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수록 오싹하다.
공원 후문을 나서면 그 지점을 정점으로 도로는 양쪽으로 나뉜다.
보통은 나오자마자 왼쪽 길로 향한다. 내리막이다.
반대편도 마찬가지 내리막길이다. 그쪽으로는 갈 일이 없다.
도로의 위치가 높아 안전 목책이 이어진다. 그 너머 급한 경사면에 금계국 무리가 가득 바람과 햇살에 빛나고 있다.
제대로 담으려면 한참을 내려가 아래쪽 길에서 찍어야 하는데
언덕을 내려가기 전 위에서 아래로 폰 카메라 렌즈를 이리저리 움직여 시도를 했지만 무리였다.
할 수 없이 평소 가지 않던 오른쪽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공원 둔덕에 보이는 한 무더기 금계국을 담아야지.
평소에 그 길은 통행이 거의 없었다는 생각을 하며 무심코 돌아서는 순간 낯선 경보음이 급하다.
그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감을 잡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있는데 날카로운 금속성 마찰음이 뒤이어 들려왔다.
그제야 사태를 짐작하고 뒤를 보는 순간. 비스듬히 자전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브레이크를 쎄게 밟았던지 체인이 벗겨져 돌돌 말려 있고 자전거 주인의 인상이 있는대로 구겨져 있다.
그 삐리릭거리던 경보음은 어디 먼데서 들려온 게 아니었다.
아차! 방심하고 뒤를 보지 않았구나. 가끔 반대편 경사를 타고 올라 급경사의 속도감을 즐기는 사람도 있거나
공원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왼쪽길로 가는 사람이 많고 더구나 자전거 도로는 저 아래 따로 있어 그날따라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는 동안 자전거맨은 체인을 바로 채우느라 애만 쓸 뿐 화를 참으며 한 마디 말도 없다.
미안한 마음에 자전거를 붙들어 드릴까요? 해도 무반응.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은데 험한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
더 미안하다. 집에 와서도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다가 번쩍 드는 생각. 그분이 그처럼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으면 나는 자전거에 치어 그 경사로에서 그대로 나딍구는 참사로 이어졌겠구나 싶었다.
자전거가 고장이 날 정도로 힘을 주었을 그 사람 덕분에 부주의한 내가 위기를 넘겼다는 생각이
그제야 드는 것이다. 이번에는 미안함에 더해 고마움이 밀려왔다. 생각할수록 고마웠다.
온전하게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큰 부상을 입었더라면 나의 일상은 무너지고 말았을 텐데....
그래도 조심성만큼은 자신했는데 금계국이 뭐라고 정신을 놓고 있었을까.
누군지도 모를 그분에게 내 마음이 전해졌으면 했지만 바랄 수 없는 일. 그래도 마음엔 파장이 있어 전해질 수 있다고 믿어본다.
해마다 이맘때 만나, 때마다 유혹하는 강렬한 빛, 황금빛 금계국의 무리는 이제 각성의 꽃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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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야~금계국을 이쁘게 담으셨네요.
저희 시골집 가는 길에 해마다 너무 이쁘게
피어 있는데 사진을 찍고 싶어도 도로변이라
위험할 거 같아서 포기하곤 했습니다.
저들은 무리를 지어 있으면 한없이 이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