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6일 일요일
보성군 벌교읍 회정리 언덕에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소설 '태백산맥'이 태어나기까지 6년의 집필 과정과
이적성 논란부터 무혐의 결론이 나기 까지의 과정이
낱낱이 전시되어 있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문학관이다.
글 쓰는 자의 자세와 글의 역할에 대한 일침!!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
지리산 능선위의 위대한 작가, 조. 정. 래.
그리고 엄청나게 큰 태백산맥 전집 모형
소설의 주무대인 벌교 읍내의 약도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장소를 간략하게 표시해놓았다.
소설의 주무대가 되어 준 장소의 사진 자료
취재 메모와 취재 수첩
「이 조그만 수첩의 한 장에 적힌 것이 소설의 원고지 100장도 될 수 있고 200장도 될 수 있다.」
「특히 빨치산에 대한 자료는 그 어디에도 없으므로
이 작은 수첩 하나는 수십 권의 역사책이 당할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빨치산 부대의 소년 전사 조원제의 실제 모델이었던 박현채 선생과 함께
그 분이 활동했던 지리산과 백아산 준령을 넘나들며 빨치산의 행적을 소상히 기록했다.
고 박현채 선생은 16세 때 빨치산 소년 돌격부대 문화부 중대장 활동 중 체포된 후 석방,
이 후 인혁당 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 진보적 경제학자 또는 변혁 활동가로 이름을 떨치다
1995년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뒤 다시 일어나지 못하셨다.
빨치산 노래 모음
광주서중 3학년으로 전교의 비밀조직 총책이었던 박현채 선생의 탁월한 기억력으로
그 당시의 노래 수십곡을 되살려내었다.
'태백산맥'의 유일한 실존 인물, 빨치산 총책, 남부군 총사령관 이 현상에 대한 자료
「왼쪽은 이현상의 실존을 보여주는 호적등본
오른쪽은 전투경찰대에서 따로 작전도를 여러개 만들 정도로 이현상은 거물이었다.
일제시대의 사회주의자로서 독립부정을 하며 변절하지도 않고 체포되지도 않은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하나.
남로당이 북쪽으로 은신할 때 박헌영을 따라 월북하지도 않고, 다른 고급 간부들이 체포되어 가는 상황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
인민군의 패주와 함께 북으로 가는 것이 더 쉽고 안전했음에도 굳이 반대쪽을 향해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수수께끼를 남긴 사람.
그리고 지리산에서 싸우고 싸우다 궁지에 몰려 죽어간 사람.
이 현상 신화는 이 모든 것이 합쳐서 이루어진 것이리라.
통일의 민족사가 그를 어떻게 평가할지 또한 수수께끼다.」
소설을 쓰는 동안 정보부와 검찰, 경찰들의 온갖 방해와 협박에 지쳐가고 있을 즈음
정부 승인없이 평양을 다녀왔다가 투옥되는 문익환 목사의 슬프고도 고독한 문익환 목사의 신문보도 사진을 보는 순간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만년필을 다시 들었다는..
'태백산맥'을 써낸 만년필
'태백산맥'과 함께 흘러간 세월,
'태백산맥'을 쓰기 시작할 때의 모습과 1부를 완성했을 때,
전작을 완성하기 직전의 모습
'태백산맥'의 초판본
농민, 그 사무치는 설움 때문에 빨치산이 되어야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소설이 '태백산맥'이다.
표면적으로는 좌우의 이념대립으로 보이지만
지주와 소작인들의 대립관계를 통한 민초들의 애환을 그린 소설인 것이다.
책 속의 중요 내용을 모형으로 표현
'태백산맥'을 집필하는 동안 함께했던 생활용품들
생생한 현장 묘사를 위해 지리산을 10번이나 오르는 등
취재하러 다닐 때의 복장
소설의 준비과정만도 4년이 걸렸다 한다.
유명인들이 그린 캐리커져
'태백산맥' 육필원고 1만 6500장으로 쌓은 탑
작가가 경찰청과 주고받은 편지들,
보수단체로부터 위협을 받고 가족들에게 남긴 두 통의 유언장,
국보법 위반으로 출판 및 판매 금지 등
11년 동안 끌어온 이적성 논란부터 무혐의 결론이 나기 까지의 과정을 볼 수 있다.
'태백산맥'의 인세를 찍어댄 도장들..
인세는 작가 사후 50년까지 후손에게 지급된단다.
작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태백산맥을 모두 베껴 써라'라고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아들은 정말 모두 베껴썼다. 그리고 다시 말하기를
'나는 며느리도 다 베껴쓰는 며느리를 얻겠다'라고 해서 며느리도 필사를 했다고 한다.
조정래씨가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은 아버지의 고통을 아들이 느껴봐야 한다는 이유와
아버지 사후 50년 동안 받게 되는 저작권료를 받으려면 그 정도의 노력은 해야 한다는 것과
우리역사를 제대로 보라'는 뜻에서였다고..
순천대학교 도서관에서 학생들의 손에 닳고 닳아진 소설 '태백산맥'
'사랑굿'의 작가 김초혜 시인과 함께 한 작가
군복무 중 1967년 시인 김초혜와 결혼했다.
그는 부인을 '날마다 피어나는 꽃'이라고 표현한다고..
김초혜 연작시집 '사랑굿'과 '떠돌이 별'을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내어 다시 읽어봐야 겠다.
첫댓글 한선생님의 글을 읽다 보면
꼭 그곳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여행 작가, 큐레이터, 사진 예술등등
지금의 보건보다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한편의 서사시 잘 보고 가요.
그러게나 말입니다~ㅎㅎ
근디 말여요, 그런 일도 직업으로 하면 재미가 떨어지잖을까싶어요. 더 전문적으로 깊이있게 들어가야허고..
내가 또 머리 심하게 쓰는 건 싫어하는 사람이라
지금처럼 걍 선무당이 사람잡듯이
딱 이 수준으로만 헐라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