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장애가 되는 것들
- 마음이 얽매여 있는 상태.
- 자기중심적인 마음.
- 여유가 없다.
- 무엇엔가 집착하고 있어서 생각이 마음을 빼앗을 때.
- 끝도 없는 자질구레한 용무에 쫓기고 있을 때.
- 피로, 생활이 위협을 당하고 있을 때.
- 초조할 때, 외적 압박을 받을 때.
- 자제심이 한계에 이르렀을 때, 마음이 어떤 한계에 와 있을 때.
- 인내할 수 없게 되었을 때
- 사회적 원인 (물질적 풍요, 편리함,) 능률주의에 사로잡혀 있을 때
- 외적인 것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릴 때.
- 기도에 대한 지도가 결핍되어 있을 때.
- 의욕을 잃고 타성적이 되어 있을 때.
- 현상유지에 머물러 향상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을 때.
- 추상화된 개념 세계에 살고 있을 때, 또는 분석에만 치우쳐 있을 때.
- 머리로만 기도하여 마음이 메말라 있을 때.
- 세속적 쾌락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을 때.
- 그럭저럭 이 정도로 좋을 것이라고 자신을 속이고 있을 때.
- 자신이 지쳐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언제나 분주한 기분으로 있을 때.
- 어떠한 자극에 대하여 만성이 되어 있을 때.
- 목적의식의 결여.
- 현실에서 도피해 있을 때.
- 올바르지 못한 하나님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때.
- 형식주의적인 생활.
- 과신, 교만, 마음이 둔해 있을 때.
-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 인간관계로 고민하고 있을 때.
- 기도의 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 않을 때.
- 기도를 할 수 있는 고요함과 개인적인 공간이 없을 때.
- 기도에서 오는 기쁨을 실감하지 못할 때.
- 기도에 대한 갈망이 부족할 때.
- 사람들과의 불화, 비판,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 자기 마음속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 체험에 눈뜨지 못할 때.
- 자신의 가치관과 신앙의 가치관에 차이가 있을 때.
- 마음이 닫혀 있을 때.
- 기도의 준비가 부족할 때.
기도응답을 못받는 10가지 이유
1.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첫번째 이유는 바로 우리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는 과연 기도응답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기도를 하고 있는지도 함께 말이죠. 우리는 영과 진정을 다하여 하나님께 집중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하면서도 거룩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우리의 기도제목인지를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역사합니다.
2. 죄를 해결하지 못해서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우리 마음에 회개하지 못한 죄가 있다면, 그것이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게 합니다. 그 죄가 기도를 방해하는 것이지요. 요즘 크리스천들의 마음은 참으로 무뎌졌습니다. 죄에 대해서 말이죠. 세상은 점점 영적 불감증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작은 것도 큰 것과 같은 죄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하나님 앞에서는 지극히 작은 죄도 큰 죄와 동일한 죄입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음행을 품어도 그것은 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도하기에 앞서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작은 죄들 역시 철저히 처리해야 합니다. 그냥 두면 우리의 마음은 점점 무뎌지죠. 죄가 깨끗이 해결되면, 우리의 기도에 막힘이 없으면 우리의 기도는 응답됩니다. 하나님께서 만나주십니다. 그런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_ 시편66:18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_ 이사야 59:1-2
3. 기도 응답을 의심하기 때문에
기도를 할때는 믿음으로 해야합니다. 응답하시리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결코 의심해서는 안되죠.
의심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를 막는 것입니다. 야고보 장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_ 야고보서 1:6-7
예수님께서느 기도할때에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분명히 말씀해주셨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_ 마태복음21:22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하나님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굳은 믿음으로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4. 정욕을 쓰려고 잘 못 구하기 때문에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_ 야고보서 4:3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말씀입니다. 정욕은 자기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을 위해 구하는 것은 응답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을 위해 기도합시다.
5. 약자를 무시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만약 말로 행동으로 약한 자들을 무시하거나 괴롭힌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를 긍휼히 여겨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으며 베풉시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_ 잠언 21:13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_ 마태복음 5:7
6.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에
사람도 자녀가 말을 듣지 않으면, 그 부모는 자녀를 가르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그 분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지 않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긴하지만, 결국 실실하신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녀를 사용하시고 친밀히 교제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읽고 따릅시다. 기도에 응답해주십니다.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_ 잠언 28:9
7. 중언부언 하기 때문에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_ 마태복음 6:7
중언부언은 '빈 말'을 뒤풀이 하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형식적인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마음의 담백하게 드려야 합니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주문같이 외우는 기도를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물론 방언기도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와 같은 기도방법이죠. 다만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우리는 삼가야겠습니다.
8. 외식으로 기도하기 때문에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_ 마태복음 6:5
하나님은 '딱'보면 아십니다. 하물며 사람도 그 사람이 외식하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당연히 아십니다. 우리의 진심을 드려 기도해야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외식하지 맙시다.
9. 자기 의에 빠졌기 때문에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_ 누가복음 18:11-12
자기 의에 빠진 바리세인을 하나님은 가장 싫어하셨습니다. 그들의 기도를 예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만함으로 예배했습니다. 당연히 기도응답이 될리가 없지요. 우리는 자기 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봅시다. 내 의가 앞서서 하나님의 일을 하거나 예배에 나서가 있는건 아닌지 말이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_ 누가복음 18:13
반면에 오히려 세리는 자기 의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판단하셨습니다. 세리는 처절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셨습니다. 우리는 상한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_ 누가복음 18:14
10.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앞선 9가지의 이유가 아님에도, 때로는 기도 응답이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어도, 기도 응답이 없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왜 일까요? 바로 그 기도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가장 우리에게 합당한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겸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렇듯 때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에 하나님이 당장 기도 응답을 주시지 않을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결론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_ 로마서 8:28
불필요한 기도 몇가지
1. 회개가 없는 기도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요9:31)
2. 말씀을 떠난 기도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느니라 (잠28:9)
3. 외식적인 기도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6:5)
4. 중언 부언하는 기도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 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아시느니라 (마6:7)
5. 의심하는 기도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약1:6~7)
6. 정욕으로 구한 기도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 (약4:3)
7. 겸손치 않은 기도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대하7:14)
8. 악인의 기도
저희가 부르짖으나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대답지 아니하셨나이다 (시18:41)
쓸모없는 기도
쓸모없는 기도를 하는 것은 자신의 키를 한 치도 자라나게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쓸모없는 기도는 아예 기도하지 않은 것과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쓸모없는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두 종류의 쓸모없는 기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맹목적인 기도로서 기도를 통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바꾸려는 기도이다.
이러한 기도는 매우 일반적이지만 전혀 쓸모없는 기도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언제나 선할진대 그 뜻을 바꾸어 달라고 기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만일 그 뜻이 악하다면 그러한 악한 뜻을 가진 존재에게 기도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바꾸려는 기도는 쓸모없는 기도이다.
전혀 쓸모없는 또 다른 기도는, 자신을 바꾸기 위하여 자신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즉 기도라는 수단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어떤 분위기나, 상태나, 단계나 체험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말한다.
이러한 기도는 개신교에서든 천주교에서든, 심지어 이성주의자들이나 단일신교에서든 아주 흔하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기도를 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이때 이러한 기도를 하는 주된 이유는 자신을 “관상(reflex)”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는 진정한 의미에서 기도가 아니며 따라서 쓸모없는 기도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도가 얼마나 위험한 유혹인지를 잘 알고 계신다.
나는 이러한 기도를 전혀 믿지 않는다.
오스왈트 챔버스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는 5가지 이유 / R. A. 토레이
1 하나님은 무조건 모든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마귀도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지만 믿지는 않는다
응답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약속'이다(요 14:12)
2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이며 주인님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
그래서 당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분을 당신의 주인님으로 영접하여 당신의 삶에 대한 모든 통제권을 넘겨 드려라
(누가 다스리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좋으신 예수님께 통치권을 드리세요)
3 예수님이 당신을 대신하여 죽으셨으므로 예수님께 나아가 죄사함을 받으라
죄를 지으며 불순종하는 자녀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신다는 성경구절은 없다
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아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게 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깨닫지 못한 죄가 있는지 알게 해달라고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4 나의 선함이나 내가 많이 했던 교회봉사활동에 의지하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라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께 갈 수 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당신에게 말씀하실 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라
예를 들어, 야고보서 1장 5절에 너희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혜를 구하면 그분이 지혜를 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5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하라
물론 우리가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다면 그것을 얻을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두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씀하시지만 내 뜻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구하십니다
그 순종으로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내 뜻아닌 주님 뜻대로 되길 계속기도)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눅 18:1)라고 하셨다
이 의미를 풀어 설명하자면 기도를 시작했으면 중단하지 말고 계속하라
하나님께 얻을 때까지 계속하라는 것이다
꼭 한번만 기도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도 세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 (마 26:44)
하나님이 응답하시려는 그 순간에,
기도를 중단하기 때문에 복을 놓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부흥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아는가?
부흥이 일어날 때까지 기도한 사람들을 통해서 부흥이 일어나는 것이다
책 <기도의 권능을 받는 법 _ R. A. 토레이> 중에서
이런 기도, 그만 그치라!
거룩한 갈망은 단순히 바라는 것이 아니다.
갈망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염원이요 그 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강하게 원하는 것이다.
영적인 일에서 갈망은 기도를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갈망이 깊을수록 기도는 더 강해진다.
갈망이 없다면, 기도는 아무 의미 없이 혼자 중얼거리는 것에 불과하다.
마지못해 드리는 형식적인 기도, 갈망이나 감정 없이 드리는 기도, 마음이 실리지 않은 기도는 전염병을 피하듯이 피해야 한다.
이런 기도로는 전혀 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은 귀중한 시간을 낭비할 뿐이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갈망이 생기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에도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우리의 의무이다.
이런 의무에 충실할 때 갈망이 생기고, 그것의 표현인 기도가 강해질 수 있다.
우리의 건전한 판단력에 따를 때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기도할 것을 명령한다.
따라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말거나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감정에 따라 기도를 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해서는 안 된다.
갈망이 없을 경우, 우리는 갈망이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영적 갈망이 없는 것을 슬퍼하면서 그런 갈망을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이런 갈망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이런 갈망이 생기면 우리는 그 갈망의 지시에 따라 기도해야 한다.
무엇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뜨거운 갈망도 생긴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느낌이 강해질수록 갈망은 더욱 뜨거워지고 갈망이 뜨거워질수록 기도가 더욱 강력해진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마 5:3)야말로 누구보다 기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또 경건한 묵상을 할 때, 거룩한 갈망이 더욱 생긴다.
당신의 영적 필요를 깊이 묵상하라.
그리고 그것을 채워주실 하나님의 의지와 능력을 묵상하라.
그러면 갈망이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기도하기 전에 말씀을 깊이 묵상하라.
그러면 당신의 갈망은 더욱 커지고 집요해질 것이며 개인기도를 할 때 잡념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향한 우리의 갈망이 그토록 약하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힘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늘의 보물을 갈망하여 헐떡거리는 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리는가?
심령의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갈망에 자극받아 영적 씨름에 나서는가?
참으로 우리는 딱한 자들이다!
우리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너무나 약하다!
우리의 영혼이 식어서 미지근한 상태가 되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었다.
그들은 미지근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슬프고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다.
그들은 하나님께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7)라고 무서운 책망을 받았다.
각자 자기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자.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갈망이 당신에게 있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타는 영적 갈망이 당신에게 있는가?
온 영혼을 쏟아 붓는 끈질긴 기도를 끝까지 해내는 힘을 주는 갈망이 당신에게 있는가?
우리의 심령에 이런 거룩한 불이 활활 타오를 때 우리는 하늘의 것에 관심을 갖게 되고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여 그분의 무한한 은혜의 보고의 문을 열게 된다.
-EM바운즈, 기도의 심장-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
기도는 신앙생활이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구약 성소에 제사장의 생활이 대 제사장은 하나님의 지성소에서 백성들의 속죄를 선포 받는 것이고 하나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 제사장은 분향하는 일 등대에 불을 맑히는 일 떡상을 진설하는 일이다.
오늘 우리의 예배는 이 구약의 물질적인 성소생활을 영적으로 이룬 것이다. 속죄의 선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속죄를 이루었고 계시의 말씀은 기록하여 그의 종들로 하여금 전하게 했다. 그리고 제사장 나라를 삼아 성소생활을 이루었는데 떡상은 나눔의 생활 사랑의 실천이고 등대는 빛 된 생활의 찬양의 생활이며 분향단의 분향은 기도의 생활이다. 그러기에 기도는 신앙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기본 요소이다.
그런데 성도가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신앙의 결핍, 믿음이 결핍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살피면 몇 가지를 알 수 있다. 인간의 삶이란 즐거운 일과 괴로운 일이 교차하면서 생이 이어진다. 성도는 즐거운 일에는 감사가 있어야 하고 괴로운 일에는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에는 기도가 없을 수 없다.
1. 죄에 처해 있을 때에 기도하지 못한다.
아담이 한님께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피하여 무화과나무 아래 숨었다.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는 어리석어 졌다. 그래서 하나님을 등지고 피하려 했다.
창 3:9-1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믿는 자가 죄를 범할 때 그 영혼이 하나님을 피하게 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피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시 139:7-10.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10)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2. 사탄의 훼방을 받아 기도하지 못한다.
사탄은 기도하지 못하도록 훼방한다. 사탄은 욥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무자비하게 시험을 했다. 동방의 부자인 욥을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게 하고 그리고 그의 10명의 아들을 남김 없어 죽이는 무서운 시험을 했다. 그러자 욥은 기도했다. 기도하는 욥에게 찬구들의 우정을 이용하여 시험했고 욥의 아내가 극적으로 시험했다.
그리스도께서 광야에 기도하실 때에 찾아와 세 번이나 시험했다. 심이 주리신 그리스도께 돌들이 떡이 되게 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배부터 채우라고 유혹했고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으려는 것이다. 꼭대기로 올라가서 뛰어 내려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하게 했고 세상의 모든 것을 주고라도 저에게 경배하라고 했다.
사도바울은 기도는 영적인 싸움이라고 했다. 즉 사탄의 시험을 이겨야 한다는 말인데 이기는 비결은 하나님의 영력을 힘입어야 한다.
딤전 6:12. 씨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사탄은 성도가 기도하는 기간에 어려움을 주어서 못하게 한다. 특히 작정기도 할 때에 육신적인 어려움을 주어 못하게 한다.
3.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옛사람이 강하여 사단에게 순종한다.
신앙생활은 영적인 싸움이라 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성도는 두 자아(自我)가있다고 했다. 하나는 옛 사람이며 하는 새 사람이라 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항상 우리 안에서 싸운다. 믿는 자들은 모두 경험하는 일이다.
바울은 두 자아에 대헤서 이렇게 말했다.
롬 7:15-18.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16)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바울은 영적 싸움에서 항상 죄에게 패한다고 했다.
롬 7:24-2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 두 자아와의 싸움이 기도이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을 하려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성소의 하나님을 항상 대면하는 생활 예배 생활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장차 거룩하신 하나님과 대면하며 살아야 할 자들이다. 그러기에 예배를 주셨고 그 예배생할 속에 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입혀준 의의 옷을 항상 거룩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성도의 기도 생활이다.
기도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종으로 이용되어 사단의 뜻을 이룬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속사람이 강건하여 사단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사단을 기쁘게 한다. 사단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4. 영혼이 소경된 자기 수치를 모르는 사람은 기도하지 못한다.
영적인 소경은 기도하지 못한다. 영적인 소경은 영적인 자기 자신의 모습 즉 허물과 죄를 볼 수 없다. 그러기에 영적인 추함을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 그러기에 회개하지 않는다. 회개는 내 영혼을 거룩하게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계 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계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예복 입지 않은 자는 쫓겨나게 되었다.
마 22:11-13. 임금이 손님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 왔느냐 하니 그가 유규무언 이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믿는 자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셨다.
계 6: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리라 하시더라.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생명나무에 나아간다고 했고 성에 들어간다고 했다.
계 22:13-14.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그 의의 옷을 더럽히는 자 함부로 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모독하는 일이다. 그러기에 회개하는 생활이 바로 기도하는 생활이다.
5. 죄를 주님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에 기도하지 못한다.
기도는 테일라(חלָפִת) 프로세유케(προσσευχη)교제 대화 가까이하다. 인데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대화하고 교제하는 행위를 말한다. 즉 하나님과 화목하는 화목 제사와 같은 것이다.
구약에서 제사 중에 화목 제사를 주셨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한 제사인 것이다. 그래서 화목제물은 더러운 것은 태우고 고기 중 흔든 가슴과 뒷다리는 제사장과 나누고 앞다리와 머리 부분은 가족이 나누어 먹는다. 화목은 나눔이고 교제인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신앙 고백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윤리이고 생활이다. 그러므로 내 생활에 기도가 없는 것은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고 화목을 이루지 못하고 산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기도는 주님을 가까이 하는 행위이다. 주님과 화목하는 행위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가까이 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가까이 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를 더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6. 불 신앙적 교만에 빠져 있을 때에 기도하지 못한다.
사울 왕이 교만해져 불신앙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다.
삼상 9:21.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다윗은 중죄를 범하고 징벌을 선언 받고 눈물로 기도했다.
시 6:4-8.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5)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6)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쇠하며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 어두웠나이다 8)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과 다윗의 차이점은 사울은 기도가 없는 왕이었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사울이 왕이 되기 전에는 도덕적으로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왕이 후에는 영적으로 교만해져서 스스로 제단을 쌓았거나 기도한 일이 없다. 그러나 다윗은 기도로 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도는 나약한 자나 어려움을 겪는 자가 하는 것이라는 유혹에 빠져 있다. 자신의 나약함을 알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을 도움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 힘으로 살려고 한다. 자기 힘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 자기 영광을 누린다. 은혜를 모르는 교만에 빠진다.
7. 평안의 잠에 빠져 있을 때에 기도하지 못 한다.
영적인 안일에 빠진 사람은 가도하지 못한다. 기도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이다. 평안을 주신 은혜를 아는 사람은 감사하게 된다. 그러나 은혜에 빠져버린 사람은 감사를 잊어버린다.
살전 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주님은 나의 처지와 형편을 다 아시기에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하여 은혜를 알게 하신다. 은혜를 알게 하심으로 나와 가까워진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알게 한다.
주께서는 구하는 이가 얻는다 했다.
마 7:7-8.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7:8)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8. 선을 행하다 낙심될 때 불신앙에 빠져 기도하지 못한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 될 때 기도하지 못한다. 열심히 주의 일을 하는데 어려운 일이 겹쳐 힘들어지면 신앙이 고갈 되는 경우가 있다.
또한 불신앙이 일어나게 된다. 불신앙은 무슨 일이나 인내하고 나아가면 해결해준다고 사단의 유혹을 받는다. 이것이 운명적 신앙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루어질 때 까지 기도하라 했다.
눅 18:4-5.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5)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낙심하지 말고 인내하며 기도하라 했다.
갈 6: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이 약한 자는 결실하지 못한다고 했다.ㅣ
눅 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바울은 호나난 중에서도 기뻐하며 목적을 이룬다고 했다.
롬 5:3-4.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성경은 좋은 땅은 인내로 결실한다고 했다. 하나님은 때로 나의 신앙의 인내를 요구하신다. 그것이 믿음을 온전하게 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기도 했는데 속히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 낙심하여 기도하지 않게 된다. 어려움이 오고 또 주님의 일을 하다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느낄 때에 기도하게 된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대로 속히 이루이지 않을 때에 낙심하고 기도를 포기 하게 된다.
다윗은 소년 시절에 기름 부음을 받고 왕이 되기까지 십여 년이 넘도록 말로 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아 알라고 했다.
시 34:7-9.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 도다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다윗도 기도의 응답이 속히 안 되었을 때 어느 때 까지냐고 애원했다. 그는 10여년을 고난을 당하면서도 기도를 시지 않았다. 왜냐 하면 의지할 곳은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도의 응답은 나의 생각에 맞추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잘 아셔서 응답해 주신다. 하나님은 내 모든 형편을 알고 계신다. 무엇이 필요하며 언제 필요한 것을 모두 아신다. 그러기에 구하는 자에게 때를 따라 필요한 대로 신앙에 분수에 맞게 주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구해한다.
기도하지 않을 때 생기는 일들
기도하지 않는 이유들을 따라가 보면 두려움으로 연결된다.
바빠서 기도하지 않으면 소명의 확신이 떨어지게 되어 우선순위가 망가진다.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에 전무했다(행 6:4).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우리가 기도와 말씀을 다른 바쁜 일들로 대체하게 되면 시간을 질이 아닌 양으로 다루게 되어버린다.
기도하지 않으면 거룩과 멀어진다.
기도 없는 사역은 동기가 사라진 행위가 되어 겉으로는 거룩해 보여도 율법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들로 전락한다.
기도가 없는 인생은 말이 있어도 능력은 없다.
말뿐인 거룩이 된다. 그때 두려움이 임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멀어진다.
그분이 나를 떠나서가 아니라 내 편에서 관계가 소원한 것처럼 경험되기 시작한다.
마치 하나님을 피해서 어딘가에 숨을 수 있을 듯한 거리감을 가져다준다.
기도를 멈추면 심령이 예배와도 멀어지고 모든 거룩한 행위들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한다.
그때 두려움이 임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 이외의 것들을 더 의지하게 된다.
기도를 통한 영적 호흡이 없는 곳에서는 숨막혀 하는 영혼의 발악이 세상의 지푸라기들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기도로 모든 것을 구해서 최선의 것을 얻게 되는 특권을 저버린 이상, 어떤 것을 의지해도 허망할 뿐이다.
그때 두려움이 임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자기를 높이게 된다.
기도를 등한시하는 성도는 반드시 ‘나’를 반복하기 시작한다.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연습을 하지 않는 한 시야는 말할 수 없이 좁아진다.
기도가 사라진 심령은 언제나 자기밖에 모르는 영적 어린아이가 된다.
그때 두려움이 임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나타내게 된다.
성령의 사람들이 기도를 통해 그분과 대화하지 않으면 독자적인 행동을 취하기 시작하게 된다.
문제는 그 대부분이 자아의 세속적 욕구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때 두려움이 임한다.
기도를 떠난 성령의 사람은 영안을 잃고 삼손처럼 세상의 굴레에서 쳇바퀴를 돌리다 비참하게 복수를 외치게 된다
(삿 16:21-28).
기도가 없을 때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외친다.
그때 두려움이 임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두려움이 임한다.
고난 없는 영광은 가짜다.
죽음 없는 부활은 거짓이다.
예수님을 따라가야 천국의 상속자가 된다.
우리의 예수님은 새벽에도, 바쁜 중에도 억지로라도, 습관을 가지고 기도하셨던 분이다.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들도 늘 기도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질 줄 알고도 기도할 정도였다.
의인은 기도했다.
기도꾼은 용맹하다.
그들은 자아에 대해 죽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결정을 골방에서 먼저 진행한다.
골방 고향으로 들어가라.
사지에서 사기를 드높여라.
죽음의 그림자들 앞에서 무서워하지 말고 천국의 그림자를 찾아 기도의 방석을 펼쳐라.
세상의 모든 바벨론 앞에서 기도의 뜻을 정하고 의미 없는 죽음으로부터 몸을 지켜라.
예수님은 죽기 위해 오셨다.
그분은 늘 기도하셨다.
하나님이신 분이 그러셨다면 우리 같은 죄인들은 더욱 기도해야 한다.
의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다.
성도의 기도도 의인의 기도이다(약 5:16).
- 송준기 <무서워마라> 중에서 -
기도가 막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도가 막히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치명타다. 사람에게 있어서 혈관이 막히는 것과 같다. 기도가 막히면 신앙생활에 모든 것이 막힌다. 기도 없는 회개는 상상도 할 수가 없다. 기도하는 자가 성경도 읽고 싶고 전도도 하게 되며 교회생활에도 적극적이다.
기도하지 않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는 뻔뻔함을 보일 수밖에 없다. 기도는 우리의 양심을 흔들어 깨우는 촉매제와 같은 것이다. 성령충만함이 기도에서 나온다. 기도할 때에 성령의 생생한 체험을 하게 된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체험한 자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모든 죄를 털고 일어날 힘을 얻게 된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임재 하시는 성령은 소멸하는 불이기 때문에 모든 죄된 것들을 살라 불태워 버리실 수 있다.
기도는 비틀어진 우리의 심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킬 뿐더러 인간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역활을 한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신앙은 기도의 유무에 달려 있다.
우리가 왜 기도를 안하게 되는 것일까?
첫째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대화가 막힌다. 사랑하면 서로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 한다.
둘째로 게으름 때문이다.
게으름은 신악생활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종양과 같다. 서서히 신앙생활을 마비시키며 마침내는 하나님과의 단절로도 이어지게 하는 무서운 영적 질병이다.
세번째는 우선 순위가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보다 더 우선하는 세상적인 것 때문에 기도를 안하게 되는 것이다. 올바른 신앙생활은 무엇보다 우선순위가 똑바로 세워져야 가능하다.
네번째는 성령충만함을 받지 못해서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충만함을 받지 못하고 성령충만하지 못하면 기도할 수 없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기도하면 성령충만하고 성령충만하면 기도할 수 있다는 선순환으로 바꾸어야 한다.
다섯째로 교만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할 수 있다는 자만심과 교만함이 기도를 안하게 만든다. 이런 사람들은 고난을 맛보고 나서야 비로소 기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일이 닥치기 전에 먼저 기도하는 습관이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역동적인 신앙생활이 가능할 수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쉬지말고 기도하라" (살전 5:17)
"무시로 기도하라고 강력하게 말씀 하신다." (엡 6:18)
당신에게 기도응답이 없는 3가지 이유
1. 전심으로, 쉬지 않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
기도응답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심으로 그리고 쉬지 않는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필자가 자의적으로 만든 이유가 아니다.
성경에 있는 그대로 옮겼을 뿐이다.
성경에는 기도를 할 때 자신의 몸과 영혼과 의지를 다해, 다시 말하자면 마음을 다해 기도를 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또한 쉬지 않고, 항상 기도하라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기도하지 않으면 응답이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는 하나님의 응답이 내려오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성경에 조목조목 기록해 놓으시고, 자녀들이 자신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자신의 뜻에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내시지만, 순종하지 않는 자녀들은 게으르고 악하다고 여기시며 어둠에 버리신다.
그래서 당신은 성경대로 기도하고 있는가? 기도할 때 허리가 끊어지도록 전심으로 간절하고 혹독하게 구하고 계신가?
아니면 조용히 명상하며 이 생각 저 생각에 휩싸인 채, 가끔은 끄덕끄덕 졸면서 기도하지 않은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여기신다면, 자신의 생각이나 교회의 관행이 아니라 성경대로 따라 하시라. 평생 해 오신 교회의 관행이나 자신의 기도방식이 응답이 없었다면, 앞으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쉬지 말고 하나님께 구하시라.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은 항상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아무도 따라할 생각이 없다.
그러면서 밥도 먹지 말고 잠도 자지 않고 기도해야 하냐고 불평하고 있다.
필자가 경험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시간과 빈도는, 적어도 아침과 밤에 방해받지 않는 시간에 각각 1시간 이상, 그리고 낮에 혼자 있을 때에 틈나는 대로 기도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렇게 기도해서 성령의 놀라운 기적들을 수도 없이 경험했으며, 영성학교를 통해 필자가 해온 기도방식을 가르치고 있다.
당신이 필자의 기도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신이 그간 해왔던 기도방식에 하나님의 응답과 성령의 능력이 있었는지 살펴보시라.
2. 믿음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믿음이 없이 입으로 내뱉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독백일 뿐이다.
지금까지 기도응답이 없는 이유는 믿음이 없이 기도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신은 필자의 말에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기도할 때마다 이루어주실 것을 굳게 믿었다고 말이다.
오홋, 그런가?
그러나 당신이 기도자리에서 일어나서 일상생활을 할 때, 부정적인 생각들이나 의심이 들어올 때도 믿음을 굳게 지키고 있는가?
기도할 때만 믿는다고?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기도할 때 뿐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마음의 상태를 살펴보고 계신다.
하루 종일 의심과 실망, 불안과 걱정, 염려와 두려움을 갖고 있다가, 기도자리에 앉아서 “미쓥니다!”를 연발하며 소리쳐 보아야, 그건 믿지 못한다는 방증일 뿐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포장된 생각을 모르실 리가 없다.
하나님은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기도하지 않을 때 들어오는 불신앙과 부정적인 생각을 쳐내고 믿음을 보이기를 원하신다.
그게 바로 믿음을 보이는 행위이다.
어떤 부정적인 경우에도 믿음을 보이는 사람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응답을 얻었다.
수로보니게 여인과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다녔던 과부의 예를 보라.
그래서 당신은 이들처럼 굳센 믿음을 보였는가?
3. 죄와 싸우지 않는다.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잠15:29)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5:16)
기도의 응답이 내려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죄와 싸울 생각이 없이 살아간다.
죄란 하나님이 싫어하는 말과 행동, 생각과 성품을 총망라한 말이다.
하나님은 기도한 시간이나 희생적으로 기도하는 방식을 보시는 게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보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인의 기도를 응답하실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죄와 싸워 이길 생각은 없이, 새벽기도, 작정기도, 금식기도 등 희생의 강도만 높이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의 의만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는가?
우리네 교회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응답이 없기 때문이고,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내용도 세속적이고 탐욕적인 이유도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라 자의적이고 관행적인 기도방식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쉬운 기도는 힘들더라도 응답이 신속하게 내려오는 기도이고, 어려운 기도는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기도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쉬운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자, 아예 기도행위를 덮어버리고 종교행위와 신앙행위만을 반복하고 있다.
대부분의 목회자조차 하루에 1시간도 기도하지 않은데, 어떻게 그런 교회에 하나님이 존재감을 드러내시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