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 [슈룹]을 통해 왕비가 아니라 ‘어머니’를 본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깝지 않은 어머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탓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머니가 아니라,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쉬지 않고 찾는 어머니다.
자식보다 앞서 생각하고, 더 열심히 공부한다. 극성스럽다 생각할 정도로 달린다. 자식들을 지켜내기 위한 절박한 싸움이다. 자신의 지혜나 힘, 위치는 오롯이 여기에 집중되어 있다.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음모나 공격도 다 감당할 마음이다. 자식들을 위협하는 대비나 정치인들의 서슬 퍼런 압박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것이 곧 자식들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설 마음이 없다.
자신이 밀리면 자녀들의 목숨도 함께 끝나버리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남모르게 외줄을 타는 심정으로 극도의 긴장감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던 어머니들의 이야기 일 것이다. 어머니 안에 있는 이 마음은 치마바람으로 비치기도 하고, 시기와 경쟁, 술수나 책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본능적으로 자기 자식을 지키려는 마음이다. 이 땅의 현실이 각박할수록 어머니들은 그녀의 달리기에 자신도 모르게 공감하며 박수를 보내지 않을까?
50년 세월이 지났어도 '육성회비'라는 말은 나의 뇌리에 무겁게 남아있다. 어느 가정이나 비슷한 형편이었겠지만 우리 네 형제가 동시에 학교를 다니던 때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육성회비를 제 때에 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사정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선생님들은 늘 육성회비를 거론하며 어린 우리들과 일대일 면담까지 하며 주눅 들게 했다. 제 때에 낸 친구들은 훈장이라도 단 듯 당당했고,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헤진 속옷이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부끄러워해야 했다.
어머니들은 이웃분들과 계를 만들거나, 얼마 되지 않은 돈을 놀려서 학비를 조달하고자 하셨지만 빌려준 그 돈은 떼이기 일쑤인 때였다. 누군가가 졸업을 하면 자장면 한 그릇 먹어볼 수 있던 시절,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살 수 있었던 때의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부부가 한 몸으로 걷는 길이 아니라 아버지의 길도 있고, 어머니의 길도 있었다. 어머니의 눈에 아버지의 월급은 쥐꼬리만 하게 보였을 것이고,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면서 그 쥐꼬리만 한 것으로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학교까지 보내야 했다. 어느 사이에 우리 4 자녀는 모두 성장했고, 출가도 했으니 아버지의 그 쥐꼬리만 한 월급은 어머니의 손에서 신통방통한 도깨비방망이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그 시절의 어머니들은 누구나 그 정도의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매 시대마다 어머니에게 주어진 현실이 만만했던 적이 있었을까? 어머니가 살아온 시대를 돌아볼 나이가 되면 어머니의 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반항만 일삼던 아들이라도 '불효자는 웁니다'를 목놓아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는 세계 어느 민족이나 부족에 속했건 폭압적인 현실을 온 몸으로 통과해야 했던 어머니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11월 1일, 외조카가 첫 딸을 낳고 하랑이라 이름을 지었다. '하나님의 사랑'의 줄임말일 것입니다. 놀랍고 신비한 선물을 받은 기쁨도 잠시 청색증에 걸린 하랑이는 열흘이 넘도록 치료 중이다. 안타까이 지켜볼 뿐 품에 안을 수도 없으니 부모의 마음이 오죽할까? 너무도 아프고 괴로운 이 시간을 통해 비로소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어가고 있는 젊은 부부다.
아버지나 어머니라는 위치는 아무나 가지지 못한다. 자식은 태어나는 것만 아니라 한 사람의 남자를 아버지가 되게 하고, 한 사람의 여자를 엄마가 되게 한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되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자식들의 일로 생살을 뜯어내는 것 같은 마음의 고통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자식으로 인해 죽어있는 상태 같은 그 공허와 상실감의 정도를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안도현의 시, [스며드는 것]에서 우리는 그 어머니를 본다.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겨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그렇게 살다가셨을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립다. 세월호와 이태원으로 대변되는 억울하고 괴로운 현실을 견디며 아버지와 어머니로 살아가고 있을 이 땅의 부모님들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친히 안아 위로해 주시고, 그 눈물을 닦아주시길 기도한다. 한나처럼 자식을 위해 두신 자리에 무너지지 않고 설 수 있는 지혜와 힘과 용기를 주시길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