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흐렸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태양은 우리에게 닿지 못하고 있었다, 인간의 무분별한 화석연료의 사용 때문인지, 먹구름 때문인지는 알 수도 없었지만 궁금하지도 않았다. 지금이라면 곧 비가 올지 어떨지 정도는 냄새로 알 수 있지만, 그 당시에 내 코는 자동차의 배기구나 주택의 굴뚝같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그저 이미 하늘은 잿빛이고 땅은 온갖 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으니, 내가 뭘 하든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담배를 몇 까치씩 피우고, 어떤 식물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화단에 던졌다. 나는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 나는 담배를 한 대 더 피워 물고, 주변을 둘러봤다. 골목은 뱉어놓은 껌들로 얼룩덜룩했고, 수거를 하기는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는 오래된 쓰레기 더미들이 쌓여있었다. 그 교외의 골목에서 동물들은 지나가면서 오물을 남겼고, 차들은 지나가면서 매연을 남겼으며,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최소한 나에게는- 불편함을 남겼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한자리에서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 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별안간 속이 매스꺼워졌고 나는 반쯤 피던 담배를 껐다. 그러자 그 순간에 나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어떤 것도 보고 싶지 않아졌고, 그 자리에서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내가 지금 보고 싶은 것들을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떠올려 보려고 시도했다. 그러자 서서히 어떤 심상이 떠올랐다.
나는 살아본 적도 없는 시골의,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산속 작은 샘을 떠올렸다. 그 샘은 깊은 산속에 있었다. 숨어 있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모두에게 알려질 만한 곳은 아니었다. 5월의 정오 무렵인 건 현실과 같았지만, 분위기는 아주 달랐다. 태양은 너무나도 밝고 따뜻해서 우거진 나무들에 가려지고도 그 샘물을 비추기에 충분했으며 공기는 맑고 풀과 나무들은 푸르렀다. 샘은 넓으면서도 깊었고, 물줄기도 끊임없이 강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이 흐르는 길의 바위들이 낙차를 만들어 작은 폭포들이 생겨났고 거기서 떨어진 물들이 햇빛을 받으며 깨어지는 모습은 마치 유리구슬들이 굴러가는 것 같았다.
그 샘은 분명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 샘은 산속의 동물들, 식물들 그리고 하류까지 흘러가서는 많은 농민들에게 아주 이롭기까지 했다. 나는 떠올렸다. 황무지 같은 곳에 생긴 한줄기 샘물에서 산을 뒤덮는 거목들이 자라기 시작하는 모습을, 토끼며 다람쥐, 사슴 같은 동물들이 이 샘에서 목을 축이는 모습을, 하류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그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나는 그 샘의 물이 어디서 오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 샘이 매일 자기 자신을 남김없이 나누어 주고도 줄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많은 물을 받아 더 커지고 더 아름다워지는 모습들을 떠올리고는, 여기엔 어떤 마법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바로 그 순간, 지나가던 자동차가 모종의 이유로 경적을 울렸고, 나는 잠에서 깨듯 눈을 떴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에게서 그들 각자의 샘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사람의 샘은 작고 그다지 넓거나 깊지 못해서 약하게 흐르고 있었고, 어떤 사람의 샘은 아주 큰 호수 같은 모습이었지만 댐처럼 막혀있어서 잘 흐르지 못하고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의 샘은 넘치듯 쏟아지고 난 직후, 일시적으로 바닥을 드러낸 것처럼 보였다. 어떤 사람의 샘은 비교적 탁했고 또 어떤 사람의 샘은 비교적 맑았다. 하지만 모든 샘은 어떤 방식으로든 목적을 가지고 어디론가로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 샘들을 관찰하고 있는 중에 멀리서부터 익숙한 얼굴이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조금만 더 가까워지면 그의 샘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는 그를 기다렸다.
그가 나를 알아보고는 말했다.
“형 일찍 왔네요?”
그의 샘은 탁하고 그리 넓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흐르는 방향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런가?”
내가 대답했고,
그가 나에게 물었다.
“지금 혹시 몇 교시인지 알아요?”
나는 그의 샘에서 뭔가 아름다운 걸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완전히 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보았다. 그의 샘이 비록 지금은 탁하고 목적 없이 흐르고 있지만, 그 물이 발하는 곳에서는 여전히 맑고 깨끗한 물이 이어져 나오고 있는 것을.
“점심 먹고 천천히 나왔으니깐 아마 5교시 중간쯤이지 않을까?”
내가 다시 대답했고,
그가 나에게 말했다.
“그럼 같이 담배나 몇 대 피다가 6교시쯤에 들어갈까요?”
그의 샘이 맑고 흔들림이 없이 흐르는 나의 이상의 샘처럼 되기에는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운명이 우리에게 그만한 시간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나는 그가 계속 시도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아니 나는 오늘은 이미 많이 펴서 먼저 들어갈란다.”
내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자
그는 아주 중요한 용건이 있는 듯이 나를 잡고는 말했다.
“형 오늘 학교 끝나고 **이랑 그 싸가지 없는 1학년 새끼랑 싸운다는데 보러 올 거죠?”
내 머릿속에는 이 모든 일이 시작됐을 때부터 신경 쓰였던 진짜 질문들이 떠올랐다. 나한테도 샘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혹시 이미 복구할 수 없을 만큼 썩어버리진 않았을까? 내 샘이 가장 작은 동물 한 마리에게, 아주 잠깐이라도 안식을 건넬 수 있을까?
내가 마지막으로 대답했다.
”그래,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