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희망이 샘쏫는 계절이다. 까맣게 말라 붙은 가지에 피는 벚꽃에 세상이 놀라고 벌ㆍ나비가 찾아오는 화려하지 않은 꿈을 꾸는 계절.
삼라만상이 긴 겨울에서 깨어나 매무새를 추스리고 꽃동네를 곱게 수놓으며 무채색 강산을 천연색 붓으로 날마다 덧칠하고 있다.
지난 4.10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부를 향한 민심이 표출되었다. 당선자 숫자로만 본다면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 충청권 호남당, 국민의힘은 강원도 영남당으로 낙인 찍고 면목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러나, 유권자는 생물이라는 걸 망각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언제든지 표심이 돌아설 수 있다는 점은 여태껏 있어온 선거풍토였고 유권자는 정권을 냉혹하게 심판하는 민심 이동 현상이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듯이 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하고 오만 가지 생각이 시시각각 변한다. 승리에 도취된 위정자는 교만하기나 자가당착에 빠져 민심을 거스르는 일이 없게 늘 귀를 열고 시민의 생각을 듣는 엄숙하고도 절실한 자세로 임해야 할 일이다.
일본 여당인 자민당은 선거에서 과반수 의석에 패배하므로써 기시다 총리가 위기에 빠졌다는 일본의 소식이다. 또한 중국 베이징은 자동차ㆍIT기업 구애 현장이 됐다는 소식은 copy 중국의 오늘날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짐작하게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이 비대칭 무기로 현대전에서 무인 히든카드로 새롭게 부상하면서 각국 마다 드론 개발의 성능 향상에 전력하게 됐다. 한국도 155마일 휴전선에 대치하는 상황이라 최첨단 드론 개발은 물론 드론부대를 창설해 실전에 운용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철수하였다는 소식에 하마스와 휴전 협상에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이 나오는 국제 소식과 더불어 중동에 평화 정착과 유가 안정 평화를 바라는 세계인의 바램에 응답하는 희망의 신호가 들려오는 4월이 저물었다.
민주화 운동에 평생을 바쳐 살다가 얼마전 암으로 저 세상으로 간 홍세화는 "지금 한국 사회 어디에서 수치심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약삭 빠른 냉소로 가득한 이 도시에 온통 탁류가 흐르고 있다."고 했다.
4.10 선거를 관조하면서 범죄 경력이 있는 사람은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 할 수 없도록 법제화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국회가 범죄자의 피난처 보호장치가 되어서는 안되며 국민의 대표자로서 자격을 획득하기 위한 후보 자격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이와 관련, 한국사회에서 가장 변하지 않는 집단이 법원과 학교인 듯하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은 좌시할 일이 아니라 고쳐야 할 일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교사가 어린이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본다고 하니 경천동지할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싶다. 교육부ㆍ지원청과 어린이집 오너는 대오각성 심기일전 일할 수 있는 환경으로 시설을 개선해야 할 점이라 본다.
현재 한국사회는 아령형 사회로써 양극단은 두껍고 중간은 얇은 마치 아령 같은 구조를 가진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이 많고 중산층이 적은 경우도 아령형 사회라고 하는데 현재 한국이 처한 사회가 아령형 사회다 .
중산층이 두텁게 형성돼 있어야 안정되고 튼실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우리사회가 밀레니엄 시대 이후 N대통령 정권이 들어서고 난 후 부터 급격하게 좌ㆍ우 진영으로 갈라치기 되면서 사회갈등의 불씨가 번지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김대중 정권 당시만 해도 좌ㆍ우 진영 문제로 사회갈등 해결이 필요하다는 진단은 없었다. 위정자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유권자 입맛에 맞는 말잔치 정도였으나 근래 들어 국민을 양 진영으로 갈라서게 하였다.
코로나19 펜데믹이라는 특별한 환경이 있었다 치더라도 가운데가 튼실한 오뚜기형 사회체계가 무너지고 불과 십수년 사이에 현재 아령형 사회가 도래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위와 같은 사회병리현상 와중에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하여 중산층이 급격하게 감소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기업의 부채와 일반 시민이 떠안고 있는 부채는 심각한 수준으로 한국사회의 커다란 짐이 될 뿐만 아니라 국가발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으로 여겨진다.
필자는 지나온 4월 한 달 동안 여기저기 여행을 하면서 눈에 비친 영상 중에서 그 일부를 '사람 믿고 사는 세상' 공간을 통하여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정보는 공유하면 그 가치가 배가될 수 있지만 묻어두는 것은 정보로써 효용 가치를 상실한다는 생각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생각이 같을 수가 없고 세상은 내가 아는 만큼 밖에 볼수 없다는 점에 기인하여 필자의 생각이 독자의 생각과 비슷하거나 다를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소시민으로서 여기 적은 것은 본인 생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 독자들의 이해를 바라는 바이다.
필자는 실록이 숨쉬는 오월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시즌에 익어가는 청춘으로 필드에 나가 지인들을 만나고 밥상에서 얘기를 나누며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게 커다란 행복이다.
2024년 4월 30일 오후 6시 29분 벽암 생각
■ 15살 단종대왕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 청령포 유배 역사의 현장을 가다
고려 장군 이성계 위화도 회군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태조 이성계는 고려 400여년 역사에 불교문화 르네쌍스를 꽃피우고 북방 오랑캐 거란과 100년 몽골 항쟁의 역사를 지닌 고려를 멸망시켰다.
중국에 사신을 보내 찾아가 [조선]국호를 받아 [조선]을 건국한 게 오늘날 기록돼 있는 역사이다.
조선을 건국한 후 그의 후손 문종의 아들 단종은 제6대 왕에 즉위한 것은 단종 나이 15세 때 일이다.
단종은 그의 삼촌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보낸 조선의 역사.
세월이 160년이 흐른 후 단종은 복위되어 대왕 칭호를 받게 되었고 장릉으로 옮기게 되었다.
어린 단종은 영월에서 채 1년도 안돼 홍수로 인해 어가가 소실되고 나서 다시 경상도 순흥부로 귀양지를 옮긴다. 그후 그는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픈 역사의 한 쪽.
청령포는 지형상 외부인이 범접하지 못하는 자연지형이 외부와 단절된 곳이었다. 남쪽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된 산 아래로 지형상 급류가 굽이쳐 흐르고 배를 타야만 건너는 강변에 흙은 찾아볼 수 없고 물살에 굴러 내려가는 굵은 돌이 있는 자갈밭으로 돼 있었다.
단종 유배 당시 행정구역은 고려시대 정했던 행정구역으로 영월현은 순흥부에 속해 있었다. 조선초 당시에 [부]는 오늘날의 [도 단위] 구역으로 안동은 부사가 없었고 현으로 있었던 시기였다.
청령포 단종 어가는 문헌에 기반을 두고 새로 건축한 것이라 한다. 어가는 목조와가이며 전체 규모 사칸 북 방향을 향해 건축돼 있고 좌측 방 한칸, 중앙에 마루가 두 칸, 우측 방 한 칸 구조로 돼있다.
평민이 사는 집을 건축할 때도 남쪽을 향해 짓는 게 기본이다. 단종 어가 건물의 특이한 점은 햇볕이 잘드는 남향이 아니라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침모와 시녀 등이 거주하는 초가 사칸은 여덟자 방으로 발 뻗고 누울 공간으로 돼있고 서향을 보고 어가를 향해 지은 게 특이했다.
현재 어가는 당시 문헌을 토대로 건축하였다고 한다. 어가를 둘러싼 담장은 기왓장 시멘트 등 사용한 건축 자재로 보아 근대에 와서 축조한 것으로 보여지고 조선시대 당시에는 휑한 바람만 자유롭게 지나다니던 황무지였다고 짐작이 된다.
사진은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촬영한 것으로 보는 것과 같이 정오를 넘긴 시각 그림자가 어가 마당은 물론 침모 등 수하가 거주했던 초가 마당에 그늘이 가리고 있다. 겨울 혹한에 추위는 한층 더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단종 어가 주변은 소나무숲으로 많게는 4백년 남짓 적게는 2~3백년 수령의 소나무가 어가를 향해 마치 허리를 굽혀 절을 하는 듯한 형태를 한 게 그냥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설명하기가 힘든다. 숲의 주변 나무는 어가가 있는 방향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성장하고 있었다.
2024.4.28 오전 6시 벽암생각
https://youtu.be/Dsk32EgagHU?si=-4_RF2wbfp0K1K-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