舊 서울역에서
김종경
구 서울역 문화관에서 열린 유엔 세계보도사진전은 전쟁과 폭력, 기아로 쓰러진 지구의 반대편 가을 끝자락
풍경이었다. 나는 21세기가 쏟아낸 마지막 각혈이라고 말했고, 나의 애인은 쿨럭이던 내 가을의 뒷모습을 닮
았다고 대답했다.
광장 역 모퉁이, 도시의 그림자를 밟다가 실족한 몇몇의 청춘들이 빈술병처럼 뒹굴다 잠이 들었다. 또다시
늦가을 햇살처럼, 오후의 기지개가 길게 늘어졌고, 구원의 시계탑을 장악한 비둘기 떼는 가난한 청춘들을 비
스듬히 내려다보았다.
쓰러진 풍경을 새봄으로 전도 중인 광장의 천막교회는 곧 무료 배식을 시작할 것이다. 허기의 절정을 기다
린 제이비엘 스피커는 무수한 구원의 음표들을 쏟아낼 터이니, 아멘. 기도와 찬양은 유리 조각처럼 흩어져 그
대들을 환하게 비추리라.
도시 경쟁력이 세계 아홉 번째라는 믿음직한 서울의 엘이디 전광판. 그 밑엔 비정규직 철폐를 구걸하며 휘날리던 새빨간 현수막이 각혈을 하고, 글쎄요, 언제부터 인생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게 있었는지 아! 철없는 나의 애인은 알고 있을까.
[내가 뽑은 나의 시]/책만드는집/ 2012.
쓸쓸함! 참혹함! 어떤 곳에 한 시인은 서있다. 가고 있다. 가지 못한다. 배고픈 사람들과 버림받은 사람들과,
세계적인 문화를 자랑하듯 시간시간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는 구 서울역. 나도 얼마 전에 아들의 전시회에 갔
던 적이 있어 이 시가 눈에 띈다. 나 역시 그날 아들의 전시작품보다 舊 서울역 광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해고
자복직투쟁 행사와 외마디를 외치고 있던 그들'이 더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전시작품에 마음을 두기 어
려웠다.
나와 비슷하게 시인이 머물렀던 舊 서울역엔 이날 기아와 전쟁에 쓰러지고 매몰된 지구의 참혹상을 사진으
로 전시하고 있었나보다. 젊은 시인은 그곳에서 많은 상념이 가슴을 헤치고 지나감을 경험했으리라. 우리의
삶의 끝자락인듯한 사진 속 인간들과, 그것을 만들어낸 사진 밖 인간들과, 지금도 진행 중인 차별과 폭력으로
소외된 지구의 어떤 곳과..... 서울역에서 밥을 먹기 위해 모여들 어떤 인간들과, 또한 이 지구촌 곳곳에서 사
람 대접 못 받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의 삶에 대하여.....
“나는 21세기가 쏟아낸 마지막 각혈이라고 말했고, 나의 애인은 쿨럭이던 내 가을의 뒷모습을 닮았다고 대답했다.” 시인과 그의 애인은 서로에게서 보고싶지 않은 모습들을 보면서 가슴 속 깊은 곳의 쓸쓸함을 나눌 수 있었을까....무서운 21세기.....舊 서울역에 존재한다! 우리의 舊서울역! 아니, 우리의 마음속! 우리의 핏속 너무도 깊은 그곳!
첫댓글 다 갖가지 사연들을 품고, 구서울역에서 움크리고 누워있을 노숙자들,
그들이 따뜻함을 느끼는 사회가 진정 성숙한 사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또한 폭력과 소외와 억압과 착취가 다반사로 일어나는 지구촌.....
언제나 그 쓸쓸함이 줄어들 수 있을지 마음을 다스리기가 어려운 요즘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