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신앙 그리고 가족' 2008/11/12 17:52 http://blog.chosun.com/mantears/3488243
오늘 소개하는 영화는 '남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꿈'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지요.
이 영화는 널리 알려진 영화이기 때문에 대부분 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든 이제부터 보실 영화리뷰에는 스토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는 글을 함께 넣는데, 개인적으로는 영화리뷰에 스토리가 포함되는 것을 크게 문제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결말이 어떻게 될까하는 궁금증이 영화를 선택하고 감상하는데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죽지 않지요.)
예술작품과 같은 창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이 얼마나 뛰어난 재능이 있는지, 그가 얼마나 훌륭하게 솜씨를 발휘했는지를 '관객'의 입장에서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창작품 속으로 들어가서 '우리 스스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한 권의 책을 선택할 때, 한 편의 영화를 선택할 때...그 책이나 영화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신중하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책을 읽는 3시간, 영화를 보는 1시간 50분 동안 우리는 책 속으로(영화 속으로) 들어가서 지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책이나 아무 영화나 보면서 2~3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요.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수히 만나게 되는 ('선택의 순간'에 우리를 도와주는) '정보'는 객관적이고 사실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 '서프라이즈'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서프라이즈(surprise)'가 30초를 넘어가게 되면 즐거움보다 당혹감을 느끼게 되기 쉬우니까 말입니다. 더구나 창작품에서 '서프라이즈'를 만나게 되면 불쾌감마저 느낍니다. 우리가 창작품에 다가갈 때에는 대개 매우 진솔한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가리지 않기 마련입니다. 정신의 고양을, 일종의 심적 스켈링을 하려는 것이지요. 창작품을 가지고 장난치면 절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왜 영화리뷰를 쓰면서 줄거리며 대사, 장면을 그대로 인용하고 분석하는지에 대한 설명이었고, 이제부터 리뷰!~를 시작합니다.
There Will Be Blood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Oil(1927,Upton Sinclair의 소설)'의 앞부분을 가져와서 작성했지만, 사실상 소설과는 관계없이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고 합니다. 즉, 'Oil'을 원작소설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 싱클레어의 소설에 'loosely based on(막연히, 대충, 부정확하게 연관성이 있는)'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21세기 미국인의 인생관을 20세기 초의 무대에서 영국배우의 연기를 통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1898년 주인공 다니엘 플레인뷰(Daniel Plainview)는 혼자서 들판에 있는 수직 굴 속에서 돌로 된 벽을 깨고 있습니다. 은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돌벽에 구멍을 파고 폭약을 묻은 뒤 도화선에 불을 붙여놓고 재빨리 수직굴의 사다리를 올라와야 합니다. 이 작업을 하던 중 플레인뷰는 굴 속으로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집니다. 머리 위로 동그랗게 하늘만 보이는 수직굴에 놓여있는 사다리를 한쪽 다리가 부러진 플레인뷰가 기어오릅니다. 그렇게 지상으로 올라온 주인공은 내려쬐는 햇살 아래 먼지만 풀풀 나는 허옇고 메마른 땅을 몸으로 기어서 마을까지 돌아갑니다. 그의 손에는 검은 돌조각 하나가 들려 있었지요.
4년후, 주인공은 유정(oil well)을 파고 시추작업을 하는 인부들을 지휘하고 있는데, 작업 도중 인부 한 명이 시추봉에 맞아서 사망하고, 플레인뷰는 이 사고로 고아가 된 인부의 아들을 입양합니다. 플레인뷰는 늘 기름때와 먼지를 덮어쓴 채 지냅니다.
빠르게 성공한 그는 1911년 자신의 회사를 설립합니다.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법한 지역의 땅을 리스(임대하여 석유만 뽑아가는 일종의 토지이용계약)하여 땅을 파고 석유매장 여부를 확인한 다음 본격적인 작업을 하게 되는 석유개발사업을 하면서 플레인뷰는 아들을 항상 데리고 다닙니다.
그는 토지소유자들에게 자신의 석유사업의 특징을 첫째, 가족사업이고, 둘째, 사장인 자신이 직접 우물을 파고 인부를 지휘하여 작업을 하는 전문기술자라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아들에게 땅을 빌리기 위한 협상과정에서부터 현장에 나가서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지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까지 가르쳤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한 팀'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가족기업의 꿈'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지요. 플레인뷰가 석유채굴작업에 전문기술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의 성공비결은 '실력주의와 성실'이었습니다. 석유채굴을 시작하면 학교와 의료시설을 짓고, 도로를 건설하여 환경을 개선하였습니다.
어느 날 폴 선데이(Paul Sunday)가 플레인뷰의 사무실로 찾아와서 석유가 나는 곳을 알려줄테니 500달러를 달라는 제안을 합니다. 얼마 후 플레인뷰는 아들을 데리고 폴의 집으로 가는데, 그곳에는 폴의 아버지 아벨(Abel)과 어머니, 일라이, 여동생 두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벨은 신앙심이 투철한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손님에게 대접할 것이 없다며 미안해 했는데, "물과 산양유를 드릴 수 있습니다. 감자도 있지만 빵은 없습니다."라고 했지요.
아들과 캠핑왔다고 말한 플레인뷰는 메츄리 사냥을 하겠다며 아들을 데리고 들판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현황을 조사합니다. 플레인뷰의 아들은 아직 어렸지만, 스스로 지표면에 새어나오는 석유를 발견할 정도의 안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어른스럽게 물어봅니다. "저 사람들에게 석유값을 줄거예요?" 플레인뷰는 "아니야. 땅을 빌리는 돈을 주고, 석유가 있는 것이 확인되면 보너스를 줄거야. 그렇지만 석유값은 주지 않는 거란다."라고 설명해줍니다. 리스계약의 내용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플레인뷰는 아벨의 땅을 비롯하여 인근의 땅을 리스했습니다. 그는 "여러분, 빵이 사치품이어서는 안됩니다."라고 하면서 감자만 겨우 먹고사는 주민들에게 빵과 학교와 의료시설을 약속했습니다. 주민 가운데 단 한 사람 윌리엄 밴illiam Bandy)는 별도의 협상을 원했지만 플레인뷰는 그를 방문하지 않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와 리스계약을 체결합니다.
아벨의 아들 일라이 선데이(Eli Sunday)는 신앙으로 병을 치료해준다는 제3계시교(the Third Revelation)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는 제3계시교의 세력을 키우기 위한 나름대로의 계획을 가지고, 플레인뷰에게 유정탑 기공식때 축원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이 땅의 자랑스러운 아들(The proud son of these hills, who tended his father's flock)...이라고 하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지만, 기공식날 플레인뷰는 일라이 대신 그의 여동생 메리를 단상으로 데리고 가서 자랑스러운 딸('honorable daughter')이라고 소개합니다.
그 일이 있고 곧 유정탑에서 인부가 떨어져서 사망하자 플레인뷰가 일라이의 교회를 찾아가서 장례식 기도를 부탁했는데, 일라이는 기공식때 자기가 축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고, 또 바로 그 다음 날 유정탑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합니다. 유정탑이 불타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유정탑에서 멀리 달아나기에 바빴습니다. 그런 가운데 플레인뷰는 아들이 유정탑에 있었다는 생각만으로 불타는 유정탑으로 달려 올라가서 정신을 잃고 있는 아들을 안고 나옵니다. 이 때 아들이 청력을 잃게 됩니다. 사고는 우연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 후 일라이가 석유가 발견되면 주기로 한 5000달러를 받으려고 플레인뷰를 찾아오자 신앙으로 병을 치유한다면서 아들을 고치지 못하느냐고 분노를 터뜨립니다. 흙과 기름이 범벅이 된 땅에 일라이의 얼굴을 쳐박고 "땅에 묻어버리겠다"고 으르렁댑니다.
하루는 낯선 사람이 플레인뷰의 이복동생 핸리(Henry)라고 하면서 플레인뷰를 찾아옵니다. 핸리가 가져온 편지를 확인하고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은 플레인뷰는 핸리를 이복동생이라고 믿게 됩니다. 그는 핸리에게 "나는 승부욕이 있어. 나는 누구의 뒤에도 서지 않을 거야. 나는 사람들을 다 싫어해."라고 했고, 핸리는 "그런 것은 다 사라졌어. 열정, 승부...결국 실패 뿐이었는 걸. 이제 그런 것은 상관없어."라고 합니다. 그러자 플레인뷰는 "아무튼 내게 있는 것은, 너에게도 있는 거야. (if it's in me, it's in you)"라고 합니다. '가족'에 대한 강한 유대감을 표시한 것입니다.
그는 이어서 자신은 사람들에게서 좋아할만한 구석을 본 적이 없고,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서도 살 수 있도록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아이의 청력이 회복될지에 대하여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플레인뷰는 핸리에게 "네가 와서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야.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지만 이제 너와 나 이렇게 둘이 있으니까..."라고 합니다. 반쪽의 혈통이 같은 이복동생, 플레인뷰는 그를 '가족'으로 환영합니다.
그날 밤 플레인뷰의 아들은 핸리의 일기장을 읽었는데, 아이는 핸리가 자고 있는 동안 핸리의 침대에 불을 지릅니다. 아들이 청력을 읽은 것에 상심했지만, 농아학교 선생님을 모셔오려고 수소문하고 있던 플레인뷰는 아들이 청력을 잃은 것을 뱓아들이지 못하고 절망감을 불까지 지르게 되자, 자신으로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샌프란시스코의 농아를 위한 기숙학교로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아들과 함께 기차에 탄 플레인뷰는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 아들을 남겨두고 기차에서 내립니다. 물론 아들을 데리고 갈 사람을 태웠지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들은 차창을 통하여 아버지의 뒷모습을 봅니다. 애타게 아버지를 부르지만 플레인뷰는 뒤돌아보지 않습니다. 아들은 침착하게 걸어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아버지가 자신을 냉담하게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동영상 플레이 버튼을 클릭하고, 볼륨을 적절하게 조정해주십시오.)
아들을 보낸 플레인뷰에게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철도회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운송비용없이 석유를 철로로 항구까지 운반할 수 있는 스텐다드 석유회사(Standard Oil)에서 플레인뷰를 방문하여 백만달러에 사업을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수송비용을 고민하던 플레인뷰로서는 매력있는 제안이었고, 더구나 백만달러는 큰 돈이었지요.
플레인뷰는 승락도 거절도 하지 않고 만일 사업을 넘겨주게 되면 자신은 무엇을 하며 살면 좋겠느냐고 물었는데, 스텐다드 석유회사에서 온 대리인은 "아들을 돌보며 지낼수 있겠지요" 라고 했습니다. 이 한 마디에 플레인뷰는 백만달러를 거절합니다. 분노한 그는 "내 가족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 내 아들을 어떻게 키우든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고 하면서 대리인을 쫓아버립니다. 이 일로 하여 플레인뷰는 어쩔수없이 석유수송관을 설치해서 유니온 석유회사(Union Oil)에 석유를 팔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석유수송관을 설치하려면 밴디의 땅을 지나가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50마일을 돌아서 가야 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 밴디가 개인면담을 요청하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플레인뷰는 밴디를 찾아가게 됩니다.
플레인뷰는 밴디가 여행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해변에서 핸리와 유니온 석유회사와 거래가 성사된 것을 축하하면서 이런저런 추억어린 이야기를 나눕니다. 플레인뷰는 "존 홀리스터가 지은 퐁두락에 있던 집을 기억해? 소년시절 그 아름다운 집을 보면서 갖 은 그런 집이라고 생각했어. 그런 집에 살면서 그곳에서 식사하고 집을 청소하고, 어렸지만, 나는 그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어."라고 하지만 핸리는 기억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핸리를 의심하게 된 시초였습니다.
이날 밤 핸리는 블레인뷰의 진짜 동생은 자신의 친구인데 결핵으로 죽었다고 고백합니다. 거짓으로 가족행세를 한 것을 사과하면서 떠나겠다는 핸리에게 총을 겨누고 있던 플레인뷰는 냉정하게 방아쇠를 당깁니다. 첫 번째 살인입니다. 반쪽의 혈통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는데, 핸리는 거짓말을 한 것이었고 그것은 '가족의 신뢰'에 대한 배신이었습니다.
핸리를 묻은 다음 날, 밴디는 플레인뷰의 살인행위를 알고 있다는 암시를 하며 자기 땅을 리스하려면 제3계시교에 나가서 세례를 받으라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가족' 때문에 백만달러를 거절하고, '가족의 배신' 때문에 살인을 한 플레인뷰는 자신이 선택한 사업방법을 고수하기 위하여 밴디의 땅을 리스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의 입장에서 볼 때 사이비종교라고 할 수 있는 제3계시교의 신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간 플레인뷰는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이다가 단상으로 나갑니다. 일라이는 플레인뷰의 얼굴과 머리를 때리면서 "나는 자식을 버린 죄인입니다"라는 말을 큰 소리로 외치게 했습니다. 플레인뷰는 자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말 때문에 백만달러를 거절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플레인뷰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는 자식을 버렸습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나는 자식을 버렸습니다. 나는 자식을 버렸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나는 자식을 버렸습니다...하 하...나는 석유수송관을 얻었습니다!"라고 합니다. 플레인뷰는 밴디의 땅을 리스했습니다.
1927년 저택에서 집사와 쓸쓸하게 지내는 플레인뷰에게 아들이 찾아옵니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답게 잘 차려입은 아들은 통역자를 대동하고 왔습니다. 플레인뷰는 아들의 생활 전부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아들은 플레인뷰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들은 일라이의 여동생 메리와 결혼하여 멕시코로 가서 석유회사를 차리겠다고 했습니다. 영원히 그를 떠나서 경쟁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1927년, 결혼을 한 자녀들도 주말이면 부모의 집에 모여서 식사를 했던 시절에 아버지에게 도전장을 낸 것입니다. 평생 자신의 노하우를 가르쳐주고, 생계를 책임져온 아버지에게 결별을 선언하러 온 것입니다.
플레인뷰는 아들을 설득합니다. "네가 내 경쟁자가 되겠다는 거냐? 네가 하려는 일은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일이고, 세상에 나를 망신시키는 일이다."
고집을 꺾지않는 아들에게 플레인뷰는 "너는 고아였고, 내 자식이 아니었다"고 사실을 뱉듯이 알려줍니다. 플레인뷰는 세상에서 유일한 쉼터인 '가족'으로부터의 배신을 당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남의 자식이었던 아들은 "당신과 남이어서 신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납니다. 평생 정성을 들였지만 역시 '남'이었던 것입니다. '가족'이 아니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플레인뷰는 일라이에게 은유적인 말을 합니다.
"네가 밀크쉐이크를 가지고 있으면, 나도 밀크쉐이크를 가지고 있는 거야. 나는 스트로우를 가지고 있거든. 자, 이것이 스트로우야. 보이지? 보고 있는 거야? 그리고 내 스트로우는 쭉쭉 쭈~욱 늘어나서 이 방을 가로지른 후 네 밀크쉐이크를 마시기 시작하는 거지. 나는...너의...밀크쉐이크를 ...마시는 거야."
(플레인뷰는 일라이의 교회에서 모욕을 참고 밴디의 땅을 리스했습니다. 그는 밴디의 땅에 유정을 파지는 않았지만, 그의 땅에 매장되어 있던 석유를 몽땅 채유했던 것입니다.)
밀크쉐이크를 비유적으로 사용했던 사람으로 미국 상원의원 앨버트펄(Albert Fall)이 있습니다. 1924년 와이오밍 석유채굴권과 관련하여 수뢰죄로 기소되었던 그가 남긴 " Sir, if you have a milkshake and I have a milkshake and my straw reaches across the room, I’ll end up drinking your milkshake" 라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 플레인뷰가 같은 대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일라이를 조롱하고 있던 플레인뷰에게 일라이는 사업자금을 얻을 욕심으로 "우리는 이제 가족이잖아요"라고 말합니다. 플레인뷰는 '가족'이라는 말에 일라이를 두들겨팹니다. 결국 일라이의 머리가 깨어져서 죽을 때까지. 플레인뷰의 '가족'에 일라이는 결코 들어올 수 없는 인물인 것입니다. 일라이가 죽은 뒤 볼링레인에 앉아있던 플레인뷰는 집사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동영상을 보시면 플레인뷰가 단 한 마디 아래의 이 말을 합니다. 그의 목소리를 주의깊게 들어보면 이와같은 설명에 이해가 갈 것입니다.)
"이제 끝냈군(I'm finished.)"
참고로 영문법에서 과거분사는 막 할 일을 다 마친 상태 즉, 완료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이 영화는 사업가 정신, 종교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사업에 성공했습니다. 그가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듯이 '가족'은 '결혼'이나 '아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족들 사이의 애정, 보살핌 같은 것은 오히려 부차적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평생 '꿈'을 찾아서 자신을 바쳤던 플레인뷰가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신뢰', 특히 이해타산을 넘어선 신뢰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이라고 하겠습니다. (도서 리걸마인드 참조) 레인뷰가 말 바와같이 가족은 "내 것은 네 것"이고, 남은 "네것은 내것"일 수 있는 것이지요. 오늘날과 같은 경쟁사회에서 말입니다.
가정은 남자와 여자가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은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엮어놓은 엉성한 대나무발이 아니라 지구처럼 빈틈없이 혼연일체가 된 하나의 '세계'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정'을 돈으로 계산하고, 법으로 재단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30년 전 미국 사회가 꼭 오늘의 우리와 같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8년 미국 사회가 가장 뼈저리게 후회하는 것은 '가정과 가족의 해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