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천동 로맨스
유태용
철석, 쏴아. 바닷물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소리다. 시원한 바닷가 물소리가 그리워지는 계절이 오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생각이 난다. 대학 신입생 시절 하숙하던 남천동 바닷가가 그리워진다. 그곳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추억이 일어났던 곳이다.
내가 입학한 수대(정식 명칭은 국립 부산 수산대학교)는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있다. 남천동은 대연동 옆에 이웃한 동네다. 수대가 위치한 대연동은 대학이 밀집한 곳으로 하숙이나 자취를 하는 학생들이 많이 산다. 동네는 제주도에서 이주한 해녀 출신들이 많이 살아서 작은 제주도라고 부르곤 했다. 낮은 돌담을 두른 긴 골목길을 걷다 보면 제주도 말을 하는 아주머니들을 자주 보게 된다.
골목길 끝에는 슈퍼가 하나 있다. 슈퍼 사장은 제주도 출신인 고사장이다. 미남형의 마음씨 좋은 아저씨다. 고사장은 딸이 6명에 아들이 한 명 있었다. 동네에서는 딸 부잣집이라고 했다. 맏딸은 여고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슈퍼 앞에는 평상이 있는데 등하교 때는 수대생들의 놀이터로 변한다. 기타 치는 사람, 바둑·장기 두는 사람 등 장터가 따로 없을 정도로 붐비곤 했다. 이 모든 것을 자식처럼 늘 웃으면서 대해주는 고 사장에게 선배들은 늘 존경심으로 대하곤 했다, 여고생인 맏딸에게는 여동생처럼 대하였다. 고사장이 가게를 비울 때면 맏딸이 가게를 볼 때가 간혹 있는데, 내가 물건을 사러 갈 때 계산하면 볼을 발갛게 물들이는 게 보기에 좋았다. 고사장은 나에게 맏딸에 대하여 자주 상담을 했다. 진로 문제라든지 공부 문제에 관하여 자주 묻곤 했다. 많은 학생이 가게를 드나들지만 나에게 특별하게 대해주셨다. 호칭도 유 군으로 부르곤 했다.
하루는 내게 하나 아들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하셨다. 당시 학생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과외밖에 없는 때라 고사장은 내게 과외를 부탁한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거절했다. 집에서 하숙비가 왔지만, 하숙비를 내고 나면 생활비는 늘 부족했다. 경제적인 면을 생각하면 고사장의 제의를 받아들여야겠지만 내 성격상 맞지 않아 거절했다. 그런데도 고사장은 거듭하여 내게 부탁했다. “그럼, 10명을 맞혀 주십시오.” 며칠 지나지 않아 10명이 맞춰지자 영어, 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사장이 나를 부르더니, 맏딸에게 상업부기를 좀 가르쳐 주라고 했다. 상업부기는 나도 중학교 때 배운 게 전부라서 실력이 달린다고 했으나 고사장의 막무가내에 내가 지고 말았다.
아들 공부를 끝내고 맏딸과 일대일로 공부하는 첫날이다. 사복으로 갈아입은 맏딸에게 나는 가르치는 사람들이 그러듯이 반말을 하면서 지시를 했다. 밥상을 방 중간에 놓고 상업부기 책을 펴라고 했다. 대학생과 여고생. 방안에는 남자와 여자만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묘한 느낌이 들어 교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를 몰랐다. 첫날 첫 시간을 보내고 맏딸과 나 사이에는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보다 서로 보고 싶어 하는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나는 형제간이 많은 집안에서 자라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남녀공학을 다녔고 고등학교 때는 클럽 회장을 하면서 여학생들을 많이 상대를 해봐서 이성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맏딸은 달랐다. 송아지처럼 크고 순진하게 생긴 눈망울, 참새처럼 작은 입, 갸름한 윤곽은 내 가슴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미남, 미녀 부모로부터 좋은 것만 빼닮은 것이다.
중간시험을 마치는 날 맏딸에게 저녁에 집 뒤 바닷가로 나오라고 했다. 고 사장님 집 뒤에는 바닷물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닷가다. 바닷물에 씻긴 자갈은 물이 들고 날 때마다 자르륵 자르륵 소리를 낸다. 약속 시각에 맏딸은 살포시 내 옆자리에 와서 앉는다. 나는 자연스럽게 맏딸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 안는다. 바람은 부드럽게 불면서 맏딸의 단발머리를 가볍게 날리고, 달님은 푸르스름한 달빛을 우리 머리 위로 비춰주는 낭만적인 밤을 보냈다. 추석을 맞아 차례를 지내러 대구에 갔다. 차례를 마치자마자 부모님께 학교에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부산에 내려갔다. 맏딸과 데이트 약속을 했다. 남포동 미도파 백화점, 서면 천우장, 영도 태종대등 추석 연휴를 맏딸과 같이 즐겼다. 가을 후학기에는 학교행사가 많이 열렸다. 동아리 미팅, 향우회 모임, 체육대회 등 행사가 열리면 맏딸에게 교내 구경을 시켜주면서 사진도 찍고 했다. 학교에는 전속 사진사가 있는데 학생들은 대부분이 이 사진사한테서 사진을 찍는다. 행사가 끝나고 교내의 조그만 동산에 올라 맏딸과 사진을 찍었다. 여고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본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자기들에게 소개하라고 난리였다.
대학 1학년을 보내고 2학년에 올라가면서 내게 변화가 왔다. 미팅서 만난 여사무원에게 정신을 뺏긴 나는 점차 맏딸에게 소홀하게 되었다. 안 보면 마음도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는 말처럼 나와 맏딸의 싱그럽고 달콤했던 짧은 로맨스는 끝이 났다. 시내에서나 운동 중에나 젊은 청춘들을 볼 때는 혼자서 쓴웃음을 지어본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첫댓글 한창 좋은 시절 이였네요
out of sight out of mind
I got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