배를 타고 멀리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며칠이 되어도 돌아오질 않았다. 부인은 매일 바닷가에 나와 서해를 오가는 배들을 바라보며 남편을 그리워하다 그만 그 자리에 망부석으로 변했다고 한다. 지금 있는 바위 위에 또 하나 흔들리는 바위가 얹혀 있었는데 짓궂은 친구가 바위에 올라가 바위를 흔들다 떨어뜨렸다. 며칠 후 그 친구가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어요.”
구름포해수욕장
옛날부터 구름미라고 불러왔다. 구름언덕 끝자락이라는 이름만큼 아늑한 곳이다. 반짝이는 모래사장이 1km이고, 좌우에는 기암절벽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지형이 반달처럼 둥글게 구부러진 아랫부분의 지명을 ‘구름’이라고 부른다. 운산을 운포로 부르다가 1996년에 구름포구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남평 문씨 6대조 할아버지들이 남면에서 낚시하다 표류되어 이곳까지 떠밀려와 정착을 했다고 들려주는 문씨 성을 가진 한 아저씨는 조상의 은덕으로 아름다운 곳에 살게 되었다고 감사해 했다. 썰물이 백사장에 멋진 그림을 그려놓고 갔다. 바다로 향하는 계단에 앉아 하늘이 바다 속으로 빠진 구름포해수욕장을 바라본다.
코뚜레바위
고드래 쟁벌을 조심스럽게 걷다보면 붉은 바위 하나가 바다로 돌진할 형태로 누워있는 것이 보인다. 저녁노을에 그 모습이 더 멋져 보인다. 고드래 쟁벌에서 뛰어놀던 꿈 많던 소년시절을 회상하는 주민의 얼굴이 노을에 더 붉게 상기됐다. “어릴 적 이곳에 소풍을 오면 바위구멍 속에 들어가 도시락을 먹고 서해 바다를 보면서 큰 꿈을 꾸었죠. 기름유출이 안 됐으면 꼭꼭 숨어 있었을 곳들이 속속 밖으로 나오고 있다.”
용굴
등산로 가는 길 중간지점에서 작은 오솔길로 내려서니 누군가가 설치한 밧줄을 잡고 조심스럽게 절벽으로 내려간다. 가까이서보니, 용이 굴에 머리를 들이민 듯한 모양이다. 그래서 ‘용굴’이라고 불렀다. “닭섬에서 긴 막대기 같은 물체가 이곳으로 오고가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 구렁이가 굴을 왕래하면서 굴 입구 바닥에 누워있는 하얀 돌을 타고 굴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고 했었다. 그래서 그 돌을 용마라 불렀다. 굴 안에는 작은 웅덩이가 있어 입구에서 돌팔매로 웅덩이에 돌을 집어넣는 놀이도 했다는 이야기를 어릴적 할아버지한테 들었다” 한 할아버지로부터 용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며 굴 안에 있던 웅덩이는 자갈에 묻혔다. 머리를 굴 안으로 들이민 용의 모습은 아주 근엄해 보였다.
고드래 쟁벌
파도야 부딪혀라/있는 힘껏 부딪혀라/
모난 마음 가슴에 품지 말고/처연히 휩쓸리던 고드래 쟁벌
“옛날 이 고드래 쟁벌(장벌, 바닷가, 해안가를 일컫는 사투리)에서 집집마다 돌을 가져다가 구들장에 깔거나 왕골자리를 맬 때 사용했지요. 돗자리를 엮을 때 쓰는 고드랫돌이 많이 있는 곳이라 고드래 쟁벌이라 불렀어요.”동글동글한 귀여운 돌들이 촉촉하게 젖어 반짝이며 해변을 꽉 채우고 있다.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왕골자리를엮느라 쓰던 고드랫돌과 비슷하다.
밀려오는 파도에 돌밭은 야단이 났다. 저희들끼리 부딪치고 밀리는 소리에 해변은 소란스러웠다. 세파에 돌끼리 서로 부딪치는 모습을 지켜보다 ‘저들의 삶도 만만치가 않구나.’하는 생각에 쓴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화영섬(또랑섬)
화영섬은 의항해수욕장을 감싸고 의연하게 서풍을 막아주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안흥항으로 들어오던 사신이 풍랑에 의해 안흥에 상륙하지 못하고 의항의 이 섬에 상륙하여 이 섬에서 환영하였다는뜻에서 ‘환영섬’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환영섬 옆에 배를 세워두었던 곳을 섯배라고 불렀다. 세월이 지나며 환영섬이 ‘화영섬’으로, 섯배가 ‘선배’로 불려지고 있다. 화영섬은 두 개의 독살과 섬 밖으로 안강만 어장을 최초로 개설한, 의항 마을 10여 가구의 생업을 해결해 주었던 삶의 터전이었다고 한다.
빈센트 브란트 공적비
의항초등학교를 지나면 비석 하나를 만나게 된다. ‘빈센트 브란트 공적비’이다. 빈센트 브란트 박사가 1960년대 낙후된 어업과 지역발전을 위하여 동력선 5척을 기증하고 자가 발전기를 설치해 주었다. 빈센트 박사가 의항 주민들을 가나에서 벗어나도록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어 의항마을 주민들이 1966년 그를 기리는 공적비를 세워 주었다. 가난으로 힘들었던 시절에 빈센트 박사는 주민들에게 큰 꿈을 심어준 선구자였다고 의항주민들은 전한다.
의항해변
소원면 소재지를 지나 만리포해수욕장 방면으로 조금 가다보면 오른쪽에 의항해변이 있다. 온통 조약돌로 구성된 백사장은 햇볕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일품이며 포근한 곡선모양의 해안은 여성스런 맛을 물씬 느끼게 해준다. 주로 가족이나 교육 목적의 캠프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 개발되지 않은 관광지이며, 별 준비없이 방문한 관광객들은 마을의 민박집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해변은 서해안의 특징처럼 완만하고, 가지각색의 조약돌이 펼쳐져 있다. 백사장 길이 1km, 폭 20m, 수심 1~2m이다. 인근 해안에서 바다 낚시가 가능하며, 해변과 접하고 있는 의항초등학교는 학생들의 하계수련회 장소로 제공하기도 한다. 소원면 해안을 따라 의항해변에서 남쪽으로 백리포해변, 천리포해변, 만리포해수욕장, 어은돌해변, 파도리해변이 이어진다.
방파제 둑을 지나 수망산에 올라서면 서해의 수평선이 시원하게 반긴다. 전망이 앞뒤로 탁 트인 십리포 백사장이 기다리고 있다. 조선 초기에 의항굴포로 불린 곳으로, 사구의 모양이 개미의 목같이 생겼다 해서 의항이라 한다. 의항지구의 매립이 이루어지기 이전 개미목처럼 생긴 곳의 서쪽에 위치한 ‘십리포’는 은빛모래가 넓게 펼쳐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백사장으로 무섭게 돌진하는 파도의 기세가 위협적이다. 백사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화롭기만 하다. 이 곳에는 마을 주민들이 함께 만든 뒤쇼개너머 독살이 있어 맨손 물고기잡이나 바지락캐기 체험 등을 즐길 수 있다.
백리포(방죽골)해수욕장
백사장 길이가 백리나 된다고 해서 ‘백리포’라고 부른다. 조상들의 배포와 해학이 담겨진 이름이다. 백사장에 담을 치듯 아담한 돌기둥을 세워놓았다. 돌기둥은 머리에 둥근달을 이고 있는 것 같다. 노을이 바다로 번지면서 돌기둥에도 모래밭에도 노을빛이 스며들었다. 이곳 역시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에 금슬이 좋고 효성이 지극한 돌이 부부가 살고 있었다. 여러면에 솜씨가 좋은 돌이 부인은 부지런히 삼베를 짜서 장에 내다 팔아 부모님을 봉양하며 살았다. 매일 베 짜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렸다고 해서 이 마을을 방직골이라 불렀다. 돌이 부인의 마음결처럼, 뽀얀 삼베를 펼쳐놓은 것처럼 고운 백사장이 길게 뻗어 있다.
장수발자국
백리포 해변을 돌아본 뒤 산길에서 만나는 장수발자국에서도 돌이 부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백리포에 전해오는 마음씨 고운 돌이 부인의 극진한 혀성 못지않게 돌이도 바다에서 매일 고기를 잡아 구들들에 살고 계신 부모님께 가져다 드렸다. 어느 날 잡은 고기를 지고 구들들로 가다가 피곤해서 양지 바른 산 중턱에서 지게를 세워 놓고 낮잠을 잤다. 잠깐 잠들었다 깨어보니 이상하게 부모님 집 앞에서 자고 있었다. 며칠 후 또 그런 일이 일어났다. 이 같은 일을 이상하게 생각한 돌이는 자는 척을 하고 누워있기로 했다. 잠시 후 어디서 나타났는지 체격이 좋은 장수가 오더니 돌이와 지게를 한손으로 들고 구들들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돌이가 소리를 치니 장수가 그 자리에 내려놓고 도망을 가버렸다. 얼마나 힘이 센 장사였는지 바위에 그 장수의 발자국이 찍혀 있어 장수발자국이라 불렀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장수발자국이 찍힌 바위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천리포해수욕장
‘막동’의 서쪽에 형성된 포구로 흰모래가 깔려 있는데 그 길이가 무려 천리에 이른다하여 천리포라고 부른다. 만리포보다 규모가 작아 천리포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조기나 멸치 같은 고기들이 산란지에 접어들면 연평도로 오르내린다고 한다. 많은 양의 수산물이 잡히던 곳이라 ‘막동’이라고 불렸다. 지금도 해수욕장 입구에 작은 멸치 덕장이 남아 있다. 서해로 나가려하는 닭섬을 붙잡아 두려는 방파제가 있는데, 물안개가 끼는 날이면 그 방파제 앞 바다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려낸다. 해수욕장 한편에 태안 해저중계소가 있다.
천리포수목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알려진 ‘천리포수목원’철썩대는 파도소리가 수목원 너머에서 들려온다. 겨울에 찾아온 내게 설중사우(겨울에도 즐길 수 있는 네가지 꽃, 옥매, 납매, 동백꽃, 수선)중 하나인 납매(음력 섣달에 꽃이 피는 매화)가 나를 반긴다. 아기동백이 하얀 눈 위에 붉게 피어 있다. 죽어서는 나무의 거름이 되고 싶고, 다시 태어나면 개구리가 되고 싶어 했다던 고 민병갈선생이 미군정시절 한국에 군인으로 왔다가 1962년부터 천리포 해변에 토지를 구입하고 수목을 심기 시작하여 오늘의 수목원을 설립하였다. 수목원의 면적이 18만 평에 이르며, 식재한 총수종이 13,200여 종에 달하고 있다. 현재 학문연구지원, 다양한 식물 확보 및 유전자 보존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천리포수목원은 계절마다 많은 꽃들이 핀다. 한국 고유의 멋을 풍기는 나무와 연못, 이국적인 나무가 어우러져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목원에서 내려다뵈는 바다와 작은 섬, 파란 물결 또한 장관이다. 야생화가 절벽을 타고 내려간 수목원 언덕에서 바다를 보면 파도소리를 듣다보면 발걸음이 돌아서지 않는다.
천리포수목원은 1979년에 한국인으로 귀화한 민병갈(Carl Feriss Miller, 1921∼2002)에 의해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수목원이다. 우리나라의 자생식물은 물론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들어온 도입종까지 총 1만 5894종(2014년 기준)의 식물종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다 식물종 보유 수목원이다.
2000년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세계에서 12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을 받았다. 또한 한국관광공사와 문화체육관광부가 2012년에 발표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관광지 100선’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규모는 62만㎡이다.
고(故) 민병갈 설립자가 1962년에 천리포 해변 2만㎡의 토지를 매입하여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수목원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1979년에 산림청 산하 비영리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았고, 1996년에 공익재단법인으로 등록되었다. 1997년에 국제목련학회 총회를 개최하였고, 1998년에 국제수목학회 총회와 미국 호랑가시학회 총회를 개최하였다.
2001년부터 수목원전문가 양성과정 교육을 시작하였으며, 2009년에 산림청으로부터 수목원전문가 교육과정을 인증받았다. 2013년에 산림생명자원 관리기관·산림교육전문가 양성기관·산림교육센터로 지정되었다. 2014년에 환경부로부터 생물다양성 관리기관으로 지정되었다.
천리포수목원은 설립 이후 연구목적 이외에는 출입할 수 없는 비개방 수목원이었다. 2009년 3월 1일에 7개의 관리 지역 중 첫 번째 정원인 밀러가든(Miller Garden)을 최초로 개방하였다. 2010년에는 밀러의 사색길과 목련원을 추가로 개방하였다.
천리포수목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식물종은 주요 5속(屬)인 목련(400여 품종), 호랑가시나무(370여 품종), 무궁화(250여 품종), 동백나무(380여 품종), 단풍나무(200여 품종) 외에도 곰취, 앵초, 노루귀, 복수초, 노루오줌 등이 있다. 특히 천리포수목원은 세계 최다 목련 수집 수목원이며, 미국 홀리(Holly)학회의 인증수목원이다.
수목원 내 주제원은 원추리원, 수생식물원, 동백원, 수국원, 습지원, 왜성침엽수원, 윈터가든, 호랑가시나무원, 우드랜드, 무늬원, 억새원, 암석원, 마취목원, 자생식물원, 노루오줌원, 만병초원, 클레마티스원 등 18개로 구성되어 있다.
2006년 9월 21일에는 환경부지정 서식지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되었는데, 대상 식물은 가시연꽃, 노랑붓꽃, 매화마름, 미선나무 등 4종이다. 천리포수목원은 겨울에 강한 해풍에 의한 피해와 염해를 방지하기 위해 바닷가에 조성되어 있는 곰솔 방풍림도 볼 수 있다.
천리포수목원은 국내외 교류를 통하여 생육환경에 적합한 식물을 수집·보존하며, 자원식물의 교육·연구와 자연환경 보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5대 특성화 속에 대해 세계 최고의 수목원을 지향하며, 국제학회 및 심포지엄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닭섬
천리포해수욕장 앞에 있는 섬으로 섬의 모양이 마치 닭의 벼슬같이 생겼다 해서 ‘닭섬’이라고 한다. 또한 중국 산둥반도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해서 닭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닭섬에 오르면 절벽과 내려다 뵈는 바다가 참 아름답다. 섬 주변은 성게와 해삼, 전복 등의 해산물을 채취할 수 있는 청정 해안이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귀소성을 가지고 있다. 바다지빠귀가 닭섬에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천리포수목원의 고 민병갈 원장이 낭새섬으로 불렀다고 한다. 닭섬에 어서 예쁜 이름의 낭새들이 돌와와 주기를 바래본다.
만리포해수욕장
만리포해수욕장은 태안반도 서쪽에 위치하며, 길이는 약 2.5㎞, 폭 약 270m의 북서방향으로 발달된 사빈이다. 태안에서 서쪽으로 12㎞ 지점에 위치한다. 대천해수욕장·변산해수욕장과 더불어 서해안의 3대해수욕장의 하나로 손꼽히며, 북쪽으로 이어져 있는 천리포해수욕장과 함께 태안해안국립공원의 명소를 이룬다.
만리포해수욕장은 바닷물이 비교적 맑고 모래질이 고우며 경사가 완만하여 수심이 얕은 데다 해변에 담수(淡水)가 솟아난다.
만리포 해빈은 모래유실로 인하여 호안이 건설되어 있으나 현재도 상당량의 해빈 퇴적물이 유실되고 있어서 인위적으로 모래를 공급해 주기도 한다. 표층퇴적물은 역질과 니질의 비율은 적으며, 대부분 사질퇴적물로 구성되어 있다. 평균입도는 1/48Ø의 중사에 해당된다. 해빈의 배후에는 해안사구가 형성되어 있고 대부분 식생으로 고착화되어 있지만, 우곡의 발달로 해체되어 원형만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고사구가 발견되기도 한다.
겨울철 강한 북서계절풍의 영향과 큰 조차에 의한 조류의 영향을 받는다. 겨울철 만리포 해빈의 표층퇴적물 특성은 북쪽 해빈은 조립질을 나타내고, 방파제 뒤 남쪽 해빈은 세립질로 이질함량이 높게 나타난다. 퇴적물 이동경로는 육지 쪽 해빈은 북서계절풍의 영향을 받아 표층퇴적물이 호안 쪽으로 이동하고, 해안 쪽 해빈에서는 파랑과 조석의 상호작용에 의해 표층퇴적물이 남서방향과 외해로 이동한다.
2007년 12월 7일 7시에 충청남도 태안군 만리포 북서방 약 10㎞ 해상에서 크레인부선(삼성1호, 11,818톤)과 투묘중인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146,848톤/홍콩선적)가 접촉하여 원유 12,547kl가 해상에 유출되는 내 최대 해양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하였다.
만리포해수욕장은 최대 피해지역으로, 유출된 원유가 바다를 검게 뒤덮고 있었다. 해상에서는 방제선의 유화제 유포작업이 진행되었고, 해안가에서는 가장 많은 자원봉사 인원이 투입되어 오일제거 작업을 실시하였다. 전국에서 모여든 100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합쳐 아름답고 깨끗한 해변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표면상으로 기름들은 사라진듯하지만, 모래사장 바닥이나 방파제, 갯벌 속에는 현재까지 기름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해저와 수중에도 잔류기름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잔류물은 그 물질 자체의 위험성은 낮으나 생태계에 장기간 체류함으로써 복원을 저해하기도 한다.
백사장 뒤쪽으로 송림(松林)이 우거져 있어 주로 하계수련장으로 이용된다. 해수욕장까지의 교통도 편리하며 호텔·여관 등 숙박시설도 갖추어져 있어서 매년 많은 피서객이 찾는다.
만리포해수욕장 주변에는 천리포수목원이 유명한데, 이는 귀화한 미국인 갈 밀러 씨에 의해 1979년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민간 수목원으로, 현재 약 15,000여 종류의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만리포해수욕장에는 해수욕장 전역을 관측하기 위해 해수욕장 북측에 철탑 형태의 모니터링 타워관측시스템을 설계하여 해빈관측용 비디오카메라 4대를 설치하여 연안침식 모니터링 을 실시하고 있다.
어머니의 품처럼 편안한 해변이 먼저 사람들을 반갑게 맞는다. 모든 것을 감싸안을 만큼 너그러운 바다, 그곳이 만리포이다. 왜 만리포일까? 조선조에 중국과 친교를 맺고 해상을 이용하여 사신이 왕래할 때 안흥 앞바다를 이용했다. 어느 날 명나라 칙사가 풍랑으로 인해 안흥에 입항하지 못하고 의항에 상륙하게 됐다. 지방 관리가 이 칙사를 환대하기 위해 모항 ‘밭고개’의 꽃게와 모항항의 해삼, 전복, ‘막동’의 조기 등으로 대접하였다. 칙사가 돌아갈 때, 수중만리 무사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아름답고 잔잔한 모래장벌에서 전별식을 가졌다. 그래서 수중만리의 만리라는 말을 따서 ‘만리장벌’이라고 부르다가 해수욕장으로 개장되면서 만리포라고 하였다.
“똑딱선 기적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 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라 내 사랑…” 이미 널리 알려진 가요 ‘만리포 사랑’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은빛 파도가 송두리째 삼키고 있는 백사장에 가을 여행 온 젊은 연인이 파도와 함께 놀고 있다. 만리포에서 천리포까지 이어지는 은빛 백사장이 와이키키해변보다 아름답다. 또한 우리나라의 서해땅끝을 알려주는 정서진 표석이 만리포에 있다. 이 표석에는 기름유출사고로 어려움을 함께 나누었던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주민들의 감사한 마음과 지역발전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한다. 아픔을 의지로 바꿔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서해땅끝 ‘정서진’ 서해바다는 변함없이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1. 일시 : 2019. 11. 2(토)
2. 코스 : 신두리←<3.5km>→소근진성←<7.9km>→유류피해역사전시관←<3.0km>→의항해변←<2.9km>→백리포전망대←<1.0km>→천리포수목원←<1.4km>→국사봉전망대←<2.3km>→만리포
3. 실거리 : 22.0km
4. 소요시간 : 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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