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여름철 무더위에 장마가 찾아왔다. 29일 오후 추적추적 내리는 장맛비가 일요일인 오늘도 그치지 않고 있다.
빗물따라 흐르듯 보헤미안에 젖어보는 시각, 나는 어디서 왔으며 이 순간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길고 짧은 거 재볼 것도 없는 도토리 키재기가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리라.
사진은 우리 인생의 기억을 붙잡아 두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은 기억을 따라 과거의 시간으로 갈수 있는 작업이다.
지나온 유월 투어를 즐기면서 눈에 띈 사물 가운데 마음의 풍경이 닿은 것들 중에서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데 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데 있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세상은 내가 아는만큼 보이고 내가 알지 못한 것은 금덩어리가 있어도 알아보지 못한다.
마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고 오류와 거만함의 세계에 갇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일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더하자면, 땅에서 캐내어 생산하는 물질보다 우주에 무형의 에너지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는 것을 과학자들은 알고 있지만 그것을 이용할 만한 과학문명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할 수 있다.
속살을 감춘 채 비슬산 초입에 자리잡은 산사가 소재사이다. 모든 재앙을 소멸하는 부처님의 가피를 구할 수 있는 지장보살 기도처로써 전국 사찰 가운데 '소재사 ' 사찰명을 가진 곳은 유일무이하게 비슬산 소재사 뿐이다.
대웅전에 모셔진 삼존 석불은 당초 모습에 하얗게 옷을 입혀 한국적인 향기가 물씬 나는 부처로 충만한 자비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명부전 목조 지장보살로서는 규모가 웅장하고 자비의 향기가 가득함을 느낄 수 있다. 2년 전 각만 종사께서 지장보살 개금 불사를 하면서 인간문화재 상봉 종사의 기도로 태어난 후불탱화를 봉안하여 명실상부한 기도도량으로 모양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최근 두 달 만에 소재사 도량에 개딱지 같은 개혁의 바람이 불어 일주문과 주변 돌담장 아래 풀숲을 싹뚝 베어내고 홀라당 벗은 알몸을 드러내게 하고 말았다.
그가 해놓은 환경 정비는 곧 그 사람의 내면을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없이 하늘에 대한 무자비한 도전을 엿보게 한다.
자연은 수많은 먹이사슬 연결고리로 되어있어 풀숲 꽃과 곤충 나비와 산새 뿐만 아니라, 한낮에 열기를 식혀 시원한 공기를 보급해 주는 나무와 풀숲이다.
외부에서 보면 보일듯 말듯 은근히 감춰두었던 사찰 경내가 입구 극락교에서 보면, 온기는 온데간데 없이 단아한 대웅전 모습이 썰렁하고 을씨년스럽게 속살을 다 드러내고 어디 감출 곳도 숨을 곳도 없이 허허벌판에 내세워 놓은 꼴이 황량한 산사로 탈바꿈해 놓았다.
하기야 한 달 후에 풀숲은 다시 자란다 치더라도 불과 두 달새 주지 승려가 바뀌고 난후 개인이 가진 생각과 인생관 내지는 불교관의 차이가 어마무지하게 드러나는 현장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누구의 생각으로 누구의 행동으로 소재사가 변한 것인지는 알 필요가 없는 듯하다. 다만 지난 수십년간 소재사가 지녔던 온기를 잃어 다시 누릴 수 없는 게 아쉽다. 거기에다 외부에 설치한 스피커 소음은 고요를 몰아낸 경내가 동성로에 서있는 분위기다. 어디를 가든 산기슭 구석구석 숨어있는 게 한국의 사찰이다.
삼라만상은 고요하게 핍박이나 홀대받지 않고 온전히 있는 그대로 생명을 다하기를 무언 중에 기도 발원하고 있다. 자신을 나타내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바로 가장 커다란 어리석음이리라.
그의 마음이 내키는대로 하는 무소불위는 불교의 정신이라고 인정하기에는 불자로서 이해하기 힘들다.
(※인용) 인욕경에 이르기를... '선(善)이 극에 이르러도 효(孝)보다 크지 않고, 악(惡)이 극에 이르러서도 불효(不孝)보다 크지 않다.' 고 적고 있다. 내게 소유는 가지는 게 아니라 잠시 관리하는 것이므로 부처님께 효(孝)를 행하는 기도하고 닦는 게 이 시대의 성불이 아닐까 싶다.
2024.06.30. 09:45분 벽암 생각
“시대는 세대를 만든다 세대는 시대를 만든다”
100세 시대에는 현재 나이에 0.7을 곱해야 실질적인 나이가 된다는 평가가 있다. 요즘 실제로 70~80세임에도 노인이라 부르기 미안한 분이 많다.
최근 부쩍 주목받고 있는 ‘욜드(YOLD·Young Old)’는 한마디로 젊은 노인이다. 이들은 돈도 많고 건강하다는 점에서 기존의 노인층과는 판이하다. 주로 60세 이상이지만 은퇴를 거부하는 불퇴족(不退族)이다. 이들은 꼰대, 나일리지(나이+마일리지) 등 비아냥에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세계적으로는 일하는 80대, ‘옥토제너리언(Octo-genarian)' ’
이 부활하고 있다.
올해 미국 대선 양대 후보의 나이를 보라. 정년과 은퇴에 대한 과감한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인용/조선일보)
그동안 가족간 사기ㆍ횡령 등 재산 범죄는 형사 처벌이 면제 됐으나 헌법재판소가 피해자 재판 기회 침해를 들어 내년에 법을 개정할 때까지 적용을 중지하라고 사실상 위헌 결정을 내린 셈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과거에 제정한 법은 바뀌는 게 당연한 이치다. 근래들어 한국의 상속세법 등 1960년대 제정한 70년전 구시대 법을 현재에 맞게 손을 보는 것은 시대적 책무인 듯하다.
이참에 배기량 기준으로 입법한 자동차세도 손볼 날이 말잖았다는 생각이다. 자동차는 가액에 따라 세금을 차등 부과하는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하여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배기량 1,500cc 7~8천 만원의 고가 외제 차량과 3,000cc 100만 원 국산차 세금이 과다한 것은 어불성설이라 해도 지나친 논리가 아니다.
2024.06.30. 09:45분 벽암 생각
과도한 상속세가 국부 유출 부추긴다
국제화·정보화 시대에는 세계 어디에서나 사업을 원격으로 진두지휘할 수 있다.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나가서 해외에서 6개월 이상 살면 세법상 국내 비거주자가 된다. 또한 해외에서 법인을 설립하면 시민권이나 영주권 취득이 쉬운 나라가 많다. 점점 더 인재와 재산을 국내에 붙들어 두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해외로 국부가 유출될 확률을 낮추는 방향으로 국내의 제도와 규정을 면밀하게 손봐야 한다. 특히 상속이나 증여 과정에서 지나친 세금 부담을 낮출 필요가 있다.
현재 상속·증여세법은 ‘사망자가 비거주자인 경우 국내에 있는 상속 재산만 상속세를 과세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연로한 재산가가 죽기 6개월 전에 국내 재산을 해외로 송금해두고 해외에서 생을 마치면 국내에 남아 있는 재산에만 과세된다. 해외에 유출된 자산은 현지 국가에서 상속세를 낼 때 비과세되거나 공제 금액이 큰 경우가 많다. 상속세 부담의 국내외 차이가 클수록 해외로 국부가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그뿐만 아니라 부유층이 적은 상속세를 노려 해외에 합법적으로 이주할 경우, 부모와 함께 떠난 자녀도 한국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40%는 상속세가 없기 때문에 국내 상속세를 피해 선택할 수 있는 나라가 제법 많다.
상속뿐 아니라 증여할 때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이 ‘증여받는 사람이 비거주자인 경우 한국 내에서 증여받은 재산만 증여세를 과세한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리한 기업가가 자녀를 해외 유학을 보내거나 현지에 취업시킨 다음, 국내 재산을 팔아 해외로 송금하고 현지에서 증여하면 국내 증여세를 내지 않는다.
결국 상속·증여에 대한 과도한 세금 부과는 국부와 두뇌의 해외 유출을 장려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인용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