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너 몇 살이야?” K-나이의 종말
입력 : 2022-04-17 00:05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E.H. 카(Edward Hallett Carr)
서울에 사는 김 씨는 1992년 5월 8일생이다. 그는 2022년 4월 17일 기준 한국 나이로 31살이다. 그런데 법률상으로는 29살이며 병역법상으로는 30살로 표기된다. 또 다른 인물인 조 씨는 2001년 1월 5일생이다. ‘빠른년생’인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1년간 친구들과 술 한 잔 마시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는 3가지 방법으로 나이를 센다. 일상에서는 한국식 나이 계산법인 ‘세는 나이’를 사용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1살이 되고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씩 먹는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만 사용해 해외에서는 ‘Korean age’로 불린다.
법률관계에서는 출생일부터 나이를 계산하는 ‘만 나이’를 사용한다. 태어난 순간을 0살로 시작해 생일이 지날 때마다 한 살을 더한다. 국제 기준과 같은 방식이다.
청소년 보호법과 병역법 등 일부 법률에서는 현재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뺀 ‘연 나이’를 사용하고 있다. 별개로 취학 시기, 나이 서열 문화 등을 고려해 ‘빠른 생일’도 인정한다. 관습적으로 음력 생일을 사용하는 노년층을 포함하면 나이 셈법은 더 복잡해진다.
이용호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왼쪽)와 박순애 인수위원이 1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원회 공동기자회견장에서 법적, 사회적 나이 계산법 통일에 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1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에 따라 법적·사회적 나이 계산법을 ‘만 나이’ 기준으로 통일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르면 내년부터 생일이 지나지 않은 사람의 경우 기존 나이보다 최대 두 살씩 어려지게 된다.
이용호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는 “법적·사회적 나이 계산법이 통일되지 않아 국민들이 사회복지서비스 등 행정서비스를 받거나 각종 계약을 체결 또는 해석할 때 나이 계산에 대한 혼선과 분쟁이 지속돼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해 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나이 셈법 때문에 남양유업 노사가 법적 다툼을 벌인 사례가 있다. 노사 단체협약에서 임금피크제 적용 시점을 구체적으로 표기하지 않고 ‘56세’로 정한 것이 문제가 됐다. 노조는 만 56세로, 사측은 만 55세로 각자 유리하게 해석하면서 소송까지 이어졌다. 전 세계에서 한국만 ‘세는 나이’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우리나라의 나이 셈법은 과거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쓰던 방법이다. 동아시아식 셈법에는 여러 가설이 있다. CNN과 AP통신 등 외신들은 동아시아에서 ‘0(Zero)’ 개념이 서양권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정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자 문화권에는 0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1부터 시작했다는 가설이다.
이외에도 인간 존중 사상의 영향으로 뱃속의 태아에게 나이를 적용했다는 가설이 있다. 그러나 명확한 건 없다. 우리나라 고유 설날 문화인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도 여기에서 유래됐다. 같은 나이를 뜻하는 ‘동갑’이라는 말도 60갑자가 일치하는 같은 해에 태어났다 하여 생겨났다.
‘세는 나이’를 적용하는 나라에서 12월 31일에 태어난 아이는 하루 만에 두 살이 된다. ‘빠른년생’으로 인한 혼란도 많았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100여 년 전부터 ‘세는 나이’를 폐지했다. 일본은 1902년 법령을 제정하면서 ‘만 나이’를 정착시켰으며 중국은 1966~76년 문화대혁명 이후 폐지 절차를 밟았다. 북한은 1980년대 이후부터 ‘만 나이’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 또한 62년 ‘만 나이’를 공식 나이로 발표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여전히 ‘세는 나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수위는 “오랫동안 굳어진 국민 의식 때문에 나이로 인한 혼란이 빚어진다”고 설명했다.
일상생활에서 ‘만 나이’를 적용할 경우 어제까지 형, 언니였던 사람이 오늘은 동갑이 되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우려도 있다. 특정 호칭으로 서열을 결정하는 문화 탓이다. 이런 풍조가 사라져야 만 나이 통일로 인한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
배규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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