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0일 토요일
장성 남창계곡을 따라 옆으로 난 길을 타고 쭉 걸어들어오면
은선동 삼거리가 나오고 왼쪽으로 한 삼십여 분 올라오면 입암산성 남문이 보인다.
입암산성 전체로 볼 때 남아있는 부분은 이 남문 쪽 밖에 없고
북문쪽은 북문 터라는 안내판만 있으며
군데군데 성벽으로 쓰여졌던 돌무더기들과 마을터만 남아있다 한다.
도대체 남문은 언제 나오냐고요~~~ 거의 지쳐갈 즈음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커다란 나무와 돌로 쌓은 거대한 축조물들..
이야~~~ 이게 바로 남문 성벽이로구나
힘들게 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분이 이와 같을까..
올라오는 동안 쭉 옆으로 계곡이 있었지만 국립공원 보호구역이라 계곡 진입 금지여서
아무리 덥고 힘들어도 참고 참았었다.
'진입시 벌금 30만원'이 써붙어 있어도 물 속에 들어가 있던 몇 몇 사람들도 있었지만
잘 참고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손이라도 적셔보자.
물아, 반갑고 고맙다..
중간에 포기하고 올라오지 않았으면 맛볼 수 없었을 이 성취감..
이 네모나고 동그란 구멍들은???
나중에 찾아보니 문이 있었던 흔적이라고 한다.
이 곳 입구를 통해서 삼한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 사람들이 드나들었었겠지?
참으로 유구한 세월이로다.
아빠와 먼저 성벽에 올라간 대훈이, 과연 역사 공부를 얼마나 했을까..
입암산성이 얼마나 역사가 깊은지 알 수 있는 설명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봉준 장군께서 이곳에 잠시 은신해 있었다는 내용..
당시 관군의 몸으로 반란군 대장을 체포하지 않고 오히려 숨겨주었다는 이 곳 산성의 별장 얘기가 감동적이다.
입암산성은 전라도를 방어하는데 중요한 곳으로 노령산맥에 이어져 전라북도 정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성이다.
높이 626m인 입암산의 계곡 능선을 따라 만든 포곡식 산성으로 약 3.2㎞정도 남아 있다.
조선시대 태종 9년(1409)에 고쳐 쌓고 훗날 이귀와 이귀형이 성의 폭을 넓히고 낮은 곳을 높이 쌓았다.
현재 남문과 북문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성벽은 수직에 가까우며 물을 막아 충분한 양의 물을 준비해 오랜 시간 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한,
조선 후기 방어시설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산성 주변도 둘러보았고 역사 공부도 했고 쉴 만큼 쉬었으니 내려갈 시간..
지친 결이는 이곳에 있다가 어느 노부부의 사진을 찍어드렸다는데
그 중 노 신사께서 우리 가족사진을 찍어주시겠다고 하셔서
"어머나, 감사해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가족 사진 한 번도 못 찍었는데 너무 감사해요."
하고 감사 인사를 드렸더니 사진을 찍어주시고는 "내가 사진학과교수요." 하신다.
깜짝 놀라서 " 그러세요? 어느 대학이신데요?"
"광주대학교라오"
"어머 그러세요. 반갑습니다."
교수님께서 결이에게 몇학년이냐고 묻고 고2라고 하니까 어느 과 가려고 하냐고..
그래서 간호학과를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 간호사들 힘들고 월급도 적고 고생한다며
사진학과로 오라신다. 당신 아들 딸도 둘 다 사진학과 나와서 돈도 잘 벌고
재밌게 잘 살고 있다고..
우리 부부 사진 한 장 더 찍어주시고 내가 명함 좀 주시라고 했더니
나중에 당신에게로 와서 입암산성에서 만난 학생이라고 하면 내가 금방 알아먹을테니
꼭 찾아오라고 하시며 명함을 건네 주셔서 받아보니
광주대 문화예술대학 학장님이셨다.
아이고, 그런데 우리 딸 클났다.
결이 하는 말, "엄마 사실은 나 간호사되는 거 그렇게 절실한 건 아니야.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어~, 엄마는 니가 간호대 간다 그래서 고맙기는 한데 사실은 엄마도 너 고생할 거 생각하면
그렇게 썩 좋은 것만은 아니었어."
"그래? 그럼 나 사진학과 갈까?"
"글쎄, 너 사진 찍는 거 취미 있어?
그냥 니 셀카 찍고 친구들이랑 이미지 사진 찍고 그런 거랑은 차원이 다른데..
이게 그렇게 갑자기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고
집에 가서 차분히 사진학과에 대해서 더 알아보자."
"그래요. 아무튼 일단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겨.."
그러더니 "엄마, 초록색 잎사귀들이 너무 예뻐요" 하면서 찰칵~
"엄마 아빠 함께 서 보 세요" 하면서 찰칵~
그렇게 팔랑귀 우리 결이는
우연히 만난 그 교수님과의 인연에 대해 곱씹으며 방방 떠가지고 산을 내려왔다.
올라갈 때는 그리 힘들어서 잘 읽어보지도 않던 안내판을
내려가면서는 룰루랄라 신나게~~~
무얼 그리 열심히 봤나 했더니 그 옛날 이 길이 정읍으로 넘어가는 샛길이었다는 안내판..
어느 새 처음 들어왔던 입구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오늘 우리 아그들 너무 고생 많았다고
격려 차원에서 등산 장학금 2만냥씩 지급했다.
그 중 만원은 통장으로 입금시키고
만원은 현찰로...
이렇게 아이들 첫 대학 등록금을 위한 장학금이
아이들 통장으로 차곡차곡 쌓여
결이는 이백칠십여만냥이, 대훈이는 이백사십여만냥이 모아졌다.