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각
2001년 08월 05일
여호와 닛시
출애굽기17:8-16
2001. 8. 5. 설교방송(설교본문)
여호와 닛시
출애굽기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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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은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으로 겪은 전쟁의 기록입니다. 전쟁의 상대는 아말렉 족속이었고,전쟁의 이유는 아말렉의 습격으로 인한 것이었으며,장소는 르비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싸웠습니다. 이 전쟁을 전체적으로 지휘한 지도자는 산 위에서 손을 들고 기도한 모세였고,군대를 거느리고 직접 나가 싸운 장수는 여호수아였으며,아론과 훌은 모세의 기도하는 손을 함께 붙들었습니다. 아말렉의 기습으로 시작된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스라엘만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구원받은 우리도 영적인 전쟁을 해야 합니다.
1.영적 전쟁에 대해서
1)영적 전쟁을 이상히 여기지 맙시다 : 이스라엘 백성은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싸웠습니다. 이스라엘은 원하지 않는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말렉 지경을 침범하지도 않았고,달리 아말렉에게 해를 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말렉은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공격할 줄 알고 미리 공격을 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았습니다. 남과 싸울 마음도 없고,남에게 해를 끼칠 마음도 없습니다. 싸움은 싫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평화하고 싶어도 원수들이 미리 공격합니다. 우리는 빛입니다. 어두음은 빛을 싫어하기 때문에 우리를 공격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자녀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를 싫어하여 우리를 공격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영적인 싸움은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보장받은 성도이고 천국을 향해 가고 있는 성도이지 결코 천국에 들어간 성도는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저런 원수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전쟁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으로 여기지 마십시다. 교회에 처음 나오는 분들은 영적 전쟁이 일어나면 쉽게 겁을 먹고 주저 앉습니다. “예수 믿고 교회 나오는데 왜 이런 복잡하고 무서운 일이 생기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제가 교회에 처음 나가서 은혜를 받았는데,함께 기도원에 다닌 경험 많은 집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하라”고 했습니다. 기도원에 다니고 은혜 받았다는 사람 중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많아서 교회 담임 목사님이 우리를 좋지 않게 보실 수있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미리해 주신 것입니다. 전쟁을 이기는 비결은 전쟁 같이 여기지 않는 담담한 자세입니다.
2)아말렉의 야비한 공격 : 아말렉은 신명기 25:17절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후방을 기습했습니다. 대상은 주로 어린이나 노약자들이나 병든 자들이었습니다. “곧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 잔인하고 비겁한 공격입니다. 전쟁도 대의 명분이 있고,전쟁에도 교전 규칙이 있는데 아말렉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와같이 적은 우리의 약점을 공격합니다. 적은 우리가 피곤할 때 공격합니다. 몸이 병들었거나,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영적으로 침체했을 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합니다. 우리 좋은대로 그냥 두지 않습니다. 어찌하든지 우리에게 손해를 보이려 합니다.
사단이 욥을 공격한 것을 보십시오. 욥의 물질을 빼앗았고,욥의 자녀들을 죽게 했고,욥의 아내와 친구들을 통해 욥의 명예와 신실성을 공격했고,욥의 건강을 빼았습니다. 사단이 하지 못한 것은 욥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욥의 생명은 사단의 임의대로 할 수 없다 하셨기 때문에 그것만 할 수 없었습니다. 불쑥 앞과 뒤에서 나타나서 우리의 가는 길을 가로막는 원수 아말렉이 있습니까? 무엇입니까? 누구입니까?
3)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것을 기억합시다 : 영적 전쟁에서 가장 귀중한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만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진리입니까?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마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16절).” 아말렉과 전쟁은 여호수아가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 싸웠지만 실상 하나님이 싸우신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많은 전쟁 기록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놀라운 승리 중의 하나는 여리고성 전쟁입니다. 이스라엘 군인이 칼과 창으로 이긴 것 아닙니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하루에 한바퀴씩 돌았습니다. 여리고 전쟁은 군인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하신 것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쟁 중의 하나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다윗이 물멧돌 하나로 골리앗의 이마를 명중해서 이겼습니다. “너는 창과 칼로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단과 싸워 이겼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으시고 3일 동안 죽으셨지만,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단의 공격으로 발꿈치를 상했지만,사단의 머리를 깨고 완전히 이기셨습니다.
원수들이 우리를 아무리 야비하게 공격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영원히 싸우실 것입니다. 원수들이 포악하게 공격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 원수들이 집요하게 공격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부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43:1-2).”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2.영적 전쟁에서 이기려면
1)모세는 기도했습니다 :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멜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9절).”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군대를 선발하여 나아가 싸우라고 명령하고,자신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모세는 좋은 무기를 제공한다거나,넉넉한 보급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오직 기도 달려 있음을 알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모세는 지혜롭게 행한 것입니다. 아멜렉은 무기를 제대로 갖춘 강력하고 잔인한 군대입니다. 이에비해 이스라엘은 무기도 없고 훈련되지 않은 오합지졸입니다. 모세가 기도하기 위해 산에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함으로 영적 전쟁을 수행합니까?
“오늘 집을 나서기전 기도했나요? 오늘 받을 은총 위해 호소했나요?”
모세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전심으로 전력으로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좀 더 가까이 나아가서 하나님께 전폭으로 맡기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얼산 기도원을 세운 이천석 목사님은 상의 용사로 의족을 한분인데,기도할 때에는 청계산 기도원 꼭대기에 올라갔답니다. 신비적인 의미로 좀 더 가까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그렇게 했는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비판만 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합니까?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사망 선고를 받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유다의 왕으로 왜 의원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적인 의지는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 보았습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다윗은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병들었을 때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지만 식음을 폐하고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전쟁터를 내려다 보면서 기도했습니다. 있는 형편을 하나님께 직고하였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삶의 터전을 바라보고 드립니까? 기도를 문학적으로 시적으로 하지 않습니까? 삶의 한 가운데를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기도를 드립시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서 온 형제들로부터 예루살렘 성벽이 불탄채 방치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그 처참한 광경이 눈에 선해서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자 하는 심정으로 금식하여 기도하였습니다. 현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이 다 보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과부의 기도를 잘 응답하십니까? 자신이 삶을 그대로 보여드리기 때문입니다.
94년도 추석으로 기억됩니다. 천마산 기도원에서 추석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당시 94년 3월부터 개포동 상가에 있는 영생교회에 설교 목사로 있었는데,일산으로 교회를 이전하기 위해 상가를 처분해야 했습니다. 4층에 있는 상가인데,2층도 교회이고 6층도 교회입니다. 주변에 교회가 여럿이고 상가가 잘 안되어서 전혀 거래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일산 후곡마을에 유치원을 산다고 계약은 했는데 상가 처분이 되지 않으면 큰 일입니다. 추석이라고 집에 있는 것이 편하지 않아서 기도원에 갔습니다. 추석 보름달이 밝은데 천마산에서 경춘도로를 내려다 보니까 차동차 전조등 불빛이 꼬리를 물고 서 있습니다. 사람들은 추석이라고 세상 가운데 있었지만,나는 하나님 품 안에 있었습니다. 그 기도 덕분에 상가를 처분하고 일산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6층 교회가 다른 곳으로 이전할 계획이었는데,그것이 트러지는 바람에 홧김에 4층으로 내려 오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우리가 왜 6층에서 4층으로 내려갑니까 다른데로 갑니다” 하고 외면했던 교회가 스스로 찾아와서 내려온 것입니다.
우리는 대적을 만날 때마다 산으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손을 들고 기도합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 전날밤,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기도하는 자가 승리합니다. 다니엘은 정적들의 모함으로 사자굴에 던져져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매일 하루 세번씩 하던 기도를 중단했습니까? 사자굴에 던져지는 것을 알고도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손해 보았습니까? 아닙니다. 원수들이 사자밥이 되고,다니엘은 오히려 더 높아졌습니다.
2)아론과 훌은 모세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여기서 손을 든다는 것은 기도를 계속한다는 것이고,손을 내린다는 것은 기도를 중단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왜 손을 들고 내립니까? 계속 들고 있으면 되는데 왜 그렇게 하지 못합니까? 힘들고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잠시 손을 들고 있을 수 없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고 혼자서는 싸움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함께 돕고 협력해야 합니다. 모세의 손이 피곤하여 내려오지 않도록 아론과 훌이 붙잡았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함께 손을 붙잡고 기도합시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이 함심하여 기도할 때 성령이 강림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초대교회는 구제와 봉사를 위해 사도 외에 일곱집사를 구분하여 세웠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사도라도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일곱집사가 필요했습니다.
우리의 손은 기도하는 손이고 동역하는 손입니까? 아니면 비판하고 손가락질하는 손입니까? 구경이나 하는 손입니까? 당신이나 수고하라고 손만 흔드는 허수아비 같은 손입니까? 아니면 방해하고 훼방하는 손입니까? 바울에게는 브리스가와 아굴라라는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을 위해서라면 눈이라도 빼어서 줄 수 있었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삼위일체가 되었습니다. 바울과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삼위일체가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목사님의 손을 잡아주는 장로님과 집사님이 있다면 우리는 늘 승리할 것입니다. 선교사의 손을 굳게 잡아 주는 교회가 있다면 마음껏 일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날로 확장될 것입니다. 지역장과 구역장과 권찰이 동역하는 손을 잡으면 크게 부흥할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는 아내의 손을 잡아주는 남편이 있다면,일하는 남편의 손을 기도로 붙잡아 주는 아내가 있다면 그 가정은 승리할 것입니다. 기도하는 손,일하는 손,함께 잡아 주는 손. 얼마나 아름답고 권세가 있습니까?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부모를 위해 기도하는 자녀가 있다면 그 가정은 승리할 것입니다. 삼겹줄의 역사를 쉽게 끊을 수 없습니다.
3)그리고 여호수아는 나아서 싸웠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10절).” 이스라엘의 군대는 엉성하고 빈약했지만 최선을 대해 싸웠습니다. 영적으로 물러서서는 안됩니다. 사단의 공격을 대적해서 싸워야 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5:8-9).” 바울도 자신의 생애를 돌아볼 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히4:7).”
우리는 싸울 자세가 되어 있습니까?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6:10-11절).” 우리는 싸우고 있습니까? 승자와 패자는 어떻게 다릅니까? 승자는 몸을 바치고 패자는 혀를 바칩니다. 승자는 행동으로 증명하지만 패자는 말로 행동을 변명합니다. 승자는 한번 싸울 각오를 하지만 패자는 싸울 엄두도 내지 않습니다. 승자는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각오를 하지만 패자는 쓰러진 일곱 번을 되씹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승리하는 비결 중에 비결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물러서지 않는 것입니다. 견디는 것입니다.
제가 신대원에 다니면서 교육전도사로 일할 때 일입니다. 한번은 이런 저런 이유로 학교 휴학 할 생각에 담임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한마디로 “그럼 교육전도사는 못해” 하시는 것입니다. 두마디도 아니고 단 한마디였습니다. 저는 많이 고민했고 저의 형편을 들어주실 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였습니다.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붙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견디라 싸우라는 한마디로 위기를 능히 극복했습니다. 돌아서서 제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조건 학교 가는 것 밖에는 길이 없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승리한 기념으로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불렀습니다.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어떤 적을 만나 싸우더라도 우리를 도와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종일 죽를 위하여 죽음을 당케 되며 도살할 영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6-37).” 우리는 승리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어떤 대적이라도 이기고 있습니까?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